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마왕 신해철? 신해철은 마왕이 아니었습니다.

마산 청보리 2015. 1. 19. 07:00

개인적으로 참 쓰기 힘든 서평이었습니다. 


신해철씨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신해철씨의 데뷔적부터의 그의 노래는 곧 저에게 또다른 조언이며 충고였으며 감동이었습니다.


그의 사고 소식을 접한 후 개인적으로 SNS에 올렸던 글입니다.


"중학 시절...최초로 샀던 테이프가 바로 신해철이었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는 내 노래방 최초의 노래였다. '나에게 쓰는 편지'는 힘겨울 때마다 나에게 힘을 줬고, '도시인'은 현실의 공허함을 일깨워 주었다. '날아라 병아리'를 통해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아버지와 나'를 들으며 참 많이도 울었다. 이젠 그가 없다...세상을 향해 소리치던 그가 없다. 믿어지지 않는다...권기자의 욕이 너무 공감이 간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왜 이렇게 욕이 나오는 걸까. 씨X, 정말 X같다...뭐냐..이게..."


그는, 제가 가수로써, 뮤지션으로써,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이 욕을 하면 화를 내며 그 사람을 대변했던 유일한 가수였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해서 이 책을 바로 구해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책은 구했으나 첫장을 넘기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이제 정말 그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책장을 넘기기 힘들게 했습니다. 프롤로그에 '날아라 병아리'의 가사가 적혀있습니다. 숨이 턱 막혔습니다.




어릴 적의 신해철


신해철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지금까지 신해철이 코를 흘리는 어린시절을 겪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제가 너무 거대하게 봤던 것일까요. 책의 서두, 나의 프로필에서 부터 신해철씨는 글 읽는 이의 정신을 흔들어 버립니다.


이름 신해철

나이 29세 이후 정지, 언급하지 않으며 화제에 올리지 않고 신경도 안 씀.

정신연령 뛰어난 탄력성을 자랑하며 특히 타깃인 여성의 연령에 따라 적절히 변화함. 전자오락 할 때, 만화책 볼 때('공각기동대' 같은 것 말고 '닥터 슬럼프') 열 살 이하로 떨어지며 메탈 들을 때 십대, 여자 꼬실 때 이십대, 스트립바 들어갈 때 삼십대 등 등으로 변하며 매니저들에게 매우 귄위 있는 목소리로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서...내일부터 일하지, 라고 말할 때는 육십대 이상으로 변함.(본문중)


솔직히 책을 읽으며 처음엔 조금 놀랐습니다. 구어체로, 욕이 너무나 자유롭게(?) 적혀있으며, 성, 만화, SF, 사회문제, 등이 너무 적나라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놀란 것은 처음 2초 정도입니다. 그 후 부턴 '이게 신해철이지.'라는 슬픈 생각과 함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는 실제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와 나'를 만들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상당히 엄한 분이셨으나 아들에 대한 사랑도 엄청났던 분이었습니다. 아들(신해철)이 친구의 장난감 자동차를 너무 부러워해 혼자 울고 있었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선 즉시 저녁 밥상을 엎어버리고 인천까지 가서 자동차를 사오신 일화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말없고 무뚝뚝하고 고집 센 아버지와 자신의 음악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시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신 어머니 사이에서 무난하게 자랐습니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였고 대학시절 짱돌좀 던져봤으며 그 후 음악에 미쳐 음악만 생각하고 자란 청년이었습니다.


허나 우연한 기회에 대학가요제에 급하게 출전하여 생각치도 못했던, 정확히 표현하면 기대하지도 않았던 대상을 받으며 인생이 바뀐 것 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456페이지나 되는 책입니다. 제가 근래에 봤던 책 중에 가장 두꺼웠던 책입니다. 하지만 그 두께가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인간 신해철의 이야기 부터 그가 언론과 사회에 한번도 변명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부활에 관련된 신랄한 비판, 왜 대마초가 문제인가. 100분 토론관련, 아프간 피랍자 귀환 등 특별한 그의 생각이 아닌, 평범한 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는 많은 지인들의 추모의 글들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읽다가 어머니의 편지에서 저 또한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하느님, 제가 언제 대단한 아들, 훌륭한 아들을 원했습니까? 난 단지 어린 손주들과 버릴 곳 하나 없는 알토란 같은 어미 옆에서 같이 떠들고 웃어줄 그냥 아들이 필요한 것뿐인데 그것이 그리도 큰 욕심인가요? 하느님,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저와 아들이 순서가 바뀌었어요. 병원 침대 위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아들에게 주님 앞에 가거든 우리 아가들 곁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버티고 조르라고 절대 그냥 가지 말라고 그리도 귀에 대고 경 읽듯 했건마는. 이렇게 황당한 나의 노년 생활은 상상조차 못해 봤습니다.."(본문중)



신해철씨의 가족 사랑은 세상이 알 정도로 지극했습니다. TV에서도 소개된 그의 아내를 향한 사랑, 자녀 사랑은, 시청하는 저조차 손이 오글거릴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가족을 사랑하고 장난치며 활짝 웃는 신해철씨의 모습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습이 신해철씨의 참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과 싸우며, 독설을 내뱉고, 사람을 무시하는 신해철은 세상이 만들어낸, 세상이 원했던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은 '날아라 병아리'로 시작하여 '민물장어의 꿈'으로 마무리 됩니다.


신해철..


그의 삶에 음악과 가족, 사랑을 빼고는 어느 것도 설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뮤지션 신해철이기 전에 인간 신해철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습니다. 그가 더더욱 가까이 와 닿습니다. 있을 때 잘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나는 종종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가사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죽음, 혹은 자살을 주제로 하여 이루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나는 살기 위해)왼쪽으로 핸들을 잡아 돌렸다. 그 짧은 시간에 내 머리에 스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얼마 전 딸을 낳은 내 아내? 내 딸?...어쨌던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음악을 한다. 음악을 해서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다. 팬들에게 말한다. 있을 때 잘하라고. 나는 여러분의 곁에 영원히 있지 못할 것이기에."(본문중)


마왕신해철은, 인간이었습니다.


<신해철, 당신은 음악에 미친, 당당한 뮤지션이었습니다. 그를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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