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카테고리의 글 목록
728x90

2004년도 봄, 첫 담임을 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 선명합니다.

 

“선생님 이름은 김용만입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여러분을 숫자로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하루라도 빨리 여러분의 이름을 외우고 싶어요. 해서 선생님이 부탁하나 할게요. 혹시 지나가다 샘을 보면 인사하며 이름을 말해주세요. 선생님도 나름 노력하겠지만 여러분이 도와주면 더 빨리 이름을 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름을 외운 친구에게는 이름 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 때부턴 인사할 때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되요. 도와줄 수 있겠어요?” “네!!!!!”

 

아이들의 대답은 우렁찼습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교실을 나섰고 교무실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교무실에서 초임인 저에게 중견 선생님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시며 이런 조언을 하셨습니다.

 

“김용만샘, 초반부터 아이들 너무 편하게 대하면 안되요. 애들이 교사를 만만하게 봐요. 초반에 잡아야 뒤로 갈수록 편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경어쓰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세요. 후회할 수도 있어요.”

“네.”라고 답은 했지만 마음은 불편했습니다. ‘아이들을 잡으라니? 편하게 대하면 안된다니? 아이들에게 경어를 쓰지 말라니..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전 지금도 수업시간 등 공식적 자리에선 학생들에게 경어를 씁니다. 쉬는 시간이나 개인적 만남에는 편하게 부르지만 수업시간 만큼은 경어를 씁니다. 왜 그런 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일반학교에서 10년 근무하며 회의가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교사생활은 이게 아닌데, 아이들은 끝없는 시험 스트레스와 성적비교, 사교육에 내 몰리며 힘들어 하는데, 난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방학때도 보충수업 나와야 한다고 말하고, 야간 자율학습 빠진 친구는 다음 날 혼내고, 성적이 나쁜 아이들이 방황하면 혼내고..난 어떤 교사인가..’

자연스럽게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한국교육의 체질적 변화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썼습니다. 결국 2014년, 경남에 최초로 생긴 공립 대안중학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삶을 위한 수업 책표지

이전과 너무 다른 학교 생활

 

대안학교는 아이들 뿐 아니라 저에게도 신세계였습니다. 이 학교는 아이들에게 성적을 1순위로 갖다 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수업과 규칙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외모, 복장으로 아이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자율성을 강조했고 책임을 가르쳤습니다. 함께를 경험케 했고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 배움을 주고 받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을 위한 수업”은 덴마크 교육에 관심이 많은 오연호 대표가 2017년부터 마르쿠스 베른센씨와 같이 기획하여 집필한 책입니다. 덴마크의 훌륭한 교사는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소개합니다. 총 10분의 덴마크 선생님들께서 각자의 교직관, 학생관, 꿈들을 보여줍니다. 읽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릅니다. “그래, 내가 궁금해했고 고민했던 것이 바로 이거였어. 덴마크에서 가능하다면 우리나라, 아니 우리 교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거야.” 저는 이 책을 읽고 희망을 다시 품게 되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시험 자체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단순히 암기하거나 그대로 따라 하는 시험이 싫은 거죠. 나는 이것을 ‘앵무새 시험’이라고 불러요. 학생들은 자기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선생님의 말을 그냥 흉내 낼 뿐이에요. 그 주제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 없이 그냥 따라 하면 되는 거죠. 나는 이런 시험을 통해 학생들이 뭔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험을 위한 공부일 뿐 그 주제에 대한 깊은 지식은 얻을 수 없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실질적이고 긍적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는 시험이라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업무와 상관없는 주제로 시험을 보게 한다면 어떤 직원이 좋아하겠어요? 학생들도 마찬가지 않을까요?” -본문 중-

 

한국의 시험은 대부분 서열메기기가 주 목적입니다. 내신점수를 평가하고 수능등급을 매겨 점수에 맞게 진학을 합니다. 진학의 결과가 사회생활 시작에도 많은 영향을 줍니다. 잘 외운 학생이 높은 점수를 받는 현 시험은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공감합니다. 하지만 개선되지 않습니다. 숫자외에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공정한 기준 합의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에 의문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높은 점수를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과연 그 자리에서 그만큼의 역할을 하는가? 반면 낮은 점수로 대학조차 가지 못한 학생들은 사회 첫 걸음을 딛는 선택까지 주면 안되는가? 그들은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야만 하는 것인가?

 

“시험을 봐야 한다면, 교사와 학생이 지난 몇 주 동안 했던 수업이 그 시험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선후가 바뀌어서는 안 되죠. ‘시험을 위한 공부’가 되면 안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시험이 좌우하게 되면, 교사는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제대로 된 학습 동기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알아갈 것인가’가 아니라 ‘정답을 맞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가는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나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걱정스럽게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아직도 이런 방법으로 교육을 하고 있어요. 학생들은 이런 교육을 지루해합니다. 교사에게도 지루하죠. 이런 식의 공부를 왜 해야 하는 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오로지 시험을 준비할 목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교사도 학생도 아닌 다른 사람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하는 지 결정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동기와 의지가 사라지죠. 결과적으로는 배우는 것도 별로 없어요. 시험을 위해 얻은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금방 잊어버리니까요.”-본문 중-

 

호우키에르 선생님의 말씀을 우리는 쉽게 넘겨선 안됩니다. 시험을 위한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금방 잊혀집니다. 누군가에게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좋은 선생님이 계신가요?’ 라는 질문에 “어떤 단원의 내용을 이렇게 가르쳐 주셔서 고마웠어요.”라고 답하는 분은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주로 학생들이 기억하는 교사는 “제가 이런 상황일 때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제 편을 들어주셨어요.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셨어요. 친절하신 분이셨어요.”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나쁜 가르침은 ‘너는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반 학생들 모두에게 똑같이 높은 기준을 정해준다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이 패배자로 남지 않겠어요? 그 패배감이 아이들의 의욕을 빼앗을 거예요. 영어 뿐 아니라 모든 공부를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약해지고 우울해집니다. 교사가 높은 성취 기준을 일률적으로 제시해서 학생들을 경쟁하게 만들면 소수의 학생들만 교사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어요. 결국 교사는 10퍼센트의 승자만 돕게 되고 나머지 90퍼센트의 학생들은 점차 약해질 거예요. 그러지 말아야죠. 우리 교사들은 모든 학생들이 지금보다 점점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현재 자기가 서 있는 사다리에서 한 단 한 단 올라가고 있다면 그 학생은 매우 훌륭하게 공부하고 있는 거죠. 모두가 도달해야 하는, 하나의 정해진 목적지는 없어야 합니다.” -본문 86쪽 -

 

영어와 과학을 가르치는 트레크로네르스콜렌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그는, 학생들은 모두 개인차가 있고 발걸음이 다른데 성취기준을 일률적으로 갖다 대는 것은 소수의 학생 외에는 좌절감을 준다고 말합니다. 현장에서 저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면 10퍼센트의 승자 학생들은 행복한가? 안타깝게도 성적이 높은 학생들은, 10퍼센트를 유지하기 위해, 더 높은 점수를 목표로 하며 힘겨워 했습니다. 결국 만족하는 학생은 적었습니다. 각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의 만남과정을 배려하지 않은 채, 똑같은 성취기준 잣대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갖다 대는 것은 폭력일 수 있습니다. 모래알의 모양이  모두 다르듯, 아이들의 능력도 제각각임을 존중해야 합니다.

 

트레크로네르스콜렌 선생님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이 와 닿습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너는 매우 소중한 사람이야’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영어 실력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전부가 아니며 영어 능력에 상관없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엄하고 가치 있음을 느끼게 한다. 수업을 받는 학생 이전에 한 인간으로 대하려는 교사의 마음이다.” -본문 88쪽-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학교

 

덴마크 학교에서는 민주주의를 교과서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 생활속에서 배웁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는 행동, 친구가 말할 때 조용히 듣는 자세, 누구든 의견을 낼 수 있으나 결정은 대화를 통해 합의하는 것 모두가 학교 생활 속에 일어납니다. 여기서 교사의 역할은? 단지 기다려주고 참견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사도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강요하진 않습니다. 결정은 아이들과 함께 합니다. 민주주의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학교에 참여하고 모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학생회에서 결정된 내용이 교무실에서 반려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산이 없다, 현실 가능성이 없다. 위험해서 안된다.’는 등의 논리로 말입니다. 결국 학생들은 기획자의 역할만 할뿐 최종 결정은 학교장이 합니다. 같이 논의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학생들은 미성숙하다.’는 전제는 학생들의 성장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실패를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실패는 학교에서 많이 경험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가 허용적인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가 학생들을 관리하는 기관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시험 과목으로 배우는 것과 생활속에 체험하며 배우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삶을 위한 수업”을 다 읽고 나니 저는 힘을 얻었습니다. “왜 한국 학교는 이럴까? 왜 한국 교육은 바뀌지 않을까?”라며 불평만 한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 한명, 한명의 마음가짐이 중요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상한 교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나야 할 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 현실에서 방향을 못 찾으시는 선생님들, 자녀분의 성적 등으로 고민하시는 부모님들, 학교 생활 자체를 힘겨워 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곧 있을 시험, 곧 진학할 학교, 곧 취직할 직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삶의 위한 공부, 삶을 위한 방향, 내 삶을 찾으려는 노력이 교육의 기본일 수 있습니다. 더 나은 것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해 온 지금의 학교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개인의 성공을 위한 학교가 아닌, 모두의 성장을 위한 학교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삶을 위한 수업”은 우리 교육에, 잔잔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한국 교육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요?’

Posted by 마산 청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꿈키움중맘 2020.12.12 12:2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너무 공감되는 글입니다.
    성적이 우선시 되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샘이 계시다는 것도 너무 뿌듯하네요 전국의 모든 교사들이 용샘처럼 되는 그날까지 화이팅

  2. 마산 청보리 2020.12.12 12:2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어이쿠 고맙습니다.^^

  3. 유빈맘 2020.12.12 13:45 Address Modify/Delete Reply

    교육에 대한 쌤의 고민이 잘 드러나네요
    그래서 늘 고맙습니다
    저도 이 책 꼭 읽어보고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728x90

SNS 닉네임이 ‘이틀’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무슨 뜻이지?” 답을 알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루를 이틀처럼 산다’는 뜻이었습니다. 바로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왜? 왜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야 되는 거지?”. 이 분은 흔히 말하는 ‘위킹맘(일과 육아를 함께 하는 여성)’이었습니다. 직장에선 직원으로, 가정에선 엄마로 사는 분이셨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 ‘다들 그리 살지 않아? 그게 뭐 어때서?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라고 생각하신다면 특별히 덧붙일 내용은 없습니다. 우선 밝히자면 저는 남성입니다. 아빠이고 신랑이지요. 저는 ‘워킹파’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희 아내님도 ‘워킹맘’이십니다. 아내님을 나름 돕는다고 생각해고 살아왔지만 저도 워킹맘의 속마음을 몰랐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조금,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아내님께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왜 그때 힘들어 했는지, 나는 한다고 했는데도 당신이 왜 외롭다고 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 이 책을 읽고나니 워킹맘의 마음이 이해가 되네. 당신..참 힘들었을 것 같아.” 아내님은 피식 웃으셨습니다. “이제 좀 알겠어? 그럼 앞으로 좀 더 잘해봐.” 약간의 잔소리가 이어졌지만 예전처럼 짜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들어가며

내 삶은 어느 날은 더없이 완벽했고, 어느 날은 더없이 불완전했다. 행복과 불행의 반복이었던 출근길,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부부 사이, 때때로 사막 같았던 내 마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누구보다 아름답게 성장한 아이들, 이 책은 나의 삶에 기록이다. 워킹맘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들과 마음의 소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았다. 일과 육아로 지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길 바라본다.(서문 중)

 

서문의 내용이 이 책 전체를 잘 표현해고 있습니다. 워킹맘들이 하는 고민들, 대안들, 누구나 답을 찾지 못해 어려워하는 부분들에 대해 솔직하게 씌여진 것이 이 책의 분명한 특징입니다.

 

엄마가 된 후 아침마다 이런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오늘도 버틸 수 있을까?’ 처음엔 일도 일이지만 마음을 다 잡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나와 떨어지기 싫어 온몸으로 저항하는 아이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고, 말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죄책감에 짓눌리고, 직장에서 예전만큼 기회가 오지 않는 것에 좌절해 틈만 나면 눈물이 차올랐다. 화장실에서 숨죽여 우는 건 신입사원 때 끝나는 줄 알았건만, 엄마가 되고 복직을 하고 나니 또 다시 화장실에서 눈물바람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울고 나서는 눈은 벌겋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자리로 가서 이를 악물고 일했다. 버티고 또 버텨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본문 중)

 

저도 직장에 다니고 평소 집안일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힘들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똑같은 일을 두고 아내와 제가 달리 느꼈을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엄마와 아빠는 직장, 아이, 가족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아내가 너무 힘든 모습으로 퇴근하고 바로 부엌으로 갔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난 어떤 생각이 들었지? 난 어떤 행동을 했었지? 아내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나름 좋은 신랑, 좋은 아빠라고 자칭했던 저이지만, 이 부분을 읽으며 ‘난 그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 신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와 엄마의 마음 자체가 달랐던 것입니다. 육아를 함께 한다고 생각만 했지 주체자로 행동하지 못했던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깨달아 다행입니다. 육아는 부모 중 한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위킹맘의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고민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작가님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이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컸다.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아직까지 살짝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는 내려놓으면 아이가 스스로 잘 큰다고 하던데, 그것도 옆집 아이의 이야기일뿐 내 아이의 이야기는 아닐수도 있다. 대신 ‘아이를 잘 키웠다’는 기준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공부를 잘하거나 특별한 재능은 없어도, 아이 스스로 행복을 느끼고 아이가 아이답게 커간다면 아이를 잘 키웠다고 나 스스로 칭찬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종종 집 안에서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넘칠 때, 햇살만큼 빛나는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달려올 때, 내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이만하면 잘 키웠는데?’라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꾸려갈 줄 아는 것, 그것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증거라 믿으며 내 안의 불안감을 잠재운다.(본문 중)

 

완벽한 아이가 아니라 하지 않고 아이답게 커가는 것을 잘 키웠다고 생각하는 것,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워킹맘은 우리 곁에 있다.

책을 쓰신 이혜선 작가님은 워킹맘입니다. 일과 육가, 이성과 감성의 두 세계를 매일 오가며 하루하루를 견디시며 살아 오셨습니다. 19년 경력의 직장인이면서 11년 경력의 워킹맘입니다. 워킹맘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셨습니다. 일과 육아를 함께 해 내느라 정작 자신은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라는 답답함을 느끼며 아이에게 미안하고 직장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는 자괴감이 드는 워킹맘의 마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지키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솔직히 담아낸 책입니다. 210쪽 분량의 한 손에 쏙 들어가는 귀여운 책입니다. 책은 얇을지 몰라도 내용은 얇지 않습니다.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서로 이해해 간다는 뜻일 겁니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내 능력이 이것뿐이라서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해서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나의 어려움은 해소하지 못하고 남의 요구만 받아와서 지쳤을 지도 모릅니다.

 

아내이기 이전에, 엄마이기 이전에, ‘나’라고,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를’ 위해 사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나의 모습’을 찾고 ‘나’를 돌보는 것도 소흘히 하지 말라고 조용히 조언하십니다. 

 

내가 바로 서고 당당해질 때, 나의 가족, 나의 아이들도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미안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미안한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죄책감이 커진다고 해서 그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혼란스러우신 분들게, 그리고 일과 육아로 지치시는 아빠, 엄마에게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행복하다는 가족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로 변해가면 좋겠습니다. 육아는 가정의 문제일수 있지만 사회구조의 책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합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용감하게 성교육,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책표지에 적혀 있는 문장부터 당당했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가정에서 성교육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대단한 지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식보다 더 큰 것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감'입니다.
 
이 책은 '성알못'(성을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자칭하시는 평범한 엄마께서 성교육 전문가인 심에스더님에게 거침없고 솔직하게 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 답변을 모아서 역은 책입니다. 우선 내용이 쉽습니다. 전문용어도 등장하지만 심에스더님의 성교육에 대한 소신처럼,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합니다.


"요즘 성교육 책은 어떻지?"라는 호기심으로 처음 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4시간 동안 책을 덮지 못하고 완독한 저 자신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우선 프롤로그에 밝힌 심에스더님의 생각이 신선했습니다.
 


"성을 주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사람들은 세상의 통념과 내면화된 편견 때문에 성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길 꺼리면서도 한편으론 자유롭게 존중받으면서 성에 대해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학부모들은 나와 같은 성교육 강사가 가르치지 않아도 이미 자신들이 느끼고 깨달은 경험을 통해 그 누구보다 훌륭한 성교육 강사가 될 능력이 있다.

다만 언어가 없을 뿐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방적인 소통으로 정해진 답을 말해주기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성에 대해 생각하고 부족한 정보를 채울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성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언어를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자신의 언어로 건강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면 우리가 납작하게만 바라보던 성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프롤로그를 읽을 때만 해도 이 말들의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익히 배워서 의학적으로 알고 있었던 성지식들이 실제 생활에서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성을 더 어렵고 힘들게 했던 원인이었습니다.

'난자, 정자, 배란, 생리'라는 단어보다는 그 과정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아이들이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아하,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이러니 정말 쉽구나' 하고 절로 알게 됩니다.
 
다음은 심에스더님을 인터뷰하고 책을 쓰신 최은경 작가의 프롤로그 내용 중 일부입니다.
 

"내가 성 이야기를 어려워할 때마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답변이면 충분하다.'는 심선생님의 격려는 큰 용기와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성교육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게 성교육이란 성행위를 둘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순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쉽고 정확하게 설명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현상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가 가려워할 때 긁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보통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성과 관련한 호기심을 갖고 물으면 당황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를 책은 읽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성을 특별히 다르게 생각하고, 부끄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건 저 또한 반쪽짜리 성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은 피해야 할 것,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는 말에 공감하신다면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책은 총 20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으로 엮여 있습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소개드립니다.
 

- '섹스'라는 말, 해도 될까요?
- 19금 동영상, 막을 수 있나요?
- 초경이 빠르면 정말 키가 안 클까요?
- 아이들의 연애, 왜 조마조마할까요?
- 엄마 아빠의 스킨십, 보여줘도 괜찮을까요?

 
이 외에도 15가지의 평소 궁금했으나 누구에게 쉽게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과 답변이 적혀 있습니다. 저도 당연히 한 번쯤은 고민해 봤던 내용이기에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글머리에 잠시 소개했듯 이 책은 저에게 성교육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습니다. 성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 어려운 것도, 거창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책을 내신 분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최은경 작가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 책에서 다루는 성 관련 대화, 지식들이 직설적이지만 이질감이나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그만큼 잘 읽히는데요. 혹시 책에 실리지 않은 인터뷰 내용도 있을까요?
"인터뷰 한 내용 중에 빼거나 한 건 특별히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기사에 두 편으로 나갔던 걸, 하나의 질문 주제에 포함하긴 했습니다. 다만 기존의 연재에는 볼 수 없었던 '함께 보면 좋을 책'을 저와 심에스더 선생님이 각각 소개했어요. 저는 성교육 할 때 보면 좋을 그림책 7권을 심에스더 선생님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7권을 썼습니다. 분량은 짧지만, 이 부록이 있어서 더 좋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 혹시 저자와 만나고 싶으신 분들은 방법이 없을까요?
"이런 질문, 너무 감사해요. 다행히도! 저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12월 4일 오전 10시에 영등포 스페이스36.5에서 북토크를 해요. 심에스더 선생님의 미니강의와 두 저자의 대화가 있을 예정이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랄게요."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260쪽 정도의 두껍지 않은 책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쉽고 깊습니다. 적어도 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또 아이들에게 성을 잘 알려주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성교육 역시 결국은 아이들 마음을 배려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꼭 알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지방에 살고 있어서 안타깝게도 북토크에 참석치 못합니다. 이럴 땐 지방 사는 것이 아쉽습니다.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꼭 책을 읽어보고 참석해보시라고 감히 권하고 싶습니다.

☞ 북토크 신청하기(http://omn.kr/1lp32)

Posted by 마산 청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책표지

2018년 12월, 초6부터, 고3까지, 대만으로 난생처음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라온제나 길위의 학교 이야기 입니다. 지역독립출판사인 '주남책방'에서 나온 신간입니다. 이 책은 저에게도 의미가 깊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추천사를 쓴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썼던 추천사를 소개합니다.


15박 16일, 처음 만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처음 만난 어른 두 명과 같이 대만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18회 라온제나 길위의 학교 이야기입니다. 여행을 기획하고 길잡이 역할을 하신 설미정샘과 김샘은 많은 일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사실 두 분의 본업이 뭔지 불분명합니다. 워낙 벌리는 일이 많아서요. 평소에는 동네의 홀몸 어르신들을 위해 쌀 나눠드리는 일도 하고 저소득가정 아이들에게 밑반찬도 나누고 또 독립영화도 찍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여러 작당을 합니다. 방학때는 아이들을 위한 배낭여행도 떠납니다. 이번에는 비행기 타고 대만을 다녀왔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쓴 그림일기, 직접 찍은 사진들, 함께 한 일상들을 여과없이 옮긴 귀여운 결과물입니다. 오타도 눈에 띄고 띄어쓰기도 틀린 부분이 있지만 이 또한 귀엽습니다.

 

책의 중간 부분 설샘일기에 소개된 글입니다. "우린 그저 토닥토닥, 우린 그저 다같이 으샤으샤, 우린 그저 편들어준다." 이 여행의 목적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라 생각됩니다. 거창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것도 목적이 아닙니다. 일상을 살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배움입니다. 함께 한다는 것, 새로운 곳에서 힘든 경험 속에서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느낄 수 있다면 이 또한 귀한 기회입니다.

 

라온제나 길위의 학교는 매년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납니다. '맨땅에 헤딩하기' 여행이지만 계속된 헤딩으로 이젠 어느덧 헤딩 고수가 되어 버린 어른과 아이들의 여행 이야기, 세상의 팍팍함에 지친 분들께도 권해드립니다. 좋은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추천사를 쓰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세상은 함께 사는 곳입니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세상에 나온 책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글쓰기 공부도 하고 대만에 가서 사진 찍고 매일 밤 일기, 글을 썼습니다. 한국에 도착해서는 두분 샘들이 동분서주 하시며 아이들이 직접 쓴 책을 펴내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성취감을 주기 위해, 그리고 당신들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 였습니다.

 

베스트 셀러는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진 않더라도 다니는 학교, 마을 도서관에 비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이 쓴 책이 세상에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사진과 그림이 많은 여행 안내서(?) 입니다. 현실감이 있고 친절합니다. 책을 다 읽은 후 저도 대만으로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지역독립서점이라 그런지 대형 서점, 온라인 서점에서는 구하기 어렵습니다. 네이버에서 <주남책방>을 검색하셔서 주문해야 합니다. 번거롭지만 5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쓴 책이라 잘 읽힙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하신 분, 새로운 놀이문화를 접하고 싶은 분들께 권합니다.

주남책방 홈페이지

14명의 학생들이 쓴 책, 그 자체만으로도 읽은 가치가 있습니다. <난생처음 배낭여행>, 2편, 3편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책

 

Posted by 마산 청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손승휘 작가님 글, 이재현님 그림의 신간, <푸른 늑대의 다섯번째 겨울>을 읽었습니다. 손승휘 작가님의 책은 처음 접했습니다. 지은이 소개부터 흥미로웠습니다. 소개드립니다.


그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사람보다 좋아한다. 지금까지 고양이만 열두친구를 떠나 보냈다. 장미는 생후 2개월에 그에게 와서 열세 살에 떠났다. 스미레는 생후 2개월에 와서 열두 살에 집을 나갔다. 처음 나가서 여태 소식이 없다. 다만, 닮은 아이를 발견했다. 저자는 결국 장미와 스미레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그는 겨울이 오면 거리의 아이들을 걱정하고,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면 그 걱정은 더 커진다. 올 겨울은 또 어떻게 지낼까. 온통 이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늘 터전을 사람들에게 온통 점령당한 아이들의 하소연이 들리는 듯 하다고 안타까워한다.


지은이 소개글만 봐도 작가님의 동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책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인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호기심을 안고 책장을 넘겼습니다.

 

이 책은 그림책이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재현님의 그림이 뜨거우면서 강렬하게 책 내용을 빛냅니다. 150페이지의 얇은 책입니다.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살짝 무겁습니다. 늑대의 생존을 진지하게 풀어쓰기 때문입니다. 혹독한 겨울이 오고 겨울을 나기 위해 무리의 리더인 푸른늑대의 고민과 선택, 행동과 마지막까지가 소개됩니다. 물론...인간의 등장이 늑대들을 더 고통스럽게 합니다.

 

후루룩 읽히진 않았습니다. 소설 속 문장들이 짧지만 강렬히 생각꺼리를 던져줍니다. 몇 문장을 소개합니다.


혹한이 오면 늑대는 얼어 죽지 않는다. 굶어 죽는다.

인간과 싸우는 게 아니다. 죽음과 싸운다. 푸른 늑대는 결심했다.

늑대는 슬퍼하지 않는다. 다만 받아들일 뿐..


책을 다 읽고 나니 불현듯 애니메이션 <언더독>이 떠올랐습니다. <언더독>의 버림 받은 개와 인간의 관계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슬펐습니다.

 

한국의 늑대도 일제시대 인간에 의해 멸종되었습니다. 인간에게 늑대는 해로운, 죽여야 할 동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늑대는 단지 살기 위해, 새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간 위주의 생각에 대해 조용히 물음표를 던지는 책입니다. 작가님께서 이 책을 쓰신 이유를 듣고 싶었습니다. 다 읽고 난 후 찾아보니 손승휘 작가님과 이재현님의 책이 여럿 있었습니다. 일부러 다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동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푸른늑대들이 여섯번째 겨울도 잘 나기를 바래봅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최정선 작가의 <내일도 통영섬>을 읽었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 중인 그가 470개 정도 되는 통영의 섬 중 유인도인 41개 섬을 직접 방문해 쓴 책입니다. 쉽게 입도할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섬을 알리고 섬이 행복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작가의 고향은 통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산이 고향인데 결혼을 하며 통영으로 왔습니다. 지역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이만큼 애정을 가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통영 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굳이 분류하자면 여행 에세이 정도 되겠습니다. 인적이 드문 섬들을 방문해 아름다운 사진과 감수성 넘치는 문장들로 엮었습니다. 섬에 들어가는 방법도 자세히 설명돼 여행 가이드책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바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아우성 넘어 펄럭이는 깃발의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다.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에서 '여행은 자기를 닮은 곳을 찾아가는 여정이다.'라고 했다. 섬은 닮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 섬 여행은 늘 설렌다. (프롤로그 중)


책이 나온 다음 최정선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결혼 후 타지에 와서 많이 외로웠다고 합니다. 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떠났다고 합니다. 혼자 떠난 것은 아닙니다. 배우자와 같이 계획을 짜고 맛집도 찾는 재미도 붙여 즐겁게 다녔습니다. 혼자만 느끼기에 아쉬워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보냈습니다. 그 글들을 모아서 펴낸 책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가 본 섬이라고는 너무나 유명한 섬들 뿐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무인도는 한번도 방문한 적 없으며 상주인구가 적은 섬도 따로 방문해보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통영의 역사, 섬 주민분들의 생활, 자연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지 여행 정보만 가득한 책이 아닙니다. 글 중간 중간을 장식하는 사진들은 감수성을 자극하기 충분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섬들을 나열하겠습니다.

입도, 저도, 연도, 읍도, 어의도, 지도, 수도, 해간도, 오비도, 곤리도, 추도, 학림도, 송도, 저도, 만지도, 연대도, 오곡도, 욕지도, 국도, 초도, 갈도, 연화도, 우도, 상노대도, 하노대도, 납도, 두미도, 한산도, 추봉도, 비산도, 좌도, 용호도, 비진도, 죽도, 대매물도, 소매물도, 장사도, 사량도 상도, 사량도 하도, 수우도...

제가 들어본 섬은 5개 정도 밖이었습니다. 그만큼 지역에 무관심했던 것 같아 살짝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이 사는 섬을 밟고자 물과 가까운 광도면의 입도로 향했다. 이 섬은 덕포리 적덕마을 앞 해상에서 400m 떨어져 있다. 광도면의 섬은 입도를 위시해 저도까지 2개의 유인도와 춘도, 형제도, 죽도, 이도, 내죽도 등 대표적인 무인도가 있다. 내죽도는 간척공사로 광도면의 죽림 신도시 속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렇듯 급변하는 도시의 확장은 섬의 변화에도 영향을 준다.
몇 년 전 태풍에 파도막이 역할을 하던 방파제가 부서져 애를 태우신다는 말도 덧붙였다. 섬 주민들을 만나면 낯선 이들에게 민원을 호소한다. 그들에게 말해도 안 되는 걸 아실 터, 넋두리 겸 한탄일 게다. 방파제 수리와 배 접안 문제가 빨리 해결돼 언제 올지 모를 자연재해에 대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물과 가깝지만, 행정적 처리가 늦은 게 섬이다.
섬의 터줏대감인 갈매기 떼가 어선일 줄 알고 모여든다. 좌우로 나즈막한 산이 앉아 있고 중앙에 마을이 있다. 두 개의 섬은 '큰 섬'과 '작은 섬'으로 좁은 모래 해안으로 이어져 있다. 섬의 지형이 허리가 잘록한 개미 모양을 닮아 충의도라 불린다.
이 조그만 섬, 해간도에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가 놓인 뒤 섬 주민에겐 골칫거리가 생겼다. 연륙교 개통 이후 호기심에 찾아오는 관광객과 낚시꾼의 방문이 잇따르면서 쓰레기가 발생하고 변변한 도로나 주차장도 없는 섬마을이 차로 넘쳐났다. 쓰레기통 하나 없는 해간도엔 밤 낚시꾼이 떠난 새벽 무렵이면 선착장을 중심으로 빈 소주병이나 나무 젓가락, 음식물 쓰레기, 깨진 유리병과 음료수 병이 나뒹굴고 있어 주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해간도 마을에서 만난 낙지 어망을 손질하시던 주민분께 '다리가 놓이고 나서 어떤가요?'하고 여쭤 보았다. 그 분은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많소!'하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섬주민ㄷ이 쓰레기를 줍기도 하지만 일일이 수거하는 어려움이 많아 통영시에 소각시설이나 청소 인력을 정기적으로 보내주길 호소하고 있다.
욕지도는 10개의 유인도와 146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수많은 섬을 끌어안고 있다. 100여년 전에 한 노승이 시자승을 데리고 연화도의 상봉에 올랐다. 그 때 시자승이 도에 대해 묻자 '욕지도 관세존도'라고 답하며 욕지도를 가리켰다. 즉 이 섬은 불교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화엄경의 '약인욕료지'에서 따온 말이다. 그 외에도 이름에 관한 유래설이 몇 가지 더 전해진다. 조선 시대 초기에는 '욕질도'라고 하였다.


내용을 인용하려니 끝이 없습니다. 단지 제가 소개드리고 싶은 부분은 작가가 각 섬의 시작부터, 과정, 지금의 모습까지 꼼꼼히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힐링을 위한 관광지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살아 남아야 할 삶의 터전입니다. 배로 이동하기에 불편함이 있지만 섬만의 매력도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에는 '부록'으로 통영섬 리스트와 통영섬 업소들이 자세히 소개돼 있습니다. 이 책만 들고 가도 섬방문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힘들었지요. 하지만 새로운 섬을 방문하고 어르신들을 만나며 다녔던 여행은 새로운 자극을 줬어요. 신랑과 함께 다니며 다투기도 했지만(웃음) 통영섬 방문은 저희 부부에게도 행복한 추억이예요.

섬들의 무분별한 개발을 원하진 않아요. 다만 섬에 사시는 분들이 좀 더 배려받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도시분들의 삶도 소중하듯, 그 분들의 삶 또한 소중하니까요.

책이 많이 팔리기를 바라진 않아요. 하지만 통영섬을 정리한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부족한 책이지만, 관심있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최정선 작가님도 통영의 섬처럼 소탈한 분이셨습니다. 

에세이를 좋아하시는 분이 보시기엔 자칫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섬에 관심있고 사람들의 삶에 관심있는 분에게는 훌륭한 책입니다. 지역에서, 지역을 소개하는 따뜻한 책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산, 바다, 갈매기가 함께하는 통영의 힐링로드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저는 소위 말하는 문과출신입니다. 적성을 알아서가 아니라 학창시절, 단지 수학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의 과목 점수가 뭣이라고 문과 이과를 선택해 인생이 이렇게 펼쳐질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수학, 과학은 딴세상 이야기였습니다. 수학, 과학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일 뿐이지 제 삶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헌데 <다윈의 서재>를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책은 구성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분야별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초대해 인터뷰하고 대화를 나누는 형태입니다. 그렇다면 분야별 초대된 대상자들은 누구인가? 다윈이 살아 있다면 다윈의 서재에 꽂혔을, 다윈이 읽었을 책을 쓴자들입니다. 즉 연구하고 논문만 쓴 학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결과, 가설들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책을 쓰고 그 책들이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던 저자들입니다. 챕터별로 인터뷰 분량은 적습니다. 보통 한 분당 5페이지 내외의 대화내용이 전부입니다. 5페이지에 그(그녀)가 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생각을 간략히 나눕니다. 해서 깊은 내용 이해는 힘듭니다. 다만 그 책을 읽고 싶다는 호기심은 충분히 자극합니다. 물론 이 인터뷰는 저자 장대익 교수의 픽션입니다.

1부는 다윈의 서재에 꽂힐만한 분들의 책소개와 인터뷰내용이라면 2부는 저자가 직접 책을 소개하는 형식입니다. 재미있습니다.

<다윈의 서재>는 간단히 말해 과학관련 책들을 흥미롭게 소개한 서평집으로도 읽힙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저자 장대익 교수의 박식함과 쉬운 설명에 놀랬습니다.

'우주의 팽창', '우주의 기원', '진화론'과 '창조론'은 제 삶에 별 의마가 없는 주제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처음 든 생각은 '과학은 생각만큼 멀리 있지 않다. 인류의 진화(?)와 과학의 진화는 함께해 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과학 기피증, 과학 혐오증, 과학 불필요성, 새로운 흥미가 필요한 분들께 감히 이 책을 추천합니다. 내용소개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느낀 감동을 글로 적절히 옮기는 것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그만큼 재미있습니다.

<다윈의 서재>, 정말 강추드립니다. 책은 4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제법 두껍지만 순식간에 넘어갑니다. 제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것 입니다. 배움과 감동을 얻고 그것을 나누는 것, 해서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다독가는 아닙니다. 허나 애독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다윈의 서재>는 과학,이라는 어려운 분야를 대중속으로 유쾌하게 스며놓은 책입니다. 2014년 세상에 나온 책이지만 2019년에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어색하지 않은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윈의 서재>,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과학, 상상처럼 어렵지 않습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김민숙작가의 <싱글 브릿지>를 읽었습니다.

지난 주에 다쳐서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입원을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병원은 그리 유쾌한 곳이 아닙니다. 특히 수술 후 꼼짝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 경우는 더 심합니다.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손가락으로 리모컨 버튼을 누르며 별 의미없는 TV채널을 끊임 없이 돌리는 것이나 폰을 통해 세상을 엿보는 것 정도 입니다. 시간이 참 느리게 흐릅니다. 해서 어느 순간부터 병문안 오신다는 분들께 읽을 책을 좀 갖다달라 부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김민숙 작가님께서 직접 병문안 오셔서 작품에 쾌유를 바란다는 친필사인까지 해주신 것입니다.


김민숙 대표님은 이미 알고 지냈던 사이였습니다. 허나 이 분이 소설책을 세권이나 쓴 작가신지는 몰랐습니다.
"책장에 꽂혀 있어서 가져왔어요. 작품은 부끄럽지만 시간의 지루함은 덜어지길 바래요." 겸손하게 말씀하시며 제 손에 책을 한권 쥐어주시고 가셨습니다. 놀랬습니다. 소설작가셨다니...
작가님께서 가시고 난 뒤 서둘러 책장을 펼쳤습니다.

하루가 지나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특별한 쾌감이 밀려 왔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지어낸 이야기를 뭐하려고 읽어. 도움도 안되는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후 우연히 소설작품을 접하며 제가 소설작품에 대해 크게 잘못 판단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소설은 우리네 삶을 고민케 하는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상희, 홍진화, 서경빈, 찰스, 기호, 장일도, 보영, 채연...

주요 인물들입니다. 살아온 길이 다르고 목표가 모두 다른 인물들입니다. 허나 이 인물들은 사랑과 야망을 기본으로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얽혀있습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콕 찍어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누구의 삶이든 모두 공감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주 배경은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인기의 정점을 찍은 가수와 인기를 얻어야만 하는 가수, 인기가 생긴 신인과 회사대표의 관계가 주내용입니다.작품 초기에는 상희의 시점으로 몰입되다가 점차 서경빈, 기호, 홍진화의 순으로 관점이 옮겨갑니다. 워낙 자연스럽고 흥미진진해 중반쯤 읽다보니 '결론이 어찌 될까?'라는 기대가 절로 커집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야 모든 인물의 상황이 이해되며 이 작품의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이런 드라마가 나와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300페이지 정도의 중편소설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작품이 드라마화 되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매력적으로 야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의 방문 덕분에 소설에 대한 갈증이 다시 타올랐습니다. 이번 기회에 김민숙 작가님의 이전 작품인 <붉은 달의 기억>과 <보리차를 끓이는 여자>도 읽어볼 참입니다.

이런 작품을 쓰신 작가님을 현실적으로 안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갑자기 연예인을 만난 느낌입니다.

소설, 추천합니다. <싱글 브릿지>는 지금은 싱글인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품이지만 메시지는 강합니다. 혼자만 알기엔 아까워 소개드립니다.

싱글인 분들과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 적당히 야한 작품에 목마른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브릿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돈 없는 우리가 부자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를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남해의 봄날' 출판사에서 나온 새책입니다. 제목부터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변두리 마을? 마을에 도착한 것이 왜?' 궁금한 마음을 안고 책장을 넘겼습니다.

제목만 보고 특정 마을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책의 중간 즈음을 읽을 때 까지도 마을 공동체를 자랑하는 책 같았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니 저자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마을 공동체를 소개하고 자랑하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원하지만 기준이 다른 행복,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감히 행하지 못하는 행복을 위한 방법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풀어쓴 책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자는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뭘까? 좋은 직장, 많은 월급만을 쫓는 것이 행복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속의 경험을 조용히 전하며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찾아내게 합니다. 이 책의 특별한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고 좋은 교육의 한 방법으로 건강한 마을 공동체가 답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단지 그 생각 뿐이었습니다. 건강한 공동체가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거창한 인문학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저자는 담담히 말합니다.

-'그 봄의 어느 날, 그 정원 속에서 나는 아직도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른다는 것에 문득 아연해졌다. 다른 이들이 옳다고, 멋지다고 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해 버렸음을, 우왕좌왕하느라 정작 나 자신에게 제대로 몰두한 적이 없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산속의 허술한 정원에서 느낀 평화는 내가 그렇게 보내버린 시간이 주지 못한 행복감을 주었다. 나는 그토록 열심히 구했던 행복을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버리고 한없이 쓸모없어 보이는, 그래서 가장 낮아 보이는 일에서 느끼고 있었다. 내가 좀 더 일찍 삶의 목표를 큰 집과 차가 아니라 평화롭고, 불안 없는 삶으로 수정했다면 어땠을까. 20대에 시골집에서 꽃을 가꾸며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내가 경쟁에 힘겨워하는 사람임을, 다른 사람에게는 효율 없어 보이는 일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왜 이제서야 절감하는걸까.'(본문 중)

저자도 현시대를 사는 평범한 도시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차피 그리 될 것인데..라는 말 속에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를 닥달하고 자신을 혹사하며 살았습니다. 허나 경기도의 한 변두리 마을로 이사가서 그냥 흔한 옛 마을 속에서 살며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자본을 따르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사는 법을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얻은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대단한 인문학 서적도 아니지만 훨씬 깊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이론적으로 풀어쓴 게 아니라 '함께'라는 인간의 원초적 힘을 확신하고 쓴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밑줄 그은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읽는 내내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부러움이 계속 일어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합니다.

-'이곳이 신기한 마을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저 오래된 마을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변했을 거라 추측했으나 지금 보니 오랫동안 그들 안에 있던 모습이 드러난 것일 뿐이었다. 자루마을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이 유별나게 따스한 마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광폭함에 대산 글로 읽혔으면 한다. 그리고 누군가 작은 것을 먼저 베푸는 시도를 해보길, 따스한 숯덩이 같은 이웃의 존재를 믿게 되길, 그리하여 내 마을에서 자루마을의 따스함을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퇴고를 하며 모두에 쓴 글을 수백 번 넘게 다시 읽었다.
'모든 것이 변하여 머무르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니'

이제 이 글을 분노 없이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이제야 돌아보니 이 문장은 마을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나라고 정으할 만한 것이 없으며, 남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모든 것은 연결된 채 스러져 간다'고 말이다.'(본문 중)

막힘없이 술술 읽은 책입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상상도 못했던 선물이 있어 책의 감동이 더 깊어졌습니다.

삶의 방향을 아직 못 잡은 그대에게, 공동체는 선호하나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상심한 그대에게, 행복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변두리 마을에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728x90


<이 글은 제2회 사랑모아독서대상에서 대상에 선정된 서평입니다.>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예전에 샀던 책인데 이제야 읽었습니다. 그전에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한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성심당 이야기 뿐 아니라 함께 사는 삶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심당의 역사 뿐 아니라 성심당의 철학이 깊이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남해의 봄날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도 설레는 마음으로 펼쳤습니다. ‘그림이 너무 예쁘다. 책이 따뜻하다.’는 평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여유로울 때 읽으려고 아껴두었던 책입니다. 허나 현실은 반대였습니다. 마음이 심란할 때,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림과 글:이미경/남해의 봄날/2017.2.10/17,000원>


이 책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이미경 작가는 손끝 여문 외할머니의 솜씨를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만들고 그리는 걸 즐겼고 자라서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둘째 아이를 갖고 퇴촌으로 이사해 산책을 다니다가 퇴촌 관음리 구멍가게에 마음을 빼앗긴 후 20여년 동안 전국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수백 점의 구멍가게 작품을 그려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 그리고 감동을 전했습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안타까움으로 오늘도 작은 골목들을 누비며 구멍가게의 모습과 이야기를 정교한 펜화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문장만 봐도 책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미경 작가는 단지 구멍가게의 풍경 뿐 아니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구멍가게…….잊고 있었던 단어입니다. 요즘은 구멍가게보다는 마트라는 말이 익숙한 듯합니다. 동네마다 있었던 자그마한, 없을 것 빼고 다 있던 구멍가게는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였고 어른들에게는 만남과 대화의 장소였습니다. 많은 수입이 없어도 구멍가게를 지키고 계시는 어르신들은 오늘이 아닌 어제를 기억하며 사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더 많이 벌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닌 없어져서는 안되기에 문을 열고 있는 구멍가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구멍가게에서 친구들과 철없이, 재미있고 건강하게 놀았던 이들이 어른이 되어 고향을 떠나 마트가 즐비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현실이 어렵다고들 말하지만 구멍가게에서 놀던 아이들에겐 동전 하나만 있어도 행복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잊고 살고 있지만 당시의 건강한 추억이 오늘을 사는 자양분이 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구멍가게는 힘든 현실보단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추억을 떠올려주는 곳입니다.

 

이미경 작가는 전국의 구멍가게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과거를 추억합니다. 독자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조용히 전합니다. 책은 잘 넘어 갑니다. 중간 중간 있는 구멍가게 그림들은 잠시 책장을 멈추게 합니다. 세밀화 자체도 훌륭하지만 구멍가게마다 스며있는 사연들과 작가님의 이야기가 그림을 더 따뜻하게 합니다.

우리 주위에 늘 함께해서 낯익은 것에 눈을 돌리자. 함께한 시간만큼 마모되고 둥글어진 모서리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시간의 흔적이 있고 따스함이 있다. 기억 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구멍가게로 가는 길,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는 소박하고 정겨운 행복이 있다.’(본문 중)

저는 나름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착잡할 때 이 책을 펼쳤습니다. 책 읽는 것도 잊고 작품을 감상하듯 탄복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어느 새 심란했던 마음은 차분해졌고 책 속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자연스레 과거의 신났던 기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구멍가게가 흔했던 시절을 산 세대는 아닙니다. 하지만 구멍가게 추억의 끝자락쯤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동네 구멍가게에서 10, 20원으로 먹거리를 사고 친구들과 달고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제가 사는 지역인 경남 마산에서는 뽑기’, ‘쪽자라고 불렀습니다.) 핀 끝에 침을 묻혀가며 달고나 도장 모양을 섬세하게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마지막 부분에 꼬리가 잘려 달고나를 하나 더 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 아쉬워한 경험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달고나를 해 먹던 위생은 걱정스러울 정도입니다. 누가 사용했는지도 모를 젓가락이 한 움큼 담겨있는 물통에서 마음에 드는 젓가락 하나를 골랐고 그 젓가락으로 달고나를 만들며 침을 얼마나 묻혔는지 모릅니다. 달고나를 만들던 작은 국자도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모른 채 곁에 묻어 있는 달고나 찌꺼기를 많이도 떼어 먹었습니다. 당시에는 달고나 모양 뽑기 미션 수행이 애틋했습니다. 친구들과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소다를 넣으며, 부풀어 오르는 달고나를 보며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에는 작가분이 직접 방문한 구멍가게 그림들이 많습니다. 그림 자체도 정감 있지만 그림과 같이 쓰인 작가님의 이야기가 감동을 더합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한여름에도 차다 못해 시린 지하수에 수박 한 덩이 담가 두었다 잘라 먹으면 그 시원함이 온몸에 퍼졌다. 커다란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퍼 담아 물장구를 치다 해를 등지고 물을 내뿜으며 나타나는 무지개를 보고 신기해하며 웃었다. 마당 가득 하얀 이불 홑청을 널어 두면 빨래 사이사이 얼굴을 파묻고 냄새 맡으며 좋아했다. 마당엔 분꽃, 맨드라미, 봉숭아, 샐비어 같은 화초가 있었다. 자줏빛 샐비어 꽃을 입에 물고 달콤한 꿀을 빨아먹기도 하고 갑갑함을 참아가며 열 손가락 묶어 봉숭아물을 들였다.’(본문 중)

절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랬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니지만 동네 누나들이 봉숭아물을 들이고 첫 눈이 내릴 때 까지 지워지면 안 된다며 손을 안 씻었던 기억이 납니다. 빨간 고무 대야는 온 집에 흔했고 여름에는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김장하는 통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가족들이 인근에 나들이를 갈 때면 막걸리와 음식들이 담기는 만능 용기였습니다. 겨울 철 방안의 두툼한 이불위에 올라가 구르며 장난치던 순간도 살아났습니다. ‘전국의 구멍가게가 뭐지?’로 펼쳤던 책인데 읽다보니 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심란함도 어느 새 사라졌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저는 배우고 싶을 때도 책을 읽지만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때, 너무 힘들 때도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으며 영감을 받기도 하고 자극을 받기도 하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남해의 봄날 같은 지역 출판사들은 지역의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서는 똑똑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지역 이야기와 유명하지 않은 이야기도 담아내는 출판사가 건강히 존재해야 세상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혹시 삶이 팍팍해 힘든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지금 힘들더라도 영원한 것이 아니며 우리의 건강했던 추억은 우리가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처럼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떠올리며 동전 하나로 충분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의 난 어떤 욕심 때문에 힘든지도 생각해 봅니다. 몇 십 년이 지났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구멍가게들은 세상사는 분들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어찌 보면 빨리’, ‘더 많이보다 필요한 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일지도 모릅니다. 책의 에필로그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 책이 묵묵히 삶을 이어가며 한자리를 지켜왔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20171월에 이미경.’ 이 책은 좋은 책입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김희진 2019.01.23 17:25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서평 추천 감사합니다.

  2. 백가장 2019.02.14 20:0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서평대회가 있는지 몰랐네요. 따뜻한 서평 잘 보았습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