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2회 사랑모아독서대상에서 대상에 선정된 서평입니다.>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예전에 샀던 책인데 이제야 읽었습니다. 그전에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한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성심당 이야기 뿐 아니라 함께 사는 삶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심당의 역사 뿐 아니라 성심당의 철학이 깊이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남해의 봄날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도 설레는 마음으로 펼쳤습니다. ‘그림이 너무 예쁘다. 책이 따뜻하다.’는 평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여유로울 때 읽으려고 아껴두었던 책입니다. 허나 현실은 반대였습니다. 마음이 심란할 때,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림과 글:이미경/남해의 봄날/2017.2.10/17,000원>
‘이 책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이미경 작가는 손끝 여문 외할머니의 솜씨를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만들고 그리는 걸 즐겼고 자라서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둘째 아이를 갖고 퇴촌으로 이사해 산책을 다니다가 퇴촌 관음리 구멍가게에 마음을 빼앗긴 후 20여년 동안 전국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수백 점의 구멍가게 작품을 그려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 그리고 감동을 전했습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안타까움으로 오늘도 작은 골목들을 누비며 구멍가게의 모습과 이야기를 정교한 펜화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문장만 봐도 책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미경 작가는 단지 구멍가게의 풍경 뿐 아니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구멍가게…….잊고 있었던 단어입니다. 요즘은 구멍가게보다는 마트라는 말이 익숙한 듯합니다. 동네마다 있었던 자그마한, 없을 것 빼고 다 있던 구멍가게는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였고 어른들에게는 만남과 대화의 장소였습니다. 많은 수입이 없어도 구멍가게를 지키고 계시는 어르신들은 오늘이 아닌 어제를 기억하며 사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더 많이 벌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닌 없어져서는 안되기에 문을 열고 있는 구멍가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구멍가게에서 친구들과 철없이, 재미있고 건강하게 놀았던 이들이 어른이 되어 고향을 떠나 마트가 즐비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현실이 어렵다고들 말하지만 구멍가게에서 놀던 아이들에겐 동전 하나만 있어도 행복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잊고 살고 있지만 당시의 건강한 추억이 오늘을 사는 자양분이 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구멍가게는 힘든 현실보단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추억을 떠올려주는 곳입니다.
이미경 작가는 전국의 구멍가게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과거를 추억합니다. 독자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조용히 전합니다. 책은 잘 넘어 갑니다. 중간 중간 있는 구멍가게 그림들은 잠시 책장을 멈추게 합니다. 세밀화 자체도 훌륭하지만 구멍가게마다 스며있는 사연들과 작가님의 이야기가 그림을 더 따뜻하게 합니다.
‘우리 주위에 늘 함께해서 낯익은 것에 눈을 돌리자. 함께한 시간만큼 마모되고 둥글어진 모서리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시간의 흔적이 있고 따스함이 있다. 기억 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구멍가게로 가는 길,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는 소박하고 정겨운 행복이 있다.’(본문 중)
저는 나름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착잡할 때 이 책을 펼쳤습니다. 책 읽는 것도 잊고 작품을 감상하듯 탄복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어느 새 심란했던 마음은 차분해졌고 책 속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자연스레 과거의 신났던 기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구멍가게가 흔했던 시절을 산 세대는 아닙니다. 하지만 구멍가게 추억의 끝자락쯤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동네 구멍가게에서 10원, 20원으로 먹거리를 사고 친구들과 달고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제가 사는 지역인 경남 마산에서는 ‘뽑기’, ‘쪽자’라고 불렀습니다.) 핀 끝에 침을 묻혀가며 달고나 도장 모양을 섬세하게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마지막 부분에 꼬리가 잘려 달고나를 하나 더 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 아쉬워한 경험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달고나를 해 먹던 위생은 걱정스러울 정도입니다. 누가 사용했는지도 모를 젓가락이 한 움큼 담겨있는 물통에서 마음에 드는 젓가락 하나를 골랐고 그 젓가락으로 달고나를 만들며 침을 얼마나 묻혔는지 모릅니다. 달고나를 만들던 작은 국자도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모른 채 곁에 묻어 있는 달고나 찌꺼기를 많이도 떼어 먹었습니다. 당시에는 달고나 모양 뽑기 미션 수행이 애틋했습니다. 친구들과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소다를 넣으며, 부풀어 오르는 달고나를 보며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에는 작가분이 직접 방문한 구멍가게 그림들이 많습니다. 그림 자체도 정감 있지만 그림과 같이 쓰인 작가님의 이야기가 감동을 더합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한여름에도 차다 못해 시린 지하수에 수박 한 덩이 담가 두었다 잘라 먹으면 그 시원함이 온몸에 퍼졌다. 커다란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퍼 담아 물장구를 치다 해를 등지고 물을 내뿜으며 나타나는 무지개를 보고 신기해하며 웃었다. 마당 가득 하얀 이불 홑청을 널어 두면 빨래 사이사이 얼굴을 파묻고 냄새 맡으며 좋아했다. 마당엔 분꽃, 맨드라미, 봉숭아, 샐비어 같은 화초가 있었다. 자줏빛 샐비어 꽃을 입에 물고 달콤한 꿀을 빨아먹기도 하고 갑갑함을 참아가며 열 손가락 묶어 봉숭아물을 들였다.’(본문 중)
절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랬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니지만 동네 누나들이 봉숭아물을 들이고 첫 눈이 내릴 때 까지 지워지면 안 된다며 손을 안 씻었던 기억이 납니다. 빨간 고무 대야는 온 집에 흔했고 여름에는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김장하는 통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가족들이 인근에 나들이를 갈 때면 막걸리와 음식들이 담기는 만능 용기였습니다. 겨울 철 방안의 두툼한 이불위에 올라가 구르며 장난치던 순간도 살아났습니다. ‘전국의 구멍가게가 뭐지?’로 펼쳤던 책인데 읽다보니 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심란함도 어느 새 사라졌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저는 배우고 싶을 때도 책을 읽지만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때, 너무 힘들 때도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으며 영감을 받기도 하고 자극을 받기도 하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남해의 봄날 같은 지역 출판사들은 지역의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서는 똑똑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풍요로워지기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지역 이야기와 유명하지 않은 이야기도 담아내는 출판사가 건강히 존재해야 세상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혹시 삶이 팍팍해 힘든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지금 힘들더라도 영원한 것이 아니며 우리의 건강했던 추억은 우리가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처럼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떠올리며 동전 하나로 충분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의 난 어떤 욕심 때문에 힘든지도 생각해 봅니다. 몇 십 년이 지났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구멍가게들은 세상사는 분들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어찌 보면 ‘빨리’, ‘더 많이’보다 필요한 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일지도 모릅니다. 책의 에필로그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 책이 묵묵히 삶을 이어가며 한자리를 지켜왔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2017년 1월에 이미경.’ 이 책은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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