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양철수, 그가 필리핀에서 만난 사람들.

마산 청보리 2017. 2. 7. 07:00

특별한 책을 만났습니다. '양철수 사진집'입니다. 1권의 제목은 [필리피노의 삶과 희망]입니다. 말 그대로 필리핀 사람들의 삶과 희망을 찍은 사진집입니다. 주로 아이들 사진이 많으며, 일반 서민들의 다양한 표정들이 담겨 있습니다. 2권은 [거리에서] 이며 필리핀에 있는 '바나고'마을의 길을 직접 찍으신 사진집입니다. 두 권 모두 필리핀 일반 서민들의 생활상을 찍은 사진집입니다. 작가님께서 저에게 책을 보내주셨습니다. 솔직히 사진집을 개인적으로 봤던 적이 없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사진집을 넘겼습니다.

사진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구걸하는 노인들, 본드를 마시는 청소년들, 아무렇게나 길거리에 널브러저 자는 사람들,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들, 골목에서 친구들과 노는 아이들, '필리핀이 이렇게나 살기 힘든 나라였나?'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필리핀에서 한인이 피살되는 나쁜 소식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영어 어학연수를 필리핀으로 가는 등 어느 정도 살기 좋은 나라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집 속의 사진들은 제가 생각치 못했던 필리핀을 보여줬습니다.

바나고에 있는 쇼핑물 거리라고 합니다. 구걸하는 할아버지와 지나치는 행인의 모습입니다. 벽에는 노숙하는 젊은이들이 보입니다. 필리핀에서는 흔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집에 있어도 먹을 것이 없기에 아이들은 거리로 나와 구걸을 하고 쓰레기통을 뒤집니다.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절도, 본드 등을 배웁니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돌아가도 배 고픈 것은 여전한 집이라 돌아갈 생각을 안하는 길거리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미 그는 필리핀에서 더욱 필요로 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그의 페북에는 도와달라는 메시지와 감사하다는 필리핀 사람들의 메시지가 옵니다. 한국에서의 삶도 녹녹치 않지만 그는 필리핀의 아이들과 필리핀의 민중들을 도우는 일을 끝까지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양철수 작가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뵙고싶다고 연락했더니 흔쾌히 자리에 나와주셨습니다.

<사진집을 든 양철수 작가님>


-반갑습니다. 작가님. 어찌보면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필리핀 사람들 사진들인데요. 필리핀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필리핀과의 인연을 말씀드리기 위해선 저의 과거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저는 군에 입대해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고 제대 후 창원에서 최초로 다이빙 반을 만들었습니다. 지역에서 다이빙을 활용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주로 물에 빠진 시체를 건지는 일을 했지요.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관에서도 저희에도 많은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저희 팀이 수색을 안 한 곳이 없습니다. 저수지, 바닷가 등에서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거의 가정을 돌보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1995년에 부산으로 넘어갔습니다. 부산에서도 다이빙샾을 했는데 98년도 부산 영도에서 시신을 인양했습니다. 해경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지요. 이 일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가족분들을 생각하면 저에게는 영광스러운 상은 아니었습니다만 제가 할 수있는 일을 해서 사회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공부를 했습니다. 이 때  나의 가족도 돌보지 못하며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 많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의 첫번째 결혼 생활은 실패했습니다. 저의 부덕입니다. 


그 후 필리핀으로 건너갔습니다. 원래는 괌으로 가고 싶었으나 괌은 저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부유한 관광지였지요. 반면 필리핀은 그 당시에도 상당히 열악했습니다. 봉사를 위해 떠났습니다. 99년도에 필리핀으로 갔고 필요에 의해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분과 필리핀 사회의 봉사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001년도에 현지에서 결혼했고 사업도 했습니다. 사업도 잘 되었고 동네 마실 다니면서 거리에서 동냥하는 애들이 불쌍해서 먹을 것을 나눠주고 그랬지요. 그 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암에 걸려 한국에 들어와 암 수술을 했습니다. 그 후 제가 일을 돌보지 못보니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암수술은 잘 되었고 3년 6개월 전 쯤에 비행기 값만 가지고 가족 모두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랬군요. 선생님께서는 현재 필리핀의 아이들을 도우는 일을 계속 하고 계신데요. 그렇다면 사진집을 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별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사진집이 팔리면 그 돈으로 필리핀 아이들을 돕고 싶었던 것이지요. 고맙게도 저의 지인분께서 제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책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감사한 일입니다.


- 현실적으로는 많은 분들께 사진집을 무료로 보내주시고 계신데 이유가 있을까요?


-200여분쯤 되는 분들께 책을 보내드렸습니다. 모두들 필리피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책을 알린다는 목적으로 보내드린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책들을 지역에 도서관에도 기증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여유만 있다면 액자를 만들어서 학교를 다니며 전시를 하고 싶습니다. 이 사진을 보며 우리 아이들이 필리핀에 대해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필리핀에 어학 연수를 가는 아이들은 필리핀의 안전하고 좋은 곳만 다닙니다. 실제 필리피노의 삶의 현장인 이런 곳을 모릅니다. 홍보를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보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는 무료로 전시하고 싶습니다. 전시를 원하는 학교는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을 찍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사진작가가 아닙니다. 사진작가라고 할만큼 대단하지도 않고요. 사진관을 하기는 했었습니다. 저는 작품을 위해 사진을 일부로 찍지 않습니다. 과거에 고 최민식 선생(2013년 돌아가심)과 사진작업을 같이 한 적도 있었고 그 분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께 배운 지론이 평생 저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몸으로 체험하지 않은 사진은 인정할 수 없다." 저는 이 지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진을 찍기 전 상대와 최소한 대화를 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망원렌즈로 먼 곳을 당겨서 찍는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필리핀에서 생활하며 필리핀 정부의 잔인함에 대해 고발하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저의 사진은 다큐사진이지만 보도사진의 성향이 강합니다. 안타깝지만 필리핀에서는 최소한의 인권마저 보장되지 않습니다. 빈곤층의 경우는 정부로부터 거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정부에는 국민들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저 없고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저라도 이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진은 그 동네를 오고 가다 찍은 것들입니다. 운이 좋게 이 사진들이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구요.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동성애들과 필리핀 원주민들에 대한 다큐 작품을 준비중입니다. 거의 완성되어 갑니다. 이런 작업이 저에게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습니다.


-꿈이 있으시다면?


- 바꼴로드와 바나고에 고아원을 짓는 것입니다. 바꼴로도 섬에도 필콜(한국 아버지를 둔 사생아, 아버지는 한국으로 감) 아이들이 15명정도 있습니다. 엄마들은 몸을 팔아 아이들을 키우지요. 보통 엄마들은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일을 합니다. 이미 이런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한국어도 가르치고 학교도 보내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아이들은 한국인입니다. 이 아이들을 돌보고 싶습니다. 더 여유가 된다면 스트리트 칠드런(길거리서 노숙하는 아이들)아이들도 같이 돌 보고 싶습니다.


-한국에도 힘든 아이들이 있는데 왜 필리핀 아이들인가요?


- 제가 필리핀에서 15년 이상을 살면서 봤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은 분명히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상황을 모르는 이들이 이들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봐 버렸고 이 아이들을 압니다. 저마저 아이들을 외면한다면 이 아이들은 너무 힘들어 질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힘듭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우리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고 건강해졌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의 도움으로 배고픔을 면하고 건강히 생활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 대신 이 일을 해주시는 분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저는 이 일을 계속 할 것입니다.

사진집을 한 장씩 넘기며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는 작가님이십니다. 제가 혼자 볼때는 단지 한 컷, 한 컷의 표정만 보고 마음이 아팠는데 작가님께서 사진의 사연을 한장씩 설명해 주시니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국사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는 대한민국이 너무 고맙습니다. 제가 무일푼으로 한국에 다시 왔을 때 한국이라는 나라가 저를 도와줬고 암치료를 해줬습니다. 필리핀에서 암발견했을 때 의사가 국적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한국이라고 하니 당신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필리핀 의사말이 대한민국은 암치료 세계 1위라고 하며 한국가서 수술하라고 하더군요. 당시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현재 필리핀 사람들은 암에 걸려도 항암치료만 하다 죽습니다. 치료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도 못합니다. 


일례로 한 노숙자가 있었습니다. 제가 한번씩 만나면 밥을 사주고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상태가 너무 안 좋아보여 119를 불러서 이 분을 싣고 갔습니다. 병원에서 이 분을 어찌 대했는지 아십니까? 3일간 링거도 놓치 않아서 그 분은 죽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이런 사람을 쓰레기라고 생각해서 그냥 죽게 놔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그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정치하시는 소수의 몇 분들은 부패할 수도 있지만 이 나라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이 많고 현명합니다. 인권도 상당히 향상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 한국사회가 참 고맙습니다. 


이미 필리핀에서 수술한 많은 어린이들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도와주셔서 수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 있는 동포들도 저희 계좌를 아시고 돈을 부쳐 주십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입니까. 저는 한국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좋고 행복합니다. 특별히 그 간 정말 많은 도움을 주신 정용균목사님. 최화식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


렌즈를 교체할 수 없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진작가


양철수 작가님은 오래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에겐 7살 된 막내 딸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필리핀에서 살다 와서 아직 한국말을 모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필리핀 아이가 살아가는 것이 그리 평범한 것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아이가 한국사회에서 힘겹게 자랄까봐 걱정하십니다. 그도 아빠였습니다.


그는 한국에선 특별한 직업이 없습니다. 아내를 픽업해주고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있으면 필리핀에 다시 들어갑니다. 뜻있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는 후원금을 가지고 필리핀 아이들에게 줄 음식도 사고, 약도 사고, 치료비도 마련한다고 합니다. 그를 믿고 후원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셨습니다.


그가 훌륭한 사진작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필리핀의 아이들을 위해, 아니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고 있습니다. 명예와 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입니다. 양철수 작가님을 만나 인터뷰 하며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가진게 없으니까, 그리고 필리핀에서 없는 사람들 속에서 17년을 살다보니 없는 것이 행복이었어요. 마음이 편안합니다. 있으면 자꾸 더 가지고 싶어요. 제가 렌즈 교체를 못하는 카메라를 산 이유도 그것입니다. 렌즈 교체형 카메라를 사면 렌즈를 계속 가지고 싶거든요. 얼마든지 발품을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발품을 하면 얼마든지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전 지금의 생활이 행복합니다."


작가님께 인사를 하고 나오는 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또 한분의 어른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의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고 필리피노를 위한 그의 행동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었습니다. 


필리피노 아이들에게 나눔을 함께 하실 분을 찾습니다. 나눔은 행복입니다.

농협 351-0629-4583-23

예금주 (사) 보금자리(창원, 필리핀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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