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출판사에서 나온 '빌뱅이 언덕 권정생 할아버지'를 읽었습니다. 우선 '보리출판사'부터 소개를 해야 겠네요. 보리출판사는 다른 출판사와는 사뭇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리 출판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보리 출판사는 좋은 책을 만드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공동체입니다. 보리가 펴내는 책에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생명을 존중하고, 세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이웃과 더불어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게 살 길을 일러 주자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 홈페이지 소개 글 중
다른 출판사들도 나름의 철학을 담고 좋은 책들을 펴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보리출판사가 아이들에게 참 많은 정성을 가지고 책을 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가능하면 모두 읽어봅니다. 뭐랄까, 보리출판사 책을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빌뱅이 언덕 권정생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밝혀 주는 책
이 책은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30개월간 연재한 글을 단행본으로 새로 묶어서 나왔습니다. 독자는 10세 이상으로 분류된 책입니다. '아이들 책을 어른이 읽을 필요가 뭐 있어?' 저는 이런 생각을 처음 가졌습니다. 하지만 보리에서 출간된 책이길래 기대하며 첫장을 펼쳤습니다.
이 책은 동화를 쓰며 살다가 세상 여행을 마친 권정생 할아버지 이야기예요. 훌륭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일까요? 남보다 앞서가는 사람일까요? 누구도 그것에 대한 정답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동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으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에요. 그것은 권정생 할아버지가 우리 모두에게 비춰 주는 작은 등불입니다. -본문 중
단순히 아이들만 읽으라고 씌여진 책이 아닙니다. 첫 페이지부터 글이 아주 공손합니다. 아이들이라고 너무 어리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손합니다. 글을 쓰신 박선미님의 권정생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권정생 할아버지의 삶을 적은 글입니다. 전기문이라고 봐야 겠지요. 하지만 그 내용은 실제 동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만큼 할아버지의 삶이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전쟁(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와선 다시 동족의 전쟁을 경험하셨습니다. 가족들과 헤어지고 어머님을 여의며 그 죄스러움으로 스스로를 학대하셨고 교회의 종지기가 되어 허름한 집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글쓰는 데에만 정성을 다하신 삶을 보며 저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길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운명적인 이오덕 선생님과의 만남
권정생 할아버지께서 흠모하셨던 이오덕 선생님께서 할아버지의 오두막에 직접 찾아오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분이 그 이오덕 선생님이란 말이지? 눈앞에 서 있지만 믿지지 않아. 어찌어찌 미루다 결국 보내지 못하고 그 때 그 편지가 떠오르면서 정생이는 가슴이 콩닥콩닥 발걸음도 허둥허둥 어쩔 줄을 몰라. 콩닥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교회 권사님께 밥을 좀 지어달라 부탁을 했어. 귀한 손님이 찾아왔는데 안타깝게도 밥해 먹을 쌀이 없지 뭐야.-본문 중
만나야 하는 사람은 만난다고 했습니다. 두분은 살아온 과거와 살고 계신 환경이 달랐지만 서로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권정생님의 '무명저고리와 엄마'를 보고는 뛰는 가슴을 안고 직접 찾아오시게 됩니다.
두 분은 이렇게 만났고 긴 시간동안 편지를 주고 받으며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권정생님의 글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고 권정생님은 이오덕 선생님을 은사로 모시며 깊고 따뜻한 관계를 지속하게 됩니다. 권정생님은 글을 쓰는 동안 '몽실언니'라는 작품으로 용공분자로 몰리기도 했으며 지병이었던 폐결핵으로 몇 번을 쓰려지셨는지도 모릅니다. 그 많은 과정에 이오덕선생님께선 권정생님의 곁에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아프면 연락하라. 따뜻하게 지내라. 아무 걱정마라.'라며 위로하고 격려하시며 권정생님에게 계속 힘을 주십니다.
하지만 2003년 8월 25일, 이오덕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사망소식은 권정생 할아버지에게는 크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얼마나 이오덕 선생님을 그리워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위하고, 세상을 위하는 마음이 통했던 것입니다. 그 후 권정생할아버지도 이오덕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아이들을 위해 우리 민족의 있었던 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동화와 시를 쓰시다가 2007년 5월 17일, 이오덕 선생님 곁으로 가게 됩니다.
권정생 할아버지의 마지막 글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 놓은 대로 부탁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 군에게 맡겨 주십시오. 화장해서 태찬이와 함께 뒷산에 뿌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 되었습니다. 지난 날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모두한테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재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 놓은 글이 있으니 참조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정생
따뜻했던 사람, 권정생
권정생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향학열도 높았고 공부도 잘했습니다. 집의 형편으로 진학을 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되레 가족에 도움이 되기위해 부산에 가서 막일을 하며 살기도 하였습니다.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며 세상에선 할아버지를 많이 불렀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세상으로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그럴 처지가 아니다라고 하면서요.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인류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제발 사람들끼리 싸우지 말고 따뜻하게 살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려운 소망이었을까요? 내년이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만 10년이 됩니다. 그 시간동안 얼마나 세상이 따뜻해 졌는지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할아버지께선 이렇게 말씀하겼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돼요. 그냥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서는 안 돼요. 열심히 살라 해서 무슨 투사나 영웅이 되는 거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평범하게 살면서도 아닌 거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거 안하고 사는 걸 말하는 거에요.'
세상이 서로를 이기려고 바쁘게 돌아갈 때 한 작은 예배당의 종지기 할아버지의 말씀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쓰신 동화 '강아지똥'에 보면 세상 사람들이 천시하는 '강아지똥'이지만 '강아지똥'덕분에 아름답게 피는 민들레를 그리고 있습니다.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그려냅니다.
저는 마음이 흔들릴때마다, 외롭다고 느낄 때마다 권정생 할아버지의 책을 꺼내 읽어봅니다. 할아버지는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불안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따뜻한 목소리로, 엄마가 아기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처럼 편안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함께 사는 것이라고,
어린이 동화지만 어른이 읽기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습니다. 아니 어른이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권정생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그 분이 쓰신 책은 아직 이 땅에 남아있습니다. 책을 통해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위안입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은 하늘나라에서 함께 웃으며 아이들을 보고 계실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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