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게 가난한 사회'는 이계삼선생님께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쓴 칼럼 모음집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소위 말하는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서문에 그는 이런 글을 적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 그 마을을 그리워한다.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되돌아가고 싶다. 그 유년시절, 남포리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그 농민, 날품팔이 일꾼들에게서 무언가 일생토록 그리워할, 사람의 얼굴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동네 아재들의 막걸리 마당을 그리워한다. 학살자의 역겨운 얼굴과 독재의 공기도 틈입할 수 없었던, 산업화와 착취의 기계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던 내 고향 남포리, 그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 본문 중
책은 총 5부로 되어 있습니다. 칼럼 쓸 때의 시대상황에 따른 글이 대부분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계삼선생님의 글솜씨가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진단하고 통찰하며 읽어내는 그의 너무나도 정확한 표현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계삼선생님의 고민과 지적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우리 현실이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었고 현재 진행중인 일이며 미래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는 교사일을 하다가 사직서를 내고 농업학교를 준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즈음. 밀양에서 한 할아버지께서 송전탑 관련 분신을 하시게 되고 그는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치에는 문외한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합리한 세상과 싸워가며 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고 부득이 나서게 됩니다. 그는 2015년 12월 녹색당 20대 총선 비례후보 선거에 출마하여 2번 순번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은 그가 당선을 위해 펴낸, 출판기념회용 서적은 아닙니다.
단지 후원금을 모으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쓴 책이라면 사람들이 읽기 좋아하는 내용으로 꾸며졌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사람들이 접하기 불편한 내용들로 적혀 있습니다. 그는 이미 당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함께 매몰되어 별 의문없이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펴낸 것 같습니다.
'100년 후면 사람이 아름다워질 것 이라던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믿음 같은 것이 지금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렸는지를 생각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핵발전소 25기를 밤낮없이 가동하는 이 나라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의 삶은 또 얼마나 아슬아슬한 것일까.'
'한수원 임직원 22명이 브로커를 끼고 범죄조직처럼 해 먹다 쇠고랑을 차는 모습을 보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들 반대편에선 우리 주민들을 떠올리게 된다. 흙 속에서 노동하는 자만이 가진 빛나는 인간의 위엄을 지닌, 선하고 어진 이 자유인들을, 이 싸움의 본질은 돈의 노예와 자유인의 투쟁이다. 부디 이 자유인들에게 승리가 돌아갈 수 있기를.'
'경찰은 움막을 덮어 놓은 부직포를 칼로 북북 찢는다. 컴컴하던 움막 안이 환해지고, 비명과 몸싸움, 지옥처럼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내가 있는 구덩이에도 경찰이 들이닥쳤다. 구덩이 위로 천장 삼아 쌓아둔 장작더미에 경찰들이 올라와 굴리기 시작하니, 구덩이로 흙이 쏟아져 내린다.
순간, 여기서 죽을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밀려든다. 곁에 선 인권 활동가, 미디어 활동가 들이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른다. "여기 사람이 있어! 굴리지 마!...한 줌 노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9개월 동안 연인원 38만명 경찰 주둔 비용으로만 100억원을 들일만한 분명한 이유가 그들에겐 있다.'
이 책은 반핵만 주장하는 책이 아닙니다. 한국의 교육, 세월호, 노동자, 송전탑의 진실, 기본소득, 정치 등 시대의 현실을 진단한 책입니다.
뚜렷한 대안은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고민꺼리를 분명히 던져줍니다. 이러한 고민없이 살다가는 어떤 미래가 닥쳐올지에 대한 예견까지 합니다.
틀린 말 같지 않습니다. 치우친 말 같지도 않습니다.
그는 현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일이라고 모른척 하지 않았고 할매, 할배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나의 일에만 파묻혀 사는 것 아닐까요?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들 말합니다.
지식으로서만의 연결이 아니라 삶에서의 연결에 대해 우리는 어느샌가 무관심해 진 것 같습니다.
이계삼 선생님의 칼럼 모음집, '고르게 가난한 사회'가 현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거대합니다.
'고르게 부자인 사회'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고르게 가난한 사회'는 행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네 부모님세대가 바로 그러한 사회가 아니었을까요? 먹을 것은 배불리 먹지 못했지만 당시의 고향을 추억하고 친구들을 추억하는 것을 뵈면 행복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을 더 벌기 위해, 더 소중한 것들을 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이계삼선생님은 묻습니다.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고르게, 다같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있다고, 그 방법을 알기 위해선 대한민국의 현실부터 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촌철살인과 같은 내용으로 큰 깨우침을 주는 책,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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