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 좋은 때를 타고 활동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
국어사전에 있는 '풍운아'라는 뜻입니다. 채현국이사장(현 양산 효암학원이사장임) 은 정말 '풍운아'였을까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적어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의 저의 판단은 '그렇지 않습니다.'입니다.
채현국이사장은 자신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고 자신을 특별하게도, 훌륭하게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이 하고싶어서 한 것이고, 양심을 위해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채현국이사장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4년 초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였습니다. 당시 이 내용은 울림이 상당했습니다.
대표적인 어록으로는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진 않았지. 노인 세대를 절대 봐 주지 마라."
그 후 지역신문사인 경남도민일보에서 현재 양산 효암학원에 이사장으로 계신 채현국 선생님을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이 책은 현 경남도민일보 출판미디어 국장인 김주완기자가 모두 4차례에 걸친 인터뷰 내용을 묶은 책입니다. 대화 형식으로 적혀 있어 읽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특이점으로는 채현국 이사장은 인터뷰 조건으로 '절대 훌륭한 어른이나 근사한 사람으로 그리지 말 것'을 내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은 이야기 그대로, 조사한 내용 그대로, 사람들이 그를 언급한 그대로 풀어쓴 책이라는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담(膽)을 크게 가져라, 간(肝)은 작아야 한다.
그의 아버지 효암 채기엽 선생이 후진들에게 가르쳤던 말씀입니다. 채현국 이사장의 인생은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인생 또한 지대한 영향을 미치셨습니다.
채기엽 선생은 1938년 독립운동에 헌신하려는 뜻으로 상하이로 건너갔으나 소위 독립지사라는 사람들의 일부 태만한 실태를 목격하고는 잠시 방향을 바꾸기로 하였다. 우선 북경에 가서 트럭을 한 대 마련, 그 때 한창 치열하던 북지전쟁을 뚫고 다니는 생필품 상인이 되었다. 이렇게 번 돈을 상하아에 가서 방직공장을 운영하면서 은밀히 독립투사들과 손을 잡아 원조를 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 학병으로 대륙에 돴던 청년들이 상하이에 몰려들었으나 귀국 선편이 없어 유리걸식함을 본 공은 그들을 데려다가 숙식 제공하니 1946년 귀국할 무렵에는 그 수가 수배 명에 달하였다...그러나 공이 가장 애정을 가지고 관여한 분야는 조국의 통일 아팡기기 위한 사업이었다.(본문중)
그의 아버지께 신세를 진 한국인이 아마 백 수십인이 넘었을 것인데 은혜에 대해 여쭈니 "은혜가 다 뭐냐, 다들 건강하게 일 잘하고 있으면 그로써 만족하다."고 말씀하신 일화도 있습니다. 역사책에는 나오시지 않는 분이지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중앙방송(현KBS)에 입사했으나 때려치고 탄광으로 가다.
채현국 이사장은 1961년 당시 중앙방송 연출 1기로 취업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3개월만에 나와버렸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중앙방송이 국영이 아니라 아예 국가기관이었어. 공보부의 외청이지. 정권홍보성 프로그램을 만들며 완전히 그 판으로 돌아가고 있었지. 방송국 전체가 그랬어. 월급도 그렇게 갈라먹고 있는 판인데, 증거는 없지만, 우리를 뽑은 이유가 새로운 군사정권의 선전도구로 써먹으려는 것이었지. 해서 그냥 나와버렸어. 그리고 탄광으로 갔지.(본문중)
그 후 62년 부터 아버지 일을 돕게 되고 사업은 번창하여 흥국탄광,흥국조선, 흥국흥산, 흥국해운, 흥국화학 등 분야를 확장하게 됩니다. 그 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며 미련 없이 사업을 접고 정리한 재산은 자신의 몫은 없이, 모두 종업원들에 나누어 줍니다. '그 많던 재산을 종업원들과 나누다니, 아깝지 않았을까?' 채현국 이사장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 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 줄 게 아니다."
실재 언론인 임재경은 2008년 한겨레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가정 연료의 주종이 연탄이었던 60년대에 채기엽-채현국 부자의 탄광은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에 들 정도로 커졌다.
그는 맘에 맞는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헤어질 때 차비를 쥐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셋방살이를 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한 채씩 사주는 파격적인 인간이다. 모두 어려운 시절의 미담이므로 나는 주저하지 않고 채현국의 도움으로 내 집을 마련한 언론 종사자 넷의 이름을 들겠다.
황명걸(동아, 해직기자, 시인), 이계익(동아, 해직기자, 전 교통부장관), 한남철(소설가, 전 월간중앙 기자, 작고), 이종구(조선, 해직)가 곧 그들이다. 여기서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으나 흥국탄광에서 일했던 친구들 중 집 장만 하는 데 채현국의 신세를 진 사람은 숫자가 여럿이다. 남 집 사주는 이야기를 하다 빠뜨릴 뻔했는데 집은 아니더라도 부지기수로 채현국의 신세를 진 사람이 바로 나다."(본문중)
이 책은 인터뷰 형식의 200페이지가 안되는 얇은 책입니다. 대화형식과 중간 중간 설명이 곁들여 있어 읽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솔직히 서평을 쓰기에는 참 어려웠습니다. 버릴 내용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나오신 채현국 이사장은 사회, 역사, 영화, 농업,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십니다. 물론 정론화되어지지 않는 내용들도 있지만 읽다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책이 얇아 반나절만에 다 읽었지만 그 깊이는 상당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어록이었으며, 세상을 보는 또 다른 관점을 습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한 문장을 소개합니다. 제가 썼던 서평 중 가장 조심스러웠던 책이라고 감히 말씀 드립니다. 그만큼 삶의 깊이가 깊은 책입니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 시대에 채현국이라는 어른도 계십니다. 어찌보면 학교의 시험문제에서도 정답만을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사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 정답 또한 그 답을 원하는 또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 조심히, 하루하루 깨어 있는 삶에 대한 물음표를 던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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