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정글만리.

마산 청보리 2014. 3. 19. 00:00

 

▲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솔직히 3권이 좀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뜻이다.  

ⓒ 해냄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저 전대광입니다."

남자는 상대방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반으로 접는가 싶더니 곧바로 명함을 내밀었다. 그 연속동작은 기름칠이 잘된 기계의 작동처럼 빠르고도 자연스러웠다. 그의 그런 동작은 울림 좋은 목소리며 부드러운 표정과 어울려 세련된 여행사 직원 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아 예에……,제가 명함이……."

조정래 장편소설 <정글만리> 속 서하원과 전대광의 만남이다. 서하원은 한국의 실력 있는 의사였다. 뜻하지 않은 의료사고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중국으로 오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초청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그 초청에 관여된 사람이 전대광(중국에서 근무하는 종합상사원)이다. 즉 전대광은 사업상 서하원을 맞이하게 되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책에서는 중국의 많은 변화가 소개되고 있다. 읽는 내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접하게 되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과 이 인물들의 연결고리를 확인해가며 읽다보면 어느새 책 속으로 빠져든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것, 돈 그리고 '몐쯔'

중국인들은 돈을 아주 좋아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건? '몐쯔'라고 한다. 우리말로 자존심, 체면, 위신, 체통이다. 해서 중국에서 손님 접대의 최고 3대 조건은 최고급 식당에서, 최고급 음식을, 최고급 술과 함께 대접하는 것이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중국은 워낙 가짜가 많아 최고급 술로 대표되는 우량예, 마오타이주를 꼭 진품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가 흡족하며 대화가 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의 3대 금기사항은 마오쩌둥에 대한 험담, 공산당에 대한 비판, 대만 독립에 대한 지지다. 혹시 중국에 가야 할 사람이라면 명심해야 할 내용이지 싶다. 실제로 소설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무슨 일이오?" 남자가 들어서자 하 사장이 먼저 물었다. "예, 저희 사장님이 어제 공안에 잡혀가셨습니다." "아, 그건 알고, 왜냔 말이오." 하 사장의 찡그려지는 얼굴에서도 다그치는 듯한 어조에서도 짜증이 드러났다. "예, 대만에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고 주장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에 대해 진심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언제 어디서든 대만에 대한 정치적 발언이 있으면 어떻게 알고 공안이 잡아간다. 책에서 중국의 공안은 참 특별한 존재다. 현실에서의 중국 공안도 무척 특별한 존재지만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는 말과 함께 반일 시위는 아무리 무질서해도 가만히 구경하고 대만이나 중국 공산당에 대한 험담을 하면 어디에서든 나타나 잡아가는, 중국인 뿐 아니라 중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공안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 공안에 잡혀가도 괜찮은 꽌시나 돈이 있으면 또 풀려나오는 방법이 있다고 하니 이해가 쉬이 안 되는 나라이다.

난징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난징지역에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을 잔인하게 죽였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무고하게 죽은 중국인들에 대해 안타까웠다. 중국의 또 다른 상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분노 또한 이해가 된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은 원폭 피해로 대략 17만 명 정도가 피해를 봤다고 한다.

한국은 일제치하에서 400여만 명이 죽거나 피해를 봤고 중국은 3500만 명이 죽거나 피해를 봤다고 한다. 워낙 인구가 많은 나라지만 당시 3500만명이라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게다가 일본은 전쟁 후 진심어린 사과도 없이 아직까지도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등 사실과 다른 망언을 하고 있으니 중국인들이 얼마나 화가 날것인가? 최근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도 자기땅이라고 주장하니 중국인들이 또 얼마나 화가날 것인가?

소설은 참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이 일본을 밀어내고 G2 국가가 되었다는 것, 꽌시(우리말로는 '백'이라고 해야 하나? 끈, 줄 등 뒤를 봐주는 사람)의 막강함, 중국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소개 즉 형상으로는 용, 색깔은 빨강, 꽃은 모란, 한자는  거꾸로 된 '복(福)'자를  좋아한다는 것, 숫자는 8을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 중국 사람들은 사업 시에도 객관적인 데이터나 사람의 역량보다 사람됨을 더 중시한다는 것, 중국 사람들이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꼭 한다는 말 '런타이뒤'(사람이 너무 많아, 나 빼고 3억명은 없어져도 돼), 유교의 발원지이면서도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훨씬 남녀가 평등하다는 점, 아니 오히려 여성상위사회라는 점, 고위 관료나 돈이 많은 부자들이 얼라이(첩)를 둔다는 점, 중국에서 사업의 형태 중 '박리다매(아무리 싼 것이라도 많이 팔아서 큰 이익을 봄)'가 얼마나 중요한지 등.

허나 작가는 이 많은 내용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등장인물,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자연스레 녹여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간만에 본 정말 공부되는(?) 소설이었다. 사실 그 전에 조정래 작가의 작품이었던 <한강>이나 <태백산맥>, <아리랑>에 비하면 내용이 덜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작가도 말했다. '다른 작품을 위해 중국 지역을 취재하며 언젠가는 중국에 관한 소설을 꼭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정글만리>다.

소설은 전대광의 친조카인 송재형이 사랑하는 여인인 리옌링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리옌링의 아버지는 개혁 개방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사업의 센스도 있고 돈도 악착같이 모은 자이다. 리옌링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하자 펄쩍뛴다.

"아빠, 저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겠어요."
"물론 베이징대 출신이고 당원이겠지?"
"아니에요, 한국사람이에요."
"뭐! 뭐라고! 조선놈이라고!"
"조선이 아니라 한국사람이에요."
"빌어먹을! 너 미쳤냐! 안 돼, 절대 안 돼."
"왜 안되는데요? 이유를 말씀하세요."
"왜 하필 속국놈이야. 재수 없이."

그렇다. 중국 사람에는 아직도 중화사상이 남아있다. 즉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만심이다. 여기까지 보면 송재형과 리옌링의 결혼은 힘들어 보인다. 허나 속국사람이라고 재수 없어하던 리옌링의 아버지도 송재형이 직접 인사를 드리러 와서 중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두 글자 '수(壽)'와 '복(福)'이 새겨져 있는 빨간 내복을 받고는 '사윗감으로 만점'이라고 아주 흡족해 한다. 즉 중국 사람들은 그만큼 한 번에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사실 오늘 날의 중국을 옆에서 보고 있어도 믿기 힘들지 않은가? 이 엄청난 변화의 나라, 뭐든 달려들면 금방 세계 1위로 만드는 나라, 매장에서 '진짜 가짜임을 증명함'이라고 대 놓고 가짜를 파는 나라, 가짜를 많이 팔고 로얄티를 내지 않냐는 서양인의 질문에 '중국의 3대 발명품인 종이, 화약, 나침반을 1000년간 사용한 것에 대해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로열티를 낸 적이 있느냐?'라며 오히려 반문하는 나라. 이렇듯 논리적으로 힘든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이 궁금한가? <정글만리>를 펼치자

정글만리 1 - 10점
조정래 지음/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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