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사교육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는 방법.

우리는 '입시 경쟁'이라는 큰 괴물과 싸우는 새로운 교사 운동이 시작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 기대는 단순한 근거 때문입니다. 무릇 생명은 결코 누르는 힘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아무리 흙더미가 무거워도 밑으로 밑으로 뿌리를 내린 후에 생명은 끝내 때가 차면 고개를 쳐들고 새순을 틔우고야 맙니다.


입시를 넘는 새로운 실천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청이 가슴속에 파고들어서, 응답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불편한 삶을 자청하는 교사들이 1천 명만 있어도,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디 그런 교사들 없겠습니까? (본문 중)



<교사, 입시를 넘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에서 교사들을 상대로 한 강의를 묶은 책입니다. 강사로는 홍세화, 황선준, 최영우, 고병헌, 김상봉, 김승현, 송인수씨가 나섰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접근으로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저도 교직에 몸 담고 있는 한 교사로서 읽는 내내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인문 사회학의 실종은 인간의 눈을 멀게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진보적인 교육 사회학자들이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교육을 통하여 계층, 계급의 순환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즉 이동이 가능한가였는데, 10년 내지 20년 가까운 연구 결과, 교육과정은 대물림을 합리화해 주는 과정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결국, 계층, 계급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것을 단순히 대물림해 주는 것을 합리화함으로써 거기에 대하여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교육과정이라는 것이었죠. (본문 중)


홍세화씨는 남민전 사건을 계기로 20년간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 한국에 귀국했죠. 프랑스에서 두 자녀를 유치원부터 대학교육까지 시키며 우리나라 교육과의 차이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곤 말합니다. 한국 교육 또한 계층의 대물림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교육과정 또한 아주 위험하다고 말이죠.


우리나라의 엘리트층이 과연 엘리트층으로서의 마땅한 능력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을까요? 홍세화씨는 엘리트층의 형성 과정부터 의문을 제기합니다.


결국은 사회적 책임 의식도 없고 능력도 없는 엘리트층이 학벌을 통해서 형성이 되고, 그들이 바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거의 독점적으로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학벌이라는 것에 내면화되어 사회 구성원들이 그들의 지배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끔 구조화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폐쇄 회로라는 생각을 합니다. (본문 중)


한국의 엘리트층은 소위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역전이라고 생각하는 학벌의 쟁취를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대물림의 형태로 형성되며 자발적 순종과정을 공고히 하며 자리 잡은 사람들이라고 지적합니다. 게다가 자연스러운 교육과정을 통해 의문을 제기하는 인간이 아닌 현실을 체념하는 인간들을 육성한다고 염려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는 가장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뜨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교과목도 문제지만 당연히 독서와 토론이 실종되고 글쓰기가 사라져서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는데 자본주의에 대한 공부를 전혀 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공부하려니까 바로 들이대는 게 있죠. 국가보안법입니다. 사회 교과 과목이 한국 사회를 인식할 수 있게 기능하지 않습니다. (본문 중)


홍세화씨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 못하는 학생의 차이는 오직 하나, 시험 보고 나서 잊어버리느냐, 시험 보기 전에 잊어버리느냐의 차이라고 꼬집습니다.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묻지 않고 오직 정해진 답만 체크하는 교육은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은 깊은 독서와 진지한 토론을 통한 자기 생각주머니를 채워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석차의 내면화, 패배 의식, 비판력 부재는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 대안으로는 교육 과정의 다양화와 대학 평준화가 중요한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당연한 것입니까? '세상이 원래 그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원래 그런 것입니까? 홍세화씨의 강의는 또 다른 의문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스웨덴 교육을 말하다


세계 학력 테스트인 피사에서 핀란드와 한국이 어깨를 겨루면서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어요. 그 대신에 한국 학생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 정도가 가장 높습니다. 자신감도 부족합니다. 2006년 피사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학생들은 성적이 최상위인 반면에 자신감은 그야말로 꼴찌예요. 스웨덴 학생들은 피사에서 중반 정도인데, 자신감은 세계 최고입니다. 교육 효율성에서도 한국이 또 꼴찌입니다. 투자한 양에 비하면 효과가 굉장히 적어요. (본문 중)


한국학생들은 공부하는 시간과 양, 사교육 등은 엄청나게 많은데 그에 비례해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률도 세계 1위입니다. 이런 것들을 통틀어 엄청나게 많은 희생을 하면서 한국이 얻어낸 것이 피사의 1, 2위 공부입니다. 과연 이런 공부를 꼭 해야 할까요? 스웨덴 교육의 힘은 무엇일까요?


스웨덴의 모든 교육은 무상입니다. 그 근본적인 철학은 평등사상에서 나옵니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중요한 사상이에요.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데, 부모 잘못 만났다고 해서 열악한 조건에서 성장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국가가 하는 역할은 그런 부모들을 보완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말해서 개천에서 용 나게 해주는 역할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 중)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만들려고 합니다. 보다 좋은 중학교, 보다 좋은 고등학교, 보다 좋은 대학교, 보다 좋은 직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로부터 이기기 위해 공교육으로는 부족하다 판단하고 사교육에 아이들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아이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인해 보다 좋고, 보다 비싼 사교육의 시장에 아이를 내몰고 있는 것이죠. 정작 중요한 아이들의 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조차 아이들의 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내용을 정해진 순서대로 배웁니다.


스웨덴에서는 어떻게 공부시킬 것인가는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당국, 교사들에게 전적으로 위임되어 있습니다. 중앙에서는 절대 개입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스웨덴은 지방정부가 세금을 걷을 권한이 있고 국민 대부분의 소득세는 지방정부로 들어갑니다. 교사들이 자기 평가에 대한 고유의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런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학교의 예산은 교육청으로부터 배분받기에 학교는 교육청의 눈밖에 나면 곤란합니다. 그러니 교육청의 공문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상명하복의 이러한 시스템은 교육의 민주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분명한 요소입니다. 


같은 시스템이라고 해도 목적이 완전히 다릅니다. 스웨덴에서도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제고사를 칩니다. 허나 우리나라의 일제고사는 석차를 내고 학생들과 학교 사이를 비교하여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반면 스웨덴은 학생들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 있는가 학력을 파악해서 그 학생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연구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똑같은 행위가 목적을 어디다 두는지에 따라 내용이 너무 다릅니다.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하고 교육 문제를 고민할 때 그 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기 때문에 계속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것을 하지? 더 나은 방법은 없나?"라는 의문을 가질 때 보다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비판력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전문가의 함정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아이를 대하자


고령화시대가 오면 우리 학생들이 큰 틀에서 많은 수의 직업을 가져야 할 가능성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너무 빨리 진로 적성검사를 해서 일찍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전문가의 함정을 벗어나야 합니다.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누구나 단순히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겁니다. 일상에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한 어떤 의존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본문 중)


앞으로 다가올 사회는 유동적인 사회가 될 것이고 개인이 경험하게 될 직업도 5가지 이상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에선 이른 시기에 이미 아이들에게 미래의 직업을 결정하게 독려하고 그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라고 주문합니다.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복잡하게 살라고 강요합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집에 필요한 가구도 직접 만들어보고 커피도 직접 볶아보며, 그런 일은 전문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스스로 노력하고 스스로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직업이 곧 꿈인 세상", 슬픈 세상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직업을 가지기 위함만이 아닐 터인데 이미 한국 사회는 꿈이 곧 직업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너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빈말이라도 "공무원! 파일럿! 세계 최고의 셰프!"라고 말하면 "응 그래 그렇지, 착하네"라고 말합니다. 뭐가 착하다는 말입니까? 빈말이라도 어른들이 흡족한 대답을 해서 그렇습니까? 직업은 꿈이 아닙니다. 직업은 직업입니다. 어릴 때부터 특정 직업에 매몰되어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최영우 대표는 말합니다.


아이들이 사랑받았다고 하는 느낌이 없는데, 교육 현장에서 그 아이들한테 바르게 살라고 하는 윤리를 강요할 수 있겠어요? 부모가 그것을 강요할 수 있나요? 사랑이 없는 상황에 있는 아이들에게 지적인 욕구라는 것은 굉장히 무의미해요. 아이들 중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지. 내가 세상에 뭔가 좋은 것을 줘야지'라는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학습 동기는 누구도 꺾을 수 없어요. 아이들이 공부 못한다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아이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면 되는 거예요. (본문 중)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아이가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학습동기를 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이 행복해질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목적의식이 생기고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널 위해서야. 네가 커서 잘돼야지, 그러니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는 말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로봇이 아닙니다. 당장은 순종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는 자신만의 생각이, 불만이 자라고 있습니다. 언제 폭발하냐, 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허나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가 반항하고 말을 안 듣게 되면 친구를 못 만나서 그렇다며 또 다른 탓을 찾습니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사교육 없는 세상. 가능하다!


이 책은 다양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고병헌 교수님의 "점수, 등수 중심 진학지도를 벗어나라", 김상봉 교수님의 "교육은 사람됨의 과정이다", 김승현 선생님의 "사교육을 없애는 실질적인 정책적 방법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의 "새로운 교사운동의 태동" 등. 추상적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최근에 발표된 선행학습 금지법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이루어낸 성과물로 보입니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무슨 효과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십시오. 한국교육에 대해 체념하고 방법을 몰라 고민하시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랄 미래에는 지금과 같이, 인간됨을 허락지 않는 무한 경쟁의 교육이 아닌 아이들을 중심으로 보는 사랑의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교육은 단지 학교 다닐 때에만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부분이 교육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학교가 건강하지 않는 사회에 건강한 미래는 없습니다. 이렇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안 것만 해도 큰 위안이 됩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큰 지지를 보냅니다.

교사, 입시를 넘다 - 10점
홍세화 외 지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기획/우리교육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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