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워킹맘을 계속 해야 할까요? 위킹맘의 마음을 헤아린 책을 소개합니다.

마산 청보리 2020. 9. 20. 10:31

SNS 닉네임이 ‘이틀’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무슨 뜻이지?” 답을 알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루를 이틀처럼 산다’는 뜻이었습니다. 바로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왜? 왜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야 되는 거지?”. 이 분은 흔히 말하는 ‘위킹맘(일과 육아를 함께 하는 여성)’이었습니다. 직장에선 직원으로, 가정에선 엄마로 사는 분이셨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 ‘다들 그리 살지 않아? 그게 뭐 어때서?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라고 생각하신다면 특별히 덧붙일 내용은 없습니다. 우선 밝히자면 저는 남성입니다. 아빠이고 신랑이지요. 저는 ‘워킹파’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희 아내님도 ‘워킹맘’이십니다. 아내님을 나름 돕는다고 생각해고 살아왔지만 저도 워킹맘의 속마음을 몰랐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조금,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아내님께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왜 그때 힘들어 했는지, 나는 한다고 했는데도 당신이 왜 외롭다고 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 이 책을 읽고나니 워킹맘의 마음이 이해가 되네. 당신..참 힘들었을 것 같아.” 아내님은 피식 웃으셨습니다. “이제 좀 알겠어? 그럼 앞으로 좀 더 잘해봐.” 약간의 잔소리가 이어졌지만 예전처럼 짜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들어가며

내 삶은 어느 날은 더없이 완벽했고, 어느 날은 더없이 불완전했다. 행복과 불행의 반복이었던 출근길,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부부 사이, 때때로 사막 같았던 내 마음,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누구보다 아름답게 성장한 아이들, 이 책은 나의 삶에 기록이다. 워킹맘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들과 마음의 소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았다. 일과 육아로 지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길 바라본다.(서문 중)

 

서문의 내용이 이 책 전체를 잘 표현해고 있습니다. 워킹맘들이 하는 고민들, 대안들, 누구나 답을 찾지 못해 어려워하는 부분들에 대해 솔직하게 씌여진 것이 이 책의 분명한 특징입니다.

 

엄마가 된 후 아침마다 이런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오늘도 버틸 수 있을까?’ 처음엔 일도 일이지만 마음을 다 잡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나와 떨어지기 싫어 온몸으로 저항하는 아이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고, 말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죄책감에 짓눌리고, 직장에서 예전만큼 기회가 오지 않는 것에 좌절해 틈만 나면 눈물이 차올랐다. 화장실에서 숨죽여 우는 건 신입사원 때 끝나는 줄 알았건만, 엄마가 되고 복직을 하고 나니 또 다시 화장실에서 눈물바람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울고 나서는 눈은 벌겋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자리로 가서 이를 악물고 일했다. 버티고 또 버텨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본문 중)

 

저도 직장에 다니고 평소 집안일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힘들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똑같은 일을 두고 아내와 제가 달리 느꼈을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엄마와 아빠는 직장, 아이, 가족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아내가 너무 힘든 모습으로 퇴근하고 바로 부엌으로 갔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난 어떤 생각이 들었지? 난 어떤 행동을 했었지? 아내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나름 좋은 신랑, 좋은 아빠라고 자칭했던 저이지만, 이 부분을 읽으며 ‘난 그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 신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와 엄마의 마음 자체가 달랐던 것입니다. 육아를 함께 한다고 생각만 했지 주체자로 행동하지 못했던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깨달아 다행입니다. 육아는 부모 중 한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위킹맘의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고민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작가님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이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컸다.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아직까지 살짝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는 내려놓으면 아이가 스스로 잘 큰다고 하던데, 그것도 옆집 아이의 이야기일뿐 내 아이의 이야기는 아닐수도 있다. 대신 ‘아이를 잘 키웠다’는 기준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공부를 잘하거나 특별한 재능은 없어도, 아이 스스로 행복을 느끼고 아이가 아이답게 커간다면 아이를 잘 키웠다고 나 스스로 칭찬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종종 집 안에서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넘칠 때, 햇살만큼 빛나는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달려올 때, 내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이만하면 잘 키웠는데?’라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꾸려갈 줄 아는 것, 그것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증거라 믿으며 내 안의 불안감을 잠재운다.(본문 중)

 

완벽한 아이가 아니라 하지 않고 아이답게 커가는 것을 잘 키웠다고 생각하는 것,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워킹맘은 우리 곁에 있다.

책을 쓰신 이혜선 작가님은 워킹맘입니다. 일과 육가, 이성과 감성의 두 세계를 매일 오가며 하루하루를 견디시며 살아 오셨습니다. 19년 경력의 직장인이면서 11년 경력의 워킹맘입니다. 워킹맘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셨습니다. 일과 육아를 함께 해 내느라 정작 자신은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라는 답답함을 느끼며 아이에게 미안하고 직장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는 자괴감이 드는 워킹맘의 마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지키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솔직히 담아낸 책입니다. 210쪽 분량의 한 손에 쏙 들어가는 귀여운 책입니다. 책은 얇을지 몰라도 내용은 얇지 않습니다.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서로 이해해 간다는 뜻일 겁니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내 능력이 이것뿐이라서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해서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나의 어려움은 해소하지 못하고 남의 요구만 받아와서 지쳤을 지도 모릅니다.

 

아내이기 이전에, 엄마이기 이전에, ‘나’라고, ‘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를’ 위해 사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나의 모습’을 찾고 ‘나’를 돌보는 것도 소흘히 하지 말라고 조용히 조언하십니다. 

 

내가 바로 서고 당당해질 때, 나의 가족, 나의 아이들도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미안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미안한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죄책감이 커진다고 해서 그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혼란스러우신 분들게, 그리고 일과 육아로 지치시는 아빠, 엄마에게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행복하다는 가족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로 변해가면 좋겠습니다. 육아는 가정의 문제일수 있지만 사회구조의 책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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