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12,700km를 걷은 그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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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 직장, 안정된 일자리, 많은 보수, 안락한 삶…….자본주의에 적응해서 사는 많은 이들이 원하는 삶일 것입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독일인입니다. 독일? 맥주의 나라, 축구의 나라, 노동이 대우받는 나라, 사회적 안전망이 잘 조성된 나라, 여러모로 우리나라보다 사회적 환경이 인간적이라고 부러워하던 나라입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정확히 말해 12,700km를 종주해 트리플 크라운을 받은 여성입니다. 재무관리 분야에서 일하던 저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39세에 최고운영책임자 자리에까지 올랐던 능력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듬해 고급회사차량과 개인비서는 물론, 안락한 집까지 포기해버리고 오로지 텐트에서 잠을 자며 걷는 트래킹에 도전하게 됩니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삶이 궁금해서 책을 펼쳤습니다. 



그녀는 우연히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진 4,277킬로미터의 장거리 도보여행 경로)를 걷는 스루하이커(Thru-hiker)들을 만납니다. 짧은 대화를 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PCT는 떠나질 않았습니다. PCT도착 4개월 전인 2003년 12월 19일, 베를린에서 그녀는 해고를 당하게 됩니다. 그녀는 예상했던 일이라고 회고합니다. 얼굴이 퉁퉁 붓도록 울고 난 뒤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합니다.


-새 직장을 찾아봐야 할까?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봐야 하나?(중략)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며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는 동안, 불현 듯 파격적이고 무모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기회에 PCT에 도전하는 것은 어떨까? 나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일정을 계산해봤다. 시기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PCT에 관해 상상하다 보니 어느 새 거울 속의 내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고 얼굴은 환해져 있었다. 바야흐로 모험의 시작이었다.(P.36)


그녀는 해고를 새로운 기회로 맞이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확고하게 잡을 동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오랜 지인인 베른트를 찾아갑니다. 지인은 성공한 건축가이자 전형적인 여피(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지식인 노동자를 일컬음)족으로 펜트하우스에 살며 고급 회사차량을 몰고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다니는, 외형적으로 갖출 것을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뇌졸중이 와서 입원한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그를 찾아가 점심식사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나는 사람이 마흔 여섯 살에 죽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베른트는 인간이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 눈앞에서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10년 뒤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일, 돈벌이, 경력 쌓기? 결단코 그건 아니었다. 꿈을 실현시키고, 뭔가 특별한 일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리라. 한밤중이 다 되어 베른트의 곁을 떠나면서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나는 PCT를 종주할 것이다.(P 43)


그녀는 2004년 4월 16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그녀는 용감하게도 혼자 PCT에 도전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합니다. 길은 걷다 만난 친구들로부터 초코바하나를 받아 먹고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2004년 9월 22일. PCT마지막 지점까지 완주합니다.

-어른거리는 모닥불 빛에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비춰 봤다. 어느덧 모두의 표정에는 트레일 종주에 성공한 뒤의 환희가 가시고 침울한 상념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트레일이 자신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켰는지 모두 절감하는 중인 듯 했다. 우리는 트레일을 걷기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깥세상의 삶은 예전 그대로였고, 내일이면 우리는 다시금 그 삶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P 227)


트레일을 걷는 이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 부를 추구하지 않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했습니다. 텐트와 최소한의 짐만을 메고 사막이든, 산이든, 폭우든 상관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며 반가워합니다.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고 국적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걷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납니다. 


그녀는 PCT의 감동을 품은 채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취직을 하고 좋은 대우를 받으며 승승장구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2007년 6월 12일, CDT(4,900km,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 미국 장거리 트레일 중 가장 역사가 짧은 동시에 가장 야생적인 트레일)로 떠납니다. 물론 독일의 회사 사람들은 좋은 직장을 버리고 떠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CDT를 향해 떠나는 그녀는 이미 행복했습니다.


CDT까지 마친 그녀는 2008년 6월 16일 AT(3,508km,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2008년 11월 14일, AT를 완주합니다.


그녀의 도전은 이것으로 마치지 않습니다. AT를 완주한 후 또 다시 트레킹을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갔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1년 반이 지나 독일로 돌아갑니다. 그리곤 곧바로 다음 여행 계획에 돌입합니다.


-나는 아웃백이라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황무지와 플로리다, 애리조나, 서유럽과 남유럽 전체를 도보로 여행했다. 이 때 걸은 거리는 총 33,000킬로미터였다. 무릎 관절의 마모를 예방하기 위해 도보여행 사이에는 자전거 여행을 끼워 넣었다. 자전거로 달린 거리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일본, 한국(한국까지 왔다니.), 미국, 북유럽을 포함해 총 30,000킬로미터에 이른다.(중략) 8년 동안 나는 쉼 없이 여행을 다녔다. 그러는 동안 스물다섯 켤레의 신발을 교체했고, 0.5톤의 초콜릿을 먹어치웠으며 2,000일 이상의 밤을 텐트에서 보냈다. 이것이 내가 8년 동안 걷고, 먹고, 잔 기록이다. 그리고 나는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여행을 즐기고 있다.(P.451)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트레일을 통해 행복의 기준을 어마어마하게 끌어내렸다는 그녀, 모든 사람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조건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찾은 그녀, 그리고 실천하며 사는 그녀의 삶이 부러웠습니다. 


나는 어떤 행복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삶, 이렇게 살면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사는 삶에 대해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죽는 순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제목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습니다. “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 

그녀는 생을 보았습니다. 나의 生은 어떤 것일까? 미국 3대 트레일은 아니라도 저도 최소한의 짐만 챙겨서 걸어보려 합니다. 더 가지기 위한 여행이 아닌 버리기 위한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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