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가슴이 뜨끔했다.

마산 청보리 2017. 8. 26. 07:00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제목부터 살벌했습니다. '독박 육아, 독박 가사에 고통 받는 아내들의 속마음'이라는 부제가 솔깃했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최소한 여자의 마음이 남자의 마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고바야시 미키는 청년 고용, 결혼,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사회문제를 주로 취재하며 글을 썼습니다. 2013년 빈곤 저널리즘상을 수상했고 저서로는 <르포 아이를 낳지 않게 하는 사회>, <르포 보육 붕괴>등이 있습니다. 약력만 봐도 이 책이 단순한 부부심리상담의 책이 아님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책표지/고바야시 미키/박재영 옮김/북폴리오/13,000원/2017.6.30ⓒ 김용만>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육아라는 시련, 2장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3장 더 이상 남편 따위 필요없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아내를 분노하게 만드는 남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내의 입장에서 쏟아냅니다. 저자가 상상해서 적은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 실제 인물의 속마음을 여과없이 옮기고 있습니다. '4장 남편이 살아갈 길?' 에서는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가 바라는 대로 집안일이나 육아를 할 수 없는 일본 노동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놀라울 정도로 우리나라와 닮아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가 일본을 보고 따라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5장 이혼하는 것보다 낫다?' 에서는 아내의 살의를 사그라뜨리는 방법을 친절하게(?) 소개합니다.


저도 1장부터 3장까지 읽을 때는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례 중 저의 행동이 문득 문득 보였기 때문입니다. '헉! 아내가 당시 화를 내었던 것이 이런 마음 때문이었겠구나. 여자는 이런 상황이었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믿기 힘들었습니다.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여차하면 좋은 사례로 소개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이렇게 대한다고? 21세기에? 에이 설마..' 3장을 넘어 4장, 5장으로 넘어가며 일본이라는 사회가 보였습니다. 변화하는 일본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일본의 모습 속에서 우리나라의 현 모습도 보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목만 보고 많은 남성들이 흥분했던 책입니다. 다 읽고 난 지금, 왠지 모를 개운함이 느껴집니다. 부부, 혹은 예비 부부들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책에 소개된 실수는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아내는 남편을 죽이고 싶어 하는 지, 책에 소개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이혼보다 죽어주길...


-아침 7시 30분, 도쿄의 어느 아파트,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거실에서 아내가 남편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나나세 미유키(가명, 38세)는 출근 전에 세 살짜리 아들과 한 살짜리 딸에게 밥을 먹인 후 조급한 마음으로 빨리 옷을 갈아 입히려고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적어도 8시에는 집을 나서야 어린이 집에 늦지 않는다. 미유키는 힘겹게 아이들에게 밥을 먹인다. 세 살짜리 아들은 혼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데도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손을 대기만 하면 몸을 뒤집어서 쏙 빠져나가 잽싸게 도망치더니 커튼 뒤에 숨어서 깔깔거리며 장난을 친다. '안 되지. 안 돼. 지금 화를 내면 울 테고, 그러면 괜히 시간만 더 걸릴 뿐이야. 일단 참자.' "빨리 옷부터 갈아입자."미유키는 아들을 쫓아가서 겨우 붙잡아 잠옷을 벗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다음은 딸 차례인가...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옷을 막 갈아입힌 아들이 똥이 마렵다고 하고, 딸은 컵에 든 우유를 엎질러서 옷과 바닥이 흠뻑 젖고 말았다.

"정말 미치겠네!"

그 때 남편은 부엌으로 피해 있었다. 자신이 마실 찻물을 끓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순간 미유키의 마음에 살의가 일었다. 

"여보! 이리 좀 와 봐요!"라고 소리쳐도 남편은 "잠깐만 기다려"라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 때 미유키의 속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이 날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한마디 쏘아붙였다.

"지금 장난해? 그럴 거면 차라리 나가 죽어!"(본문 중)


인용이 길었습니다. 줄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딱! 이 지점입니다. 맞벌이가 많은 일본사회에서 아이를 아내가 케어해야 하는 상황자체가 남편에 대한 살의를 느끼게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이 지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사회 내의 맞벌이 세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일본 총무성의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1980년에는 전업주부 세대가 1114만 가구로 614만 가구의 맞벌이 세대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그러다 1990년 대에 엎치락뒤치락하더니 1997년에 형세가 뒤집혔다.(본문 중)


즉 2014년에는 전업주부 세대가 702만 가구, 맞벌이 세대가 1,077만 가구로 근 두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전업주부를 하던 여자들이 사회생활을 같이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임신 중에는 남편의 특별한 배려를 받으며 행복했으나 출산 후 시련이 시작됩니다. 직장 내에서의 퇴사 압력과 남편의 퇴사 압력이 그것입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일본 엄마들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또 다시 남편에 대한 살의를 키워 갑니다.


-집안 일을 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아내의 모습을 본 남편은 "아이랑 놀기만 하고 좋겠네!"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분노로 활활 타오른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뭐라고요?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알기나 해요? 그래요. 지금은 전업주부일지 모르죠. 하지만 여기에 오기 전까지 나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피를 토할 정도로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지금 이거예요? 내가 얼마나 억울한 마음으로 경력을 포기하고 일을 그만두고 따라왔는지 알아요?"(본문 중)


아이를, 가정을 위해 엄마는 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아빠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며 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을 원하는 마음은 엄마나 아빠나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경우일수록 일을 포기하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책에서 소개된 남편들은 아내의 마음을 읽지 못합니다. 육아의 현실적 어려움을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아내를 무시하고 외도하며 아내를 함부로 대합니다. 아내들은 시간이 갈수록 남편에 대한 복수심이 강해져, 차라리 남편이 죽고나서 받은 보험금을 생각하며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꿈을 꾸게 됩니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된 되먹지 못한 남편들의 사례는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경제권을 쥐고 아내를 마음대로 대하기에 누가 봐도 살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당히 이기적인 남편들입니다. '그럼 이혼하면 되잖아.' 책에 소개된 사례에서는 전업주부의 경우가 많기에 아내들이 경제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아내들은 이혼을 하게 되면 생활보호 대상자로 전락해버리게 됩니다. 육아에만 매달려 생활했기에 경제적인 독립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이혼조차 선택할 수 없는 아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세상 모든 남편들이 맞아죽을 놈들입니다. 저자는 남편들을 매장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5장에서는 육아를 함께 할 수 없는 일본 남성들의 현실도 소개합니다.


육아는 각 가정만의 문제인가?


-일본 총무성의 '임금 구조 기본 통계 조사'(2015년)를 살펴봐도 히로키(가명, 38세 남성)의 나이와 비슷한 35~39세의 정규직은 1시간당 1888엔(19,600원)을 받지만, 비정규직은 1068엔(11,085원)으로 격차가 컸다. 히로키는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세 살짜리 아이가 있지만, 날마다 잔업을 하느라 육아는 아내에게 떠맡긴 지 오래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해도 과로 상태여서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아내도 파견사원으로 3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가 자주 열이 나서 회사를 쉬는 날이 늘어나면 바로 계약을 파기당하기 때문에 아내 역시 고민과 부담을 안고 있는 실정이다. 서로 이해는 하지만 육아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은 아내가 애 좀 보라고 화를 내며 이혼 얘기를 꺼내면 '괴로울 뿐'이다. 처음에는 둘 다 비정규직이라도 아이를 충분히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했다.(본문 중)


결국 부부문제, 육아문제는 사회구조, 사회현상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합니다. 일본의 다양한 통계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는데 하나도 어렵지가 않습니다. '일본'이라는 단어를 '한국'으로만 바꾸면 될 정도로 우리 사회와 그 형태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혼의 문제, 부부간의 살의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들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행히 이 책은 마지막장에서 남편들에게 선물을 줍니다. '살의를 불러일으키는 남편'이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소개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 방법이 너무나 간단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아내들의 사적인 분노를 사회구조라는 공적인 분노로 승화시킨 책입니다. 육아는 엄마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족만의 몫이 아닙니다.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마을이 아니라 사회가 아이를 키워야 합니다. 최소한 엄마, 아빠가 아이 키우는 것 때문에 서로 살의를 느끼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일본사회에 대한 책이지만 우리나라와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이 키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눈치보며 사회생활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축복받을 일이 말 그대로 행복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육아를 통해 그 사회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꺼리를 주는 책입니다. 부부 혹은 예비 부부, 그리고 사회의 정치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남편이 남의 편이 아닌 삶의 동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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