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책서평' 태그의 글 목록 (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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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가 쓴 책입니다. 이 작품은 그녀의 첫 작품으로써 영화화가 결정되어 현재 미국에서 제작중이라고 합니다. 소개만 봐도 상당히 매력적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특이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작가가 1유로라는 상징적인 가격의 e-book으로 자비 출간 후 프랑스 아마존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른 작품입니다. 


이 내용이 재미있었습니다. 자비로 e-book으로 출간한 것이 프랑스 아마존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르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법이 가능한가요? 아무튼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은 책이라기에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책 소개에는 따뜻한 치유의 소설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여 늦은 밤 책장을 펼쳤습니다.


"엄마! 제발!"

"클라라, 엄마가 안 된다고 했지."

"디안느, 그냥 나와 같이 가게 해줘."

"콜랭, 내가 모를 줄 알아요? 클라라가 당신을 따라 가면 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꾸물럭 거리며 한 눈을 팔테고, 그랬다간 이번 휴가는 3일이 지나도 떠나지 못할 걸요."

"그럼 당신도 같이 와서 우리를 감시하면 되지 않겠소."

"아니, 안 돼요. 가방 싸는 것 하며,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걸 보고도 그런 소릴 해요?"

"그러니 클라라는 더더욱 나랑 가야겠네. 그래야 당신이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소."

"엄마!"

"좋아, 알았어, 알았다고! 둘 다 빨리 사라져요! 내 앞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그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우당탕탕 뛰어 내려갔다.

그들이 차 안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깔깔대고 있는데, 트럭이 그대로 돌진했다고 했다. 나는 중얼거렸다. 둘 다 활짝 웃으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구나.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본문중-


디안느는 주인공입니다. 클라라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녀의 어린 딸입니다. 콜랭은 너무나 사랑했던 남편입니다. 


소설의 시작입니다. 디안느는 너무나 어이없게, 자신의 가족을 잃고 맙니다. 그것도 한번에 말이죠. 혼자 남게 됩니다. 모든 걸 잃게 됩니다.


디안느는 세상과 벽을 쌓고 살아갑니다. 그녀의 유일한 통로는 펠릭스라고 하는 친구입니다. 펠릭스는 디안느에게 천사같은 친구입니다. 펠릭스 자체가 천사인 것은 아닙니다만 그는 디안느를 위해서라면 비행기를 타고 올 정도로 정을 많이 쏟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디안느는 사고 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편의 체취가 남아있는 침대 시트를 사용했으며 딸 클라라가 사용하던 샴푸를 씁니다. 냄새로나마 그 들을 기억하려하고, 그들이 없는 현실을 인정치 않으려고 애씁니다. 디안느의 부모님과 친구 펠릭스는 이런 디안느를 걱정합니다. 어떻게든 산자는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세상으로 끄집어 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디안느의 반항과 우울증은 심해만 갑니다.


어느 날 디안느는 생각합니다. '콜랭은 아일랜드에 가고 싶어했어. 그래 내가 가보는 거야.'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디안느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합니다. 펠릭스와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극구 말립니다. 혼자서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디안느가 너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디안느는 무엇에 이끌리듯이 비행기를 타고 아일랜드의 외진 바닷가로 향합니다. 그 곳에 가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실날같은 희망을 안고 갑니다.


상상했던 곳에 현실적으로 도착했으나 그 곳에서의 생활도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프랑스에서 했던 하루 일과를 그대로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또 한번의 좌절을 겪게 됩니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고 담배만 피워대며, 하루종일 이불을 뒤집어 쓰고 집에만 있는 생활이죠. 디안느는 이곳에서도 극도의 우울을 겪게 됩니다. 그녀의 유일한 낙은 바닷가에서 다니는 한 남자를 응시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 책은 시작부터 너무 강렬하여 사실 책장이 어떻게 넘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한 시간만 보고 잘려고 편 책을 3시간 동안, 새벽까지 다 읽고 잠이 들었습니다.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책을 소개한 부분 중에 '치유소설'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치유소설이라, 그럼 디안느의 이 아픔을 어떻게 치유해 나갈까?'

그래서 책을 단숨에 읽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디안느는 아일랜드에 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들을 하며 새로운 생각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삶의 의욕을 찾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 손에 모래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장난을 치는데, 왠지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삶은 내게 다시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속삭이고 있었고, 나는 더 이상 반항하고 싶지 않았다. -본문중-


디안느는 다시는 느낄 것 같지 않았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생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순수한 웃음을 짓게 되고 자신의 아픔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게 됩니다.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 같은 부푼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소설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신다...


이 문장은 소설에서는 디안느가 프랑스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의 명칭입니다. 쉽게 말하면 가게 이름이죠. 저는 이 책을 고르며 제목만 보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은 결코 제목처럼 여유롭고 행복한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여자의 너무나도 가슴아픈 삶을 작가는 담담히 풀어냅니다. 책을 읽다보면 본인도 모르게 디안느의 감정에 이입되어 같이 흥분하고 슬프하고 웃음짓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디안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행복한 사람같진 않습니다. 분명 너무나 슬픈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디안느는 곧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환한 생각이 듭니다.


'치유소설'이라고 해서 독자의 아픔을 완벽히 치유해 주는 소설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삶에 대해서는 다시금 생각케 하는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렇게 아픈 사람도 다시 웃을 수 있고 다시 일어섭니다.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습니다.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니 호기심이 더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너무 힘드십니까? 따뜻한 커피와 함께 조용히 읽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신다.'를 소개합니다. 애초에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슬픔도 없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 마음을 바로 보고 달리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입니다. 자신에게 힘을 주는 책입니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며 책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애도'가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를 점차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애정을 다른 곳에 쏟으며 자신을 돌보는 방식으로 상실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인 반면, 우울증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자기를 학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에 애도는 정상적이지만, 우울은 병리적이다. -프로이드-


프로이드는 '우울은 병리적이지만 애도는 필요하다.'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애도를 지지하고 함께하는 사회이면 좋겠습니다. 제발..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글이 공감되시면 책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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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플파란 2014.12.22 21:2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제목이 따뜻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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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웃게 합니다.


제목만 보고도 따뜻한 책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좋아합니다. 특별한 지식은 아니더라도 마음의 훈훈함을 느낄 수 있고 이웃들의 사는 모습을 보며 세상은 살 만 한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책말입니다.


<당신이 나를 웃게 합니다. 책표지>


지은이 송은주씨는 특별한 이력이 있습니다. '사람'과 '세상'에 끊임없이 천착하는 글로벌 시티즌십 교육자이자 트랜드 분석가, 행정학 박사입니다. 우리 삶에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사람들의 따뜻한 행동하나가 이 세상을 얼마나 변화 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에이 설마'라며 읽던 내용이 '이야, 정말.' 이라는 감탄사가 나오게 합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그래 세상은 따뜻한 일들이 훨씬 많아,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뜻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 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의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누구든 제일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주겠노라 한 것이지요. 아이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고 달렸습니다. 바구니 앞에 도착한 아이들은 함께 둘러앉아 키득거리며 과일을 나눠 먹었습니다. 왜 함께 달렸나고 인류학자가 물었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선 다음과 같은 단어가 합창하듯 쏟아졌습니다. "UBUNTU!" 그리고 한 아이가 덧붙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 있나요?" '우분투'는 아프리카 코사어로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지난 10월 초에, 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빨리 달리지 못하는 친구의 손을 잡고 일렬로 달리는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감동을 했으나 해당 학생들은 자신들이 왜 주목을 받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친구가 항상 꼴찌를 해서 마음 아플까봐 담임 선생님께 미리 양해를 구하고 달린 것이지요. 저 또한 그 사진을 보며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1등이 있다는 말은 꼴등이 있다는 말입니다. 선발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1등이 필요하겠지만 함께 사는 삶에서는 친구가 더 필요할 것입니다. 저희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도 운동회때 서열을 매기는 종목은 하지 않습니다. 몸체조, 율동, 격파, 요가 등으로 운동회를 꾸밉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다른 아이보다 얼마나 잘하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아이가 하는 모든 것이 귀여울 뿐입니다. 서열을 매기는 것이 행복과 연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괴짜 판사의 명판결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 35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숲에 버린 26세의 주부에게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혼자 하룻밤을 보내라."는 판결이 내려집니다. 고성방가로 이웃에게 고발된 청년은 하루종일 록 음악 대신 클래식을 들으며 하루 동안 묵언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초등학생 통학 버스의 타이어에 구멍을 낸 십대 말썽꾸러기들은 펑크 낸 통학버스를 초등학생들과 함께 타고 가서 피크닉을 열어주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괴짜 판사 마이클의 실제 판결내용입니다. 20년 넘게 판사로 살아온 마이클은 벌금을 물거나 감옥에 수감되었던 범법자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고 법정으로 돌아오는 현상에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클은 말합니다. 판사로서 저의 일은 범죄를 저지른 이의 나쁜 습관을 바꿔주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마이클은 판사의 업무를 '죄 지은 자를 감옥에 가두거나 벌금을 물리는 일'에서 '인간을 보듬어 안고 각자가 삶의 무게를 반추해보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을 보듬어 안고, 자신만의 잘못을 자신만의 벌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을 보듬어 안는 일에 대한 경험을 판결합니다. 벌의 내용이 너무 우스워 보이지만 결국 자신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보고, 상대를 즐겁게 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 판결을 듣고 어이없어 하겠지만 벌을 이행하고 나서 사람이 어떻게 바뀔지 쉽게 예상이 됩니다.


마이클은 인간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본 것이 아니라, 한 인간과 또 다른 인간으로 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영원히 보기 힘든 판결일까요? 사건을 보기 전에 인간을 본다는 점에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쓴 소년법정의 천종호 판사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판사의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아빠가 할 수 있는 일


라이언 가르시아는 3개월 된 첫 딸만 보면 입이 귀에 걸리는 딸바보 아빠입니다. 2011년 12월 31일, 새해 계획을 세우던 가르시아는 문득 내 딸이 커서 살아갈 세상이 더 거칠어져서는 안 될 텐데, 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라이언은 366일(당시 윤년)동안 낯선 이들이나 친구, 가족에게 매일 한 개씩 '무작위 선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행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그의 무작위 선행 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헌혈하기, 어르신과 신호등 함께 건너기, 놀이터에서 동네 꼬마들과 놀아주기, 동네 총각의 이력서 손 봐주기.."라이언은 아이디어가 바닥나지 않도록 친구들에게 선행 아이디어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채택되면 건당 10센트씩 좋은 일을 하는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덧붙이면서요. 놀랍게도 전 세계에서 1만 건이 넘는 아이디어들이 그의 블로그에 모였습니다."


딸이 자란 세상은 좀 더 따뜻해 지기를 바라는 평범한 아빠의 노력이야기 입니다. 너무나 하찮은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빠들이 많아지고, 이런 선행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딸이 자랄 세상은 한층 따뜻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지치고 쓰러졌을 때 손 내밀어주는 이가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것, 이것이야말로 아빠가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지도 모릅니다. 


뭔가를 받을 수록 행복해 질 것이라는 통념과는 반대로, 자신의 것을 남에게 줄수록 더 행복한 감정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가르시아는 이미 행복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고 그 감정은 딸에게, 딸의 친구들에게 전달 될 것입니다. 이 감정은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한번 경험하면 그 감동을 쉽게 잊을 수 없다는 것이죠. 사소한 선행, 따뜻한 세상을 위한 첫 단추일지도 모릅니다.


타임 트원을 찾아서


타임 트윈이란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을 말합니다.스코틀랜드 태생의 리처드는 마흔 살이 되는 날인 2014년 12월 1일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40인의 '타임 트윈'을 직접 만나보자는 계획을 세웁니다. 생년월일이 같은 이들을 지구촌 어딘가에서 찾을 확률은 2만 5천분 중 1, 인터넷을 뒤지고, 지인들을 동원하고, 페스티벌에 가서 플래카드를 들고 수소문하기를 수십차례, 지금까지 리처드는 34명의 타임 트윈을 만나 서로의 궁금증을 해소했다고 합니다.40년 가까이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낯선 땅의 친구들과 인생 모험을 공유한 리처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연 없는 인생은 없더군요. 시련을 맞은 이야기를 나누며 부둥켜안고 울었던 적도 여러 번입니다. 인생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왜 이리도 가혹한지,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다시 추스르고 웃음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리처드의 특별한 여행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같은 날 태어나 40년을 산 자들이 만나 공유한 경험, 그 속에서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처드는 친구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고 합니다. 힘들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그 속에서 웃음을 놓지 않으려는 친구들을 보며 인간의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삶이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 삶의 힘듬은 각자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짐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인생의 짐이 있습니다. 이 짐의 무게는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짐을 짊어지고 한발자욱씩 나갈 수 있는 것은, 오늘이라는 감사와 내일이라는 희망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당신이 나를 웃게 합니다.'.. 이 책을 덮을 때 쯤이면 왜 오늘이 감사하고 내일이 희망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간단하지 않은 책, 책장을 넘길 수록 따뜻한 향이 나는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면 계절은 겨울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봄날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



<글이 공감되신다면 책을 읽어주세요.^^>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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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카이4 2014.12.06 08:1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 책도 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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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고.


문득 소설이 읽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예전의 저는 소설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소설의 내용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고 지어낸 이야기로 사람들을 자극하여 감정을 흔드는 책 쯤이라고 치부했었습니다. 허나 제 생각이 잘못됨을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소설의 흡입력은 대단합니다. 책을 펼치면 눈을 땔 수가 없습니다. 잘 읽히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사건의 진행과정이 너무나 흥미 진진합니다. 소설책을 여럿 읽다 보니 작가님 마다 특유의 색깔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특정 작가님의 책만 읽을 때도 있었습니다.


일본 작가들의 책도 특유의 매력이 있습니다. 대중적 으로 <하루키 현장>에 버금가는 <바나나 현상>이라는 유행어를 낳았다는 요시모토 바나나작가의 키친을 펼쳤습니다.



단편소설입니다. ‘키친, 만월(키친2), 달빛 그림자’라는 세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키친’과 ‘만월’은 연결되는 이야기 구요. ‘달빛 그림자’는 또 다른,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의 글입니다.


주인공인 ‘사쿠라이 미카게’는 세상에서 부엌을 가장 좋아합니다. 구역질이 날 만큼 너저분한 부엌도 끔찍이 좋아합니다. ‘미카게’가 부엌을 좋아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나란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았습니다. 중학교 입학 무렵 할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시고 그 후 내내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할머니 마저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 후 매일을 부엌에서 잠들게 됩니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한 사흘은 멍하고 지냈다. 눈물도 마른 포화 상태의 슬픔이 흔히 동반하는 나른한 잠의 꼬리에, 조용한 부엌에 요를 깔았다...위-잉, 냉장고 소리가 내 고독한 사고를 지켜주었다. 그곳에서는, 그럭저럭 평온하게 긴 밤이 가고, 아침이 와주었다.”(본문중)


‘미카게’는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난 후 거의 공황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세월을 두고 가족이 줄어들어 지금은 혼자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안계신 큰 집에 혼자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했습니다.


“딩동, 느닷없이 현관 벨이 울렸다...「전할 말이 있어서, 어머니랑 의논했는데, 당분간 우리 집에 와 있지 않겠어요?」「네?」”(본문중)


이렇게 거의 안면은 없었으나 할머니를 통해 알게 된 ‘다나베 유이치’의 집에 ‘미카게’는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합니다. 물론 ‘유이치’의 엄마이며 아빠인 ‘에리코’씨와 함께 살게 됩니다.


소설은 슬픈 소재를 자연스럽게 풀어갑니다. 젊은 남과 여의 관계이기에 당연히 ‘사랑’이라는 내용이 주가 이룰 것이라 생각하고 읽었습니다. 허나 저자에겐 남녀의 사랑이 그리 큰 비중은 아닌 듯 합니다. 저자는 생명, 삶, 남은 자의 삶에 더 큰 초점을 맞추고 작품을 풀어나갑니다. 


아픔을 가지고 있는 미카게가 유이치네와 살며 나름 즐거운 경험도 하고 기력을 찾아 갑니다. 유이치 가족을 위해 요리도 하게 되고 유이치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들도 듣게 되며, 그래도 최소한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노래하듯, 그녀는(유이치의 엄마인 에리코) 그녀의 인생 철학을 말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나 봐요.」 감동한 내가 그렇게 말하자, 「뭐 다 그렇지. 하지만 인생이란 정말 한번은 절망해 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라는 걸 모르고 어른이 돼버려. 난 그나마 다행이었지」”(본문중)


저자는 ‘에리코’의 입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월

-키친 2


“가을 의 끝, 에리코 씨가 죽었다.”(본문중)


‘에리코’씨의 너무나 허망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시작으로 2부는 시작됩니다. ‘에리코’씨를 너무나 좋아했으나 동시에 무덤덤했던 아들 ‘유이치’의 방황이 시작됩니다. ‘유이치’는 별 감정이 없는 듯 묘사됩니다. 엄마를 대하는 태도나 ‘미카게’를 대하는 것도 로봇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허나 이런 ‘유이치’도 ‘에리코’의 죽음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카게’는 ‘유이치’를 위해 많은 위로와 노력을 합니다. 


죽기 전 미카게와 에리코씨와의 대화입니다.


“그 후 아내는 곧 죽고, 파인애플도 죽어버렸어...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깨달은 일이 있었어. 말로하면 아주 간단하지. 세계는 딱히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일에는 대범하게, 되는 대로 명랑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그 무렵 나는(미카게)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왜 사람은 이렇듯 선택할 수 없는 것일까. 버러지처럼 짓뭉개져도, 밥을 지어먹고 잠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간다. 그런데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본문중)


‘만월’의 마지막 부분에는 ‘유이치’와 ‘미카게’의 만남을 전제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따뜻한 재회인 셈이지요. 


고아가 된 ‘미카게’의 마음아픔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유이치’ 가족과의 만남, ‘에리코’의 죽음, 혼자가 된 ‘유이치’, ‘유이치’를 위로하는 ‘미카게’로 순으로 전개됩니다. 급박한 흐름은 없으며 반전도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픔을 당했을 때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읽는 이에게 자연스레 고민케 해 줍니다.


‘만월’의 경우 가족의 죽음이 주 소재라면 뒤편에 있는 ‘달빛 그림자’는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 무겁지 않게, 하지만 진지하고 쉽게 풀어냅니다. 책 읽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흡입력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의 책이 국내에도 여럿 번역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바나나’열풍에 휩쓸려 봐야 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소위 말하는 평범한 삶이 어찌보면 행복한 삶일 수도 있습니다. 삶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키친 - 10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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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책입니다. 재미있는 책이었으며 감동적인 책이었습니다. 평면의 책을 3D로 확장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자가 카피라이터여서 그런지 짧은 글귀가 주는 울림은 대단했습니다. 많은 글이 있는 책은 아닙니다. 김재연씨의 그림은 또 다른 이 책의 볼꺼리입니다. 


▲ 1cm 책표지


책은 크게 여섯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TO THINK – 고정관념을 1cm 바꾸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TO LOVE  - 얼굴이 1cm 가까워지면 그 다음 오는 것은 키스

TO OPEN – 사람을 1cm 더 깊이 들여다 보기

TO KNOW HER – 여자는 1cm 더 높은 하이힐을 꿈꾼다.

TO RELAX – 당신의 일상에 숨 쉴 틈 1cm

TO GROW – 당신은 매일 1cm 씩 자라고 있다.


각 챕터마다 메시지가 다릅니다. 긴 장문의 글이 아니라 그림과 미션이 가미된 책이라 읽기가 아주 수월합니다. 글자만 읽으면 쉽게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나 글과 그림의 의미를 곱씹으며 읽으면 흥미로운 책입니다.


“100퍼센트 준비되기를 기다리겠다.”는 말은 “영원히 시작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저자는 운동을 준비하는 여성을 그리며 위와 같은 글을 남깁니다. 


“땀 흘려도 보송보송한 고어텍스 운동복, 수영선수가 쓴다는 타올, 땀 흡수도 잘 되고 잘 마른단다. 미네랄 워터, 혹시 모르니까 요가매트, 내일부터 슬슬 운동해볼까? 아참참!!! 무릎 보호대! 보호대 사고 운동 시작해야 겠다.ㅋㅋ”(본문중)


이 말이 그림과 함께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멘트. “완벽한 준비는 시작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찔리는 말이었습니다. 뭐든 시작하려 하면 준비물부터 쇼핑을 하고 모든 준비 후에 막상 시작하지만 오래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삶의 형태, 비단 운동만을 뜻하지는 않겠죠. 말로만 50년, 준비만 100년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말과 준비에 앞서 행동이 수반되어야 함을 재치있게 표현한 글입니다.


“진동 칫솔이 나와도 칫솔은 버려지지 않았다. 자동 우산이 나와도 우산은 버려지지 않았다. TV가 나와도 라디오와 영화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새로운 노래가 나와도 옛 노래는 끊임없이 연주되고 있다. 새로운 것은 환영받지만, 익숙한 것은 사랑받는다.”(본문중)


이 글을 읽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구입하기를, 익히기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이 글은 한 줄기 빛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사고 익히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뒤처지는 것 같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이 짧은 문장은 저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피아노와 멜로디언을 비교하면 멜로디언이 슬퍼진다. 궁전과 오두막을 비교하면 오두막이 슬퍼진다. 코스 요리와 떡볶이를, 드레스와 티셔츠를 비교하는 순간 한쪽은 의미를 잃게 된다. 멜로디언에는 멜로디언만의 음색이, 오두막에는 오두막만이 줄 수 있는 추억이, 떡볶이에는 떡볶이만의 맛이 있다. 비교하는 순간 세상은 슬퍼지고 그것만큼 바보 같은 슬픔은 없다.”(본문중)


아이들을 가르치고 조언을 할 때 너만의 장점이 있고 너만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을 때 적당한 예가 없어서 애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단번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물건에는, 사람은, 각자의 존재의미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단지 더 나은 것과 비교하는 순간 세상은 슬퍼지고 그것만큼 바보 같은 슬픔은 없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울림이 큰 글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버릇, 어떤 취향, 어떤 성격은 그의, 그녀의 스토리를 듣는 순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놀부 이야기에 그가 놀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스토리가 덧불여졌다면 그는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았을지 모른다. 이해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본문중)


부끄럽게도 전 이 글을 읽으며 제가 미워했던,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왔던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나. 내가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준비를 했었나.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되겠구나.’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놀부도 알고 보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흥부로부터 상처를 받고 스스로 자신의 것을 챙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자랐는지도 모른다.’는 요상한 상상까지 떠올랐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잘 모르는 것이구나는 말과 상통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훌륭한 스승은 제자에게 가야 하는 길을 보여주고, 훌륭한 제자는 스승에게 가지 못한 길을 보여준다.”(본문중)


당황스러운 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보며, 가르치며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훌륭한 제자는 스승에게 가지 못한 길을 보여준다.” 계속 되뇌게 됩니다. ‘나만큼, 나처럼, 내가 가르치는 대로 살아라.’가 아닌 ‘너의 삶을, 내가 보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이 스승에게는 더 큰 희망일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아이보다 세상에 대하여, 의사가 환자보다 상처에 대하여, 선배가 후배보다 책임에 대하여, 학자가 학생보다 학문에 대하여, 목자가 신도보다 믿음에 대하여, 더 잘 알고 있다 단정하지 말라. 내가 모르는 한 가지를 그가 알고 있고, 그 한 가지가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일지 모른다.”(본문중)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큰 깨우침을 느낀 글입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저절로 ‘아하’라는 탄성이 났습니다. 그랬습니다. 저는 최소한 나이로, 아이들을 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크면 알게 돼, 선생님 말을, 부모님 말씀을 들어, 너도 사회 나가보면 알게 될거야.’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내가 경험한 것 뿐입니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내가 들었던 것 뿐입니다. 


아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경험을 하며 누구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나의 생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길만을 보여주며 그 길이 아니면 모두 낭떠러지인 것처럼 이야기해 왔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얼마나 아이들을 무시한 발언이었는지 반성이 되었습니다. 진리에는 나이고하가 없습니다.


참 특별한 책입니다. 짧은 글귀와 다양한 그림, 다양한 시도로 읽는 내내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흡입력이 강한 책입니다. 사실 처음엔 2시간 만에 다 읽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읽을 땐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상대에 대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합니다.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담담히 풀어냅니다. 


담담한 글을 읽다 보면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매력적인 책입니다. 두꺼운 책을 두려워하시는 분, 나의 삶이 너무 퍽퍽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타인들을 이해하기 힘드신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 있는 ‘세상이 공평한 이유’를 소개합니다.


“돈이 없는 당신에게는 젊음이 있다. 젊음이 없는 당신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사랑하는 아내가 없는 당신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있다. 절친한 친구가 없는 당신에게는 뛰어난 가창력이 있다. 뛰어난 가창력이 없는 당신에게는 재치 있는 입담이 있다. 재치 있는 입담이 없는 당신에게는 덩달아 웃게 되는 미소가 있다.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본문중)


1cm 첫 번째 이야기 - 10점
김은주 글, 김재연 그림/허밍버드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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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그리고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 환경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치유되기 힘든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사회가 원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본문중)

▲ '작은 학교의 힘' 책표지 '작은 학교의 힘' 책표지 ⓒ 김용만

경력 15년의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펜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뛰어남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시골학교의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이였습니다. 하지만 전교생이 40명 안팎의 충남 논산의 도산초등학교에서 생활하며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각종 도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아이들 대부분이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자존감이 강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학교에도 하루에 세 번씩 등교하는 힘이 뭘까?'를 고민하다 획일화된 우리 교육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작은 학교'라는 확신을 굳히고 이 책을 쓰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작은 학교만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과 공교육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이 이상적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발전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발전해왔음을 말입니다. 책에 소개된 학교들이 해냈다면 다른 학교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독단적이야, 학교 시스템이 굳었어, 업무가 너무 많아. 요즘 애들은 너무 버릇이 없어." 

아이들이 변하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교사 스스로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아이는 좀 모자라게 느껴지는가요? 부모를 보며 아이가 자랐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영악하지도, 게으르지도,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단지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고 사랑과 관심을 주면 어떻게 되는지 이 책에서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학교 문제, 살펴보면 사회적 구조가 원인

"큰 학교일수록 왕따나 학교 폭력 같은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학생 수가 많을수록 아이들이 무리를 짓거나 파벌을 형성하기 쉽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학교에서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서로에게 소중하기 때문에 왕따 같은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본문중)

보통 학부모들은 큰 학교를 선호합니다. 시설도 좋고 교통도 편리하고 뭔가 학력이 더 우수할 것 같은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서 과밀학급(학생 수가 많은 학급)이지만 우리 아이는 입학시키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학생 수가 교육에, 아니 인간관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가령 40분 수업에 40명의 학생을 가르친다면 교사가 배분할 수 있는 시간은 1인당 대략 1분여 정도입니다. 하지만 40분 수업에 10명을 가르친다면 1인당 시간은 4분 정도가 됩니다. 산술적 계산이라 이정도지만 실제 수업 광경을 떠올려봅시다.  수업시간에 교사는 진도를 나가야 합니다. 진도를 나가는 데 40명의 학생 모두에게 일일이 질문을 하며 답을 기다릴 여유가 있을까요? 학생들 한명 한명이 눈에 모두 들어올까요? 힘듭니다.


하지만 10명의 학생을 상대로 수업을 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집니다. 모든 학생을 담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끼리도 모두가 서로를 잘 담을 수 있습니다. 학생 수가 많으면 같은 반의 친구들조차 하루에 말을 한 마디도 섞지 못하고 하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왕따, 학교폭력은 왜 발생할까요? 아이들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땀을 흘려가며 실컷 노는 법을 안다면, 그리고 그렇게 생활한다면 왕따나 학교 폭력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너무 힘듭니다. 어른들의 요구와 강요에 못 이겨 생활하다보니 너무 힘듭니다. 그 분노를 친구를 괴롭히는 형태로 표출시키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에 대해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감을 품고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결국 진짜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뒤처지는 것을 불안해하는 어른들에게 있는 셈이다. 경쟁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는 어른도, 아이도 모두 불행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본문중)

그럼 아이들만 힘든 걸까요? 어른들 또한 힘듭니다. 옆집의 완벽한 친구 아들을 보며, 내 아들을 왜 저렇게 안될까, 지금 이러면 미래엔 낙오된 삶을 살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미리 하며 다시 아이들을 학원으로, 학원으로 내몹니다. 아이를 학원까지 실어주고, 학원비를 주며, 어떤 새로운 정보가 없는지를 조사하며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학원이나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엄마, 아빠와 화목하게 저녁밥을 먹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제 우리 교육도 아이들에게 경쟁이 아닌 친구와 놀이 시간을 돌려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부모부터 내 아이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조급증을 버리고 자녀 교육에 대한 인식을 '다른 아이와의 경쟁'이 아니라 '아이 자신의 성장'으로 바꿔야 한다. 아이의 행복과 경쟁력을 되찾는 일은 결국 우리 개개인이 자신의 인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본문중)


너무 이상적인가요? 아이 자신의 성장을 1순위로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가요? 가정에서 부모님의 역할은 이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아이가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 학교에서 이런 일을 해준다면 얼마나 마음이 놓이겠습니까. 이런 교육을 하는 학교들이 있습니다. 바로 작은 학교들입니다.


작은 학교의 생활


"작은 학교에서는 가정 방문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로 학부모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협력도 잘 이뤄지는 편이다. 그런데 큰 학교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교사가 가정 방문을 하지 않는다. 맞벌이 부부가 많다 보니 학부모와 얼굴을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큰 학교의 교사들은 주로 전화 상담에 의지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전화로만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사소한 오해가 생기기 십상이다." (본문중)


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교사와 학부모는 아이를 매개로 만난 사이입니다. 아주 긴밀한 관계입니다. 하지만 큰 학교에선 사무적이고 어색한 관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볼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학교는 다릅니다. 학교 운동회라도 있을 때면 동네잔치가 됩니다.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를 잘 압니다. 자연스레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와 교사가 힘을 합쳐서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시골의 작은 학교는 대부분 텃밭을 가지고 있다. 세도 초등학교에도 꽤 넓은 텃밭이 있는데,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아이들이 원하는 작물을 골라서 키운다. "선생님, 저건 이름이 뭐예요? 저 풀은 왜 색깔이 저래요?" 자연과 대면한 아이들에게서는 끊임없이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자연은 그 누구보다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 (본문중)


작은 학교는 현실적으로 시골에 많습니다. 시골의 작은 학교는 최첨단 기자재를 활용한 수업보다 학교 바로 뒷산, 학교 바로 앞개울, 학교 바로 옆 밭에서 아이들이 뛰어 놉니다.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인에게 지원대는 지원비도 많아 질 높은 방과 후 교육도 받을 수 있습니다. 교사의 경우는 어떨까요. 작은 학교의 교사들은 큰 학교의 교사보다 자율성이 보장받는 편입니다. 즉 원하는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큰 학교는 시스템에 의존하여 학교가 운영되기에 교사 개인의 의견이 무시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연히 교사는 소극적으로 변합니다. 작은 학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사의 특기에 맞는 다양한 활동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고, 학생들도 더 다양한 재능을 펼칠 수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작은 학교 교육은 큰 학교 교육 위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이 진짜 아이를 위한 것일까. 풍족한 자원과 넘치는 교육열일까. 진정한 배려와 관심일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본문중)


물론 모든 도시의 큰 학교와 교사들이 이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시골의 작은 학교가 이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작은 학교의 교사가 더 많은 업무로 힘들어 할 수도 있습니다. 도시의 교사가 최첨단 시설을 활용하여 즐겁게 생활 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계속 묻습니다. '과연 아이를 위하는 것은,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교육 혁명을 일으킨 작은 학교들


이미 우리나라에 이런 기적을 일으킨 작은 학교들이 있습니다. 책에서도 소개합니다. 경남 남해군의 작은 시골학교 삼동초등학교는 독자적인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2009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경남에서 1위를 했습니다. 골프, 승마, 발레, 바이올린 같은 수준 높은 방과 후 수업으로 인정받는 도산초등학교도 있습니다. 도산초등학교가 명품학교로 다시 태어나며 이 지역의 인구가 늘어나고 지역 경제도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살리는 일이 지역을 살리는 일이 된 셈입니다.


하루 첫 일과가 숲 속 산책이며 주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가장 생태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방향으로 무엇보다 아이들의 학습과 놀이를 최우선시하는 남한산초등학교도 작은 학교입니다. 생태학습, 창조 학습, 발전 학습 등을 통해 학부모에게 감동과 믿음을 준 조현 초등학교, 농촌유학센터를 통해 전교생 16명의 폐교 위기에 몰렸던 학교가 4년 만에 전교생 90여명이 되며 거듭난 전북 임실군의 대리초등학교, 지역공동체 모임인 '여민동락공동체'의 노력으로 죽어가던 학교를 살려내고 모두가 행복하게 된 묘량중앙초등학교도 있습니다. 학부모가 단순히 학교를 돕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의 한 주체로서 학교운영에 참여해 연간 교육 계획도 함께 짜는 배움터 거산 초등학교 등 성공적으로 그 학교의 특성을 살리며 학교와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작은 학교들이 많습니다.


좋은 학교란?


"작은 학교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것을 즐거워하고 학교생활을 행복해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바로 학교에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은 학교 아이들은 자신들이 존중받는다는 것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바로 교사들의 '기다림' 때문이다." (본문중)


교사가 기다려 준다는 것은 학생에게 더 나은 것을 기대한다는 의미이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큰 학교에선 한명의 학생에게 많은 기다림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작은 학교에선 가능합니다. 작은 학교에선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부모, 마을이 함께 아이를 키웁니다. "왜 이것 밖에 못하니? 빨리 다음 것 해야지." 이런 닦달이 아니라 느긋하게 아이를 키웁니다. 아이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넉넉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이 외에도 자유로운 학구제 운영, 학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맡기는 교육에서 학교에 함께 참여하는 교육,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 등 모두가 함께 해야 아이를 중심에 둔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학교의 3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째 학급당 학생수가 20명 이하인 학교를 선택하라. 둘째, 합의된 교육 철학을 가진 학교를 선택하라. 셋째, 자연을 즐기는 학교를 선택하라.


이 책을 읽으며 중간 중간 어색함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작은 학교만이 최고고 최선이다.'고 외치는 저자를 보며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 읽고 다시 보니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이가 존중받고 자존감을 기를 수 있으며 행복한 학교를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푸념하기엔 아이가 너무 가엾습니다. 교사들이 이상하다고 하기엔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엔 아이들의 미래가 암울합니다.


주어진 것에만 맞춰 살지 말고 생각하는 데로 사는 것은 어떤가요? 남들이 정해둔 기준에만 맞추려 하지 말고 내 아이, 내 가족을 보며 또 다른 삶을 사는 건 어떤가요?

아이의 행복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이답게 자라면 행복한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존중받으며 자랄 권리가 있습니다.

작은 학교의 힘 - 10점
박찬영 지음/시공사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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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코햄 2014.04.09 17:3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낸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된 거 같습니다. 지방에도 서울 중학생들이 가고자 하는 자사고들이 많찮아요. 요즘은 진짜 괜찮은 학교라면 여건이 허락되는 한 어디든 보내고 싶습니다. 인터넷 정보는 무수히 많치만 진짜 정보를 알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거 겉습니다. 진짜 맛있는 집 구별하기도 어렵잖아요.

  2. 마산 청보리 2014.04.09 18:0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옳은 말씀입니다. 지역의 인재가 서울로 가면 그 인재는 서울에서 능력을 발휘하게 되죠. 한번 살 인생, 지역에서 자란만큼 지역에서 받은 것을 지역으로 환원하며 사는 것도 아주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학교는 내 아이가 좋아하는 학교입니다. 남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학교가 우리 아이에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다행히 우리 지역에서도 새롭고 좋은 학교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됩니다. MSG가 들어간 학교가 아닌, 순수한 학교에 많은 관심과 응원 보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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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솔직히 3권이 좀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뜻이다.  

ⓒ 해냄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저 전대광입니다."

남자는 상대방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반으로 접는가 싶더니 곧바로 명함을 내밀었다. 그 연속동작은 기름칠이 잘된 기계의 작동처럼 빠르고도 자연스러웠다. 그의 그런 동작은 울림 좋은 목소리며 부드러운 표정과 어울려 세련된 여행사 직원 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아 예에……,제가 명함이……."

조정래 장편소설 <정글만리> 속 서하원과 전대광의 만남이다. 서하원은 한국의 실력 있는 의사였다. 뜻하지 않은 의료사고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중국으로 오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초청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그 초청에 관여된 사람이 전대광(중국에서 근무하는 종합상사원)이다. 즉 전대광은 사업상 서하원을 맞이하게 되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책에서는 중국의 많은 변화가 소개되고 있다. 읽는 내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접하게 되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과 이 인물들의 연결고리를 확인해가며 읽다보면 어느새 책 속으로 빠져든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것, 돈 그리고 '몐쯔'

중국인들은 돈을 아주 좋아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건? '몐쯔'라고 한다. 우리말로 자존심, 체면, 위신, 체통이다. 해서 중국에서 손님 접대의 최고 3대 조건은 최고급 식당에서, 최고급 음식을, 최고급 술과 함께 대접하는 것이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중국은 워낙 가짜가 많아 최고급 술로 대표되는 우량예, 마오타이주를 꼭 진품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가 흡족하며 대화가 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의 3대 금기사항은 마오쩌둥에 대한 험담, 공산당에 대한 비판, 대만 독립에 대한 지지다. 혹시 중국에 가야 할 사람이라면 명심해야 할 내용이지 싶다. 실제로 소설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무슨 일이오?" 남자가 들어서자 하 사장이 먼저 물었다. "예, 저희 사장님이 어제 공안에 잡혀가셨습니다." "아, 그건 알고, 왜냔 말이오." 하 사장의 찡그려지는 얼굴에서도 다그치는 듯한 어조에서도 짜증이 드러났다. "예, 대만에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고 주장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에 대해 진심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언제 어디서든 대만에 대한 정치적 발언이 있으면 어떻게 알고 공안이 잡아간다. 책에서 중국의 공안은 참 특별한 존재다. 현실에서의 중국 공안도 무척 특별한 존재지만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는 말과 함께 반일 시위는 아무리 무질서해도 가만히 구경하고 대만이나 중국 공산당에 대한 험담을 하면 어디에서든 나타나 잡아가는, 중국인 뿐 아니라 중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공안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 공안에 잡혀가도 괜찮은 꽌시나 돈이 있으면 또 풀려나오는 방법이 있다고 하니 이해가 쉬이 안 되는 나라이다.

난징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난징지역에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을 잔인하게 죽였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무고하게 죽은 중국인들에 대해 안타까웠다. 중국의 또 다른 상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분노 또한 이해가 된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은 원폭 피해로 대략 17만 명 정도가 피해를 봤다고 한다.

한국은 일제치하에서 400여만 명이 죽거나 피해를 봤고 중국은 3500만 명이 죽거나 피해를 봤다고 한다. 워낙 인구가 많은 나라지만 당시 3500만명이라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게다가 일본은 전쟁 후 진심어린 사과도 없이 아직까지도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등 사실과 다른 망언을 하고 있으니 중국인들이 얼마나 화가 날것인가? 최근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도 자기땅이라고 주장하니 중국인들이 또 얼마나 화가날 것인가?

소설은 참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이 일본을 밀어내고 G2 국가가 되었다는 것, 꽌시(우리말로는 '백'이라고 해야 하나? 끈, 줄 등 뒤를 봐주는 사람)의 막강함, 중국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소개 즉 형상으로는 용, 색깔은 빨강, 꽃은 모란, 한자는  거꾸로 된 '복(福)'자를  좋아한다는 것, 숫자는 8을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 중국 사람들은 사업 시에도 객관적인 데이터나 사람의 역량보다 사람됨을 더 중시한다는 것, 중국 사람들이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꼭 한다는 말 '런타이뒤'(사람이 너무 많아, 나 빼고 3억명은 없어져도 돼), 유교의 발원지이면서도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훨씬 남녀가 평등하다는 점, 아니 오히려 여성상위사회라는 점, 고위 관료나 돈이 많은 부자들이 얼라이(첩)를 둔다는 점, 중국에서 사업의 형태 중 '박리다매(아무리 싼 것이라도 많이 팔아서 큰 이익을 봄)'가 얼마나 중요한지 등.

허나 작가는 이 많은 내용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등장인물,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자연스레 녹여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간만에 본 정말 공부되는(?) 소설이었다. 사실 그 전에 조정래 작가의 작품이었던 <한강>이나 <태백산맥>, <아리랑>에 비하면 내용이 덜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작가도 말했다. '다른 작품을 위해 중국 지역을 취재하며 언젠가는 중국에 관한 소설을 꼭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정글만리>다.

소설은 전대광의 친조카인 송재형이 사랑하는 여인인 리옌링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리옌링의 아버지는 개혁 개방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사업의 센스도 있고 돈도 악착같이 모은 자이다. 리옌링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하자 펄쩍뛴다.

"아빠, 저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겠어요."
"물론 베이징대 출신이고 당원이겠지?"
"아니에요, 한국사람이에요."
"뭐! 뭐라고! 조선놈이라고!"
"조선이 아니라 한국사람이에요."
"빌어먹을! 너 미쳤냐! 안 돼, 절대 안 돼."
"왜 안되는데요? 이유를 말씀하세요."
"왜 하필 속국놈이야. 재수 없이."

그렇다. 중국 사람에는 아직도 중화사상이 남아있다. 즉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만심이다. 여기까지 보면 송재형과 리옌링의 결혼은 힘들어 보인다. 허나 속국사람이라고 재수 없어하던 리옌링의 아버지도 송재형이 직접 인사를 드리러 와서 중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두 글자 '수(壽)'와 '복(福)'이 새겨져 있는 빨간 내복을 받고는 '사윗감으로 만점'이라고 아주 흡족해 한다. 즉 중국 사람들은 그만큼 한 번에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사실 오늘 날의 중국을 옆에서 보고 있어도 믿기 힘들지 않은가? 이 엄청난 변화의 나라, 뭐든 달려들면 금방 세계 1위로 만드는 나라, 매장에서 '진짜 가짜임을 증명함'이라고 대 놓고 가짜를 파는 나라, 가짜를 많이 팔고 로얄티를 내지 않냐는 서양인의 질문에 '중국의 3대 발명품인 종이, 화약, 나침반을 1000년간 사용한 것에 대해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로열티를 낸 적이 있느냐?'라며 오히려 반문하는 나라. 이렇듯 논리적으로 힘든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이 궁금한가? <정글만리>를 펼치자

정글만리 1 - 10점
조정래 지음/해냄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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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박사의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집어들었다. 강신주 박사를 접한 건 <철학, 삶을 만나다> 이후 두번째다. 나는 처음 그를 만났던 순간을 잊지 않는다. 강신주 박사 특유의 직설적인 어법과 예리한 지적은 몇 번이나 나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고통을 치유하는 인문정신'이라는 내용을 총 3부로 구성해놨다. 1부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니체부터 에피쿠로스까지 16명의 철학자들의 책을 소개한다.


2부 '나와 너의 사이'는 칸트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 15명의 철학자들을 저서를 통해 만난다. 마지막 3부는 '나, 너, 우리를 위한 철학'으로 베르그송부터 17명의 철학자를 소개한다. 


강신주 박사는 철학자들의 저서를 소개하면서 독자와 철학자들을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워낙 소개된 책이 많아 '내용이 얕진 않을까'라는 걱정과 함께 책을 펼쳤다. 괜한 걱정이었다. 


문득 조그만 깨달음이 내게 찾아왔다. 그건 바로 솔직함과 정직함에 관한 것이었다. 자, 돌아보도록 하자.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자신의 속내에 정직하고 솔직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솔직함과 정직함은 내가 만난 시인을 포함한 모든 인문정신의 핵심에 놓여있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읽든지 잊지 말도록 하자. 정직한 인문정신이 건네는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낼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에 더 직면할 수 있고, 나아가 소망스러운 삶에 대한 꿈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본문 중에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 실린 강신주 박사의 핵심적인 말이다. '솔직하라' '당당하라' '주인된 삶을 살아라' '자본주의의 최면에서 벗어나라' 등등. 인문학의 본질을 꿰뚫는 강신주 박사의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오늘 내가 진실을 마주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꼬리를 내렸다면?

ⓒ sxc


자유롭고 싶은가? 그렇다면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본문 중에서)


니체는 '영원불멸한 세계관이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을 부정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진단한다. 영원불멸한 천국에서 모든 것을 보상받고 행복을 얻을 수 있기에 지금의 고통은 감내하라는 말에 대해 니체는 브레이크를 걸고 '영원회귀'의 세계관을 제안한다. '영원회귀'란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생각이다. 


오늘 내가 진실을 마주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꼬리를 내렸다면, 10만 년 뒤에도 100만 년 뒤에도 똑같이 회귀 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히 비겁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기쁨을 위해 오늘의 내가 비굴하고 고통을 참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내가 참으면 참을수록 그만큼의 횟수만큼 인생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가 순간의 굴욕과 비겁을 선택할 리는 없다. 순간으로 보였지만, 그것은 사실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어떤가? 당신은 지금의 인생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반복돼도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솔직하지 못한 나를 애써 변명하며 살고 있진 않는가?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볼 때다. 


과연 우리는 그들만큼 솔직하고 당당한가? 어쩌면 우리는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언제까지 우리는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것인가? 50세에 드디어 자신으로 살 수 있게 된 이지는 우리에게 묻는다.(본문 중에서)


이는 아이의 마음을 강조한 이지의 말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서로 눈치를 보며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박수를 칠 때 "임금님은 벌거벗었네"라고 말한 아이로 인해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난다. "그래, 임금님은 옷을 입지 않았어." 그제야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하고 사실을 이야기하게 된다. 


우리는 현실에서 순수한 동심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보며 소리를 내고 있는가? 단지 남이 하니까, 남의 자식도 학원에 가니까, 남들이 더 좋은 차 혹은 더 좋은 집에 사니까, 생각 없이 쫓기듯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엄마 아빠, 대체 왜 이래야 하는 거예요?"라고 아이들이 질문할 때 "몰라도 돼, 그냥 엄마 아빠 시키는 대로 하면 돼!"라고 말할 것인가? 솔직하고 당당한 삶에 대한 일침! 삶의 주인이 돼야 함을 강조한 대목이다. 


모든 집착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져버렸거나 혹은 부재하게 될 때 발생한다. (중략) 나에게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내게 잠시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나의 아이도, 그리고 돈마저도 모두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인연이 되어서 나에게 왔고, 인연이 다해서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나 내가 가진 것이 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부질 없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가르주나의 핵심적인 전언이다.(본문 중에서)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큰 깨우침을 얻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회자정리'. 만난 것은 분명히 헤어지기 마련이다. 애초에 나의 것이 어디 있었으며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은 생각일 뿐 현실이 아니다. 더 이상의 집착도, 욕심도, 큰 의미가 없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


2. 나와 너의 사이


칸트는 혁명적이다. 칸트의 진정한 혁명성은 타인을 수단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있는 것 아닐까? 자본주의는 돈을 목적으로 인간을 수단으로 만드는 체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인간을 목적으로 보자는 칸트의 주장은 자본주의 체제에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인간이 목적이 되면 돈은 수단의 지위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이 대목을 놓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는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윤리적 명령을 토대로 반자본주의적 공동체를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칸트는 '자유가 없으면 책임도 없다'는 말을 강조했다. 강신주 박사는 책을 통해 행위의 자율성과 타율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인간처럼 자율적인 주체를 '목적'이라 부르고 자동차나 컴퓨터처럼 타율적인 사물을 '수단'이라고 부른다. 즉 주인이 목적이라면 노예는 수단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돈이 목적이 되고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가라타니 고진은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기 위해, 원래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공동체를 모색했다. 칸트의 생각이 이상한 생각인가? 인간은 자율적인 주체로써 목적 그 자체인가, 아니면 돈을 모으고 소비하면서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톱니바퀴 중 하나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간의 계층에 따라 존재가치가 달라지는 대상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2차대전 때 유대인 학살의 중심에 있었던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잡혔다. 그는 1961년 12월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아이히만은 상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론한다.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아렌트는 '순전한 무사유(無思惟)'의 책임을 부과한다. 그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의무'라고 강조한다. 베버가 지적했던 것처럼 현대 사회는 분업화가 전문화의 과정을 통해 구조화된 사회이다. 분업화와 전문화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다.(본문 중에서)


이 대목을 읽지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었다. 나 자신도 사유하지 않는(무사유)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나는 사유를 하면서 살았던 게 아니라 관습에 의해, 다수결에 의해, 아무런 고민이나 사색 없이 살았던 경우가 많았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살 수 있다니….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에 대한 사유없이 명령만 따라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아이히만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회사의 지시입니다" "상부의 명령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습니다" 등의 말들로 나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 정당화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난 고민하며 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고인 물 마냥 현실에 타협하며 사는 대로 살아왔다. 몸만 살았지 정신은 죽어 있었다. 


아렌트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당신은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먹고사는 것이 너무 바쁘다'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우리에게 아렌트는 심장이 살아 있는지를 묻고 있다.


3. 나, 너, 우리를 위한 철학


▲  강신주 박사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깨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조종돼 살지 말고 스스로 움직이라고 강조한다. 곰곰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sxc


산업자본은 상업자본과는 달리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서 이윤을 남기려고 한다. 가령 핸드폰을 만드는 산업자본은 계속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기존의 제품들이 유행에 뒤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산업자본은 소비자들이 기존 제품을 버리고 계속 새로운 제품을 사도록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행을 소비자들이 집단적으로 특정 스타일을 선호하고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본 것이다. 유행은 소비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월급을 받은 나는 세상의 주인이 된 것 같다. 백화점을 들어 갈 때도 마트에 갈 때도 의기양양하다. 물건을 흥정할 때도 고자세가 되어 흥정에 임한다. 허나 나의 돈이 상품과 맞교환되는 순간 소위 말하는 '갑'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허전함은 그대로다. 그 물건이 영원한 것도 아니며 나의 만족감 또한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겐 또다시 구입하고 싶은 물건이 나타난다. 난 다시 그 물건을 사기 위해 일한다. 그리고 월급날이 되면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에서는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깨치지 못한다면 내가 자본주의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주인은 나, 우리, 즉 노동자가 아니다. 자본가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준다. 하지만 그 돈을 다시 환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중들을 유혹한다. 


이러한 사실을 깨치게 되면 내 삶의 주인이 될 준비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내 삶의 주인은 온전히 나 자신이었나? 모든 것이 나의 의지대로 선택돼 왔는가? 이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짜인 틀 안에서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분명한 것은 소비가 인간의 행복감을 100%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으로, 나만 위함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위함으로 이뤄질 수 있다. 강신주 박사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깨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조종돼 살지 말고 스스로 움직이라고 강조한다. 곰곰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나의 존재가 가지는 그 특별함과 순수한 의미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존재가치에 대해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너무나 강하게 나를 뒤 흔든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는 철학자 48명의 다양한 생각들이 강신주 박사의 시각을 통해 정리돼 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다시 나의 시각을 통해 새로운 스펙트럼으로 나를 뒤흔들었다. 강신주 박사도 말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유리병 편지를 받았습니다. 스피노자, 장자, 원효 등과 같은 철학자였습니다. 이제 저의 편지를 유리병에 담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의 저의 유리병 편지를 꺼내 읽어볼까요? 그 사람도 저와 마찬가지로 들뜬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보게 될까요?" 


최소한 기대하는 마음으로 유리병 뚜껑을 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내가 보는 세상, 그 위에 또 다른 가치 있는 세상이 있음을, 지식과 감동을 초월하는 독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궁금한가? 혼자 느끼기에는 너무 아쉽다. 세상이 너무 힘든가?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가? 강신주 박사의 책을 펴보길 권한다. 답이 있진 않지만 진실의 길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 된 삶을 살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 10점
강신주 지음/사계절출판사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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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


제목부터 남다릅니다. 나의 삶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됐다고 믿는 저는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책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 '나는 햄버거가 먹고 싶은 걸까? 햄버거가 먹고 싶도록 주입된 것일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호기심을 가득 안고 책을 펼쳤습니다.

"우리는 우리 행동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우리 뇌가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즉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뇌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사후에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일 뿐이거나 단순히 명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략)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한 의지를 느끼기 거의 1초 앞서 뇌 활동이 일어난다."(본문 중에서)

저자인 엘든 테일러 박사는 "내가 생각하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게 사실은 내 마음과 생각 때문이 아니라 뇌가 미리 판단하고 작용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뇌의 반응에 따라 인간의 모든 것이 반응한다는 말이지요. 내가 존재하는 것인지, 뇌가 존재하는 것인지 참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는 '마음의 작용'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떻게 대중들이 TV나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조정되고 있는지 '왜 인간들은 더 잔인해지고 있는지' 등 마음의 작용을 이용해 타인을 조종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집단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2부에는 자신을 찾기 위한 도구와 기법 그리고 운동 등이 소개돼 있고요.

베이컨이 흥행에 성공했던 이유

 '넉넉한 아침 식사가 건강에 좋다, 특히 아침이 중요한데 매일 아침 섭취하는 풍부한 단백질이야말로 무병장수의 근원'이라는 말과 함께 베이컨은 상업적 흥행에 성공했다.
ⓒ sxc

1부를 읽으며 '음모론'이 생각날 정도로 끔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광고와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음악 등이 나를 지배하고 있고, 끝이 없는 소비를 위해 길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2부를 다 읽고 책을 덮는 순간, '아직 늦지 않았다, 내 삶을 온전히 찾아야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미국에서 베이컨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1920년대, 한 베이컨 회사가 버네이스를 기용하였다. 베이컨 회사의 요청을 받는 버네이스는 가장 먼저 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의사들을 설득해 '넉넉한 아침 식사가 건강에 좋다, 특히 아침이 중요한데 매일 아침 섭취하는 풍부한 단백질이야말로 무병장수의 근원이다'라는 증언을 받아냈고 이를 대중에게 홍보하면서 베이컨과 달걀을 강조했다. 물론 이 과정에 베이컨 회사가 연루돼 있음은 비밀로 했다. (중략) 버네이스는 말 그대로 선전에 노출된 사람이 그것이 선전인지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은밀한 선전술의 창시자였다.

1957년 미국 뉴저지주 포트리의 한 극장에서 월리엄 홀던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 <피크닉>이 상영되고 있었다. 심리학자이자 유능한 광고업자인 제임스 비커리는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 '팝콘을 먹어요' '코카콜라를 마셔요'라는 메시지가 담긴 화면을 3000분의 1초 동안 은밀히 내보내는 실험을 했다. 비커리는 관객에게 알리지 않고 이 짧은 메시지를 5초 간격으로 화면에 영사했다.

이 실험은 6주 동안 총 4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는데, 그 기간에 팝콘과 콜라의 판매액은 각각 57.7%, 18.1%나 증가했다. 물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화면에 메시지가 뜨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잠재의식 효과가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잠재의식 효과란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수준 이하의 자극들이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잠재 연구 결과를 활용하려는 광고인들의 노력을 굳이 상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기법을 이용해 파는 것이 비단 제품만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앨 고어는 민주당 후보로, 조지 부시는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논란은 공화당의 정치 광고 방송에서 앨 고어의 얼굴 위에 30분의 1초 동안 RATS(쥐새끼들이라는 경멸조의 속어)라는 단어가 입력돼 있는 것이 발견되면서 일어났다. (중략) RATS에 노출된 사람은 남녀 실험 대상자들 모두 동일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신을 공화당 지지자라고 말한 사람들도 민주당 지지자와 똑같이 RATS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본문 중에서)

무서운 일 아닙니까? 이미 인간의 잠재의식을 이용해, 본인은 의식도 하지 못하는 사이 TV나 스크린을 통해 세뇌를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세뇌'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자유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저자는 책을 통해 집단 세뇌의 다양한 형태를 제시합니다.

다중인격자로 만드는 실험, 약물로 인격까지 바꾸는 실험,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기 위한 실험, 신경전자기를 이용한 심리통제, 마음 조종하기 등 그 방법은 실로 다양합니다. 그리고 대중을 세뇌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을 이용한다고 덧붙입니다. 주로 물건을 파는 자본가들의 광고에도 이 방법들은 교묘하고 은밀하게, 아주 체계적이고 적용돼 있다고 설명합니다. 술 광고와 담배 광고에도 말이죠. 책을 읽다가 보면 여러 가지 의문들이 생깁니다. '정말일까? 이건 미국의 이야기이지, 한국은 다르지 않을까? 설마?'

감기약 먹으면 건강해진다? 그것도 세뇌

 감기라는 병도 TV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이죠. 저자는 감기약 광고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포심을 조성한다고 주장합니다.
ⓒ sxc

저자는 말합니다. 감기라는 병도 TV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이죠. 저자는 감기약 광고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포심을 조성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그 감기약을 먹어야 '행복해지고 건강해진다'는 메시지를 계속 주입한다고 합니다. 이런 광고를 본 사람들은 자유 의지라고 생각하며 약국에서 그 약을 사 먹겠지요. 그리고 병이 나아져 행복해졌다고 스스로 만족하게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약 광고가 공포심을 유발해?' 물론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약 광고를 보면 주로 연기자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약을 복용한 뒤 상쾌한 표정을 짓습니다. 광고를 보는 소비자들이 일정 정도 공포심을 가질 만합니다.

저자는 이 밖에도 "TV의 폭력성과 선전성은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섰고 사람들의 뇌가 이미 적응을 해버렸기 때문에 더욱 더 자극적인 화면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고 경고합니다. 슈팅게임을 통한 폭력성으로 인해 실제 현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고, 격투기 경기나 액션 게임을 통해 실제 학교 폭력 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반면 저자는 이와 같은 경고와 함께 이 모든 위험으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도 제시합니다.

"'지금 당장 TV를 끄시오.' 보통 사람은 TV를 보기 시작한 1분 이내에 뇌가 알파파 상태로 들어간다. 알파 의식은 최면을 할 때 기본적으로 이용되는 의식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알파 의식 상태에서는 기술적으로 구사하는 암시를 받아들이기 쉽다. 알파 상태는 우리의 바이오 컴퓨터인 뇌와 마음에 긍정적은 정보를 집어넣기에 매우 적합한 상태임이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알파 의식을 이용해 선택이나 습관을 유도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특히 TV는 유아와 어린이들에는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TV와 현실을 구분하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하물며 어른들도 TV 광고에 익숙한 제품을 먼저 고르는데, 아이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가족과 나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라면 당장 TV를 꺼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삶은 누군가에 의해 조종된 것... 동의하십니까

저자는 이렇게 '의도된 복선'이 깔려 있는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방법도 설명합니다. 우선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우선 변화에 대한 진정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파워 이미징, 점진적인 이완, 자기 암시, 이너토크, 집중력과 자신감을 키우는 신경언어프로그래밍(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 무의식적인 글쓰기, 감정의 수맥 찾아내기, 남은 인생이 50일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기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줍니다.

또 저자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 자신을 용서하고, 다른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우리는 용서받는다'고 부연합니다. 결국 당신의 삶은 당신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고 남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아보라고 권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도 있습니다. '나의 신념, 나의 생각이라고 믿어왔던 것 중에 실제 내가 고민과 성찰을 통해 얻은 것이 별로 없구나' 'TV를 통해 유명한 사람들이 한 말을 내 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게 많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약간은 음모론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하는 분들이 읽기를 권합니다.

'당신 마음속의 모든 믿음과 욕구는 조종되고 주입된 것이다!' 동의하십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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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 - 10점
엘든 테일러 지음, 이문영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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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과 좌절. 노무현 대통령 못다쓴 회고록/노무현/학고재 읽는 내내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책이었다. 지켜드리지 못했던 죄스러움에, 다시는 못 뵌다는 안타까움에, 한장 한장 곱씹어 가며 읽은 책이다.  ⓒ 김용만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것은 조금 가혹하고,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싶습니다."  - <참여정부 5년을 말하다> 2007년 대통령의 육성 회고 中, p181

근래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재임 중 언론으로부터 무수한 공격을 받았고 지지자들로부터 외면 받았으며 언행이 대통령 답지 않다고 흠 잡혔던 대통령이었다. 욕을 참 많이 들었던 분이셨다. 하지만 너무 따스했던 분이셨다.

그 분은 왜 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는가? 퇴임 후 할 일이 더 많다고 웃으셨던 그 분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언론을 통해선 그 분의 하고자 하셨던 말씀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궁금했다. 참여정부는 대한민국의 발전에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던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을 다시 펴보았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에는 대통령이 직접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고민했던 내용이 적힌 미완의 원고와 봉하 글마당, 좋은 자료 모으기 동호회, 진보주의 연구 모임에 기고한 글들이 실려있다. 제 2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육성기록으로서 대통령이 걸어온 길, 참여정부 5년에 대한 평가, 한국 정치에 대한 단상으로 전개되어 있다.

사실 본인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었다. 그 분의 생각과 열정과 행동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후에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를 보고 '왜 저러시지? 저럴 분이 아닌데? 변하셨나?' 라며 적지 않게 실망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그런 정보를 접한 것도 오로지 언론을 통해서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비롯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라크 파병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참여정부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왜 사실을 그 땐 몰랐는지, 왜 당시에는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믿었는지, 나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죄스러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싸우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진 않았지만 당신이 생각하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발자국을 한 걸음씩 내 딛으며 싸우고 계셨던 것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 사료관 

노무현과 대한민국 언론

"대북 관계 관련하여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의 언론 보도로 인해)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언론은 먹을거리를 챙길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결과는 점점 높아지는 긴장과 적대감, 그리고 전쟁의 위험과 불안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짓말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보놀음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평화라는 것은 이 틀을 깨야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현명한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p.73

현명한 사람들의 연대, 대통령은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함을 누차 강조한다. 정치인과 언론의 플레이에 현혹되지 말고 역사의 진보를 위해 민주주의에 민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론과 정치인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역으로 말하면 언론의 힘이 필요이상으로 강력함을 견제하셨던 말씀이었다. 대한민국의 언론은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가. 그리고 대한민국 언론은 어느 정도 공정한가? 지난 12월 7일 서울에서는 비상시국대회가 있었다. 준비위측은 2만명 이상이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엔 깨어있는 시민이 많고 조직화된 힘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나라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에 그 책임이 있지는 않을까? 우린 너무 막연하게 대통령에게만 몰입하고 대통령을 상대로만 싸우고 있다. 사실 싸워야 할 상대는 대통령이 아닐 수 있다. 

비상시국대회를 방송에 내보내지 않는 언론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면 왜? 언론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역할을 하지 않는가?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지만 언론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언론은 권력에 언제든 빌붙을수 있고 내칠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쳐진 케이스였다.

노무현 삶의 도화선... 부림 사건

"부림사건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그냥 양심적으로 살면 된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로구나.' 권력의 범죄에 대해 매우 충격적인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잡혀간 학생들의 범죄 사실이란 것이 너무나 터무니 없었고 범죄가 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을 자꾸 옭아매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학생은 57일 동안이나 가족이 그 행방을 몰랐습니다. '영장 없는 구속'의 수준이 아니라 가족이 아예 행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p. 138

  ▲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 사료관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부터 인권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부림 사건으로 인해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게 되었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세상에 맞선 것이다. 값싼 영웅주의도 아니었고 모든 것을 가졌던 자의 여유도 아니었다. 

단지 정의를 추구하며 살아왔다. 이 땅 모든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살아왔다. 원칙과 신뢰가 바로서는 대한민국, 공정하고 투명한 대한민국, 대화와 타협을 통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의 진심은 통했다. 학력도 없고, 돈도 없고, 가진 것 없던 그는 국민의 지지라는 최고의 희망을 업고 대통령이 된다.

노무현에게 정치란?

"제가 가진 정치의 목적도 정치가 제대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조금 더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암적인 요소들이 '지역분열'입니다. '기회주의'입니다. 이것을 한번 극복하고 바로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 제 정치적 목표입니다. 이것이 성공하면 역사가 앞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p.247

"만일 정치권력으로 무엇을 하려고 한다면 한 사람의 대통령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중심이 되는 정치 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일 퍼센트의 국민이 확고하게 역사의 발전에 대해 전략적 사고를 하고 있다면 아마 무서운 힘이 될 것입니다." p.268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 위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치가 가장 상위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p. 273

▲  아이들과 노는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 사료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장을 위한 노력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변하지 않으셨다. 평소 가지고 계셨던 정치적 소신을 지켜가며 국민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대표로 국정에 임하게 된다. 그 어떤 정치인들보다 사람을 중시하셨던 분이었다.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 이었다.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소수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알아 주지 않았다. 그의 진심은 가진 자 들의 시기와 욕심에 묻혀 왜곡되어 소외되기 시작했다.

실패한 대통령?

분열주의와 기회주의가 원점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라고, 그래서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그는 과연 실패한 대통령이었나? 원칙이 통하는 사회, 국가의 권력을 국민들에게 나눠주겠다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위해 노력한 그의 노력은 헛된 것이었나?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소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왜 지역분열주의와 기회주의적 삶이 잘못되었는 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행복한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노무현 대통령은 외로웠다. 그는 외로이 세상과 싸우며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했고, 세상에 대해 소리치지 못했으며 오롯이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 속에 담고 운명이라며, 슬퍼하지 말라며 생을 달리하셨다. 

시대를 너무 앞서 갔었던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아직도 노예근성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인가? 지금의 세상은 자신의 실리를 위해 경쟁하며 이겨내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나는 똑똑한 말로 사람을 현혹하지 않고 자신이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우직하게 국민들 곁에 서려고 했던 바보 노무현, 그가 너무 그립다. 그가 끝까지 고민했던 것은 국민들이 주인이 되는 이 땅의 민주화였다.

노무현 대통령 비석에 쓰인 글귀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류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실패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일 수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살기 위해선 그 만큼의 신뢰와 노력이 필요하다.

당신은 깨어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시대, 약자에겐 약했고 강자에겐 강했던, 노무현, 그가 너무 그립다.

 

▲  노무현 대통령  ⓒ 노무현 사료관 


 

성공과 좌절 - 10점
노무현 지음/학고재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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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성장할 당신을 위하여

시련 앞에 잠시 멈춰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현재의 당신이 만족스럽지 못한가요?
스스로의 한계를 만들어 버리고 포기하진 않았나요?
차가운 세상에 마음을 닫아 버리진 않았나요?

지금 무엇보다
당신이 대화를 나눠야 할 사람은 당신입니다.
당신의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해야 할 가장 소중한 사람도
바로 당신입니다.

더 이상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마세요.
그 어떤 것도 당신의 인생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중략)
그리고 용기 있게 질문을 던지세요.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웠는가….


  
▲ 존 맥스웰 지음, 박산호 옮김 성공을 위한 책이 아니라 성장에 관한 책이다.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다. 
ⓒ 비즈니스북스 

자기계발서이다. 허나 의미가 좀 다른 책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성공하기 위한 법칙이 아니라 성장하기 위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실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실패자가 실패한 인생이 아님을 강조한다. 수많은 위인들의 실패의 과정들, 실패 속에서의 성공을, 물질적 성공이 아닌 정신적 성장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매력적인 장부터 골라 읽어도 상관이 없다. 개인적으로 '10장 시련을 위대한 경험으로 바꿔라'부터 읽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시련을 경험으로 보는 것은 관점의 문제이다.' 즉 어떤 관점으로 시련에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나쁜 경험을 토대로 자존감을 형성하지 마라. 당신과 당신이 거둔 성과는 별개의 것이다. 실패를 자기 자신으로 연결하지 말라는 뜻이다. 둘째,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마라. 많은 사람들이 일이 안 되면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된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비탄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기 시작하면 영영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 시련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좋은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당신이 쌓은 경험 때문에 비슷한 시련을 겪은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실패를 배우고 발전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라. 실패 조차도 발전하는 과정이다. 케이시 스텐겔의 표현을 빌리고 있다. "언젠가는 분명 질 때가 있다. 그 때, 제대로 져라." 실패는 누구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실패한 사람들의 90퍼센트는 실제로 실패한 게 아니라 그냥 포기한 것이다. 대부분의 패자들은 습관적으로 변명하는 사람들이다."

의미 있는 구절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대화패턴을 살펴보니 변명하는 말이 의외로 많았다. 남 탓 또한 변명이었다. 나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주인적인 삶이라고 했다. 나는 얼마나 주인된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우리가 한 대부분의 후회가 우리가 한 일로 인한 결과가 아닐 거라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는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지 못한 일들 때문에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마지막에 치러야 할 대가는 잃어버린 기회란 것이고, 그것은 아주 큰 대가다.

지극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렇다. 도전하여 실패한 것이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전조차 못해본 것이 후회가 된다. '잉여경험'이라고 말을 한다. 지금 도움이 바로 되지 않는 경험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꼭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지금 내가 관심을 가지고 하는 일이 미래의 나의 꿈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당신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해서 순간순간 배우고 느끼는 것에 충실할 수가 있다. 사실 직접적으로 도움이 안 되어도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하면서 내가 즐겁다면 이미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닌가? 우선은 행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행해야 한다. 행하지 않은 후회는 어리석은 후회로 남는다.

배움의 정신으로 겸손을 강조한다. 작가이자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켄 블랜차드는 이렇게 말했다.

"겸손이란 자신의 그릇이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덜 하는 것이다."

겸손이 부족할 때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고, 세상과도 핀트가 맞지 않게 된다. 우리는 균형적인 시각을 잃고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의 결점이나 배워야 할 게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결점을 발견하거나 배울 수 있겠는가? 자존심은 누가 옳은 가에 관심을 갖는다. 겸손은 무엇이 옳은지에 관심을 갖는다.

겸손의 필요성에 대해 찬찬히 설명한다. 결국 겸손한 자세가 배움의 자세라고 설명한다. 누구나 겸손이 미덕이라고 말하지만 실천은 어려운 모양이다. 거만해 지는 순간 사람들은 떠나간다. 나의 마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타인에게는 나의 본 모습을 속일 수 없다. 나는 얼마나 나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한 모습으로 만나고 있을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모습을 보고 타인들이 귀감을 얻고 따뜻함을 본다면 그만큼 사회는 따뜻해지는 것이 아닐까? 다양한 고민들을 하게 한다.

마지막에는 "배움의 가치는 성장이다"라고 정리한다. 성장하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고 배우는 과정에서 실패를 수없이 한다.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것은 세월이 아니며, 성장이란 기분에 상관없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린나이인데도 그 이상으로 성장한 사람이 있고 나이만 먹었지 성장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즉 성장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아 성찰과 노력이 필수조건이다. 나이로 모든 순서를 정하는 것은 부당할수도 있다. 나이 값을 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덧붙여 기분에 상관없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성장이라고 정의한다. 과연 이런 일이 나에겐 있는가?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어떤 일이든 즐겁다. 허나 기분이 나쁠 땐? 기분이 나쁠 때도 반드시 하는 일이 있는가? 애석하게도 나에겐 아직 없다. 즉 지금의 난 성장이 멈춘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성장이 필요한가? 먹고살기도 바쁜데 성장은 무슨? 돈 버는데 성장이 무슨 상관이야!'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우린 성장에 대해 너무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성장은 결국 모두에게 이롭다. 가장 이로운 상대는 나 자신이다. 힘든 상황에선 모두 흔들리게 마련이다. 모두가 좌절하고 우울해질 수 있다. 성장을 하면 이런 여러 상황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고 참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삶의 목적을 온전히 가질 수 있고 타인을 도울 수 있다. 성장하고 싶은가? 생각의 구속과 세속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인생의 참 가치를 느껴보고 싶은가? 이 책을 펴보자. 참 쉽게 간결하게 적혀있다. 나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한 책. 배움의 목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 다시금 열심히, 뜻있게 살아야 겠다는 의지가 솟구친다. 배움에 대해 참 가치를 알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어떻게 배울 것인가 - 10점
존 맥스웰 지음, 박산호 옮김/비즈니스북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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