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김용만' 태그의 글 목록 (2 Page)


▲  오후가 되면 식곤증이 찾아온다. 이때! 잠을 자서는 안 된다. 나는 주로 신문을 꼼꼼히 읽고, 독서를 한다.


육아휴직을 하고 주부(?)로써의 삶을 산 지 1주일 정도 지났다. 이제 하루하루의 패턴이 비슷해지고 있다.


우선 일어나면 아침을 차린다. 간단한 세팅은 아내가 해두고 밥을 담고 수저를 나르는 등 마지막 세팅을 내가 한다. 그 사이 아내는 딸 머리를 묶어준다. 나는 아직 딸 머리를 묶는 법을 모른다. 이것도 곧 연습을 해둬야겠다. 


아내가 먼저 출근한다. 딸과 5분 정도 놀고 오전 8시 30분에 아이와 함께 유치원 차를 타러 간다. 내려가면 그 시각에 꼭 나오는 엄마와 딸이 있다. 이젠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 있다. 


딸을 보내고 나서 집에 올라오면…. 할 일이 태산이다. 이불을 개고 설거지에 빨래에 바닥청소까지…. 사실 바닥청소는 매일 하지 않는다. 먼지가 좀 보이면 한다고나 할까?


어느 정도 일을 다하고 나면 거의 점심 때가 된다. 혼자 먹는 점심은 매력적이다. 내가 평소 먹고 싶었던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자유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대충 먹기 일쑤다. 


오후가 되면 식곤증이 찾아온다. 이때! 잠을 자서는 안 된다. 나는 주로 신문을 꼼꼼히 읽고, 독서를 한다. 최근 나는 서평을 열심히 쓰고 있다. 일 아닌 일로 독서를 한다. 책은 보는 일은 즐겁다. 그래도 잠이 계속 온다면? 텔레비전을 튼다. 왜 전업주무들이 드라마를 보는지 100% 이해가 된다. 


오후 4시, 중요한 시기가 찾아온다


▲ 딸아이가 먹고 싶어했던 햄야채 볶음밥 래시피가 어려웠다. 요리 중 약간 느끼하여 신김치를 물에 씻어 같이 볶았다. 결과는 대 성공! 맛있었다.

ⓒ 김용만


오후 4시쯤 되면 장을 보러 간다. 저녁 메뉴는 이때 정해진다. 이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곰곰히 떠올린다. '아내가 뭘 먹고 싶다고 했지? 딸이 뭘 먹고 싶다고 했지?' 기억이 나면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허나 기억나지 않으면? 난감하다. 이젠 요리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비슷한 맛만 연출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요리를 하다 보니 자신감도 많이 붙었다. 어지간한 요리는 이제 할 수 있다. 


마트에 갈 때 장바구니는 필수!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러 간다. 거의 모든 음식에 꼭! 필요한 것은 마늘 다진 것이랑 양파다. 양파는 한 끼에 한 개씩은 꼭 들어간다. 오늘은 어제 끓인 맑은 무쇠고기국이 있기에 국은 만들지 않아도 된다. 대신 맛깔스러운 메인 메뉴가 필요하다. 벌써부터 고민이다. 


오후 5시가 되면 딸이 귀가한다. 무척 반갑다. 꼬~옥 안고 집에 온다. 집에 오면 딸을 거실에 풀어두고 요리를 시작한다. 보통 오후 6시 30분 전후로 아내가 귀가하기 때문에 그 전에 요리를 대 해두려 노력한다. 그러니 정신이 없다. 모든 요리에는 육수가 필수다. 나는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낸다. 보통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 딸이 좋아하는 음식 하나를 준비한다. 다행히 딸은 계란을 좋아해 계란 요리를 많이하고, 아내는 새콤달콤한 것을 좋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어울리는 음식을 검색한다. 



▲ 맑은 무쇠고기국과 조기구이 맑은 무쇠고기국에 정성이 가득함을 이제서야 알았다. 물에 뜨는 부유물을 계속 걷어줘야 한다. 조기는 밀가루를 묻혀 구웠다.

ⓒ 김용만


저녁이 되면 몸이 좀 되다. 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아빠 최고!" "여보 고마워"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피로가 풀린다. 게다가 아내가 집에 오면 어찌나 반가운지…. 온종일 말하지 않고 있는 게 이렇게 사람을 찾게 만드는지 몰랐다. 이제 알겠다. 회사 마치고 퇴근한 사람을 붙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밖에서 일하는 아빠 혹은 엄마들이여! 퇴근 후 집에 있던 사람이 이런 저런 이야기, 불평불만, 옆집 이야기 등을 하면 조용히 들어주시라. 집에 있던 이는 이야깃거리가 흥미로워 하는 게 아니라 대화 상대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출근할 때 먹고 싶은 음식 서너 가지 정도는 흘려 주시라. 아내가 겉으로는 투덜거려도 고민거리 하나는 덜어주는 것이다. 하나만 더 덧붙이겠다. 맛이 없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시라! 차라리 숨을 참고 밥을 다 먹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전업주부를 두고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 부르는 건 절대 맞지 않다. 전업주부는 집에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전업주부를 무시하지 마시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 웃음이 나온다. 가족을 위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참 재미있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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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소영 2014.03.14 20:45 Address Modify/Delete Reply

    보는내내 아버님 목소리가 들려 재미나게읽었습니다*.* 저도 맛있는 음식 참 좋아하는데요. 한번 먹어보고싶네요~

  2. 마산 청보리 2014.03.14 22:3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네 감사합니다. 이 생활도 나름 저에겐 아주 매력있습니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응원해주세요~^-^

[서평] 프란세스크 미랄례스.카레 산토스가 쓴 <일요일의 카페>

"어떤 일이 끝났다고 괴로워 말라. 그 일이 일어났음에 웃음 지어라."(L.E 부다키언, 책 <일요일의 카페> 서문 중에서)


누구나 살면서 괴로운 일을 겪습니다. 물론 즐거운 일만 경험하는 삶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인들은 '인생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싫은 것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고, 좋은 것만 경험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파도가 치는 대로 물결이 잔잔한 대로 배를 자연스레 맡기고 떠다니는 게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괴로운 일은 종류도 많습니다. 그 중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큰 슬픔입니다. 게다가 한순간에 두 명이나 잃는 것은 더더욱 슬픈 일이겠죠. 


<일요일의 카페>의 주인공 이리스는 한 순간에 사랑하던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게 됩니다. 이리스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여전히 혼자 살며 죽음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 일요일, 이리스는 처음으로 그런 공상마저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탁을 치우고 텔레비전을 끄자, 고요가 이라스의 작은 아파트를 점령해버렸다. 공기가 부족한 것 같아 창문을 열고 새 한 마리 없는 납빛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리로 나서는데 어떤 불가피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로도 가고 있지 않았지만 무언가 끔직한 일이 숨어서 심연처럼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리스는 소위 말하는 '자살'을 준비했습니다.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질 요량으로 철로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열차가 왔고, 교량 안으로 몸이 점점 고꾸러지는 순간….


"빵!!!"


여섯 살 남짓한 남자아이의 풍선 터트리는 장난에 정신이 화들짝 듭니다.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저편으로 뛰어가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아이였으니까요. 방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려던 건지 깨닫자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도 살아오며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으니까요. 사춘기 때에도 그랬고 마흔 인생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이리스의 마음이 급격히 공감이 되며 큰 슬픔이 닥쳐왔습니다. 


여섯 개의 특별한 테이블


이리스는 눈물을 그치고 길을 걸어갑니다. 출입문 위에서 깜빡이는 네온사인을 보고 조용히 카페에 들어갑니다. 이리스가 읽은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장소는 바로 이곳입니다.'


이리스는 이 신기한 느낌의 카페에 들어가서 마법사라는 분도 만나고 루카라는 멋진 남성도 만나게 됩니다. 이 카페에는 신기하게 테이블이 여섯 개가 있는데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는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이리스는 루카와 대화를 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리스가 앉았던 첫 번째 테이블은 반대편에 앉은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마법의 테이블이었습니다. 생각을 읽는 테이블에서 마주 앉은 루카는 말합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육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해. 긍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하찮은 생각, 심오한 생각, 그걸 이렇다 저렇다 판단해서는 안 되지. 생각은 흘러가는 구름 같은 거야. 우린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생각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어떤 생각에 괴로울 땐 그냥 '생각'일 뿐이라고 마음먹고 흘려버리는 거야."


생각이라, 나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내가 하루에 하는 육만 가지의 생각 중에 실제로 현실이 되고 도움이 되는 생각은 어느 정도 될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곧 이 또한 생각이라는 생각임을 깨닫고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어느 정도의 가치 있는 생각을 하고 있나요?


두 번째로 이리스가 앉은 테이블은 과거의 테이블입니다. 세 번째로 앉은 테이블은 그늘 속에서 빛을 찾는 법을 가르쳐 주는 테이블입니다. 이 테이블에서 루카는 이리스에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행복이 뭔지 가르쳐주고, 굴곡이 심한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만이 행복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어. 행복이란 대조의 게임이니까. 감정의 스펙트럼 한가운데로만 헤엄치는 사람은 결코 인생의 본질을 경험할 수 없어. 이게 우물의 교훈이야. 하늘이 광활하다는 걸 이해하려면 때로는 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것."


저는 이 대목을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행복이란 대조의 게임이니까'라는 말이 특히 와닿습니다. 사람들의, 행복의 기준은 모두 다릅니다. '몸이 아파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닐까'라고 상상했던 제게도 겸손의 마음이 느껴지게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소한 행복은 제게 넘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었지요.


이리스는 네 번째로 용서의 테이블에 앉게 됩니다. 루카로부터 자신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죠. 이리스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음으로는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테이블에 앉게 됩니다. 여섯 번째로 이별의 테이블에 앉게 됩니다. 이리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루카와 이별하게 됩니다. 어느새 자신의 마음을 가져갔던 루카와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또 하게 됩니다. 이리스는 상당히 힘들어 합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소설의 대략적인 소개에 불과합니다. 진짜 이야기는 뒤에 계속되지요. 상상할 수 없었던 진실이 이리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루카는 이리스의 부모님이 보낸…, 혼자 남은 외동딸이 걱정돼 보낸 선물이었습니다. 


책장을 덮고 눈을 뜨기 힘들었다


<일요일의 카페>는 스페인 소설입니다. 다 읽고 책을 덮고 나서도 눈을 바로 뜨기 힘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죽음이 주소재인 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음침하지 않습니다. 중간 중간 나오는 코코아는 소설의 분위기를 따뜻하고 잔잔하게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죽음이라는 게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아니야'라고 말해줍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죽음에 대해 준비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나 자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나 주위 사람의 죽음까지도 말입니다. 이성적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체험하지 못한 이상(실제로 체험한다면 말을 하기가 어려운 상태겠죠?) 철학자들의 말과 종교인들의 말을 들으며 죽음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상당히 힘듭니다. 소중한 사람이 죽을수록,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수록, 특히 예고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거의 공황상태로 만들어버립니다. 무척 힘든 일입니다. 살아있는 게 의미가 없으니 삶조차 의미가 없어집니다. 책의 서두에 나오는 이리스의 상황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삶의 소중함에 대해, 현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삶은 그리고 당신은 아무런 이유 없이 세상에 막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서 있는 곳, 바로 그곳이 가장 가치 있는 곳입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 심장을 울립니다.


"이 세상 최고의 장소는 바로 이곳입니다."


당신은 현재 최고의 장소에 있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행복을 느낄 충분한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하고 싶은 여러분께 이 소설을 권합니다.

 

일요일의 카페 - 10점
프란세스크 미랄례스.카레 산토스 지음, 권상미 옮김/문학동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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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28 16:2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마산 청보리 2014.03.05 15:2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네 오늘에서야 확인했고 답메일 보냈습니다. 좋은 인연 계속 이어가길 소망합니다.

"선생님~~~~"


12월 중순 이후로 아이들을 처음 만났다. 사실 학교에 가기 싫었다. 아이들을 다시 만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를 기다려 주었다.


오늘은 졸업식 및 종업식이 있는 날. 용기를 내어 학교를 찾았다. 마지막 종례를 하러 교실에 올라갔다. 중간 중간에 만나는 아이들이 흠칫 놀라며 반갑게 인사한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꺼."

"그래 잘 지냈냐?"

"네 선생님. 보고싶었습니더."


달려와 한아름에 안기는 아이들. 아들을 떠나보내고 나의 학교생활은 멈추었다. 아니 나의 모든 생활은 멈추었다. 학교의 학생들로부터 꾸준히 연락이 왔다. 


'선생님. 보고싶습니더. 잘 지내시지예?', '선생님 저희 반 이번 축제에서 2등 했습니더. 선생님 덕분입니더.' '선생님 언제오십니꺼. 저희 기다리고 있습니더.'


일일이 답장을 해주지 못했다. 사실 답장을 할 적당한 내용도, 의지도 떠오르질 않았다. 


근 두 달 만에 아이들 앞에 서려니 내심 긴장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장을 차려 입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는 졸업식 하느라 많은 학부모님들과 함께 유쾌한 분위기 였다. 


'그래, 바로 여기에서 6년을 보냈지.'


새삼 이 학교도 올해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교실로 향했고 교실로 들어갔다. 다른 반 아이들은 복도에서 장난치고 교실에서도 장난치며 시끄러웠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들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조용했다.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놈들아, 어울리지 않게 왜 이리 무게를 잡고 있노."


나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놀라며 반가워하는 분위기였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교탁에 서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마지막 종례를 시작하였다.


"선생님은 지난 2달간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특히 학교를 생각하면 여러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습니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일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끝까지 신경써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아이들 앞에서 절대로 울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왔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시우를 떠나보내고 마음이 상당히 아팠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생각하며 힘을 내곤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3학년이 됩니다. 고3이라는 원치 않는 족쇄에 묶이게 됩니다. 너무 힘들게 생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신없이 달려가려고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힘들 땐 쉬어가며 하세요. 내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가 훨씬 중요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많은 돈만 버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나만 아는 사람이 아닌 모두를 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종례는 끝이 났고 반장이 나에게 작은 선물과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함께 적은 돌림편지를 주었다.




▲ 1년이라는 시간은 참 빠르다. 첫 남녀 합반의 해로 걱정이 앞섰으나 추억이 더 많았다.

ⓒ 김용만


'선생님, 선생님과 1년을 함께 하면서 교과 과목보다 더 중요한 걸 배운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확실히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른 특별한 선생님이십니다. 그만큼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선생님이십니다. 가족들과도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선생님 덕분에 친구들과 가볼 수 있었던 것도 감사드립니다. 2-2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오랜만에 글로 찾아뵙습니다. 항상 밝으신 모습과 파이팅 넘치시는 모습이 저희 반 학생과 다른 학생들의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람으로서, 남자로서, 아버지로서 저의 롤모델이자 이상형이었습니다. 


작년에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가기 전에 잘해서 웃으며 헤어지자는 말씀, 못 지킨 것 같습니다.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 한 번도 못 드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로나마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립니다. 저희를 잊지 말아 주세요. 훗날에 보다 멋진 제자가 되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못난 인간,  조금이나마 희망을 새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일 년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항상 믿어주셔서 잔치부장이랑 월드비전도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일 하면서 추억 많이 생긴 거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일 년 동안 알차게 보내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밑에서 일 년 동안 배운 게 많은 데 그런 거 모두 잊지 않고 고3생활도 열심히 하고 사회 나가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안한 거 죄송하고 항상 건강하시고 쌤, 너무 보고 싶을 거 같아요. 여자애들끼리 꼭 한 번 찾아갈게요. 돼지 국밥 먹으러 가용.ㅋㅋ. 말로다 못할 만큼 감사드리고 사랑해요. 2학년 2반 잊지 마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벌써 저희는 고3이고 헤어질 때가 되었네요.ㅠㅠ. 항상 즐겁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선생님이랑 선지국밥 먹었던 것도 생각나고 내장탕도 같이 먹었던 것도 생각나요. 우리 반끼리 놀러가서 사진도 많이 찍고 초기에는 다들 어색했는데 우리 반만 진해 벚꽃놀이 다녀오고 더 편해져서 또 좋았었어요. 반장 일 하면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똑바로 한 건지 의문도 들고 이제 헤어지려니까 마음도 조금 뒤숭숭하네요.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진심으로 저희 위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앞으로도 감사할 거구요. 요즘 답답하고 자신감도 많이 사라져서 좀 힘들었는데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 열고 계속 나가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계속 아픔이나 슬픔에 머물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 항상 나아가는 사람 되어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반 애들 같지 않았다. 어찌나 글들이 이쁘고 감동스러운지. 종례를 마치고 나갈 때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꼬옥, 꼭 안아 주었다. 한 명 한 명 듬뿍 안으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아이들도 나를 꼬옥, 꼭 안아 주었다.


교직은 힘들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요즘 아이들 버릇없다는 말도 들린다. 공교육이 붕괴되었다는 말도 들린다. 누구의 책임인가? 아이들의 책임인가? 교사들의 책임인가? 교육에 관여된 모든 이들의 책임인가?


사랑이다. 결국 사랑이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 진심으로 함께 하고픈 마음이 충만해질 때 이러한 문제는 모두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나의 미흡한 사랑으로 우리 반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한다면, 이 아이들은 또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경험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위로를 받아 본 자만이 남을 위로할 수 있다고 했다.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감동을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다. 감동을 주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운동장에 나가보니 2년 전 담임을 했던 아이들이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놈들은 오늘 졸업을 한다.


"선생님! 이제 우리도 성인입니더. 사진 한 판 찍고 술 한 잔 사주이소~"


이놈들과도 사진을 찍었다. 이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들을 보며 우리 사회의 밝은 앞날을 그려본다.




▲ 2년전 1학년 때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이놈들이 벌써 졸업한다. 아이들의 졸업을 보며 시간이 흐름을 느낀다.

ⓒ 김용만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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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종호 2014.02.16 23:39 Address Modify/Delete Reply

    힘 내세요 아이들은 참 좋은 선생님을 만났네요

  2. 골목대장허은미 2014.02.17 21:0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선생님왕팬입니다~ㅎㅎ
    블로그 이름이 멋지게 바뀌었네요~ 좋습니다^^
    이렇게 웃는 얼굴을 뵐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 뵙고 정말 행복했겠어요~졸업식 잘다녀오셨어요~~
    좋은글 보며 많이 배우고 또 자극받습니다~
    자극받아 저도 블로그 시작할거예요~~
    함께 사는 좋은 세상을 위해 저도 한걸음 보태겠습니당~

  3. 이영석 2014.02.19 23:17 Address Modify/Delete Reply

    멋찌다 우리친구^^ 친구지만 많이 배운다.

강신주 박사의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집어들었다. 강신주 박사를 접한 건 <철학, 삶을 만나다> 이후 두번째다. 나는 처음 그를 만났던 순간을 잊지 않는다. 강신주 박사 특유의 직설적인 어법과 예리한 지적은 몇 번이나 나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고통을 치유하는 인문정신'이라는 내용을 총 3부로 구성해놨다. 1부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니체부터 에피쿠로스까지 16명의 철학자들의 책을 소개한다.


2부 '나와 너의 사이'는 칸트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 15명의 철학자들을 저서를 통해 만난다. 마지막 3부는 '나, 너, 우리를 위한 철학'으로 베르그송부터 17명의 철학자를 소개한다. 


강신주 박사는 철학자들의 저서를 소개하면서 독자와 철학자들을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워낙 소개된 책이 많아 '내용이 얕진 않을까'라는 걱정과 함께 책을 펼쳤다. 괜한 걱정이었다. 


문득 조그만 깨달음이 내게 찾아왔다. 그건 바로 솔직함과 정직함에 관한 것이었다. 자, 돌아보도록 하자.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자신의 속내에 정직하고 솔직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솔직함과 정직함은 내가 만난 시인을 포함한 모든 인문정신의 핵심에 놓여있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읽든지 잊지 말도록 하자. 정직한 인문정신이 건네는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낼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에 더 직면할 수 있고, 나아가 소망스러운 삶에 대한 꿈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본문 중에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 실린 강신주 박사의 핵심적인 말이다. '솔직하라' '당당하라' '주인된 삶을 살아라' '자본주의의 최면에서 벗어나라' 등등. 인문학의 본질을 꿰뚫는 강신주 박사의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오늘 내가 진실을 마주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꼬리를 내렸다면?

ⓒ sxc


자유롭고 싶은가? 그렇다면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본문 중에서)


니체는 '영원불멸한 세계관이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을 부정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진단한다. 영원불멸한 천국에서 모든 것을 보상받고 행복을 얻을 수 있기에 지금의 고통은 감내하라는 말에 대해 니체는 브레이크를 걸고 '영원회귀'의 세계관을 제안한다. '영원회귀'란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생각이다. 


오늘 내가 진실을 마주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꼬리를 내렸다면, 10만 년 뒤에도 100만 년 뒤에도 똑같이 회귀 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히 비겁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기쁨을 위해 오늘의 내가 비굴하고 고통을 참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내가 참으면 참을수록 그만큼의 횟수만큼 인생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가 순간의 굴욕과 비겁을 선택할 리는 없다. 순간으로 보였지만, 그것은 사실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어떤가? 당신은 지금의 인생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반복돼도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솔직하지 못한 나를 애써 변명하며 살고 있진 않는가?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볼 때다. 


과연 우리는 그들만큼 솔직하고 당당한가? 어쩌면 우리는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언제까지 우리는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것인가? 50세에 드디어 자신으로 살 수 있게 된 이지는 우리에게 묻는다.(본문 중에서)


이는 아이의 마음을 강조한 이지의 말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서로 눈치를 보며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박수를 칠 때 "임금님은 벌거벗었네"라고 말한 아이로 인해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난다. "그래, 임금님은 옷을 입지 않았어." 그제야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하고 사실을 이야기하게 된다. 


우리는 현실에서 순수한 동심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보며 소리를 내고 있는가? 단지 남이 하니까, 남의 자식도 학원에 가니까, 남들이 더 좋은 차 혹은 더 좋은 집에 사니까, 생각 없이 쫓기듯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엄마 아빠, 대체 왜 이래야 하는 거예요?"라고 아이들이 질문할 때 "몰라도 돼, 그냥 엄마 아빠 시키는 대로 하면 돼!"라고 말할 것인가? 솔직하고 당당한 삶에 대한 일침! 삶의 주인이 돼야 함을 강조한 대목이다. 


모든 집착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져버렸거나 혹은 부재하게 될 때 발생한다. (중략) 나에게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내게 잠시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나의 아이도, 그리고 돈마저도 모두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인연이 되어서 나에게 왔고, 인연이 다해서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나 내가 가진 것이 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부질 없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가르주나의 핵심적인 전언이다.(본문 중에서)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큰 깨우침을 얻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회자정리'. 만난 것은 분명히 헤어지기 마련이다. 애초에 나의 것이 어디 있었으며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은 생각일 뿐 현실이 아니다. 더 이상의 집착도, 욕심도, 큰 의미가 없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


2. 나와 너의 사이


칸트는 혁명적이다. 칸트의 진정한 혁명성은 타인을 수단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있는 것 아닐까? 자본주의는 돈을 목적으로 인간을 수단으로 만드는 체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인간을 목적으로 보자는 칸트의 주장은 자본주의 체제에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인간이 목적이 되면 돈은 수단의 지위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이 대목을 놓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는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윤리적 명령을 토대로 반자본주의적 공동체를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칸트는 '자유가 없으면 책임도 없다'는 말을 강조했다. 강신주 박사는 책을 통해 행위의 자율성과 타율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인간처럼 자율적인 주체를 '목적'이라 부르고 자동차나 컴퓨터처럼 타율적인 사물을 '수단'이라고 부른다. 즉 주인이 목적이라면 노예는 수단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돈이 목적이 되고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가라타니 고진은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기 위해, 원래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공동체를 모색했다. 칸트의 생각이 이상한 생각인가? 인간은 자율적인 주체로써 목적 그 자체인가, 아니면 돈을 모으고 소비하면서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톱니바퀴 중 하나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간의 계층에 따라 존재가치가 달라지는 대상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2차대전 때 유대인 학살의 중심에 있었던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잡혔다. 그는 1961년 12월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아이히만은 상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론한다.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아렌트는 '순전한 무사유(無思惟)'의 책임을 부과한다. 그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의무'라고 강조한다. 베버가 지적했던 것처럼 현대 사회는 분업화가 전문화의 과정을 통해 구조화된 사회이다. 분업화와 전문화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다.(본문 중에서)


이 대목을 읽지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었다. 나 자신도 사유하지 않는(무사유)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나는 사유를 하면서 살았던 게 아니라 관습에 의해, 다수결에 의해, 아무런 고민이나 사색 없이 살았던 경우가 많았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살 수 있다니….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에 대한 사유없이 명령만 따라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아이히만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회사의 지시입니다" "상부의 명령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습니다" 등의 말들로 나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 정당화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난 고민하며 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고인 물 마냥 현실에 타협하며 사는 대로 살아왔다. 몸만 살았지 정신은 죽어 있었다. 


아렌트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당신은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먹고사는 것이 너무 바쁘다'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우리에게 아렌트는 심장이 살아 있는지를 묻고 있다.


3. 나, 너, 우리를 위한 철학


▲  강신주 박사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깨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조종돼 살지 말고 스스로 움직이라고 강조한다. 곰곰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sxc


산업자본은 상업자본과는 달리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서 이윤을 남기려고 한다. 가령 핸드폰을 만드는 산업자본은 계속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기존의 제품들이 유행에 뒤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산업자본은 소비자들이 기존 제품을 버리고 계속 새로운 제품을 사도록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행을 소비자들이 집단적으로 특정 스타일을 선호하고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본 것이다. 유행은 소비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월급을 받은 나는 세상의 주인이 된 것 같다. 백화점을 들어 갈 때도 마트에 갈 때도 의기양양하다. 물건을 흥정할 때도 고자세가 되어 흥정에 임한다. 허나 나의 돈이 상품과 맞교환되는 순간 소위 말하는 '갑'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허전함은 그대로다. 그 물건이 영원한 것도 아니며 나의 만족감 또한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겐 또다시 구입하고 싶은 물건이 나타난다. 난 다시 그 물건을 사기 위해 일한다. 그리고 월급날이 되면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에서는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깨치지 못한다면 내가 자본주의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주인은 나, 우리, 즉 노동자가 아니다. 자본가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준다. 하지만 그 돈을 다시 환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중들을 유혹한다. 


이러한 사실을 깨치게 되면 내 삶의 주인이 될 준비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내 삶의 주인은 온전히 나 자신이었나? 모든 것이 나의 의지대로 선택돼 왔는가? 이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짜인 틀 안에서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분명한 것은 소비가 인간의 행복감을 100%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으로, 나만 위함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위함으로 이뤄질 수 있다. 강신주 박사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깨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조종돼 살지 말고 스스로 움직이라고 강조한다. 곰곰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나의 존재가 가지는 그 특별함과 순수한 의미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존재가치에 대해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너무나 강하게 나를 뒤 흔든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는 철학자 48명의 다양한 생각들이 강신주 박사의 시각을 통해 정리돼 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다시 나의 시각을 통해 새로운 스펙트럼으로 나를 뒤흔들었다. 강신주 박사도 말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유리병 편지를 받았습니다. 스피노자, 장자, 원효 등과 같은 철학자였습니다. 이제 저의 편지를 유리병에 담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의 저의 유리병 편지를 꺼내 읽어볼까요? 그 사람도 저와 마찬가지로 들뜬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보게 될까요?" 


최소한 기대하는 마음으로 유리병 뚜껑을 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내가 보는 세상, 그 위에 또 다른 가치 있는 세상이 있음을, 지식과 감동을 초월하는 독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궁금한가? 혼자 느끼기에는 너무 아쉽다. 세상이 너무 힘든가?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가? 강신주 박사의 책을 펴보길 권한다. 답이 있진 않지만 진실의 길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 된 삶을 살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 10점
강신주 지음/사계절출판사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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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


제목부터 남다릅니다. 나의 삶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됐다고 믿는 저는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책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 '나는 햄버거가 먹고 싶은 걸까? 햄버거가 먹고 싶도록 주입된 것일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호기심을 가득 안고 책을 펼쳤습니다.

"우리는 우리 행동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우리 뇌가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즉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뇌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사후에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수단일 뿐이거나 단순히 명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략)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한 의지를 느끼기 거의 1초 앞서 뇌 활동이 일어난다."(본문 중에서)

저자인 엘든 테일러 박사는 "내가 생각하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게 사실은 내 마음과 생각 때문이 아니라 뇌가 미리 판단하고 작용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뇌의 반응에 따라 인간의 모든 것이 반응한다는 말이지요. 내가 존재하는 것인지, 뇌가 존재하는 것인지 참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는 '마음의 작용'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떻게 대중들이 TV나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조정되고 있는지 '왜 인간들은 더 잔인해지고 있는지' 등 마음의 작용을 이용해 타인을 조종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집단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2부에는 자신을 찾기 위한 도구와 기법 그리고 운동 등이 소개돼 있고요.

베이컨이 흥행에 성공했던 이유

 '넉넉한 아침 식사가 건강에 좋다, 특히 아침이 중요한데 매일 아침 섭취하는 풍부한 단백질이야말로 무병장수의 근원'이라는 말과 함께 베이컨은 상업적 흥행에 성공했다.
ⓒ sxc

1부를 읽으며 '음모론'이 생각날 정도로 끔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광고와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음악 등이 나를 지배하고 있고, 끝이 없는 소비를 위해 길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2부를 다 읽고 책을 덮는 순간, '아직 늦지 않았다, 내 삶을 온전히 찾아야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미국에서 베이컨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1920년대, 한 베이컨 회사가 버네이스를 기용하였다. 베이컨 회사의 요청을 받는 버네이스는 가장 먼저 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의사들을 설득해 '넉넉한 아침 식사가 건강에 좋다, 특히 아침이 중요한데 매일 아침 섭취하는 풍부한 단백질이야말로 무병장수의 근원이다'라는 증언을 받아냈고 이를 대중에게 홍보하면서 베이컨과 달걀을 강조했다. 물론 이 과정에 베이컨 회사가 연루돼 있음은 비밀로 했다. (중략) 버네이스는 말 그대로 선전에 노출된 사람이 그것이 선전인지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은밀한 선전술의 창시자였다.

1957년 미국 뉴저지주 포트리의 한 극장에서 월리엄 홀던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 <피크닉>이 상영되고 있었다. 심리학자이자 유능한 광고업자인 제임스 비커리는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 '팝콘을 먹어요' '코카콜라를 마셔요'라는 메시지가 담긴 화면을 3000분의 1초 동안 은밀히 내보내는 실험을 했다. 비커리는 관객에게 알리지 않고 이 짧은 메시지를 5초 간격으로 화면에 영사했다.

이 실험은 6주 동안 총 4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는데, 그 기간에 팝콘과 콜라의 판매액은 각각 57.7%, 18.1%나 증가했다. 물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화면에 메시지가 뜨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잠재의식 효과가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잠재의식 효과란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수준 이하의 자극들이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잠재 연구 결과를 활용하려는 광고인들의 노력을 굳이 상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기법을 이용해 파는 것이 비단 제품만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앨 고어는 민주당 후보로, 조지 부시는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논란은 공화당의 정치 광고 방송에서 앨 고어의 얼굴 위에 30분의 1초 동안 RATS(쥐새끼들이라는 경멸조의 속어)라는 단어가 입력돼 있는 것이 발견되면서 일어났다. (중략) RATS에 노출된 사람은 남녀 실험 대상자들 모두 동일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신을 공화당 지지자라고 말한 사람들도 민주당 지지자와 똑같이 RATS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본문 중에서)

무서운 일 아닙니까? 이미 인간의 잠재의식을 이용해, 본인은 의식도 하지 못하는 사이 TV나 스크린을 통해 세뇌를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세뇌'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자유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저자는 책을 통해 집단 세뇌의 다양한 형태를 제시합니다.

다중인격자로 만드는 실험, 약물로 인격까지 바꾸는 실험,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기 위한 실험, 신경전자기를 이용한 심리통제, 마음 조종하기 등 그 방법은 실로 다양합니다. 그리고 대중을 세뇌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을 이용한다고 덧붙입니다. 주로 물건을 파는 자본가들의 광고에도 이 방법들은 교묘하고 은밀하게, 아주 체계적이고 적용돼 있다고 설명합니다. 술 광고와 담배 광고에도 말이죠. 책을 읽다가 보면 여러 가지 의문들이 생깁니다. '정말일까? 이건 미국의 이야기이지, 한국은 다르지 않을까? 설마?'

감기약 먹으면 건강해진다? 그것도 세뇌

 감기라는 병도 TV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이죠. 저자는 감기약 광고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포심을 조성한다고 주장합니다.
ⓒ sxc

저자는 말합니다. 감기라는 병도 TV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이죠. 저자는 감기약 광고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포심을 조성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그 감기약을 먹어야 '행복해지고 건강해진다'는 메시지를 계속 주입한다고 합니다. 이런 광고를 본 사람들은 자유 의지라고 생각하며 약국에서 그 약을 사 먹겠지요. 그리고 병이 나아져 행복해졌다고 스스로 만족하게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약 광고가 공포심을 유발해?' 물론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약 광고를 보면 주로 연기자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약을 복용한 뒤 상쾌한 표정을 짓습니다. 광고를 보는 소비자들이 일정 정도 공포심을 가질 만합니다.

저자는 이 밖에도 "TV의 폭력성과 선전성은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섰고 사람들의 뇌가 이미 적응을 해버렸기 때문에 더욱 더 자극적인 화면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고 경고합니다. 슈팅게임을 통한 폭력성으로 인해 실제 현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고, 격투기 경기나 액션 게임을 통해 실제 학교 폭력 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반면 저자는 이와 같은 경고와 함께 이 모든 위험으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도 제시합니다.

"'지금 당장 TV를 끄시오.' 보통 사람은 TV를 보기 시작한 1분 이내에 뇌가 알파파 상태로 들어간다. 알파 의식은 최면을 할 때 기본적으로 이용되는 의식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알파 의식 상태에서는 기술적으로 구사하는 암시를 받아들이기 쉽다. 알파 상태는 우리의 바이오 컴퓨터인 뇌와 마음에 긍정적은 정보를 집어넣기에 매우 적합한 상태임이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알파 의식을 이용해 선택이나 습관을 유도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특히 TV는 유아와 어린이들에는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TV와 현실을 구분하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하물며 어른들도 TV 광고에 익숙한 제품을 먼저 고르는데, 아이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가족과 나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라면 당장 TV를 꺼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삶은 누군가에 의해 조종된 것... 동의하십니까

저자는 이렇게 '의도된 복선'이 깔려 있는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방법도 설명합니다. 우선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우선 변화에 대한 진정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파워 이미징, 점진적인 이완, 자기 암시, 이너토크, 집중력과 자신감을 키우는 신경언어프로그래밍(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 무의식적인 글쓰기, 감정의 수맥 찾아내기, 남은 인생이 50일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기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줍니다.

또 저자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 자신을 용서하고, 다른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우리는 용서받는다'고 부연합니다. 결국 당신의 삶은 당신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고 남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아보라고 권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도 있습니다. '나의 신념, 나의 생각이라고 믿어왔던 것 중에 실제 내가 고민과 성찰을 통해 얻은 것이 별로 없구나' 'TV를 통해 유명한 사람들이 한 말을 내 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게 많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약간은 음모론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하는 분들이 읽기를 권합니다.

'당신 마음속의 모든 믿음과 욕구는 조종되고 주입된 것이다!' 동의하십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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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 - 10점
엘든 테일러 지음, 이문영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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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스쿨존 안전시설 관리 '꿈도 못 꿔'
마산회원구 '0원' 등 내년 유지보수비 대폭 삭감
2013년 12월 30일 (월) 김두천 기자 kdc87@idomin.com

창원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의 어린이 교통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지만 예산부족으로 스쿨존 안전시설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감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부족한 예산마저도 내년에는 대폭 삭감돼 스쿨존 사고예방을 위한 창원시 대책이 겉돌고 있다.

지난 12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초등학교 인근에서 발생한 스쿨존 사망사고는 자동차 정비소와 인도 간 경계에 안전시설물만 설치됐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 이 때문에 행정당국이 이 문제를 사전에 파악해 대처했다면 어린 아이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창원시는 올해 마산회원구를 제외한 구청별로 스쿨존 안전시설물 유지보수에 3700만 원(CCTV 유지관리비 700만 원 포함)을 책정해 집행했다. 시설물 유지보수비는 스쿨존 내 각종 표지판, 자동차 속도 저감 아스팔트, 안전펜스 보수 등 어린이 안전과 관련된 곳에 쓰였다.

하지만 시는 내년도 스쿨존 안전시설물 유지보수비를 대폭 줄였다. 구청별로는 성산구 1250만 원, 의창구 1762만 3000원, 마산합포구 2467만 2000원(CCTV 유지관리비 포함), 진해구 1242만 원 등으로 삭감됐다. 특히 마산회원구는 올해도 0원으로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구청에서는 안전시설물 미비도 문제지만 낡은 시설을 교체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 적어 제대로 된 유지보수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후약방문식 땜질 처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현재 구청별 스쿨존이 성산구 35곳, 의창구 42곳, 마산회원구 42곳, 마산합포구 56곳, 진해구 46곳인 것을 고려하면 올해 배정된 3000만 원도 턱없이 모자란다고 볼 수 있다.

의창구청 교통과 관계자는 "급하게 보수가 필요한 학교 현황을 파악해 우선순위를 정한 다음 예산을 활용하지만 스쿨존이 42개나 돼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현재도 두 곳에서 아스팔트 탈락 현상이 심하지만 아직 보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산합포구청 교통과 관계자는 "마산지역 학교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스쿨존 지정과 안전시설 설치가 된 곳이 많아 시설 낙후 정도가 다른 곳보다 심하다"면서 "아이들 안전과 연관된 만큼 선제 대응책 마련과 체계적인 유지보수가 이뤄지려면 시 자체 예산이 1억 원 이상은 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민 불안도 크다. 현재 초등학교 3·5학년 자녀를 둔 김현희(44·마산회원구) 씨는 "마산은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차가 많이 다녀 아이들 등·하굣길이 늘 불안하다"면서 "아이들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안전시설물에 대한 관리마저 부실하다면 어떻게 믿고 학교에 보낼 수 있겠나"하고 불안해 했다.

창원시는 안전시설물 유지보수 예산을 제외하고 국비와 시비를 재배정해 스쿨존 시설물 관련 신규 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에도 성산구 5억 6000만 원, 의창구 4000만 원, 마산합포구 1억 5000만 원, 마산회원구 4억 9000만 원, 진해구 1억 2000만 원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예산은 매년 구청에서 신규 사업이 필요한 학교를 정해 정부에 사업을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구청이 학교 몇 곳을 신청하면 대개 절반 이상은 선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 곳도 선정되지 않을 때도 있다. 받은 예산은 선정된 학교 스쿨존 개선 외에는 쓸 수 없다.

결국 구청별로 스쿨존 지정 학교 안전시설물에 대한 관리·감독과 유지보수는 전적으로 시가 책정한 적은 예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의창구청 교통과 관계자는 "내년에 시가 책정한 예산으로는 노후 안전시설물에 대한 선제 대처나 탈락 현상이 심한 속도 저감 아스팔트 복구는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스쿨존에서 모두 751건의 사고가 발생해 10명이 사망하고 783명이 다쳤다. 2009년 535건(사망 7명), 2010년 733건(사망 9명)에 비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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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국내 매년 2000명 사망, 학교만 스쿨존 설치 ‘반쪽 안전’
11월 11일은 ‘보행자의 날’
2013-11-11

 



11월 11일은 올해로 4회째 맞는 보행자의 날이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매년 2000여 명이 숨지는 것으로 나타나 보행환경시설의 보완이 요구된다.

11일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SS)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지난 5년간 교통사고로 보행자 1만427명이 사망했고, 25만 3950명이 부상당했다. 매년 평균 2000여 명의 사람들이 길을 걷거나 건너다 숨지고 5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다치는 셈이다.

2010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비율은 37.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특히 OECD 회원국 평균인 18.3% 보다 2.06배나 높다. 2010년 경남지역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비율은 37.4%로 전국평균과 비슷하다.

보행자 사고를 막기 위해 경찰청에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30㎞ 존(zone)’이다.

그러나 이마저 반쪽이다. 독일 등 주요 선진국가에서는 주택지역 모든 도로를 ‘30㎞ 존’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학교 주변의 도로 일부만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으로 지정하고 있다.

지난 6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이면도로를 건너던 A(11·여) 양이 SUV차량에 치여 숨진 사고도 이 일대가 아파트와 주택이 밀집한 주거지역임에도 속도제한 표시나 보행자 안전장치가 전무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생활도로 및 보행밀집 지구에 대한 속도저감시설 설치와 보행자 횡단로의 시인성 확보를 위한 도로정비 정부와 공공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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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과 좌절. 노무현 대통령 못다쓴 회고록/노무현/학고재 읽는 내내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책이었다. 지켜드리지 못했던 죄스러움에, 다시는 못 뵌다는 안타까움에, 한장 한장 곱씹어 가며 읽은 책이다.  ⓒ 김용만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것은 조금 가혹하고,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싶습니다."  - <참여정부 5년을 말하다> 2007년 대통령의 육성 회고 中, p181

근래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재임 중 언론으로부터 무수한 공격을 받았고 지지자들로부터 외면 받았으며 언행이 대통령 답지 않다고 흠 잡혔던 대통령이었다. 욕을 참 많이 들었던 분이셨다. 하지만 너무 따스했던 분이셨다.

그 분은 왜 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는가? 퇴임 후 할 일이 더 많다고 웃으셨던 그 분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언론을 통해선 그 분의 하고자 하셨던 말씀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궁금했다. 참여정부는 대한민국의 발전에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던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을 다시 펴보았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에는 대통령이 직접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고민했던 내용이 적힌 미완의 원고와 봉하 글마당, 좋은 자료 모으기 동호회, 진보주의 연구 모임에 기고한 글들이 실려있다. 제 2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육성기록으로서 대통령이 걸어온 길, 참여정부 5년에 대한 평가, 한국 정치에 대한 단상으로 전개되어 있다.

사실 본인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었다. 그 분의 생각과 열정과 행동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후에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를 보고 '왜 저러시지? 저럴 분이 아닌데? 변하셨나?' 라며 적지 않게 실망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그런 정보를 접한 것도 오로지 언론을 통해서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비롯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라크 파병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참여정부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왜 사실을 그 땐 몰랐는지, 왜 당시에는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믿었는지, 나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죄스러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싸우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진 않았지만 당신이 생각하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발자국을 한 걸음씩 내 딛으며 싸우고 계셨던 것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 사료관 

노무현과 대한민국 언론

"대북 관계 관련하여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의 언론 보도로 인해)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언론은 먹을거리를 챙길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결과는 점점 높아지는 긴장과 적대감, 그리고 전쟁의 위험과 불안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짓말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보놀음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평화라는 것은 이 틀을 깨야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현명한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p.73

현명한 사람들의 연대, 대통령은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함을 누차 강조한다. 정치인과 언론의 플레이에 현혹되지 말고 역사의 진보를 위해 민주주의에 민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론과 정치인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역으로 말하면 언론의 힘이 필요이상으로 강력함을 견제하셨던 말씀이었다. 대한민국의 언론은 대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가. 그리고 대한민국 언론은 어느 정도 공정한가? 지난 12월 7일 서울에서는 비상시국대회가 있었다. 준비위측은 2만명 이상이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엔 깨어있는 시민이 많고 조직화된 힘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나라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에 그 책임이 있지는 않을까? 우린 너무 막연하게 대통령에게만 몰입하고 대통령을 상대로만 싸우고 있다. 사실 싸워야 할 상대는 대통령이 아닐 수 있다. 

비상시국대회를 방송에 내보내지 않는 언론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면 왜? 언론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역할을 하지 않는가?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지만 언론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언론은 권력에 언제든 빌붙을수 있고 내칠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쳐진 케이스였다.

노무현 삶의 도화선... 부림 사건

"부림사건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그냥 양심적으로 살면 된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로구나.' 권력의 범죄에 대해 매우 충격적인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잡혀간 학생들의 범죄 사실이란 것이 너무나 터무니 없었고 범죄가 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을 자꾸 옭아매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학생은 57일 동안이나 가족이 그 행방을 몰랐습니다. '영장 없는 구속'의 수준이 아니라 가족이 아예 행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p. 138

  ▲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 사료관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부터 인권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부림 사건으로 인해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게 되었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세상에 맞선 것이다. 값싼 영웅주의도 아니었고 모든 것을 가졌던 자의 여유도 아니었다. 

단지 정의를 추구하며 살아왔다. 이 땅 모든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살아왔다. 원칙과 신뢰가 바로서는 대한민국, 공정하고 투명한 대한민국, 대화와 타협을 통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의 진심은 통했다. 학력도 없고, 돈도 없고, 가진 것 없던 그는 국민의 지지라는 최고의 희망을 업고 대통령이 된다.

노무현에게 정치란?

"제가 가진 정치의 목적도 정치가 제대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조금 더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암적인 요소들이 '지역분열'입니다. '기회주의'입니다. 이것을 한번 극복하고 바로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 제 정치적 목표입니다. 이것이 성공하면 역사가 앞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p.247

"만일 정치권력으로 무엇을 하려고 한다면 한 사람의 대통령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중심이 되는 정치 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일 퍼센트의 국민이 확고하게 역사의 발전에 대해 전략적 사고를 하고 있다면 아마 무서운 힘이 될 것입니다." p.268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 위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치가 가장 상위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p. 273

▲  아이들과 노는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 사료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장을 위한 노력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변하지 않으셨다. 평소 가지고 계셨던 정치적 소신을 지켜가며 국민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대표로 국정에 임하게 된다. 그 어떤 정치인들보다 사람을 중시하셨던 분이었다.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 이었다.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소수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알아 주지 않았다. 그의 진심은 가진 자 들의 시기와 욕심에 묻혀 왜곡되어 소외되기 시작했다.

실패한 대통령?

분열주의와 기회주의가 원점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라고, 그래서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그는 과연 실패한 대통령이었나? 원칙이 통하는 사회, 국가의 권력을 국민들에게 나눠주겠다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위해 노력한 그의 노력은 헛된 것이었나?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소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왜 지역분열주의와 기회주의적 삶이 잘못되었는 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행복한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노무현 대통령은 외로웠다. 그는 외로이 세상과 싸우며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했고, 세상에 대해 소리치지 못했으며 오롯이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 속에 담고 운명이라며, 슬퍼하지 말라며 생을 달리하셨다. 

시대를 너무 앞서 갔었던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아직도 노예근성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인가? 지금의 세상은 자신의 실리를 위해 경쟁하며 이겨내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나는 똑똑한 말로 사람을 현혹하지 않고 자신이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우직하게 국민들 곁에 서려고 했던 바보 노무현, 그가 너무 그립다. 그가 끝까지 고민했던 것은 국민들이 주인이 되는 이 땅의 민주화였다.

노무현 대통령 비석에 쓰인 글귀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류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실패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일 수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살기 위해선 그 만큼의 신뢰와 노력이 필요하다.

당신은 깨어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시대, 약자에겐 약했고 강자에겐 강했던, 노무현, 그가 너무 그립다.

 

▲  노무현 대통령  ⓒ 노무현 사료관 


 

성공과 좌절 - 10점
노무현 지음/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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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성장할 당신을 위하여

시련 앞에 잠시 멈춰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현재의 당신이 만족스럽지 못한가요?
스스로의 한계를 만들어 버리고 포기하진 않았나요?
차가운 세상에 마음을 닫아 버리진 않았나요?

지금 무엇보다
당신이 대화를 나눠야 할 사람은 당신입니다.
당신의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해야 할 가장 소중한 사람도
바로 당신입니다.

더 이상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마세요.
그 어떤 것도 당신의 인생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중략)
그리고 용기 있게 질문을 던지세요.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웠는가….


  
▲ 존 맥스웰 지음, 박산호 옮김 성공을 위한 책이 아니라 성장에 관한 책이다.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다. 
ⓒ 비즈니스북스 

자기계발서이다. 허나 의미가 좀 다른 책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성공하기 위한 법칙이 아니라 성장하기 위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실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실패자가 실패한 인생이 아님을 강조한다. 수많은 위인들의 실패의 과정들, 실패 속에서의 성공을, 물질적 성공이 아닌 정신적 성장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매력적인 장부터 골라 읽어도 상관이 없다. 개인적으로 '10장 시련을 위대한 경험으로 바꿔라'부터 읽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시련을 경험으로 보는 것은 관점의 문제이다.' 즉 어떤 관점으로 시련에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나쁜 경험을 토대로 자존감을 형성하지 마라. 당신과 당신이 거둔 성과는 별개의 것이다. 실패를 자기 자신으로 연결하지 말라는 뜻이다. 둘째,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마라. 많은 사람들이 일이 안 되면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된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비탄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기 시작하면 영영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 시련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좋은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당신이 쌓은 경험 때문에 비슷한 시련을 겪은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실패를 배우고 발전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라. 실패 조차도 발전하는 과정이다. 케이시 스텐겔의 표현을 빌리고 있다. "언젠가는 분명 질 때가 있다. 그 때, 제대로 져라." 실패는 누구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실패한 사람들의 90퍼센트는 실제로 실패한 게 아니라 그냥 포기한 것이다. 대부분의 패자들은 습관적으로 변명하는 사람들이다."

의미 있는 구절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대화패턴을 살펴보니 변명하는 말이 의외로 많았다. 남 탓 또한 변명이었다. 나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주인적인 삶이라고 했다. 나는 얼마나 주인된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우리가 한 대부분의 후회가 우리가 한 일로 인한 결과가 아닐 거라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는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지 못한 일들 때문에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마지막에 치러야 할 대가는 잃어버린 기회란 것이고, 그것은 아주 큰 대가다.

지극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렇다. 도전하여 실패한 것이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전조차 못해본 것이 후회가 된다. '잉여경험'이라고 말을 한다. 지금 도움이 바로 되지 않는 경험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꼭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지금 내가 관심을 가지고 하는 일이 미래의 나의 꿈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당신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해서 순간순간 배우고 느끼는 것에 충실할 수가 있다. 사실 직접적으로 도움이 안 되어도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하면서 내가 즐겁다면 이미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닌가? 우선은 행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행해야 한다. 행하지 않은 후회는 어리석은 후회로 남는다.

배움의 정신으로 겸손을 강조한다. 작가이자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켄 블랜차드는 이렇게 말했다.

"겸손이란 자신의 그릇이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덜 하는 것이다."

겸손이 부족할 때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고, 세상과도 핀트가 맞지 않게 된다. 우리는 균형적인 시각을 잃고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의 결점이나 배워야 할 게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결점을 발견하거나 배울 수 있겠는가? 자존심은 누가 옳은 가에 관심을 갖는다. 겸손은 무엇이 옳은지에 관심을 갖는다.

겸손의 필요성에 대해 찬찬히 설명한다. 결국 겸손한 자세가 배움의 자세라고 설명한다. 누구나 겸손이 미덕이라고 말하지만 실천은 어려운 모양이다. 거만해 지는 순간 사람들은 떠나간다. 나의 마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타인에게는 나의 본 모습을 속일 수 없다. 나는 얼마나 나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한 모습으로 만나고 있을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모습을 보고 타인들이 귀감을 얻고 따뜻함을 본다면 그만큼 사회는 따뜻해지는 것이 아닐까? 다양한 고민들을 하게 한다.

마지막에는 "배움의 가치는 성장이다"라고 정리한다. 성장하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고 배우는 과정에서 실패를 수없이 한다.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것은 세월이 아니며, 성장이란 기분에 상관없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린나이인데도 그 이상으로 성장한 사람이 있고 나이만 먹었지 성장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즉 성장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아 성찰과 노력이 필수조건이다. 나이로 모든 순서를 정하는 것은 부당할수도 있다. 나이 값을 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덧붙여 기분에 상관없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성장이라고 정의한다. 과연 이런 일이 나에겐 있는가?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어떤 일이든 즐겁다. 허나 기분이 나쁠 땐? 기분이 나쁠 때도 반드시 하는 일이 있는가? 애석하게도 나에겐 아직 없다. 즉 지금의 난 성장이 멈춘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성장이 필요한가? 먹고살기도 바쁜데 성장은 무슨? 돈 버는데 성장이 무슨 상관이야!' 다양한 상황 속에서 우린 성장에 대해 너무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성장은 결국 모두에게 이롭다. 가장 이로운 상대는 나 자신이다. 힘든 상황에선 모두 흔들리게 마련이다. 모두가 좌절하고 우울해질 수 있다. 성장을 하면 이런 여러 상황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고 참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삶의 목적을 온전히 가질 수 있고 타인을 도울 수 있다. 성장하고 싶은가? 생각의 구속과 세속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인생의 참 가치를 느껴보고 싶은가? 이 책을 펴보자. 참 쉽게 간결하게 적혀있다. 나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한 책. 배움의 목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 다시금 열심히, 뜻있게 살아야 겠다는 의지가 솟구친다. 배움에 대해 참 가치를 알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어떻게 배울 것인가 - 10점
존 맥스웰 지음, 박산호 옮김/비즈니스북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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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를 그만두고 귀농한 전 철학과 교수 윤구병 작가의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동시에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윤구병, 보리)라는 책도 봤다.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는 청소년들에게 철학적 사고를 편지글 형태로 쉽게 전달하고 자 쓴 책이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전혀 무리하지 않다. 그 책을 정독한 후 <잡초는 없다>를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의 세계관을 조금 더 이해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가슴 설레는 책이었다.

 


▲ 잡초는 없다. 윤구병 저, 보리 출판사 오래된 책이다. 그만큼의 친숙함과 낯섦이 느껴진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에 대해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강추한다. 
ⓒ 김용만 

저자는 지금의 세계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교육도 잘못되었고 농사도 잘못되었고, 먹거리도 잘못되었고, 사회의 중요한 가치도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른 사회를 위해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라도 변산으로 내려와 공동체마을을 꾸리게 된다.

모든 농민들이 비닐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제초제를 뿌리고 농약을 뿌릴 때 변산공동체마을에서는 그 어떤, 몸에 좋지 않는 것은 첨가하지 않고 순수하게 농사를 짓기 위해 노력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남들이 버린 것을 주워 재활용하고, 자신들의 똥과 오줌을 모아 퇴비를 만들고 논에는 우렁이를 풀었다. 주위 어른들로부터 걱정스런 조언도 듣고 몸도 훨씬 고되지만 끝까지 바른 농사를 고집한다. 잡초라고 무심코 뽑았던 풀이 알고 보니 유익한 풀이었다는 것을 알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지렁이가 우글거리는 살아있는 땅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들 가운데 대부분은 잡초가 아니다.' p. 91

변산공동체마을은 어렵긴 하지만 뜻 깊게 유지되어 간다. 수많은 매스컴에서 취재를 요청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 오고 싶다고 해도 마을에선 받아주지 않는다. 단 끝까지 오고 싶다고 하면 3박 4일 같이 농사일을 한다면 와도 좋다고 한다. 놀러오는 사람 맞이할 정도로 여유도 없거니와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이다.

지금껏 우리나라에 공동체 마을이 여럿 시도되어 왔으나 실패한 중요한 이유가 경제적 자립이라는 것을 알고 이 부분의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아직 몇 안 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공동으로 의논하고 저녁은 모두 같이 먹고, 돈도 같이 관리하며 생활한다. 한 마디로 공동체 마을을 운영하는 귀농 일기라고 봐도 무관할 듯싶다.

윤구병 교수가 철학가 출신이라 그런지 상당히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바른 방향에 대한 제시를 많이 한다.

'그러고 보니 현재 우리 학교 제도도 공장과 비슷하다. 저마다 다른 학생들의 소질과 소망과 능력과 취향을 무시하고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 내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학생들은 미래를 꽃 피울 소중한 씨앗들이고 그 씨앗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데 하다못해 한 콩깍지에서 나온 콩이라도 자라면서 달라지는데, 어쩌자고 꼭 같은 나사못으로 깎아내려고만 들까. 그리고 나도 무엇에 홀려 그런 일에 앞장서 왔을까?' p.20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는 다같이 '기른다(育)'는 뜻이 담겨 있다. 기르는 일은 만드는 일과는 다르다. 인격, 사람다운 모습을 길러지는 것, 양성되는 것이지 빚어지는 것,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p.28

'(자녀들에게) 한 권의 책을 읽히더라도 주인이 쓴 글을 읽혀야 하고, 손님이나 종이 쓴 글을 읽히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또래 아이들이 쓴 글을 먼저 많이 읽혀야 한다는 말에는 주인이 쓴 글을 읽어야 스스로도 주인 의식이 생긴다는 뜻도 담겨있다.' p.39

'좋은 세상이란 별게 아니다.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p.43

'버리지 않는 삶은 버릴 것이 없는 삶, 검소하고 무엇이든지 아끼는 생활 태도의 반영이다. 아껴야 쌓이는 것이 있고, 쌓이는 것이 있어야 남에게 베풀 여유도 생긴다고 보면 안 될까? 그리고 물건을 아끼다 보면 사람 아끼는 마음도 생긴다고 보면 안 될까?' p.120

'자연에는 쓰레기가 없다……. 현대 문명은 쓰레기 문명이라고 불러도 좋다……. 새 것이 아닌 것은 비록 어제 만든 것이라도 기능이 떨어지고, 효율성이 낮고 유행에 뒤진 것이라는 관념을 심어주어 끊임없이 내다버리도록 부추긴다는 점에서도 쓰레기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p.123

'살아있는 개펄을 죽이고 그 위에 세울 쓰레기 문명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p.126

'물건의 내용 보다 포장이 더 그럴 듯해야 팔리고, 포장보다 광고가 더 그럴 듯해야 더 많이 팔리는 이런 세상에서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을 길러내려는 교육자는 발붙일 곳이 없다.' p.135

'다른 사람들과 경쟁할 생각 말고 빠진 고리가 무엇인지 잘 살펴서 그 고리를 메워주는 방식으로 장삿길을 찾아라.' p182

특별한 책이었다. 읽는 내내 무릎을 몇 번을 쳤는지 모른다. 교육에 관한, 아니 이 땅의 자라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어른들에 관한 따끔한 충고들이 많이 있다. 책의 말미에는 변산공동체 학교를 방학 때 짧은 기간 동안 운영했다고 적혀 있다. 정식 교과 과목만이 아닌 살아가면서 익혀야 할 다양한 것들,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 토목 등 기초살림을 가르치는 학교로 말이다. 특별히 교사는 없다. 공동체 식구 모두가 농부이자 교사다. 결국 윤구병 교수는 살아있는 농촌, 살아있는 아이를 통해 살아있는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책이다. 1998년에 세상을 본 책이니 이미 15년이나 된 책이다. 어찌 15년 전의 책속에서 지적한 교육의 문제가 2013년도에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으니 작가의 선견지명에 탄성을 질러야 할지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에 한숨을 지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15년 전 아이들이 지금은 어른이 되었다. 세상은 얼마나 변하였는가? 세상 탓만 하는 우리들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현재도 변산공동체 학교는 꾸려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윤구병 교수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도 집필하시고, 세상을 향한 쓴 소리를 마지않는 철학적인 책들도 계속 내고 계신다. 올 1월에는 경남 거제도에서 있었던 '생명토크 세 번째 이야기'에 오셔서 거제의 학부모님을 만나고 가시기도 하셨다.

시대적 대세는 경쟁이고 돈이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다가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돈의 매력을 쉽게 떨쳐내진 못한다. 왜 말은 돈이 다가 아니라고 할까? 과연 경쟁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살지 못하나? 왜 한국 교육이 문제다라고 말할까? 바른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 그리고 그 대안은 뭘까?

윤구병교수를 만나보라.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무런 생각이나 고민 없이, 들리는대로, 보이는대로만 믿고 자라왔다면 놀라움을 느낄 것이고 낯섦에 대해 자주 부딪혔고 고민을 해 보고 자랐다면 또 다른 대안을 확인 하게 될 것이다. 윤 교수의 말씀이다.

"만드는 문화보다 기르는 문화에 더 큰 힘을 쏟아야 한다.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이고 기르는 것은 공동체적 생활양식이다. 더 이상 많이 만들어서 버리는 삶이 아닌 바로 길러 모두 주인이 되는 삶을 살자."

어떤가? '혼자 꾸면 단순한 꿈이지만 모두가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 꿈의 현실화에 동참할 뜻은 없는가?

잡초는 없다 - 10점
윤구병 지음/보리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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