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육이야기

성이.

마산 청보리 2014. 1. 25. 15:43

2007.6.3 

 

우리반에 성이라는 아이가 있다.

 

아버님께서 아주 편찮으셔서 지금도 물리치료중이시고

 

그런 아버님을 어머님께서 모시고 치료하러 다니신다.

 

집에 수입원이 없고 누나 둘이는 학교 잘 다니고 있으나

 

우리 성이는 약간의 장애가 있어 정상적인 친구는 아니다.

 

단지.. 발달이 좀 느려 말을 빨리 못알아 듣고 행동도 느리다.

 

글씨도 빨리 못쓰고 덩치도 왜소하다.

 

하루는 이놈이 일찍 마쳤는데 집에 안가고 교실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는 것이다.

 

'성아 집에 안가냐?'

 

'네 선생님 괜찮습니다.'

 

성이는 말을 느릿하지만 또롯또롯하게 대답한다.

 

'와. 무슨 일있나?'

 

'별일 없습니다.'

 

왠지 성이가 말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여기 앉아봐라.'

 

우린 다른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간 뒤 조용한 골마루에 단둘이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한참후 성이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사실 집에 일찍 가기 싫습니다.'

 

'왜?'

 

'집에 일찍가면 어머님 아버님께서 공부 빨리 안한다고 혼내

 

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금 늦게가면 혼이 안납니다.'

 

어머님과 통화한 적이 있다. 성이가 이해력이 늦어 공부가 안돼

 

걱정이라고..성이는 언청이라고 해야하나...비슷한 병이 있다.

 

내가 봐도 다른 정상적인 아이들만큼의 이해력과 학습력은 기대

 

하기 힘들고 학습수준도 상당히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 그럼 성이는 집에 일찍 가는 것이 힘드니..음..그럼 이건

 

어떨까? 내일부터 선생님하고 남아서 공부하자. 그리고 다른

 

친구들보다 1시간 늦게 집에 가자. 이건 어때?'

 

'네 선생님 좋습니다.!'

 

베시시 웃는다.

 

'그럼 어머님께 선생님하고 공부하고 온다고 말씀드리도록 해라.'

 

지난 1주일간 성이와 남아서 알파벳쓰기, 구구단 외우기, 영어단어

 

외우기 등을 하고 있다.

 

이 놈은 힘들어 하면서도 선생님이랑 남아 있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6 X 9 는? 47 이라고 대답하면서도 베시시 웃는다.

 

----------

 

매달 1일 우리반은 자리를 바꾼다. 6월 1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성이가 자리를 배정받아 자리를 옮기자 주변의 친구들이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았다. 난 참으로 섭섭했다.

 

종례 때 아이들에게 눈을 감도록 주문했고 말을 시작했다...

 

-----

 

여러분. 성이는 아버님이 편찮으신 상태고 어머님도 아버님을

 

부축하시느라 일을 못하십니다. 누나 둘이 있으나 학년이 높아

 

성이는 힘들게 집으로 돌아가도 집에 아무도 없습니다. 성이는

 

여러분들만큼 건강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성이

 

는 인상한번 찌푸리지 않고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성이를 보고 우리반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고 편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성이는 대체 어디서 친구를 만날수 있을까요? 성이는

 

약한 친구입니다. 이런 성이를 대할때 여러분들이 인상을 쓰고

 

괴롭히는 것을 보면 선생님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성이는 우리들의 친구입니다..

 

----

 

말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말하는 도중에 난 콧등이 시큰함을

 

느꼈다. 몇몇 아이들은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

 

이날 마치고 우리반은 축구를 했다. 난 마치고 좀 늦게 갔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성이가

 

아이들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보통때 축구하면 아이들은 성이가

 

달리기도 못하고 체격도 왜소하다고 축구에 끼어주지 않았다.

 

축구골대 뒷공간이 유일한 성이의 놀이공간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아이들과 함께 성이가 달리고 있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난 참으로 감동했고 나도 성이와 우리반 아이들과 열심히

 

뛰었다. 비록 우리팀이 졌으나 마치고 집에갈때 성이를 챙기며

 

같이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난 단지 성이의 안타까움을 말해주고 성이와 좀 더 잘지내기를

 

바랬는데 아이들은 그 이상으로 성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어리면서도 어리지 않은...친구를 친구이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이런 멋지고 귀여운 놈들과 생활하는 .. 난 참으로 행복한 교사다.

반응형

'교단일기&교육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픔. 그리고 희망.  (0) 2014.01.25
5,000원  (0) 2014.01.25
2007년 가정방문.  (0) 2014.01.25
2007학년도 새학기의 시작.  (0) 2014.01.25
새벽의 무학산 등반.  (0) 2014.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