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지난 해에 봤던 다큐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 영화에 보면 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분이 나오시는 데, 그 분이 눈물을 보이며 결코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다른 분의 입으로 소개된, 그 남자를 다시 울리고 만 한마디...'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그 분의 책이 맞았습니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분이 대통령님께 부치는 편지 형식의 책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당신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적은 글입니다. 중간중간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진을 보는 것만해도 큰 행복입니다.
많은 분들의 서평이 있었습니다. 내용 중 공통된 내용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였습니다. '무슨 책을 읽는 데, 눈물을 멈출 수 없다는 말이야?' 궁금한 마음에 책을 펼쳤고,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곧 그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 적어도 그리움의 눈물이 아니라, 웃는 표정에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책을 읽는 내내, 사진을 보는 내내 잔잔하게 미소를 띄고 있었고 간혹 가다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자는 1972년 대구에서 태어났고, 2003년 10월,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에서 청와대 비서실 전속 사진사로 발탁되었습니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 퇴임까지 항상 노무현 대통령 곁에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청와대 재직 중 50만 컷이 넘는 사진을 찍었던 천상 사진사입니다. 사진만 찍었어야 할 분입니다. 하지만 그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대통령을 고객으로 생각치 않고 존경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순간부터 고객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찍게 되었습니다. 책에 보면 곳곳에 '님'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을 님이라고 부르며 그 분을 대하는 귀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가 얼마나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그의 영정사진앞에서도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키며 마지막 사진을 찍었습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순방 다녀오는 길에 잠시 경유지 하와이에 머물렀습니다. 공항 가기 전 여유가 있어 님과 함께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했죠. 이동 중 잠시 차에서 내려 바람의 언덕을 보고 기념사진 한 번 찍자는 소리에 쏜살같이 달려갔지요. 배경은 좋은데 역광 때문에 자리가 마땅찮았습니다. 님이 '어디에 서면 되지'라고 하셨고 전 역광이지만 좋은 곳을 추천했죠. 다른 사람들은 역광이라고 하면서 다른 곳에서 찍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죠. '당신들이 사진사는 아니잖은가? 프로가 여기 서라는데 와 그리 말이 많노. 난 프로가 하라는 대로 할기다.' 전 그 순간 저를 인정해주시는 님의 말씀에 잠시 목이 메었습니다. 감격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본문 중)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직업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하시지 않으셨고, 국민을 대할 때는 한없이 겸손했던 대통령, 해외에 나가서는 국격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았던 대통령, 저자는 어찌 보면 가장 가까이에서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봐 왔기에 더 마음 아파하는 지도 모릅니다.
-청와대 내에서 지나가다 기능직 공무원들을 만나면 그분들은 다들 피하려고 했지만 님은 불러서 악수하고 격려하시곤 했죠. 정말 순수하게 그분들과 대화하고 인사하고 가시는 님을 과연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님이 본관에 들어가시고 제가 님이 가신 길을 되돌아갈 때 그분들이 저를 잡으시고 님과 찍힌 사진 좀 꼭 달라고 하셨죠. 이 분들이 저에게 하는 말씀이 20년 넘게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가까이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말씀을 건넨 대통령은 님이 처음이랍니다. 예전에는 대통령이 지나가면 다들 숨어 있었다는군요.(본문 중)
손녀에게 과자로 장난치고, 주위 분들께도 기분 좋은 개그로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라에 관련된 일을 할 때는 한없이 냉정하고, 현명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준비를 함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밤을 새가며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에서의 알려지지 않은 생활에 대해 이 책은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사진 속에 있는 그의 해맑은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서평을 쓰고 있는 저 자신도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에 그를 욕했습니다. 한미 FTA 때 농민들을 배려하지 않는 다고, 변했다고 욕했으며, 이라크 파병때에는 사람이 대체 어찌 이리도 쉽게 변한단 말인가! 하며 욕했습니다. 기억해보면 이 두가지 일을 빼고는 특별히 그를 욕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즉 그의 행보에 개인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일은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아마 그가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저에겐 좋았던,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아있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정당치 않았던 여러 사건들을 거치며 혼자 힘들어하며,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기까지의 고뇌와 쓸쓸했던 결심과정을 상상해 보면 그에게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이 책은 간단합니다. 전문작가가 아닌 전문 사진사가 '님'을 추억하며, 그리워하며, 한글자 한글자, 힘겹게 적어 낸 책입니다. 책에 넣을 사진을 고르며 그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눈물샘을 짜내기 위한 사진만을 고르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알리기 위한 사진을 많이 고른 듯 합니다. 대통령의 인간됨을 알리기 위한 사진을 많이 고른 듯 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사진을 고른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이 책을 읽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더 깊이 있는 감동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도 우리나라에 큰 축복입니다. 그는 임기 후 고향으로 내려온 최초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고향에서 농사일에 전념했습니다. 지역 공동체에 전념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농부로서 할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노무현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속의 대통령은 무척이나 표정이 밝습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개그감을 잃지 않았던 그입니다. 그가 국민들에게 보여줬던 것은 인간됨뿐만 아니라 삶의 모습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들이 노무현, 노무현 하는 데, 대체 그가 어떤 사람이었지?' 호기심이 드는 분들께 권합니다. 어떤 분에게는 분노가 될 책이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눈물로 인해 보지 못할 책입니다. 이 책은 어렵지 않으면서 어렵고 슬프지 않으면서 슬픈 책입니다. 책장을 덮고 나선 알 수 없는 희망이 샘 솟습니다. 그는 없지만 울림이 큰 그의 정신은 남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그가 그리운 날입니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 장철영 지음/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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