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지금부터 수업 들어야 해. 조용히 해줘."
평소 똑소리나는 귀여운 딸아이는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고 나서 매일 10시가 되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러 컴퓨터를 켰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어폰을 끼고 화면을 보며 대화하는 딸아이가 낯설었습니다.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을 화면으로 보니 이상하지 않아? 괜찮아?"
"응, 우리 선생님 너무 재밌으셔, 오늘 수업하며 뿌루루루루~(이해하기 힘든 의성어)라고 하셨다. 진짜 재밌었어. 그리고 친구들 보니 그래도 반가웠어."
작은 학교의 다른 등교개학 모습
온라인 수업을 한참 하고 5월 27일부터 등교개학이 시작되었습니다. 딸아이와 꼬맹이는 작은 학교에 다닙니다. 해서 보통 학교의 개학일과는 다르게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동시 개학을 했습니다. 당연히 부모인 저희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아직 코로나가 진정상태가 아닌데 괜찮을까? 백신이 안 나왔는데 괜찮을까? 선생님들은 괜찮으실까? 보건선생님이 상시 근무하는 학교도 아닌데 괜찮을까?' 등등등 갖가지 걱정이 머리를 어지럽혔습니다.
개학 첫날,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갔습니다. 운동장에 이미 체온을 재기 위한 동선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이른 시간부터 나오셔서 등교하는 학생들 체온을 재고 계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이고 수고많으십니다. 전교생 열을 다 재나요?"
"네, 등교할 때 체크하고, 수업 시작 전에 체크하고 점심 먹기 전에, 하루에 총 3차례 열을 잽니다."
"힘드시지 않나요?"
"힘들지만 해야지요. 아이들 건강을 위한 일이니까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왠지 아이들을 학교에 맡기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큰 학교에서는 같은 반 동시 등교가 어려운 학교도 많았습니다. 요일을 정해서 따로 등교하거나 격주로 등교하는 학교가 대부분입니다. 해서 자녀들의 등교시기가 다른 가정의 경우 부모님도, 학생들도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십니다.
저희 아이들은 매일 등교합니다. 작은 학교이다 보니 한 학년에 반이 하나뿐이고, 교실에 학생수가 10명 정도니 저절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많이 계시진 않지만 학생 수가 적다 보니 아이들을 다 챙겨주시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학교 구성원 수 자체가 적다 보니 아무래도 큰 학교보다 친밀하게, 다정하게 챙김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요즘 다른 학부모님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다 보면 학교 이야기는 무조건 하게 됩니다.
"그 학교는 매일 등교한다구요? 좋겠다. 어째서 그래요?"
작은 학교라서 가능한 것 같다고 답변 드립니다.
"우리 아이도 작은 학교 보낼 걸. 작은 학교가 좋네."
작은 학교에 아이들 보낸다고 부럽다는 반응을 처음 접했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작은 학교의 필요성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도 상황이 다릅니다. 매일 등교가 가능한 작은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 마스크 쓰시고 수업하시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지만) 교실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시며 코로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수업을 연구, 실천하십니다. 허나 큰 학교의 선생님들께선 온라인 수업도 준비하시며 등교수업도 같이 준비, 진행하십니다. 반 아이마다 등교하는 요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발열체크, 방역, 가정통신문 안내, 각 가정과 소통하는 것 자체도 바쁜데 수업 준비마저 두 배 이상의 노고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코로나 이전의 학교로 돌아갈 수 없다면...
코로나가 마지막 전염병이라면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면 큰 학교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교실에 30여 명의 아이들을 모아두고 교과서라는 같은 내용을 전국의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대학 입시 선발에 효율적이다는 의미는 있겠지요. 개학 자체가 연기된 이번 상황을 보며 학교라는 공간이 왜 필요한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저절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의 성장시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자연스레 경험하며, 친구관계 맺기, 배우기, 함께 생활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허나 학교가 다른 친구들과 경쟁하여 성적으로 이겨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 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경쟁 구도의 학교도 장점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장점을 위해 희생되는 아이들과 놓치는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결국 좋은 대학에 가는 소수의 학생들 이외에 소외되고 시험 외의 부분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었을 때 상처받은 경험들을 되돌리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훨씬 클 것입니다.
시험을 통한 성적만으로 본인의 존재가치를 평가받는 것이 좋은 경험은 아닙니다.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들과 실패의 경험을 반복하며 비교당하며 자란 아이들은 다릅니다.
학생 수가 줄어드니 교사수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학교에서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학교는 가르침과 배움에 집중하기보다는 관리와 지침에 집중하는 곳이 되어 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교육의 방향과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를 대하는, 교육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드러났습니다. 코로나 이전의 학교로 돌아갈 수 없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선생님들과 학교가 아이들의 성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이 공존할 수 있도록, 소외되고 좌절하는 아이가 줄어들 수 있도록, 학교는 본래의 목적을 찾을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입니다.
교사들이 업무가 너무 많아 가르침에 집중할 수 없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소위 말하는 악플을 단 분들의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은 학교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으시구나. 이분들은 학교 다닐 때 상처를 많이 받으셨구나. 이분들은 학교를 믿지 못하시는구나.'
작은 학교가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 운동장에서 공차고 노는 아이들
어차피 한국에서 학교의 기능이 대학 선발을 위한 과정 또는 수단이라면, 그래서 더 어찌할 수 없다면, 최소한 작은 학교가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시험지로 아이의 다양성을 평가할 수 없다면, 작은 학교에서 이름 불리며 친구들을 깊이 알 수 있는 작은 학교가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아빠, 오늘 수업 시간이 이런 일이 있었어. 이 애는 4학년 땐 이랬는데 5학년 되니 이렇게 변했어. 신기하고 재밌어. 아빠, 오늘 다른 학년 선생님께서 내 이름 부르시며 칭찬해주셨어. 너무 좋았어."
선생님들이 전교생 이름을 불러 줄 수 있는 학교, 친구집에 자연스럽게 놀러 갈 수 있는 학교, 큰 학교와 업무량은 비슷하지만 그나마 아이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학교, 특정 학생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참여의 기회가 공정한 학교, 작은 학교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교육기관으로, 아이들이 자라는 시기에 꼭 필요한 전문기관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육부 포함, 법을 만드시는 분들도 학교는 단지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가는 곳이 아닌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야 하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가정이 해야 할 일, 사회가 해야 할 일들이 학교로 너무 많이 몰립니다.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로서 썩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학교로 한 번 들어온 일은 계속 이어지고 그 일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 교사들에게 배분됩니다. 선생님들이 가르침에 집중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가고 싶은 학교, 믿을 수 있는 학교는 학교가 본래의 목적에 충실할 때 가능합니다. 학교 현실을 가장 잘 아는 분들은 현장의 교사들입니다.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내용의 설문지가 아니라 실제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 되면 좋겠습니다.
한국 학교 교육이 문제가 있고 그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이 있다면 '검사와의 대화'만큼은 아니더라도 '교사와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교육부도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현실을 만드는 데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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