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육이야기

비오는 일요일

마산 청보리 2014. 1. 25. 14:02
2004.7.11
어제밤부터 우리반 부반장놈으로부터 계속 전화가 왔다.

'선생님 내일 인라인 타러 갑시다.'

피곤했다. 영이일도 정리되고 수행평가채점도 해야되고 왠지

피곤했다. 하지만 이놈은 계속 앵겨붙는다.

'누구누구하고 같이 가려고 합니다. 같이 가시죠.'

'좋다. 내일 아침에 전화하마.'

전화를 끊었다. 나의 작업은 12시 40분쯤에 끝났다.

야호~~!!! 즐겁게 잤다.

늦잠 잘 생각으로 알람도 모두 끄고 맘편히 누워서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8시 30분..

별로 많이 못잔 것 같아 억울했다. 하지만 혹시나 이놈들이

기다릴까바 전화를 했다. '진아(부반장이름이다.) 10시에 보자.'

'네! 알겠습니다.' 즐거워하더라.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앉는데 좋아하는 이놈의 얼굴이 떠오르며

웃음이 났다.

준비하고 시간이 되어서 나갔다.

4명이 나와 있었다. 우리반이 아닌 친구도 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놈은 하도 우리반 놈이랑 친해서 얼굴도 익히 알고 있는

귀여운 놈이었다. 우리는 함께 소닥거리며 매립지로 갔다.

헉! 매립지에 가니 우리반 또 한친구가 미리 나와 있었다. 이놈은

인라인이 없는 모양이다.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잠시후 우린 완전 무장을 하고

인라인을 타려고 했다. 그런데 헉!!

이놈들의 헬멧과 보호장비가 허술한 것이다.

버럭! 화를 냈다. '이놈들아 인라인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위험할수도

있는 운동인데 보호장비도 없다니! 다음주 부터는 보호장비 없으면

선생님은 같이 안 탈거다.!!' 엄포를 났다. '네 알겠습니다.!'

우렁찬 대답은 들었다.

탔다. 나도 사실 작년 가을 이후에는 한번도 타보지 못해서 떨렸지만

반바퀴정도 도니깐 느낌이 살아났다. 샤~악. 샤~악~

귓볼 밑으로 지나가는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이놈들도 나름대로 즐겁게 타며 놀고 있었다.

이게 여유인가? 정말 이놈들의 표정은 밝구나. 이놈들 곁에 내가

있는것인가? 내 곁에 이놈들이 있는 것인가?..

다양한 생각들을 하며 타고 있었다. 띠리리리~~~

전화가 왔다. 진이였다.(키가 제일 작은 친구)

원래 진이가 저번주하고 인라인을 탔는데 토요일 부터 몸이 아파

학교도 못나오고 집에서 요양하고 있는 상태였다.

'선생님' '오 그래 진이구나. 우리 지금 인라인 타고 있다. 아이들이

진이의 쾌유를 빌더구나. 몸조리 잘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점심때 김밥싸둔다고 식사하시러 오라고 하십니다.'

내가 아이들과 인라인 타러 간다는 것을 부모님께서 알고 계셨다.

'알았다. 아이들과 함께 가마. 갈때 전화하께' '네 알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12시 쯤 되서 진이 집으로 갔다.

부모님과 할머님이 모두 계셨다. 진이는 앉아 있었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으면 안된단다.

낯설지 않은 집이다.

몇달전 가정방문때 와봤던 집이었고 어머님도 한번씩 길에서 뵙고

아버님과도 대화를 했었던..익숙한 집이었다.

대화의 중심은 진이였다. 진이는 역시 밝았다.

앉아서 대답도 꼬박꼬박 잘했다. 친구들과 장난쳤던 얘기들을 하자

진이는 나의 눈치와 어머님 눈치를 보며 '아닌데요. 아닌데요.'라고

대답한다. 곧 들킬 거짓말을 아니라고 하는 표정이 너무 귀엽다.

엄청난 양의 김밥이 공개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헉!!!이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났을때 그 김밥들은

모두 사라졌다.

아이들과 진이는 공기놀이 한다고 정신없다.

어머니 치우시는 것 좀 도와드리고 진이와도 말상대하다가 먼저왔다.

어머님과 아버지의 반가워하시는 표정 한 구석에 묻혀있던

어두운 모습을 보고 왔다.

가슴이 쓰렸다. 내가 뭘 할 수 없음이 너무 죄송했고 밝게 앉아

친구들과 공기놀이하는 진이를 보니 더더욱 가슴이 쓰렸다.

이놈은 정확한 병명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쉬고 있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클수 있다는 한의사의 말에 부모님께서 한가닥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으시기 때문이다.

부모마음이다.

이게 부모마음이다.

우리 반에는 이러한 부모님의 마음이 36개 아니 70여개가 있다.

갑자기 엄청난 책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잠시 후 엄청난 미소가 밀려왔다.

왠지 모를..

그냥.. 70여개의 부모님 마음이 부담이 아니라 즐겁게 느껴졌다.

이 기분을 잘 간직할려고 한다.

부모님을 만족시킬려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의 곁에 서는

교육을 하고 싶다. 아이들이 즐겁게 웃는 교육..

이것은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빗소리가 정겹다.

반응형

'교단일기&교육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청나게 내린 비.  (0) 2014.01.25
유서쓰기  (0) 2014.01.25
깨끗하게 맞이한 토요일.  (0) 2014.01.25
영이를 만났다.  (0) 2014.01.25
영이의 결석.  (0) 2014.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