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육이야기

고등학교의 첫 시작.

마산 청보리 2014. 1. 25. 15:50

2008.3.11 

 

인문계 고등학교에 올라왔고 어느 새 2주가 흘렀다.

 

많은 일이 있었다. 솔직히 정신 없었다.

 

난 고등학교 오면 교재연구만 하는 줄 알았다. 수업이 별로 없고

 

남는 시간에 교재연구하는..아이들과 한번씩 진로 상담하는..

 

정도의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ㅡㅡ;;;

 

잡무가 장난 아니었다.

 

우선 난 교실에 가서 아이들과 친해져야만 했다. 아니 친해지고

 

싶었다. 대부분의 시스템은 중학교때 활용했던 것을 그대로

 

응용했다. 자리배치, 생일챙김, 학급비, 화장지 가져오기, 칭찬카드

 

등등등... 하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반장선거를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해봤다. 이름하야 인생곡선!! 학생들에게 각자의 인생곡선

 

을 그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 그림을 교실 뒷면 게시판에 붙이라고

 

했다. 월요일에 그 그림을 기본으로 반장을 뽑을것이라고 말했다.

 

월요일이 되었고 난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주었고 반장하면 좋을 것

 

같은 친구에게 붙이라고 했다. 거의 몰표가 나왔고 우리반 반장은

 

그렇게 선출이 되었다. 아이들도 좋아했고 나도 무척 흡족했다.^-^

 

토요일엔 반 단합 축구를 했다. 우리학교에는 운동장이 빈다.

 

전임교에는 야구부가 있어 마음대로 축구를 할 수 없었다.

 

운동장은 비지만 집이 먼 친구들이 많아 걱정이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나왔고 학부모님께서도 나오셨다. 우린 1시간동안

 

쉬는 시간 없이 공을 찼고 가져온 회비로 음료수를 마시고 깔끔하게

 

헤어졌다. 정말 재미있었다. 고등학생들이라 그런지 참 잘차더라.

 

그리고 야자때마다 1시간에 3~4명씩 개별 상담을 했고 근 1주일

 

넘어서 개별상담도 마무리 되었다. 아이들과 1대 1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한가지 학교생활에서 힘든 점은....바로 나의 업무이다.ㅠㅠ

 

내가 맡은 업무는 내가 참으로 혐오하는 '생활지도'...ㅠㅜ

 

난 1년 동안 아이들의 복장과 두발로 싸워야 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내가..두발을 단속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함 해봐야지.

 

난 가위를 들었다. 그리곤 아이들에게 두발의 기준을 소개하고

 

주말의 시간을 주었다. 정리를 안해 오면 내가 직접 자른다고

 

엄포까지 둔 상태였다. 역시나 많은 아이들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왔다. 난 이번주 월요일 아침부터 가위를 들고 다니며

 

아이들 머리를 짤랐다. 이상하게 짜른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어색하지 않게 짤랐다. 손을 떨어가며..^-^;;

 

도저히 나에게 머리를 짤리는 것을 원치 않는 학생은 말하라고

 

했다. 그 친구들은 일정의 시간을 다시 주고 내가 확인하기로 했다.

 

머리 짜르는 큰 행사(?)가 다 끝난 뒤 난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합포 고등학교에 머리를 짤릴려고 왔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고등학교에 머리를 기를려고 왔습니까?'

 

'....'

 

'선생님도 합포고등학교에 여러분 머리를 짜를려고 온것이

 

아닙니다...'

 

....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두발 자유를 원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일이 생활지도 입니다. 부득이하게 선생님은 여러분들과 1년동안

 

복장과 두발로 만나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여러분들께

 

약속하나 합니다. 두번다시 여러분의 머리에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구렛나루 기루는 데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얼마나

 

기르기 힘든지..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머리를 자른게

 

여러분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위해 짜른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존중합니다. 존중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두발이나 복장에 문제가 있는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이

 

정중히 부탁하겠습니다. 학생부 선생님이라고 해서 모두 무섭게

 

여러분들께 위협하고 폭력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과 1년동안 서로 존중하며 잘 지내기를 희망

 

합니다. 오늘 선생님께 머리를 짤려 마음 상한 친구들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선생님의 마음..말...알겠습니까?'

 

'네!!!!!!!!'

 

'선생님을 도와줄수 있겠습니까?'

 

'네!!!!!!!!'

 

'고맙습니다. 우리 1년간 잘해 봅시다.'

 

이렇게 나의 업무는 우선 정리되었다.

 

-----------

 

망구 나 혼자만의 상상이겠지만 마칠때쯤 되어 4~6명의 친구들이

 

나에게 찾아왔다.

 

'선생님 사실 저의 머리에 상처가 있어 아까진에 선생님께서

 

짜르실려고 하실때 거부했었습니다.'

 

'그래? 함 보자? 아프진 않고?'

 

'네'

 

'그래 다행이구나. 그럼 어떻게 하지? 머리가 긴 것은 사실인데..'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용실에 가서 짤라오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그러자^-^'

 

'선생님 전 머리 너무 많이 짤렸는데예! 점마 저거는 조금밖에

 

안 짜르시고 저는 짝쩨긴데예!'

 

'아닙니더! 점마가 더 깁니더!!'

 

'마!! 됐다. 선생님은 공정하게 짤랐다. 정 마음에 안들면 미용실

 

가서 짤라온나!'

 

'아닙니더. 이 머리 마음에 덥니더. 다음에도 부탁드리도 됩니꺼?'

 

'선생님 이제 가위 안 들기로 했다 아이가. 아까 말했잖아'

 

'아 맞다. 알겠심더. 안녕히 계십시오.'

 

우루루루... 인사하고 달려가는 1학년 학생들...

 

----------

 

난 오늘 아이들에게 죄를 지었다. 그것도 큰 죄를 지었다.

 

이놈들은 날 용서해 준 것 같다. 아니 이해해 준 것 같다.

 

아이들을 보고 아직 인격이 덜 성숙한 미성숙체라고들 한다.

 

그래서 인격이 성숙한 선생님들이 지도 편달을 잘해야 한다고들

 

한다. 인격이 성숙한 어른들이 더 잔인하고 무책임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어른들은 모르는 것일까....

 

오늘 난 다시 깨달았다. 인격의 성숙 미성숙을 논하기 전에

 

상대에게 얼마나 정성으로 대하는 가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라는..

 

난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여전히!!!

 

행복한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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