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설집의 제목은 수록작 '명실'에서 가져왔어요. '아무도 아닌, 명실'에서 앞부분만을 옮긴 것이죠. 사람들이 '아무도 아닌'을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더라고요. 이 일이 저에게 뭔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끔 했어요 그래서 '명실'이후에는 '아무도 아닌'이라는 제목에 묶일 수 있는 소설을 썼고요. 이번 소설집 수록작 중에서 제일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명실'이에요. 이유는 음, 그냥 좋아요.(웃음) 쓰면서 굉장히 즐거웠거든요. 반면 '명실' 이후의 소설들은 심정적으로 좀 어두운 상태에서 썼어요.
저를 압도하는 화자도 있었어요. 이를테면 '복경'의 화자가 그랬죠. 소설을 쓰는 내내 제게 얼굴을 바짝 내밀고 압도적인 목소리를 내는 듯했거든요. 쓰면서 많이 무서웠을 정도로요. 예전에는 소설 속 화자가 꿈에 등장할 때도 있었어요. 전작 <야만적인 앨리스씨>에 등장하는 화자 '애자'가 그랬죠. 꿈에서 어떤 여자가 대단히 난폭하고 강렬하게 이야기를 쏟아붓는데 '애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잠에서 깨자마자 꿈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었고, 소설 속에서는 복숭아 술로 유명한 마을에 관한 이야기로 삽입됐어요." -BOOK DB' 작가 인터뷰 중
황정은 작가의 '아무도 아닌'을 읽었습니다. 전 이 작품을 우연히 만났지만 황정은 작가는 이미 두 권의 소설집을 낸, 매니아 팬들도 많은 인기작가였습니다. 즉 '아무도 아닌'은 2012년 봄에서 2015년 가을까지 발표한 여덟편의 단편소설(上行, 양의 미래, 상류엔 맹금류, 명실, 누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웃는 남자, 복경)로 묶인 그녀의 3번째 소설집입니다.
사실 저는 여덟 작품을 읽는 내내 마음이 좀 음산했습니다. 왠지 모를 서늘함이 있습니다. 밤에 책을 읽을 때도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가 저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더군요. 상당히 오싹했습니다.
왠지 모를 어색함이 있는 가족과의 고추따기, 지금의 청년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은 계약직 노동자의 말도 안되는 경험, 층간 소음의 문제지만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헷깔리는 이야기, 남편의 죽음 이후 아내의 삶 , 옛 애인 가족과의 이상한 추억, 여행 간 부부의 말도 안되는 이별, 매일 웃을 수 밖에 없는 감정 노동자, 단 한 편의 작품도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소설적이지도 않습니다.
이에 대해 황정은 작가는 이렇게 인터뷰 했습니다.
"세계 자체가 꾸준히 난폭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양의 미래>에서 주인공에게 심하게 감정이입이 되어 가장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왜 하필 그녀에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녀에게 왜 이런일이... <누가>는 정말 소름돋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으로 인해 한순간 멍하니 책만 쳐다봤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누가>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군요.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작품을 읽고는 그 후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작가는 일부러 이렇게 결말을 내었지만 이렇게 끝나서는 안될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자괴감이 읽혀, 단지 소설이라고 치부하며 다음 작품을 계속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복경>은 정말 환장하겠더군요.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침울합니다. 이 침울함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분위기 같지는 않습니다. 작품들을 읽다보면 공감이 되는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침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세월호 사태 이후 정서적으로 계속 얻어맞는 듯한 느낌 때문에 작년 겨울 이후(2015년) 반년 정도 소설을 쓰지 못했다.' 고 작가가 인터뷰한 내용을 봤습니다.
그녀도 자신이 받은 고통 속에서 소설을 썼을 가능성이 큽니다.
책 제목은 '아무도 아닌' 이지만 사실 우리는 '아무도 아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품속의 화자들도 곁에 조금만 더 친절하고 말이 통하며 마음을 알아주는 상대가 있었다면 이런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인데,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황정은 작가가 여덟작품을 통해 현대인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 여운이 남는 소설입니다.
힘겨운 현실에, 외로워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아무도 아닌'은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아닌 - 황정은 지음/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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