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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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 재난. 무섭습니다. 근래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잦은 지진으로 재난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매년 여름마다 들이치는 태풍은 익숙한 재난입니다. 하지만 피해를 보는 것도 여전합니다. 이 책은 재난이 모든 이에게 똑같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전달합니다.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하다는 부제는 믿기 힘든 내용이지만 현실이었습니다.


파인만 경계 넘나들기


- 자연과학자인 내가 지난 몇 년 동안은 자연과학에 쏟았던 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들여 사회과학 분야를 탐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재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필연적으로 사회과학의 세계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자연과학자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에 서서 이 이야기를 한 경우는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나는 이 지점을 '파인만 경계'라고 부르려 한다.(본문중)


저자는 자연과학자입니다. 그는 단순 자연재해에 대해서만 연구를 해 왔습니다. 하지만 카트리나 (2005년 8월 미국을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가 발생한 후 재해는 자연재해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 인간에 의한 피해가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안타깝지만 가슴아픈 결론을 내게 됩니다.


'재난을 그토록 참담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 그 자체보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지독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자연이 주는 피해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피해가 더 잔인하고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사실적 증거와 재난이 있었던 사회의 단면을 서술하며 소개합니다. 저 또한 책을 읽으며 마음 한 구석이 계속 쓰라렸습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재해는 모두에게 나쁜 것인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지진, 태풍, 쓰나미, 홍수 등 모든 재해는 인간에게 피해만 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홍수와 허리케인 같은 기상학적 재난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재난 이후 재건 단계에서는 주로 건설 산업이 경기 부양 혜택을 받는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그 효과는 지속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재난으로 인해 기존의 자산은 새롭고 더 나은 자산으로 바뀐다.(본문 중)


재해가 났을 때 해당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를 보지만,(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도 포함됩니다.) 그 지역에 살지 않으며 건설 산업에 종사하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쾌재를 부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즉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결국 지진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지진이라는 자연적 현상에 의해 땅속으로 빠져서 죽는 사람보다 건물이 무너지며 사람이 더 많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즉 건물이 튼튼하지 못한 지역일 수록 지진이 발생했을 때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사망자 수와 소득 수준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 이는 곧 부유할수록 더 안전해진다는 말이니 최상의 재난위험감축 전략은 부유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본문 중)


대한민국은 안전불감증에 시달린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제는 안전민감증이라 말할 정도로 온 나라가 '안전, 안전'을 외칩니다. 하지만 고민해볼 지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안전' 이 모든 계층에 안전한 나라인지, 아니면 계층에 따라 보장되는 '안전'이 다른 나라인지. 


2010년 아이티 지진이 남긴 것


2010년 1월 11일 오후 4시 53분에 아이티에서는 리히터 규모 7.0의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국가를 멸망 위기까지 몰아넣은 대 참사라고들 평합니다. 


-지진이 나기 전 아이티는 극소수의 부유한 집단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이티에는 부패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한 예로 아이티의 부유층들은 모여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정부와 접촉을 했고 합법이든 불법이든 그들이 하는 사업은 정부의 허술한 규제와 감독에 크게 의존해 있었습니다. 


세금은 아예 내지 않거나, 내더라도 아주 소액이었습니다. 당시 아이티 국민 중 80퍼센트 정도가 빈곤선 이하로 살고 있었으며, 54퍼센트가 극도의 빈곤에 처했었습니다. 즉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인 중남미의 모든 국가 중에서도 가장 불평등한 나라였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2016년 대한민국도 아이티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부패가 만연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 전체에 심각한 피해를 끼칩니다. 그 피해라는 것은 경제적인 피해 뿐만 아니라 생명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더욱 심각합니다.


그리고 당시 아이티에서는 부패도 심각했다고 합니다. 국민을 위한 정책보다는 소수 집단의 이익이 더 중요했던 겁니다. 그리고 아이티에서는 당시 지진이 나고 나서 사망자 수를 과장했을 확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사망자가 많아야 구호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구호품을 전달했으나 그것이 올바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즉 자연재해가 일어난 후 인간의 욕심에 의해 더 큰 피해가 발생하게 되었고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구호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구호품이 전달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티 국민들의 상황이 그리 좋아지지 않았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현실입니다. 사고 당시 150만명이 임시캠프에 수용되었으니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카트리나가 덮치던 당시 뉴올리언스 지방정부에는 속속들이 부패가 만연해 있었다...대통령 조지 W. 부시와 부통령 딕 체니는 (카트리나 발생 당시) 휴가중이었고, 둘 중 누구도 그 상황을 자신의 여가 시간을 방해 받을 만큼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카트리나가 그렇게 신경 쓸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건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카트리나가 상륙하던 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야구 경기를 관람했다.


당시 뉴올리언스의 상황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미 충분히 예보가 되고 있었고 폭풍의 경로도 상당히 단순했습니다. 하지만 비극은,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 빈민 지역에 특히 인구가 밀집됐던 곳을 강타했다는 것입니다. 뉴올리언스에서 당시 연약한 제방, 빈민 지역을 관통했던 운하 등으로 인해 피해가 더 가중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던 지역이었기에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습니다. 제방과 운하는 사람의 안전보다는 산업적으로 필요했기에, 딱 그정도의 수준에서 건설이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제방과 운하의 안전과 필요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안할 위치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카트리나가 덮쳤을 때 제방이 무너지고 운하가 파괴되며 피해가 더욱 커졌습니다.


즉 뉴올리언스의 빈민층은 지역으로부터, 나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피해가 더 컸습니다.


가난이 죄인가?


저자는 아이티 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례를 들며 인간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연재해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부패, 가난, 자체가 더 힘들게 한다고 말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적힌 글은 사회가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부자가 이기고, 가난한 사람이 진다.'...재난은 어떤 면에서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지만, 결코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지는 못한다. 재난은 모두가 서로를 끌어 주는 계기가 될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각 집단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다르고, 각 집단이 대응할 방법도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에, 재난은 각자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부자는 이용하고 가난한 사람은 못한다.(본문 중)


자연재해는 분명 재해지만 오로지 자연에 의한 피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에 의한 1차 피해 이후 사람에 의한 내용까지 더해집니다. 즉 지진이 났을 때 지진으로 인해 다치는 사람보다는 약한 건물이 무너짐으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고 현실적으로 무너지기 쉬운 건물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건물일 경우가 많습니다.


부자는 안전한 곳에 모여 살 확률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반 국민보다 더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그 정보를 모두를 위해 이용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정보를 모두가 아닌 개인들을 위해 사용할 확률이 많습니다. 그래서 재해의 피해가 더 커질수도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입니다. 사회의 지도층이 국민들에게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모범을 보이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입니다. 가난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난으로 차별받는 세상도 옳지 않습니다.


재난도 힘든 일인데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받는 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합니다. 적어도 목숨에 대해서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불편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세상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 '재난불평등'을 추천합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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