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문제아가 되면 부모는 친구 탓, 교사 탓, 학생 탓, 세상 탓, 운명 탓으로 돌린다. 언제까지 서로를 탓하면서 흔들리는 아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아이들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만 바꿔도 문제될 게 없다. 어른들의 가치와 기준으로 문제아니 부적응아니 낙인 찍고 차별하는 게 진짜 문제다. 어른들의 무지와 편견과 오해가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탁월한 교육 프로그램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포기하지 않고 품어주는 교사의 따뜻한 마음이 더 절실하다." (본문 중)
태봉고 교장이었던 여태전 선생님께서 책을 한 권 세상에 내셨습니다. 2010년 개교한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에서 공모교장으로 일하셨고 올해부터는 남해에서 작은 학교를 되살리는 일과 행복한 '교육마을'을 만드는 데 열정을 쏟으려고 하십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여 책을 직접 선물 받고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 보았습니다. 한자 한자에 선생님의 교육적 마인드와 열정, 학생들과 선생님들, 학부모님들을 사랑하고 존경하시는 마음이 느껴져 읽는 내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바다 썩지 않게 하는 3퍼센트의 소금, 그런 학교를 꿈꾸다
▲ 공립대안 태봉고이야기/여태전지음/여름언덕 여태전이라는 개인의 생활사가 아니다. 한국 교육의 현 주소와 그 대안을 확인핼 볼 수 있는 책이다.
ⓒ 김용만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시내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바다입니다." (본문 중)
"대안학교는 기존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든 '문제아 수용소'가 아닙니다. 그 답답한 울타리를 스스로 뛰쳐나온 아이들과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학교입니다." (본문 중)
필자도 태봉고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태봉고를 줄기차게 방문했습니다. 1기 학생들로부터 2기, 3기 학생들까지 봐오며 태봉고의 변천과정을 묵묵히 지켜 봐 왔습니다. 태봉고는 실제로 문제아들만 있는 수용소 같은 시설이 아닙니다. 책에서도 누누이 강조하시지만 하나의 작은 사회입니다. 태봉고 교사라고 해서 모두 진보적 성향만 가지신 분들도 아닙니다.
지지하는 당이 새누리당부터 노동당까지 다양한 분들이 계신 곳입니다. 선생님들의 공통점요?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마음, 함께 같이 살아보자는 마음을 공유하신 분들입니다. 거창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생활이 곧 교육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학부모들과, 싸워가며 인내하며 기다리는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태전이라는 든든한 기둥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여태전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태봉고의 성장에는 당신의 역할이 미비했다고 말입니다. 이 모든 성장의 바탕에는 모두의 노력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태봉고에는 잘난 학생도, 못난 학생도 없습니다. 한 명 한 명 소중한 사람들뿐입니다. 그리고 주인도 엄밀히 보면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들도 그 대상이었습니다.
태봉고의 학부모 모임도 특별했습니다. 학부모들이 전체모임, 학년별 모임, 지역모임, 임원 모임, 독서 모임 등 여러 형식으로 자주 모입니다. 첫해 개교 전 부모님들이 자발적으로 1박2일 학부모 연수를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치러 내는 등 학생을 단지 학교에 맡긴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에는 학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몸소 실천하셨던 분들입니다. 필자도 태봉고의 축제 때마다 학교를 찾아봤는데 축제가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학부모들을 위한 것인지,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것인지 분별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모두를 위한 자리였습니다. 내 자식이 다니는 학교가 아닌 우리의 자식이 다니는 학교라는 마음으로 모두 즐겁게 행사에 참여하고 진행에 도움을 주시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학교의 새로운 대안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대학에 몇 년 늦게 가면 어떻습니까? 공부할 이유와 필요가 절실해지면 그 때 하면 되지 않나요? 그런 게 이상해 보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이에 삶을 끼워 맞추는 식의 사고방식이 젊은이들을 얼마나 갑갑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유연해져야 합니다. 늦게 가도 되고, 천천히 가기도 하고, 안 가면 또 어떻습니까. 대학 문제를 그렇게 바라보면 안될까요?(본문 중)
여태전 선생님은 대학진학에 대해서도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말씀하십니다. 부모들의, 교사들의 욕심과 조바심으로 아이들을 목적의식 없이 내모는 것이 과연 필요한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케 합니다.
머지않아 인간의 평균 수명이 백 살이 될 거라고 하는데, 고작 10대와 20대 몇 년 자유롭게 살고 인생 공부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핸디캡이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10대와 20대 몇 년의 교육 수준을 근거로 나머지 인생을 평가하고 결정한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아이가 남들보다 1~2년 늦는다고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평생을 늦는 게 아니니까요. 남들보다 뒤처진 것 같지만 지금의 고민이 앞으로 20년, 30년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본문 중)
태봉고 학생들은 여유가 있습니다. 학교에 가서 만나 보아도 한결같이 편안한 표정들입니다. 혹자들이 묻습니다.
"그 학교 학생들 대학진학률은 좋습니까?"
개인적으로 답변을 이렇게 해 왔습니다.
"대학을 원하는 친구들은 1류 대학은 아니더라도 원하는 과로 진학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졸업식 때도 보면 일반 학교에서와 다르게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아쉬워 눈물 흘리며 학교를 떠납니다. 그리고 졸업생들은 다음 해 학교 행사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찾아와 후배들과 선생님들과 기쁨의 재회를 합니다. 태봉고는 대학 진학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자신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한 디딤돌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내는 것 같습니다."
학교는 좋은 학생 뿐 아니라 좋은 교사도 길러야 한다.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교육문제의 핵심으로 요즘 학생들의 무기력함과, 이기주의, 버릇없음을 탓합니다. 태봉고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합니다. 좋은 교사가 좋은 교육을 한다는 믿음으로 교사들의 자발적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갈등이 없는 게 교육이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생활이 곧 교육입니다. 말이나 글로 가르치는 게 아니죠. 그보다 더 좋은 '대안'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진정성을 귀신같이 알아챕니다.(본문 중)
여태전 선생님께서도 교직 생활 중 한 여고생의 뺨을 때린 적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미숙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뺨을 맞은 여고생은 당시의 상황으로 그래도 선생님이 고마웠다고 웃으며 말했다지만 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반복해야만 했다고 죄스러워 했습니다. 자신의 생활을 봐도 부끄러움이 많았다고 고백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교사의 성장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케 한 말씀입니다.
양산의 채현국 이사장님은 평소 "학교는 좋은 학생 못지않게 좋은 교사를 길러내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성장이 멈춰버린 사람을 '꼰대'라 하고 한평생 배움과 성찰을 멈추지 않고 성장해 가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합니다. "배움과 성찰에 목마른 교사가 아름답다. 우리학교의 가장 큰 자랑은 공부하는 교사다."라는 말을 선생님들에게 자주 들려줍니다.(본문 중)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선 배움을 소흘히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 말은 비단 교사들에게만 국한한 말 같지는 않습니다. 어른으로써 아이들에게 자신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과거 이야기만 하며 뭐가 부족해서 그 난리냐라고 탓할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만 보더라도 아이들은 배우는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먹고살기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라는 변명이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땅의 어른들이 행동으로 보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배움이 없는 삶은 가르침도 불가능합니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진짜 대안교육
어떤 학교든 교육다운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활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그것을 문제라고 규정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문제 부모 없이 문제 자녀가 존재합니까? 문제 교사 없이 문제 학생이 존재합니까? 문제 사회 없이 문제 청소년이 존재합니까? 어른들은 아이들을 그렇게 규정해버림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교묘히 비껴가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 아이들을 따로 모아놓으면 일반 학교는 편할지 모르지요. 문제가 생기면 고민할 필요 없이 그리고 보내버리면 되니까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학교와 교육 시스템 하에서 아이들이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성찰하고 반성하려 하지는 않고 아이들 탓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본문 중)
대안학교는 학교라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문제아들의 집합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학교도 작은 사회이고 사회는 모든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반학교가, 일반 교사들이 편하려고 문제아라고 칭한 아이들을 솎아내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고 일침을 놓고 있습니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와 철학이 있다는 것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좋은 학생들만 뽑으려 한다며 태봉학교를 귀족학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대안학교에 보내려고 하는지에 진지한 성찰없이, 그 진정성을 의심하며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태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태봉고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귀족처럼 섬기고 모시는 귀족학교입니다!"
본인이 교직생활을 해서 그런지 이 책은 정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단지 가르침에만 목적을 두고 상급학교 진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에서 교육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한국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바른 방향인지를 깨우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두고두고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바람직하게 키우고 싶은 분들, 아이를 지도하고 계신 분, 스스로의 성찰을 위하시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본질을 말씀하신 여태전 선생님의 글로써 마무리 합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쉽게 이야기해봅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지탄받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품성과 능력을 길러주는 일입니다. 교육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도구입니다."
공립 대안 태봉고 이야기 - 여태전 지음/여름언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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