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국가의 총구는 언제든 우리 가족을 향할 수 있다.

마산 청보리 2014. 1. 28. 21:40

철학이란 '시대에 내재하는 불만'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이 불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p66

저자는 철학적 사유로부터 시작하여 철학과 삶의 유기적 관계,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말을 풀어간다. 철학의 심오함과 난해함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알기 쉽게 접근한다. 1부에서는 철학적 사유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사유해야 철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부에서는 우리가 친숙하게 느끼는 중요한 몇 가지 것들을 낯설게 만든다. 바로 국가의 존재이유, 자본주의의 실체 등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격렬하게 읽었던 부분이다. 3부에서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철학적으로 성찰한다.

 


▲  <철학, 삶을 만나다> 
ⓒ 이학사 


저자인 강신주씨는 일반인에게 철학이 얼마나 쉽고 철학적 사유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다양한 예를 들며 풀어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책이 이해가 쉬운 것은 사실이다. 다양한 철학자들을 거론하며 각 철학자들의 사상과 그 사상에 반하는 사상들, 또 지지하는 내용들을 다각도로 제시한다.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한다.

"인간이란 설령 순수하다고 가정된 정신이라 할지라도, 참된 것에 대한 욕망, 진실에 대한 의지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진실을 찾지 않을 수 없을 때에만, 그리고 우리를 이 진실 찾기로 몰고 가는 어떤 폭력을 겪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진실을 찾아 나선다." 들뢰즈의 말이다.- p28.

즉 모든 사람들이 거짓된 일에 진실을 찾기 위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거짓을 알게 되더라도 나에게 별 상관이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자신이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불합리한 경우를 당할 때에만(폭력 포함) 비로소 진실을 찾아나간다는 말이다.

우리가 비로소 진실을 찾아 나설 때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 사태, 최근의 밀양 송전탑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우리집이 안전한 이상 용산참사를 언론을 통해 구경만 한다.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내일이 아니기 때문에 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우리 동네가 재개발을 한다며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어느 순간 용역들이나 경찰들이 나타나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 동네 사람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눠 어제까지 이웃사촌이었던 사람들이 원수지간이 된다. 보상금으로는 도저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수 없어 견디고 견디는데 강제철거를 하기 시작한다. 이때서야 용산 가족들을 이해할 수 있다.

허나 이미 늦었다. 쌍용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자들의 엄청난 피해에 대해, 왜 노동자들이 저렇게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지는 모르고 언론에서 말하는 경제 손실이 몇 십억이라는 말만 들으며 욕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빨갱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나의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회사의 부조리함에 대하여 시정을 요구한 노조위원장이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이것은 아니라고 크게 외치니 경찰들이 와서 연행해간다. 이때 쌍용 노동자들을 이해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 밀양의 송전탑은 현재 진행형이다.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경찰들이 대치상황이다. 연행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11월 30일 희망버스가 들어가고 경찰이 미리 입구를 봉쇄하고.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언론에선 조용하다.

이 책의 2부 내용이 새삼 와 닿는다. 일본의 철학자인 '가라타니 고진'은 말했다. 그는 국가를 하나의 '신적인 실체'가 아니라 '교환관계'로 숙고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무조건적인 배려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국가가 피통치자에게 재화를 재분배하거나 혹은 관개사업 등의 공공사업을 일으키는 이유는, 사실 더 효율적으로 구성원을 수탈하기 위해서입니다. 박정희 그는 경제 개발을 해서 국민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독재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피통치자, 즉 우리의 착각일 뿐이지요. 가라타니 고진의 분석이 옳다면,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 통치를 영구히 하기위해 경제 개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p.149

즉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를 지속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혼신을 쏟았고 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 존재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은 계속된다.

지속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수탈하기 위해서, 국가는 국민에게 여러 시혜적인 정책들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그렇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효율적으로 수탈 할 수 있는 계층에게만 국가의 시혜가 집중됩니다. 그 계층이 옛날에는 농민이었으나 오늘날 자본가로 바뀌었습니다. 한미 FTA로 가장 시혜를 받은 계층은 누구일까요? 자본가들입니다. 국가는 자본가들로부터 많은 것을 수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FTA로부터 가장 소외받은 계층은 누구입니까? 바로 농민들입니다. 더 이상 국가는 농민들로부터 얻어 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p.156, 158

국가는 나를 보호해주고 우리 가족을 보호해주며 우리 민족을 보호해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많은 국민들은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지적한다.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라는 역동적 교환관계로 유지되는 기구, 그러나 국가의 핵심은 재분배라기보다 압도적 폭력을 바탕으로 하는 수탈이다.-p.162

국가가 서비스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 국민을 필요로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국가는 필요할 땐 가차 없이 국가의 폭력, 공권력을 행사한다. 그 공권력은 주로 국가가 배려하는 존재들의 보호를 위해 사용된다.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상상해 보았다. 나아가 국가가 언론까지 장악하게 된다면? 국민의 생각을 마음대로 장악하게 된다면? 국가의 힘이 더욱 강력해진다면? 국민은 고맙게도 국가에게 그 어떤 반발을 하지 못하게 되며 오히려, 국가가 나를 위협하는 악한 존재들로부터 보호해준다고 믿으며 고맙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국가는 순종적인 국민을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눈 막고, 귀 막고 살면 되는 것인가? 국가가 나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우리 가족을 공격하지 않으니 국가란 좋은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국가가 공권력이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 원인이나 과정이 비민주적이라면, 국가의 총구는 언제든 필요에 의해 우리 가족에게 향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나의 이웃이 국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책은 막바지로 접어든다. 자본주의의 불편한 진실과 행복한 삶을 위한 철학적 대안들을 제시한다.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 주체적인 삶 살아가기, 타자(상대방)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이렇게 책은 마무리된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생각하여 별 고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저자는 지속적으로 일침을 가한다. '이것이 왜 당연할까요? 저것은 왜 저럴까요? 이 문제의 해답은 이것뿐일까요? 결국 이 답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책을 읽는 내내 탄성과 후회와 자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을 보는 눈, 철학적인 사고의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아직도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제공되는 정보만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섣불리 적의를 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신은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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