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무 손아. 니도 커서 니 같은 놈을 낳아봐야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자식 놈들이 한창 속을 썩일 때 부모님들께서 주로 하시는 말씀이시다. 이 책은 적어도 부모님 속을 썩인다고 볼 수 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속 썩이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이 더 느끼고 반성해야 할 것이 많음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소년법정이 열리는 날 대기실에는 종일 옅은 한숨과 함께 우울한 기운이 떠돈다. 처분 전 소년분류심사원에 잠시 위탁되어 있던 아이들은 호송차에서 내려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이곳으로 들어와 대기실 한편에 마련된 철장 안으로 들어간다. 노란 머리의 소녀들 역시 포승줄에 묶여 맞은편 철창 안으로 들어간다. 익숙한 풍경인데도 비좁은 철창 안에 옹송거리며 서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늘 편치 않다. 보호기관에 위탁되어 있다가 재판을 받으러 온 아이, 부모의 한숨 섞인 한탄에 숨을 죽인 채 고개 숙인 아이, 자신의 처지가 서러운 듯 내내 울먹이는 아이, 어떤 처분이 내려질까 불안한 얼굴로 계속 손톱을 물어뜯는 아이…….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각한 듯 하나같이 춥고 어둡고 초조한 낯빛들이다.' p.23
법정 안의 분위기를 표현한 부분이다. 소위 말하는 '문제 아이'들이 최종적으로 가는 곳, 소년원으로 갈 때 꼭 거쳐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소년 법정, 이곳에 오는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 '응당 죄를 저질렀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지'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아이를, 거리로, 범죄의 세계로 내몬 것은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이 아이들에게 그리 쉽게 말을 던질 수는 없다.
소년범들은 성인 범죄자들과는 다르다. 소년들이 죄를 저지르면 소년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소년법의 내용은 이렇다.
'소년이 다시 비행이나 범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소년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보통의 인간이 되도록, 소년이 가지고 있는 숨은 가능성을 끌어내서 개성이 넘치는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배려하는 법.'
즉 처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용서와 관용의 법이다. 소년들을 미래의 범죄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랄 영혼들인데 잠시 순간의 잘못으로 길을 잘못 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용서하고 기회를 주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법이다. 법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소년법'의 내용은 감동적이다.
▲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표지.
ⓒ 우리학교
비행 내용의 참담함에 분노하기 전에...
'소년부 판사의 판결은 한 소년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늘 법정에 들어가기 전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 한다. 비행소년 역시 우리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야 할 대한민국의 소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해 달라고……. 소년들이 나의 처분을 죄에 대한 응보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전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런 다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법정으로 들어간다.' p27
저자인 천종호 판사의 법정에 들어가기의 심정이 적힌 글이다. 단순한 직업의식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고귀하다. 그리고 천종호 판사는 실제로 처벌을 위한 판결보다는 부모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소년들의 마음의 상처 등을 염두에 두고 판결을 한다. 상처난 곳의 순간 땜질이 아니라 그 원인인 깊은 곳의 상처부터 낫게 노력한다.
천종호 판사의 판결은 실로 특별하다. '어머님 사랑합니다'를 10번씩 크게 외치게 하고, 목사가 꿈이라는 아이에게 복음성가를 불러보라고 하고, 절도를 많이 한 아이들에겐 직접 마련한 지갑에 돈을 넣어주며 돈이 다 떨어지면 판사 아저씨에게 연락하라고 조용한 미소로 전달하기도 한다.
부모가 제대로 못하고 있으면 부모에게도 호통을 치고, 아이가 정신을 못 차리면 혼쭐이 나도록 호통을 치기도 한다. 청소년 회복 센터를 지나가는 길에 아이들이 보고 싶어 서행을 하며 기웃거리기도 하고, 퇴근 후 아이들에게 들러 저녁을 사 주기도 하고, 미혼모인 여자 아이에게는 배냇저고리를 사주기도 한다. 위탁 기관에서 무단 이탈한 아이에게 연락이 오면 차비를 주기도 하고 피곤해 하는 아이에겐 판사실에서 잠을 자게 배려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판사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비행 청소년들은 사연이 너무나 다양하다.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인지 알고 자랐는데 혈액형 검사를 해보니 친모친부가 아니어서 충격에 일탈을 하는 아이도 있고, 어머님은 도망 가시고 아버님은 돌아가셔서 자매가 절도를 하며 사는 아이들도 있었고 장애가 있어 주위로부터 상처를 받아 정상적인 삶이 힘들어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도 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학교폭력을 당해 힘들어 하는 학생도 있으며, 친구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힘들게 사는 아이들도 있다.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다시 법정에서 만나는 아이도 있고, 부모님의 잦은 이혼과 재혼으로 성(姓)만 네 번 바꿔 정체성의 혼란으로 일탈을 저지르는 아이도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일탈이 좋아서 스스로 찾아서 일탈을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살기 위해서 어찌 보면 가족으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이 아이들도 충분한 관심과 기회만 주어지면 좋아질 것이라 확신하고 여러 사회활동을 병행한다. 다행히 뜻이 맞는 분들을 만나 비행 소년 전용 그룹홈(집단적이고 폐쇄적인 시설의 문제점을 보완하면서도 부모와 가족을 대신하여 소년들을 보호해 주고 소년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가정과 같은 공동체)의 필요성을 알고 실천하여 샬롬쉼터, 자운영청소년센터, 열린센터, 소망센터, 어울림센터, 두드림 센터 등 청소년 회복센터의 설립에 도움을 줬으며 비행소년들의 성향에 맞추어 '국제금융고등학교 창원분교'의 개교에도 큰 지지를 보낸다. 생각만 곧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분이다. 실로 많은 귀감이 된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닙니다. 비행 내용의 참담함에만 분노하고 비행 소년들을 비난하기 전에 왜 어린 소년들이 비행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내몰았는지 반드시 되물어야 합니다.'
이 땅의 많은 어른들은 살기 바빠 주위를 잘 둘러볼 여유가 없다. 이것 또한 신자유주의의 유입으로 인한 무한 경쟁 체제의 결과이다. '경쟁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치며 앞으로 앞으로만 외치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 가족들의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은, 밖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모르는 부모님의 맞벌이와,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위로(?)를 들으며 집에서 혼자 자라고 있다. 학교에 가도 내신을 잘 받기 위해 짝을 이겨야 하고 친구를 이겨야 한다.
협동보다 경쟁을 강요하는 이 분위기 속에서 과연 우리의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탈선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목숨을 잃어야 어른들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바라볼 것인가. '이 나라의 미래는 청소년 너희들이야. 훌륭하게 자라다오'라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을 해야 한다. 정해진 시스템에 잘 적응하는 것이 성공, 적응치 못하면 낙오자라는 딱지를 강요해선 안 된다. 천종호 판사의 말은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반성을 하게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사회는 유기적 결합체이다. 내 아이만 행복하다고 사회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가 사는 이 사회가 행복해져야 내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다. '내 아이'에서 벗어나 '우리 아이'를 보도록 하자. 지금도 아이들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천종호 지음/우리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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