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진동 협성 엠파이어 아파트의 신나는 행사 이야기

저는 경남 마산 진동 주민입니다. 아파트에 살지만 농지가 많은 지역입니다. 총 537세대가 모인 아파트인데, 지구를 살리는 활동에 동참하기 위해 매달 소등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불 끄는 행사만 하니 재미가 없었고, 내려오신 분들이 그냥 걷다가 들어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예산을 확보해 지난 달부터 무료로 수박을 나눠드렸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나오셔서 수박을 나눠먹으며 이웃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등행사에 참여하는 세대가 늘어나고 있으니, 8월에는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 싶어 노래자랑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스마일 주민자치회에서 주관했습니다. 스마일 주민자치회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마을 공동체 활동에 동참하는 분들로 구성된 자발적 자생단체입니다. 7월 수박나눔행사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노래방 기기, 행운권, 물풍선까지... 판이 커지다

노래자랑의 시작은 미비했습니다. 금요일마다 열리는 아파트 알뜰장터가 야간까지 연장 운영된 8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알뜰장터 대표께서 노래방 기기를 빌려주셨습니다. 입주민 중 한 분이 사회를 직접 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그렇게 노래자랑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꼼꼼하고 철저한 기획 같은 건 없었습니다. 

행사 날짜가 다가오자 하루가 분주하게 돌아갔습니다. 관리소에서는 재미를 위해 경품 추첨을 해야 한다며 행운권 100장을 준비했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스마일 주민자치회에서는 노래만 부르고 끝내기에는 아쉽다면서 아이들을 위한 물풍선 던지기 이벤트를 구상했습니다. 물풍선 300개를 만들고 입간판을 제작했습니다.

아빠들이 자발적으로 돌아가며 물풍선을 맞았고, 아이들은 줄을 서서 신나게 던졌습니다. 던지는 아이들도 좋아했고 맞는 아빠들도 즐거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줄 서는 걸 도와주며 그 광경을 지켜본 엄마들은 십 년 묵은 체증을 날려버리듯 환호했습니다.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묻진 않았습니다

물풍선 던지기가 한창일 때, 한쪽에선 수박 나눔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큰 수박 15통을 준비해 오시는 분들께 나눠드렸습니다. 수박도 꿀맛이었습니다.


앞서 7월에는 수박 15통을 준비해 3통을 남겼습니다. 이번에는 15통이 순식간에 동났습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나오셔서 행사에 동참했다는 뜻입니다. 스마일 주민자치회 회원들은 각자 집에서 칼과 쟁반을 가지고 나와 수박을 자르며 주민들에게 권했습니다. 손도 아프고 허리도 쑤셨을 텐데 모두 신이 난 듯해 보기 좋았습니다.  

드디어 오후 8시가 됐습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노래자랑이 시작됐습니다. 사실 행사 시작 전에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2014년도에 입주한 이래로 아파트 입주민 노래자랑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고문이었던 시간
 

하지만 참여도가 낮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은 한국인들의 흥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기우였습니다. 행사 당일, 엄청난 인파에 깜짝 놀랐습니다. 노래방 기계가 구형이어서 최신곡이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입주민들의 열정은 기계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사회자의 뜨거운 진행과 신명 나는 트로트로 무장한 가수들의 무대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고문일 정도로 흥겨웠습니다.

엄마, 아빠들은 춤추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실컷 놀았습니다. 제가 눈짐작으로 세어봤을 때 최소 200명 이상이 아파트 광장을 가득 채운 듯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한 입주자 대표와 스마일 주민자치회 회원, 관리소 직원분들 모두 놀라며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아파트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나와 같이 노는 건 처음이에요. 모르는 분들이 나와 인사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고 보람 있어요."

입주민들이 아파트 분수대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동시에 소등행사도 진행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날 1시간 동안 소등행사를 진행했는데 참여율이 90%를 넘겼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들 유쾌한 밤을 보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관리소 직원과 입주자 동대표, 스마일 주민자치회 회원들은 따로 모여 뒤풀이를 했습니다. 다들 잔뜩 들떠 있었습니다.

"세상이 이런 아파트가 또 있을까요? 이사를 고민했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데 못 가겠어요."
"아이들이 또래들과 만나 뛰어노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아이를 함께 키우는 문화가 좋아요."
"이웃분들과 인사하고 알게 되니 서로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노래자랑, 앞으로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참여한 주민자치회지만 막상 가입하고 나니 왠지 모를 의무감 때문에 참여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너무 재밌어요."

아파트에서도 '공동체'가 싹틀 수 있을까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지원 사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 관리소장님이 알아보시고 지원했는데, 운 좋게 저희 아파트가 선정됐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입주민들과 작은 행사를 열기에는 충분한 돈입니다.

저희 아파트는 그 예산으로 꽃밭을 조성하고 노래자랑과 수박나눔 같은 행사를 열었습니다. 다음에는 입주민들을 위한 강좌도 신설할 계획입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재능있는 분들의 강좌 신설 안내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는 저희 아파트에서 최근 이어진 행사들을 지켜보며 마을뿐 아니라 아파트에서도 공동체 생활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몇몇 사례만 가지고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웃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경험이 늘어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은 동네의 아파트지만 저는 제가 사는 곳이 좋습니다. 한 분씩 알아가며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이 새 친구를 사귀어가는 일상이 좋습니다. 재산 가치로서의 아파트가 아니라 함께 사는 공간으로서의 아파트가 더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열릴 2회 노래자랑이 벌써 기대됩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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