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 사는 이야기

마산청보리! 만년필을 구입하다.

마산 청보리 2017. 2. 4. 07:00

한번씩 소비욕구가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웹서핑을 시작합니다. 필요한 물건이 없는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물건을 꼭 사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물건을 찾아보고 알아보는 것만해도 어느정도 해소가 됩니다. 


이번엔 꽂힌 것은 '만년필'이었습니다.


열심히 만년필에 대해서 검색했습니다. 몽블랑 만년필도 알게 되었고 만년필 입문부터 고급까지 다양한 정보도 알게 되었습니다. 만년필의 가격이 상당히 다양하다는 것도, 잉크 충전법도 만년필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더군요. 


하지만 결론은! 구입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게을러서 입니다. 항상 잉크를 구비한 상태에서, 때가 되면 잉크를 충전하는 정성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해서 결국 만년필은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설이 되었고 처가댁에 갔습니다. 딸아이와 심심해서 댓거리에 있는 문구점에 놀러갔습니다. 문구점에 가면 재미있는 것이 많습니다.^^


둘러보던 중... 앗!! 이것은!!!

만년필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의 장점 중 하나. 검색모드에 돌입했습니다. 검색해 본 결과 평도 나쁘지 않고.. 2,500원? 사보자! 결국 저는 모닝글로리의 'CLEVER PEN'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리필용 잉크가 무려 6개!!! 어느 정도 사용할 지는 알 수 없지만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습니다. 만년필을 분리해서 잉크를 꽂았습니다. '똑'소리가 날때까지 미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부서질까봐 힘을 천천히 줬거든요. '똑'소리가 나니 순간 성취감이! 

어릴 때 남의 만년필로 글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종이의 질감이 느껴지며 펜끝에서 사각거리는 느낌, 그 느낌이 생각났습니다.

오, 비쥬얼도 좋았습니다.

역시나, 상상하던 느낌, 그대로였습니다. 사각거리며 잉크가 종이에 스며드는 것이 보이는, 글을 쓰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만년필을 산 김에, 일기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온가족이 모두 잠든 밤에 스탠드를 켜서 일기를 씁니다. 일기는 초, 중, 고 시절 꾸준히 썼습니다. 지금도 집에는 제가 썼던 일기장들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썼던 일기장들>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6학년 때, 흔한 공책형 일기장이 아니라 작은 열쇠가 달린 멋진 수첩을 선물받았습니다. 그 때 그 수첩이 너무 좋아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습관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생활 할 때까지 상당히 오래 일기를 썼습니다. 


물론 꾸준히 썼던 것은 아니었고 썼다가 멈쳤다가, 다시 썼다가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만년필을 산 김에 지금 다시 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일기를 읽어보니 이건 뭐, ㅋㅋㅋ 기록도 아닌 것이, 반성도 아닌 것이, 저주에 욕설에. 하지만 일기를 통해 억한 감정이 표출되었고 그 과정을 거쳐 지금의 제가 건강하고 현명하며 예의바르게 자랐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일기의 순기능이 분명히 있습니다.


손으로 글을 직접 쓴다는 것은 왠지 모를 따뜻함이 있습니다. 다시 손글씨를 시작하게 된 김에, 간만에, 고마운 분들께 편지를 써서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고 후에 편지를 받게 되셔도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디지털의 편리함을 이야기합니다.컴퓨터의 다재다능함을 이야기합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곁에 아무도 없어도, 하루종일 혼자 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전기가 없으면 그만입니다. 


아날로그는 전기가 없어도 됩니다.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 빠르지 않아도, 사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만년필로 글을 쓰며 추억에 젖습니다. 이쁜 문장을 따라 쓰며 마음이 평온해 집니다. 별 것 아니지만 별 것인, 2,500원 짜리 만년필 하나로 행복해진 마산청보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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