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입니다. 아니 사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네요. 2013년 1월 22일에 세상에 나온 책입니다. 4년이 지난 책입니다. 이 책을 쓰신 김의기님은 특별한 이력이 있습니다.
-김의기는엄청난 독서광으로서 세계가 인정하는 국제통상 전문가이다. 그는 WCO, WTO등 국제기구에서 24년간 원산지 규정 전문가이자 관세 평가 전문가로 활약하면서 각국 최고의 통상 전문가들을 상대하였고, 강연을 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 이처럼 치열하게 일하다보면 잠조차 제대로 못 잘 때가 많았다. 하지만 김의기는 한 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본문 중)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으며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본업과 자신의 삶이 풍요롭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그리고 독서회에서 책을 함께 읽으며 만난 분들과의 독서토론이 아주 뜻깊었다고 소개합니다. 그 분들과의 독서토론과정에서 의미있었던 대화가 이 책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태생마저 평범하지 않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학에 관심이 생긴 저는 평소 책 많이 읽기로 소문난 지인에게 '문학작품을 접하고 싶은데 괜찮은 책 좀 추천해줄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 책을 주며 말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고 직접 골라라. 내가 함부로 추천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이 책이 어떤 책이길래, 이 책을 추천했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책장을 펼쳤습니다.
독서광이 추천한 책
김의기님은 책을 아주 좋아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이 분은 책을 읽는 자세가 남달랐습니다. 단지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마음까지 읽으려고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책 속에서 저자의 마음을 읽었을 때, 그 경이로움을 온 몸으로 느끼셨던 분입니다. 이 책에는 그가 추천한 30권의 책과 소개글이 있습니다. 찬찬히 읽다보면 그가 책들을 어떻게 만났는지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6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사랑, 치열하게 때로는 유쾌하게'에서는 사랑에 관련된 고전들을 소개합니다. 닥터 지바고, 적과 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채털리 부인의 연인, 데카메론, '2부 격동의 시대는 대작을 낳는다.'에서는 각 나라의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씌여진 대작들을 소개합니다. 전쟁과 평화,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밤은 부드러워,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3부 명불허전, 단 한 권의 책'에서는 레 미제라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돈키호테, 국가론, 햄릿을 소개합니다. '4부 작품을 음미하라.' 안나 카레니나, 무기여 잘 있거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보바리 부인, 싯다르타, '5부 하늘이 처음 열리다.'에서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오이디푸스 왕을, 마지막 '6부 생각하는 갈대가 되라.' 에서는 이방인, 파리떼, 인간의 굴레에서, 수레바퀴 아래서, 구역질, 군주론, 팡세'를 소개합니다. 총 30권을 소개합니다. 익히 읽었던 책도 있고 제목만 들었던 책도 있었으며 제목도 처음 들은 책들도 있었습니다. 어려울 것이라고 외면했던 책도 있더군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적어도 책에서 소개된 30권은 꼭! 읽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습니다.
레 미제라블을 읽어야 하는 이유
저자는 책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해석만 풀어쓰지 않습니다. 작품의 원문을 소개하고 친절하게 시대적 배경, 주인공의 심리, 작가의 상황 등 다양한 부분을 덧붙여서 작품의 완성도를 더합니다.
-압축된 문장과 긴장된 장면의 묘사가 정말 탁월하다...소녀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고도의 감수성을 보이는 것은 파스테르타크가 시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문장에서 전율이 느껴진다. (닥터 지바고 설명 중)
-1830년에 출간된 '적과 흑'을 읽고 비평가들은 스탕달의 심리분석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소설은 가정교사 쥘리앵을 경쟁 상대에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레날 시장의 심리, 가정교사가 자신의 아이들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어머니의 심리 묘사 등으로 시작하자마자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스탕달의 작품을 '심리적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 탁월한 심리묘사 때문이다. 후에 이 기법은 톨스토이에 의해 절정에 이르게 된다. (적과 흑 설명 중)
-로렌스의 언어는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고, 감각적이다. <무지개>에는 수많은 감각적 영상이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달이 뜬 호수에 돌을 던져 달을 조각내는 장면은 한 편의 영화 같다. 로렌스의 달은 살아있다. 달은 죽음처럼 사람을 유혹한다. 그러나 우리는 달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설명 중)
이 외에도 많은 내용에서 저자가 고전들을 어떻게 읽었으며 어떻게 해석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김의기님은 각 책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좀더 깊고 흥미로우며 재미있게 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길을 안내합니다. 책들을 소개한 마지막부분에는 각 작품별 저자의 삶과 저자의 마지막 순간을 기술하여 독자로 하여금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선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나서 수많은 고전 추천 도서가 나왔습니다. 그 책들은 주로 고전의 내용에 초점을 맞춰 오늘날에 사는 우리에게 거울을 보여주기 위해 씌여졌다면 이 책은 온도가 약간 다릅니다. 책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창조한 작가의 삶도 책 내용 못지않게 깊게 다가갑니다. 왜 책이 나왔으며, 왜 이 책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이 작가가 어떤 부분에서 뛰어난지에 대한 부분까지 감동을 얹어 풀어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레 미제라블을 읽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의기님은 '레 미제라블'을 소개하며 '세상에서 딱 한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레미제라블'이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소개합니다.
-'레 미제라블'은 성서보다 더 성스럽다. 성서는 오랜 역사적 기록물로, 사도들의 시대가 끝난 이후의 기록물은 성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성서의 정신에 따라 쓴 작품으로, 고대 문서가 따라갈 수 없는 감동과 논리와 박자와 화음으로 신의 계시를 들려준다. 나는 이 책이 최고의 성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책을 읽기도 전에 겁을 먹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방대한 분량에 압도되지 말고 일단 책을 읽어보라. 소설은 재미있고 평이하다. 이 책을 읽으면 독자들의 지식이 지금보다 1000배는 증가할 거라고 생각한다.(본문중)
얼마나 자극적으로 책을 소개하는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저를 느꼈습니다. 이 부분을 읽고 '레 미제라블'을 주문하고 있는 저를 봤기 때문입니다. '레 미제라블'을 소개하며 저자 위고에 대한 설명도 덧붙입니다. 그의 생애, 책의 배경이 된 워털루 전투, 대 사건은 대 문학을 낳는다는 본인의 소명, 위고의 죽음과 그의 죽음 이후 유럽 문화의 주도권이 러시아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까지...'레 미제라블' 뿐 아니라 이 책만 읽어봐도 지식이 지금보다 100배는 증가할 것 같습니다.
저자 김의기
이 책을 쓰신 김의기님은 2015년 7월 10일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위대한 작품들과 독자들의 만남을 얼마나 더 주선했을지, 안타까움이 큽니다. 그는 이 책 외에도 '어느 독서광의 더 유쾌한 책읽기(현대문학편), 나는 루소를 읽는다.'등을 지필하셨습니다.
그가 생전, 경남 창원에 있는 독서클럽에 왔던 적이 있었나 봅니다. 당시 독자분에게 적어주신 글을 보면 그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대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책은 분명 웅대한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글자로만 읽어서는 그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김의기님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 책을 읽었고 또 다른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우침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우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 한권도 우주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창조했지만 그 창조의 끝을 알 수 없는 것, 그것이 문학입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비록 김의기님은 세상엔 없지만 그의 책은 더 많은 분들에게 인문의 힘과, 감동의 세계를 접하게 할 것입니다. 그를 잘 모르지만 그의 삶이 실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남긴 책들로 인해 더 많은 분들이 감동의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유쾌한 책읽기'이지만 단지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더 이상 그의 신간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고 이 책을 읽기 전처럼 다른 책들을 쉽게 읽지 만은 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유쾌'가 아니라 '깊이 있는'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어느 작가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은 그 책을 몇 시간만에 다 읽을 지 모르겠으나 작가는 그 책을 창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았는지 모릅니다.'.
책을 쉽게 평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쉽게 평한다면 본인이 책을 쉽게 읽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인간의 감성적 본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시대에 맞게 창조해 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책을 읽고 싶고, 책을 만나고 싶어하는 모든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적어도 이 책은 좋은 책을 추천하는 것과 더불어 책을 만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책입니다.
감동의 세계, 책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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