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40대의 섹스도 뜨겁다.('드라마 퀸'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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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설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허구이고 허구는 현실이 아니기에, 지식이나 지혜습득에 별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독서는 곧 지식이나 지혜를 얻기 위해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지인이 소개해 준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라는 책을 접하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김의기님이 쓴 이 책은 저자가 읽었던 감명깊었던 문학작품에 대해 소개를 합니다. 


문학작품에 대한 소개글을 정말 매력적으로 적었습니다. 김의기님이 쓰신 이 책을 읽고 나면 문학에 대한 호기심이 절로 생깁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서양문학만을 다룹니다. 저는 한국문학을 먼저 읽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개인 생각에 외국작품이 훌륭할 수도 있으나 시대의 고전이라고 칭송받는 작품도 글이 발표된 당시에는 흔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했고 외국작품은 아무리 번역이 훌륭하다고 하더라고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저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우리나라 문학부터 접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고은주님이 쓰신 '드라마 퀸'이라는 소설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여자 40대, 한 번쯤 이혼을 꿈꿀 때'가 부제목입니다. 표지만 보고서 '40대 여성들의 이야기겠구나.' 라고 짐작했습니다. 뒷표지에는 더 자극적인 글이 적혀 있습니다. '섹스에 관한 오해와 농담 그리고 거짓말' '헉! 이거 뭐지? 포르노 그라피인가? 우리 문학도 소재가 아주 다양해 졌구나'고 생각하며 왠지 떨리는 마음을 안고 책장을 펼쳤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이야기


이 책은 40대 중 후반 여성들의 초등학교 동창회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다양한 삶들을 살고 있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영화 '써니'처럼 강렬한 7공주는 아니더라도 사춘기를 각자의 형태로 함께 보낸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춘기시절의 과거를 기억하는 상황이 개인별로 다르지만 다같이 과거를 회상하다보면 기억의 퍼즐이 맞춰지는 신기한 경험들을 하며 일상에 찌던 중년의 여성과 남성들은 또 다른 만족을 하게 됩니다. 


서로를 짝사랑했던 기억들, 하지만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던 인물들, 30년이 지난 지금에 만나 첫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들, 하지만 그 고백에 풋하고 웃어버리는 여자들, 서로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잘 모르는 절친 3총사들, 평범한 가족이 더욱 중요한 지 알지만 가족들로부터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동창들로 부터 만족하는 친구들...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의 동창들이 생각났던 것은 이 책이 그만큼 사실감있는 스토리로 독자의 마음을 읽어냈기 때문입니다.


40대의 섹스도 뜨겁다.


포르노그라피는 아니지만 내용 전개 상 적당한 긴장감의 성적내용도 나옵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성적으로 일탈행동이 일어날 정도의 자극적인 내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지는 40대의 섹스는 진솔합니다. 유쾌합니다. 진한 성적농담을 동창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하고, 같이 웃는 장면은 야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긴 시간이 지나 몸은 40대 중반이지만 마음은 10대의 친구들입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친구들은 40대 중반이 아니라 10대때의, 자신들의 기억 속에 있는 친구 모습들입니다. 시간이 흘렀다는 증표는, 어렸을 때에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제는 술의 힘을 빌리든, 어떤 형태로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오해가 되든, 새로운 인연이 되든, 아무튼 편안하기에 용기내어 말을 하게 됩니다. 과거를 추억하기에 너무 편안했던 이야기 입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기에 그들만의 섹스도 다양합니다. 남편과 두 딸이 있지만 드라마에 흔히 그려지는 남편과 사랑하는 관계가 아닌, 마지못해 함께 살고 있는 친구, 이혼하고 연애만 하며 즐겁게 사는 친구, 누구나 부러워했지만 3번의 이혼을 해 친구들이 의아해 하는 친구, 한번의 결혼 실패 후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며 딸을 키우며 사는 남자 동창생,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각자의 현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현실에서 각자 '나'는 그리 행복하지 않습니다. 재미있지 않습니다. 해서 그들은 동창커뮤니티를 통해 번개를 치고 주기적으로 만나 술을 먹고 같이 노래방에 가서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호한 상태로 각자의 스트레스를 풉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모르는 분이 보시면 '뭐야, 흔한 연애소설이잖아.'라고 평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책 소개를 잘 못한 제 탓입니다. 이 책은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제가 일일이 소개하지 못했지만 이 책에는 동창회 친구들 뿐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이야기의 재미를 더합니다. 주인공 은화씨와 두 딸과의 대화를 들으며 단순히 엄마와 딸의 대화가 아닌 엄마가 된 과거의 소녀와 현재의 소녀를 이해하게 됩니다. 


은화씨의 두 절친과 은화씨 두 딸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라는 의문을 던집니다. 끝까지 신랑이 나타나지 않은 605호 여자를 보며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과연 무조건적인 축복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일로 인해 남편과 깊은 대화를 하게 되는 은화씨를 보며 가족이란 비밀이 없는 것인가? 어떤 대화가 필요한가? 불화의 시작은 무엇이고 해결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양한 친구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과연 완벽히 행복한 삶이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보고 느끼는 나의 삶과 타인이 보고 느끼는 나의 삶은 분명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기혼 여성들의 삶이 궁금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저는 기혼 여성들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혼 여성들이 '드라마'라는 것을 보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자식들과 싸우는 이유, 남편과의 문제, 불륜이라고 칭해지는 또 다른 남자와의 만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의 삶, 정확히 말하면 현대의 기혼 여성들의 삶에 대해, 그녀들이 갑갑해 하는 현실, 그녀들의 고민들, 그녀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습성들까지,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재미있는 책입니다.


서두에 제가 소설을 즐겨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이 허구라고 해도 현실과 전혀 상관이 없는 허구가 아니며, 그냥 허구가 아니라 저자가 현실을 바탕으로 창작의 고통을 거쳐 쓴 결과물이며 저자는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픈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논설문이나 칼럼이라면 간단히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하고픈 말을 전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임은 분명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책속에서 만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오래전 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나도 그랬었지, 그 때 그 친구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내가 지금 사는 삶은 행복한 삶인가?'


고은주작가님의 '드라마 퀸'은 아내에게 '갱년기아냐?'라는 말을 무심코 던지시는 남편분들,  '도대체 집사람은 뭐가 부족해서 저리 불만이 많은 지 몰라. 하루종일 집에서 놀면서 말이야.'라고 생각하시며 남편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엄마 갱년기야.'라고 말하는 자녀분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내 친구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라며 신세를 한탄하시는 어머님들께서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40대의 섹스가 궁금하여 펼친 책인데 덮고 나니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매력적인 책입니다. 이제 저는 소설에 빠질 것 같습니다. '드라마 퀸'은 소설을 읽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책입니다. 


소설은 현실입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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