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인이 책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삐뚤빼뚤 질문해도 괜찮아.'
제목이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세상과 마주하기 시작한 10대들의 철학 상담소'라는 부재도 신선했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철학 교육과 상담에 꾸준히 힘써 온 희망철학 연구소가 세번째로 출간한 책입니다. 희망철학연구소는 이전에 '삐뚤빼뚤 생각해도 괜찮아.', '쓸모없어도 괜찮아.'라는 책을 출간했었습니다.
'삐뚤빼뚤 생각해도 괜찮아'는 누구로부터도 제지당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거리낌 없는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며 사고의 심화를 꾀했습니다. 이상, 역사, 사랑, 악, 의지, 행복, 건강, 과학, 노동, 자유 총 열가지 주제를 정해, 청소년들이 이전과 다른 시선과 관점을 가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갈 수 있게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서문 중
서문에 소개된 바와 같이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한 철학책입니다. 청소년들이 평소에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어른들과 이야기 나누며, 세상을 보며 느끼는 궁금증에 대해 10가지의 꼭지를 뽑아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적은 책입니다.
삐뚤빼뚤한 질문이 우리를 새롭게 해요.
책은 총 10개의 꼭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상꼭지에서는 유토피아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인류의 오랜 기간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그 유토피아의 모습은 모든 사람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세상입니다. 지금을 사는 현대인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나 우리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가 이뤄 낸 수많은 일들은 과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 법치, 여성의 투표권, 아동의 권리, 모두가 수많은 희생을 통해,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씩 이뤄져 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이 있기에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획일화된 교육을 받지만, 사회는 창의적인 인간을 원합니다. 스팩을 쌓으라 하여 열심히 스팩을 쌓지만 취직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대학을 가기에 대학을 가지만 기대했던 것 만큼의 대학생활은 아닙니다. 차라리 학자금대출이라는 빚을 안고 사회로 나오는 학생들이 더 많습니다.
어른들이 시켜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유토피아는 무엇일까요? 그 유토피아는 아이들에게만 좋은 세상일까요? 유토피아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조차 가지지 못했던 아이들에게는 고민할 꺼리를,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에게는 의미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사람이 악인인가?
인간의 악을 다룬 꼭지에서는 악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간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도대체 악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온 걸까? 악은 특정한 악의 세력에 의해 생겨나는 것인가,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무심한 행동속에서 나타나는 것인가?'-본문 중
'악'이라는 것은 그냥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는 무엇이며 그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한 예로 2차 대전 중 독일 장교로서 유대인의 체포와 강제 이주 등을 계획하고 효과적인 살해 방법까지 꾸준히 연구하고 고안했던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에 대한 연구 결과를 인용합니다.
그를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로 만든 것은 바로 사유 없음이었다. 현실에 대한 무감각과 이런 무사유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악보다도 더 큰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그의 재판에서 배울 수 있었던 교훈이었다. - 본문 중
사회에서는 주로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모범적 사람이라고 칭하는데, 모범적 사람이었던 아인히만의 그 모범적인 행위가 인류사에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무런 생각과 반성 없이, 시키는 대로,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때 악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악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으며 스스로의 판단과 고민이 없을 때 괴물이 되어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모범생이 결코 훌륭한 것만이 아닐 수 있음을 일 깨우는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흔히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어른 말 잘들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직장 상사 말 잘들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과 판단없이 무조건 말을 잘 들어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C. S 루이스라는 작가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나오는 글은 현대의 악행에 대해 소름끼치게 잘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악은(...) 추악한 '죄악의 소굴'에서 행해지지 않는다. 강제 수용소나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실행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곳에서는 악의 최종적 결과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악을 구상하고 지시하는 일은 (...) 카펫이 깔린 깨끗하고 따뜻하며 환한 사무실 내부에서, 흰색 와이셔츠에 잘 정돈된 손톱과 매끈히 면도한 얼굴로 좀처럼 목소리를 높일 필요 없이 조용히 일하는 화이트 칼라들에 의해 이뤄진다. - 본문 중
악인은 우리가 상상하는 험상궃은 얼굴에 욕설이 입에 붙은 사람이 아니라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이러한 악과 정신적 피폐함에 시달리는 것일까요?
건강꼭지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미열과 미세한 복통에도 병원을 찾고 약을 처방 받아 육체의 건강은 유지하려 하지만, 정신적 피폐함과 정서적 불안은 건강의 문제라 여기지 않고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현대인들이죠. -본문 중
외모와 남들에게 보여지는 부분에는 지나칠 정도로 준비를 하지만, 정작 내면을 다스리는 것에는 인색한 현대인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외모의 건강에는 치중하지만 정작 정신적 건강에는 소흘히 해 결과론 적으로 우울증, 싸이코 패스 등 정신적 병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할 수 없으며, 더 많은 물질을 가지기 위해 나의 노동을 팔고, 수많은 사람들과 무한경쟁을 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무조건 유익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10대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고민해야 한다.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사랑이 필요한 이유, 역사를 인식하는 다양한 방법, 노력의 중요성, 행복이란, 삐뚤게 본 과학, 인간의 노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10대들을 위한다기에 이 책을 가볍게 보고 책장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이 책은 10대들을 위해 간략하게, 대충 쓴 책이 아니었습니다. 9명의 저자들은 현실을 사는 대한민국 10대들을 위해 깊고 친절하게 책을 집필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쓴 희망철학연구소는 희망의 공부방 사업에 기반을 두고 소외 계층 아동과 청소년을 위해 2011년 설립된 희망네트워크에서 활동하던 철학 교수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철학을 통한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고자 2014년 1월 정식으로 설립된 연구소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철학을 통해 아이들 삶의 변화를 도모하는 곳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주제들, 당연히 결과를 안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책의 시작 부분에 적혀있는 글귀는 쉽게 잊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삐뚤빼뚤하다. 똑바로 서 있다는 것은 죽어 있는 것들의 특징이다.'
똑바르고, 곧은 것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행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은 10대들,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을 하시는 어른분들께도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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