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읽어주는 남편 책 표지. 출처 : 예담
책장을 덮었습니다. 여운이 긴 책이었습니다.
지은이 허정도님은 제가 평소에도 알고 존경하던 분이었습니다. 어떤 책인지 궁금하기도 하여 책을 선택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허정도님은 건축을 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건축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차라리 사람 내음이 짙은 책이라 할만합니다.
허정도님의 사모님께서 안부대상포진이라고 하는 병을 앓으셨습니다. 저자는 아내의 아픔을 마냥 보고만 있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습니다. 우연히 책을 들고 아내 곁에 앉게 되지요.
"아내는 꼼짝못하고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이 책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를 읽어주겠다며 아내 곁에 앉았던 겁니다. 처음 책을 집어들 때의 의도는 통증을 참아내며 힘들게 누워 있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와 의무, 혹은 서비스 차원의 이벤트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아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나의 제안을 반길 줄은 알았습니다." (본문 중)
이렇게 시작된 책읽기
책을 소리내어 읽기는 참 생소합니다. 혼자 읽을 때도 눈으로만 읽지 소리내어 읽기는 시도해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저자는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며 마음 아픈 이야기에는 함께 울고 속상한 이야기에는 함께 안타까워 하며, 그렇게 하나가 되어 갑니다.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를 읽었을 때 부부의 아픈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우리는 서로 끌어안은 채 키스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입술에 그러고는 볼에, 청중은 계속해서 박수를 보냈다. 우리에게도 박수소리가 들렸지만 마치 그들이 여기말고 어디 먼 곳에 있는 듯이 여겨졌다. 서로에게 안겨 있던 그 순간, 재이가 무언가 내 귀에 속삭였다. "제발 죽지 말아요."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대사였다. 하지만 그게 그녀가 한 말이었다. 나는 그저 그녀를 더 세게 껴안을 뿐이었다.(마지막 강의 중) 아내와 세 아이 곁을 영원히 떠나야 하는 포시의 슬품이 우리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본문중)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헤어지는 '마지막 인사'라고 소개합니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카네기멜론 대학의 컴퓨터 공학 교수 랜디 포시가 2007년 9월 18일 동료교수와 학생들 400여 명 앞에서 한 마지막 강의입니다. 포시 교수는 강의를 마치고 10개월이 지난 2008년 7월 25일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마운 아내와 사랑스런 아이 세 명을 남기고 말입니다.
저자는 <마지막 강의>를 읽으며 당신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리어카를 행상하시는 아버지를 부끄러워 했던 이야기, 스물다섯에 갓 결혼한 큰아들과 아래로 스무 살이 채 못된 두 아이를 더 남겨 놓게 세상을 떠난 당신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립니다.
평범한 책 소개 글이 아닙니다. 저도 이와 유사한 많은 책을 읽어 보았지만 이 책은 단지 책의 멋진 구절을 인용하고 자신의 느낀 점을 화려하게 기술한 책이 아닙니다. 소박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함께 느끼고 함께 감동하며 함께 슬퍼하며, 그리고 그 마음을 자연스레 자식들에게까지 울려가는, 참 따뜻한 책입니다.
삶이 각박하십니까?
저자는 20여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부부가 함께 느꼈던 것을 소개하며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돌아봅니다. 어찌보면 자서전의 분위기 마저 느껴집니다. 저자는 지금도 마산에서 바른 세상, 가치있는 삶을 위해 열심히 살고 계십니다. 책을 읽기 전에도 존경했던 분이지만 책을 읽고 나니 더 가까워진 느낌이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을 잘 읽었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부끄러워 하시며 부족한 걸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니 감사하다는 답이 왔습니다.
삶은 가볍지 않습니다. 의미없는 삶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파란 하늘이 높은 깊어가는 가을에,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감동을 주는 책, <책 읽어주는 남편>을 추천합니다.
책 읽어주는 남편 - 허정도 지음/예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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