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 사는 이야기

빨갱이에게 없는 4가지!

마산 청보리 2014. 5. 14. 07:00

생명 살림 엄마 학교 마산 YMCA 제 16회 '촛불대학', 그 두번째 강의가 열렸습니다. 초청강사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였습니다. 워낙 저술활동도 많이 하시고 외부 특강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 상당히 설레였습니다. 주제는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 무슨 역사를 어떻게 풀어내실까를 기대하며 강의를 들었습니다.


▲ 강의를 시작하시는 한홍구 교수님. 인상이 참 좋으셨습니다.


빨갱이에게 없는 4가지. 


한홍구 교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주제는 역사이야기 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세월호 사건이 있기 전이었죠. 지금은 다릅니다. 해서 세월호 사건을 역사와 책임의 시각에서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작년에 대 히트를 쳤던 영화 변호인을 보셨습니까? 그곳에 나왔던 송변호사는 실제로 어찌 되었습니까? 네 죽었습니다. 그럼 고문기술자였던 차동영이는 어찌 됐습니까? 차동영이를 조종했던 강검사는요? 강검사를 조종했던 그 윗분은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까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송변은 죽었지만 현실의 차동영이는 승승장구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강검사도 마찬가지고요. 그 윗선도 잘 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권력과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이거 잘못된 것 아닙니까? 나중에 자식들이, 아니면 손주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엄마, 할머니 저 변호사는 어찌됐어? 그럼 저 못된 고문기술자는? 그럼 저 검사는? 실제로 어찌됐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의 역사는, 권력은, 그들만의 리그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 변호인을 예로 들며 강의를 시작하시는 교수님



뒷통수를 후려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영화에선 송변의 열정만 눈에 들어왔고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 송변의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는 말에 격한 희열을 느끼며 극장을 나섰던 기억 뿐이었습니다. 


교수님 말씀은 계속되었습니다.

"대공수사부를 아시나요?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필요에 따라 '변호인'에 나온 예처럼 평범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고 잡아가고 사람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문을 했던 조직입니다. 당시 그곳의 국장을 4년이나 맡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현 대통령실 비서실장인 김기춘입니다. 이 사람이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전두환 정권 때의 대표적인 공안사건이었던 학림사건 아십니까? 31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죠. 당시 무고한 25명에게 모두 실형을 선고했던 학림사건의 판사가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황우여입니다. 이 사람 지금 어찌 살고 있습니까? 새누리당 당대표입니다. 그렇다면 영화 '변호인'의 실제 사건이었던 부림사건, 부림사건의 판사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최병국입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개헌특위위원장을 지낸 전 국회의원입니다. 최소한, 이 사람들이 영화속의 국밥집 아줌마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살고 있습니까?"


"이승만 정권 때부터 권력층 에서는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몰아서 죽여 왔습니다. 실제로 그 사람들이 모두 간첩이었을까요?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빨갱이들은 4가지가 없어서 찍혀서 죽었던 겁니다. 이 4가지가 뭘까요?"


교수님은 손가락 4개를 펴 보였습니다. 어려웠습니다.


"사가지 입니다. 싸가지가 없다고 찍히면 빨갱이가 되어 죽었던 겁니다."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그의 스승이며 박종철 고문 사건 때 최고 책임자 박처원, 그의 스승이며 일제시절 친일파이며 악질 고문경찰이었던 노덕술로 이어지는 국민을 때려 잡는 사람들의 행태들을 설명하실 땐, 여기 저기서 한숨과 분노의 탄식이 새어나왔습니다.


▲ 강의 중 자료, 우리나라에 병역비리가 급증하는 이유. 이명박 정부 때의 군면제자 현황입니다.


안전불감증인 대한민국


"대한민국 헌법 제 34조 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세월호에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구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까? 왜 대통령은 질책만 있고 진정어린 사과는 없을까요. 왜 같이 아파하지 않을까요. 국민을 초월한 존재입니까? 부모들이 영정을 들고 새벽 4시에 청와대로 간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잠옷 바람으로라도 뛰어나와 같이 울어줬어야죠."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나라에 이상호, 손석희 같은 기자가 3명만 있어도 언론은 변합니다. 언론도 오래전 부터 길들어져 왔던 것입니다. 바꿔야 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안전 관련직의 70%가 비정규직입니다. 왜냐구요? 비용절감을 위해서 랍니다. 기업을 위해 규제를 풀어 오래된 배를 사오게 했고, 수명을 연장하고, 과적단속을 소흘히 하여 이런 사고가 났습니다. 규제푼 것 때문이죠. 경제성장을 위해서랍니다."


"나라의 안전불감증은 심각합니다. 전 사실 너무 걱정이 큽니다. 세월호 사건이 마지막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경고일까봐...너무 걱정이 됩니다. 고리 1호기가 터진다면? 만약 이 사건에 대한 경고라고 생각하면 잠이 오질 않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 바로 그 날!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수명이 가장 오래된 고리 원전 1호기를 재 가동하였습니다. 지난 2007년으로 설계수명인 30년이 다된 고리 원전 1호기를 정부가 10년 더 수명을 연장하여 재가동시켰습니다. 만약 잘못된다면..마산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여러분을...지켜줄까요..?"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 교수님의 설명에 놀라며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역사는 진보하는 것 같습니까? 대한민국은 불쌍합니다. 국민들이 불쌍합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를 도와줘야 합니다. 치유해 줘야 합니다. 엄마들이 바꿔야 합니다.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해방 후 친일세력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100:0 에서 시작했던 힘이 이제 51:49 까지 왔습니다. 국민들의 저항과 각성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끝낼 수 없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며 우리의 좌절, 분노로 대한민국을 바꿔야 합니다. 서로를 믿고 치유해 주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투표로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안했기 때문에 안바뀌는 것입니다. 저들이 어찌했고 어찌 할 것이라는 것을 각성하면 바뀔 수 있습니다. 미군 고위 관료들의 아들들도 한국전에서 많이 죽었습니다. 하물며 모택동의 아들도 한국전에서 죽어 북한에 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전쟁에서 한국 고위층이나 그의 자식들 중 전쟁하다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까? 저들은 제 몸 보호하러 도망다니기 바빴습니다. 국가가 힘든 일이 생기면 저들이 어찌 할 것이라고, 아직도 예상되지 않습니까?"


무엇을 해야 하나.


한홍구 교수님은 훨씬 더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의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해했는지, 진정한 보수는, 나라를 위하는 진정한 보수는 어떤 것인지, 제헌 헌법을 공부해 봤는지, 광주 5 .18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이 도청을 공격했던 5월 26일 도청에선, 광주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인혁당 사건 때 검사들이 단체로 사표를 제출했는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무엇인지...


막막했습니다. 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고 어떻게 풀어야 하며, 막막했습니다.


교수님의 강의가 모두 끝나고, 조원 어머니들과 느낌을 나누었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말들이 오갔습니다.


▲ 강의가 마친 후 조별로 모여 느낌을 나누고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없었다. 이젠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집에만 있으면 안되겠다."


"계속 공부를 해야 함을 느꼈다."


"우선 투표부터 열심히 해야 겠고 바른 유권자로써 생각있는 선택을 해야 겠다."


촛불대학은 참 특별한 것 같습니다. 들을 때 마다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변화한다고 봐야 겠죠.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 역사의 진보를 믿습니다. 한발자욱, 두발자욱씩 퇴보가 있더라도 그만큼 나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 아이가 성인이 될 때, 더 나아지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지금의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단지...


4월 16일 당시, 세월호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것 아닐까요. 만약 그 때 그 배에 우리가 타고 있었다면, 내가 타고 있었다면 지금과 다른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만약 다른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믿으신다면...재고해 보시라고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세월호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남의 일처럼 반응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너무 억울하고 슬프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데! 사람들이 무관심하게 반응하고 유가족중에 빨갱이가 있다라고 외치는 것을 들으신다면....말로는 구조를 하고 있다고 계속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면...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각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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