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금곡고등학교는 2020년 개교한, 작은 기숙사형 공립 대안학교입니다. 저는 이곳의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금곡고에선 지난 6월 13일부터 6월 17일까지 특별한 평가활동이 있었습니다. '교육연극을 활용한 통합수행평가'(이하 연극수행평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연극이 학교 교육과정에 접목된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연극이 학교교육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왔습니다. 2015 개정교육과정은 학습의 질을 강조한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합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의력을 골고루 갖춘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내용에 맞추어 다양한 수업 활동이 시도되었고 연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김해금곡고 이전에 이미 많은 초·중등학교가 연극을 교육과정에 넣어 운영했습니다. 연극동아리도 많이 생겼으며 연극고등학교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김해금곡고의 연극수행평가는 결이 좀 다릅니다. 교육연극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활동에 전 과목이 수행평가를 같이 실시합니다. 그리고 전 과목을 관통하는 주제를 정해 연극수행평가 하기 전, 수업 시간에 통합수행평가를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예를 들면, 국어 시간에 '시나리오 쓰기' 등을 배우는 식입니다.
김해금곡고만의 '연극'수행평가
김해금곡고등학교 연극수행평가는 2021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첫해부터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구민정 교수와 대학원생분들이 외부 강사로 같이 하고 계십니다. 2021년은 2학급이었기에 네 분이 오셨고 올해는 3학급 이어서 여섯 분의 외부강사선생님들이 오셨습니다.
올해 연극수행평가의 주제는 '공존'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세 개 팀으로 나뉘었습니다. 1학년은 A팀, 2, 3학년은 섞어서 B팀, C팀이 되었습니다. 1학년은 연극수행평가 시나리오로 '회색인간'을 기반으로 작업했고, B팀은 '1차 세계대전'을 배웠고 그 내용을 기본으로 창작활동을 했으며, C팀은 철학 시간에 배운 '행복마을 공동체'라는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모티브로 작업했습니다.
월요일 시나리오 쓰기를 시작으로, 소품 제작, 음향, 연출, 의상, 연기까지 아이들은 연극 선생님들의 조언과 지도 속에 하나씩 하나씩 완성해 갔습니다. 2, 3학년으로 구성된 B팀, C팀은 진도가 빨랐습니다. 연륜이 있어서인지 B팀, C팀 아이들은 시나리오 작업부터 원활하게 진행했습니다. 반면 1학년들은 시나리오 작업에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월요일 시작한 시나리오 작업은 수요일 오전이 되어서야 얼추 마무리되었습니다. 1학년들은 마음이 급할 만도 했을텐데, 시나리오 완성 과정에서 많은 대화가 있어서인지 그 후 작업은 탄력이 붙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과목별 평가 기준이 들어있습니다. 아이들은 단지 떠오르는 대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별 성취기준을 시나리오 속에, 작품 속에 녹여내야 했습니다. 이 과정 자체가 수행평가였기 때문입니다. 과목별 담당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부딪힐 장벽들을 충분히 예상한 뒤 현실 가능한, 과목을 넘나들 수 있는 통합 교과적 관점으로 수행평가를 구상했습니다.
이 시도 자체가 새로웠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수행평가는 통상 해당 과목의 내용만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김해금곡고등학교 교사들은 특정 주요 과목의 지식만이 삶에 특정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과목에서 배운 내용들이 필요에 의해 재구조화되어 삶에 영향을 준다고 해석했습니다.
해서 모든 과목의 평가를 '연극수행평가'를 통해 녹여낼 수 있다고 목표를 정해 접근했습니다. 어찌 보면 무모한 시도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과목별 수행평가 성취기준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어과 : '공존'이라는 주제에 맞게 희곡을 썼는가? 극 갈래의 개념과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수학과 : 수학과 인간의 삶과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본화를 위한 의견을 제시하였는가?
삶과 철학 : 대본화 작업 중 인간의 본성, 다름과 틀림, 영원함 등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졌는가?
음악 : 연극의 주제 및 내용과 어울리는 음악 및 효과음을 사용할 수 있는가?
영어 : Permisson to Dance(by BTS) 가사 및 안무가 포함되었는가? Action verb를 활용한 명령문이 포함되었는가? 영어로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이 포함되었는가?
통합과학 : 과학 기술(또는 이론)을 바탕으로 문제상황을 해결하려는 장면이 있는가? 과학 기술(또는 이론)을 바탕으로 문제상황을 해결하려는 장면의 내용이 과학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학교에선 총 16개 과목의 과목적 특성을 연극수행평가에 녹여내 아이들에게 안내했고 아이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극을 제작, 연기까지 했습니다. '우와, 이게 가능해? 차라리 종이 시험을 치는 게 더 효율적인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해서 한 학생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연극 수행평가를 하니 어때요? 모든 과목이 평가하니 힘들진 않나요?"
"힘들어요. 당연히 힘들죠. 하지만 괜찮아요. 전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고 목공을 좋아해요. 즉 몸으로 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종이 시험으로만 저를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극수행평가는 달라요. 물론 시나리오 쓰는 과정은 힘들었어요. 저는 말을 잘 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래도 소품을 만들 땐 제가 많은 역할을 했어요. 저는 이게 더 공정하다고 생각해요.
잘 하는 건 아이들마다 다 다르지 않나요?"
저는 이 말을 들으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 아이들은 다 달라.'
4박 5일 간 평가... 점수 위한 평가 아닌, 학생들 알아가려는 시간
김해금곡고등학교의 연극수행평가는 아이들을 줄 세우기 위해 하는 평가가 아닙니다. 교과 선생님들은 4박 5일간 학생들을 관찰하고 그 내용을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형으로 기록합니다. 연극이 끝난 뒤 학생별로 기록된 내용을 보면 A4용지 몇 장씩을 넘깁니다. 그만큼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관계, 변화, 성장을 관찰하고 세세히 기록했습니다. 점수를 위한 평가가 아니라 학생을 알아가기 위한 평가였습니다.
연극수행평가를 실시하게 된 이유를 교무부장이신 이승주 선생님께 여쭈었습니다. 다음은 이를 질문과 답변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 통합수행평가를 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 방법으로 교육연극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교육연극을 활용한 통합수행평가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지적인 능력을 넘어서서 감성과 의지, 배려 등 한 학생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지니는 전 인격을 평가하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진정한 교과 융합입니다. 사실 융합은 아이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사들이 교과들을 엮어서 융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융합되는 과정을 교사들이 파악하기 위해 '교육연극'이라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아이들은 1학기 동안 배운 여러 과목을, 연극을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융합하게 되고 이것은 곧 평가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평가 구조는 평가를 새로운 구도로 접근하게 합니다."
- 올해 2년째 시도 중인데, 해가 바뀌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교사들이 경험이 쌓이면서 전 인격에 대한 평가 방법과 기술력이 높아졌습니다. 또한 교과융합이 더 자연스럽고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 기존 학교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반 학교의 평가는 어쩔 수 없이 인지적인 영역에 가장 큰 비중을 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인지적인 능력이 우수한 학생이 결국 승자가 되는 게임이 됩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자칫 수많은 인재들을 놓칠 수 있습니다. 한 명도 놓치지 않는 교육이란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 아이를 다각도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혹시 금곡고 교육연극을 활용한 통합수행평가에 관심 있는 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금곡고의 평가방식은 교사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는 평가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학교의 구조상 구현해 내기가 어려운 거지요. 저희도 대안학교라는 플랫폼 위에서 이러한 평가방식을 구현해 내고 있는지라 타 일반 학교에서도 이러한 평가가 가능하리라는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통합수행평가 시간 중 학교로 한번 방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평가, 완벽하진 않겠지만
김해금곡고등학교의 연극수행평가가 100% 완벽하진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지적하는 사람은 많지만, 당장의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저는 평가가 달라지면 학교교육도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김해금곡고등학교의 연극수행평가는 평가의 새 방향을 시도한 것입니다. 더 나은 방법,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전해봐야 합니다. 시도해봐야 합니다. 그것만이 교육의 변화를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학생들과 처음 함께 한 연극수행평가여서 여러 면에서 부족했지만,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연극수행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차이점, 개성, 다양함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박 5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평가를 위한 연극활동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평가는 사라지고 도전과 공존, 노력과 열정만이 남았습니다. 모든 작품 공연이 끝나고 학생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처음엔 수행평가라서 어쩔 수 없이 시작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이 평가라는 것을 잊게 되었어요. 우리팀은 하나가 되어 고민하고 각자의 몫을 했어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끝까지 해낸 저와 친구들이 자랑스러워요.
이번 연극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어요. 연극 주제가 '공존'이었지만 우린 연극을 하며 저절로 '공존'의 가치를 알게 됐다는 거예요. 연극수행평가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어요. 말이 그렇지만 평가가 즐거웠어요."
학생의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지금의 평가가 학생을 위한 평가인지, 평가를 위한 평가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평가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한 부분이 아니라 전 인격을 평가해야 합니다. 파편화된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된 내용을 평가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김해금곡고등학교의 연극수행평가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숫자가 아닌 개별 인격체로 존중받는 학교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개개인의 학생을 있는 그대로 더 빛나게 하는 평가가 좋은 평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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