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형 검사의 사람공부, 세상공부. <검사내전>을 읽었습니다. 검사 같지 않은 검사가 쓴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보통 언론에서 검사라고 묘사되는 캐릭터는 예리하고 냉철하고, 정의롭거나, 불의에 타협하거나 타협하는, 일반인들과는 노는 물이 다른 직업입니다. 왠지 똑똑할 것 같고, 왠지 범죄자들을 꼼짝 못하게 할 것 같고, 술도 거하게 마시고, 독한 분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영화속 검사가 실제의 모습일까? 진짜 대한민국 검사는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펼쳤습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검사내전은 검사의 고귀함, 위대함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특권 의식 없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 같은 검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흔한 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검사의 사생활, 법에 대한 다양한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꺼리를 던져줍니다. 쉽게 쓰인 책이고 재미있습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대한민국 검사에 대해 친근함을 느낄 수 있고, 법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지은이는 김웅씨입니다. 현재 공안부장을 하고 있는 실제 검사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을 정리하여 적은 책입니다. 추천사를 소개합니다.
(김웅검사는) 차장검사와 법원수석부장판사가 술자리에서 부하직원들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오는 지 내기한 일화를 전화면서 “부르기면 하면 마냥 달려오는 것을 바랄 거면 개를 기르면 된다.”고 말한다. 자신은 가지 않았고, 다음 날 내기에서 진 차장검사에게 욕을 먹은 부장검사가 훈계하자 그는 “그럼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 주나요?”하고 물었단다…….김웅 검사에 따르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검사의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항공모함 서너 개는 고행할 수 있을”만한 간격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보고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여러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다.(김민섭 추천자 중)
지은이가 보통 사람은 아님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만 읽고서도 “오! 이 사람, 매력적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책은 크게 4장으로 엮여 있습니다. 1장의 제목은 ‘사기 공화국 풍경’입니다. 대한민국에 사기가 얼마나 판을 치고 있는지, 사기꾼들이 얼마나 악랄한지, 너무나 흔한 사기 수법, 자신은 절대 사기 당하지 않는다고 외치나 사기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기 관련 범죄들, 안타까운 사연에 대해 적나라하게 소개합니다. 결국 사기는 욕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동시에 한국은 사기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고 지적합니다. 1장만 읽어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입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기 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이며, 실형을 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천혜의 환경 조성으로 우리나라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른다. 처벌을 받은 사기꾼 10명 중 8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뜻이다. 사기범의 55%는 5개 이상의 전과를 가지고 있다. 이건 확실히 비정상이다. 이렇게 사기범의 재범률이 높은 것은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다.(본문 중)
저자는 사기의 공식을 소개하며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부탁합니다. 그가 소개한 사기의 첫 번째 공식은 피해자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 둘째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서는 안 된다. 즉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셋째,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 당하는 지름길이다. 남이 하는 말을 그냥 듣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고 당부합니다. 그냥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것은 모조리 거짓말이라고 강조합니다. 결국 사기는 행운을 바라는 자신의 마음이 속임을 당한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다만 사기꾼들은 그런 사람들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사기를 친다고 합니다. 섬뜩하지만 맞는 말 같았습니다. 김웅씨는 말합니다. 제발 사기 당하지 마시라고, 사기 당하는 피해자가 되지 마시라고, 동시에 사기죄에 대한 처벌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직업인이기에 외칠 수 있는 말입니다.
2장의 제목은 ‘사람들, 이야기들’입니다. 그가 만난 사람들과 사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사람들은 검찰청을 두려워하나 검찰을 밥(?)으로 보는 사람도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연있는 고소왕들을 소개합니다. 뭐든 단순한 것은 없으며,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더하여 학교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생각도 소개합니다. 저도 학교 폭력 사건에 대한 경험이 있기에 이 부분이 가볍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피해자에게 이중의 상처를 준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일말의 책임을 지우면서 자신의 도덕적인 가책에서 벗어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들은 학교폭력을 벗어나지 못해 차가운 아파트 옥상까지 몰리게 된 아이들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본문 중)
저자는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며, 그가 내린 결론을 슬라보에 지젝의 말을 인용해 정리합니다. “진정 용서하고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응징 혹은 정당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죄인이 적절하게 징벌되고 나서야 나는 앞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 모든 일과 작별할 수 있다.”
저자는 3장, 4장까지 거쳐 법의 역할과 우리나라에 필요한 제도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시작은 가벼운 에세이 형태지만 뒤로 갈수록 무게가 더합니다. 단지 시간 때우기용의 책이 아닙니다. 현실의 검사를 이해하기 위해 읽은 책이지만 다 읽고 나면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합니다. 괜찮은 구성입니다. 처음부터 딱딱하게 시작하면 384페이지 끝까지 읽기 힘들었을 겁니다.
최웅씨는 글을 재미있게 잘 쓰는 검사입니다. 앞으로도 그의 이름이 적힌 또 다른 책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검사에 대한 책이었다면 다음에는 또 다른 주제의 책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무덤덤해 보이지만 현실을 예리하게 보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공부, 세상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검사도 사람입니다.
검사내전 - 김웅 지음/부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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