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민음사'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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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거나 인기를 끈 사람들의 죽음(자살)이후 이를 따라 자살 시도가 늘어나는 사회적 심리현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명칭의 유래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이 발표된 당시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 중에 다수의 독일 청년들이 주인공인 베르테르의 죽음을 따라 일종의 모방자살을 했던 것에서 시작됩니다. 문학에 문외한이 저도 '베르테르 효과'는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현상입니다.


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가 25세 때인 1774년, 불과 14주 만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괴테를 순식간에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버립니다. 괴테가 유명세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괴테는 작품 속 주인공인 베르테르와 비슷한 경험을 했고 자살하는 친구를 보며 충격을 받은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으로 인해 괴테는 14주 만에 엄청난 작품을 써 내려간 것입니다.


이 책이 사회적으로 끼친 영향도 큽니다. 그 유명한 나폴레옹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애독자 였으며, 롯데그룹을 세운 신격호 총괄회장도 이 책에서 큰 감명을 받아 여주인공 이름인 '샤로떼'에서 '로떼'를 따와 '롯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샤로떼'처럼 사랑받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하는군요. 신격호 총괄회장의 꿈이 이뤄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우리 사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작품입니다.


줄거리는 어찌보면 단순합니다. 명석하고 감성적이며 사람을 신분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진솔하게 대했던 가슴 뜨거운 청년 베르테르, 그리고 그와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인 빌헬름, 베르테르의 마음 속에 가득찬 샤로떼, 그리고 샤로떼의 남편인 알베르트, 이 4명의 이야기가 주입니다. 특별한 것은 소설 자체가 베르테르가 친구인 빌헬름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쓰여 있다는 것입니다. 즉 베르테르가 자신의 속마음을 절친인 빌헬름에게 고백(?)하는 내용을 독자들이 엿보는 형식입니다. 이러한 형식을 서간체소설이라고도 하는데요.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고 직접 읽어보게 된 것은 괴테의 로맨스 소설이 궁금해서 였습니다. 읽고 나서는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괴테의 문장이 더 와 닿았습니다.


- 우리는 신이 우리를 대하듯 어린아이들을 대해야 하며, 신은 우리로 하여금 꿈속을 헤매듯 비틀거리게 할 때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시는 것이라는 진리말이다.


- 세상의 모든 일이란 필경 따지고 보면 하찮고 시시하다. 스스로의 정열이나 욕구에서 나온 것도 아니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돈이나 명예를 얻으려고, 그 밖에 다른 목적으로 악착같이 일하는 사람이야말로 언제나 천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괴테는 돈이나 명예만을 얻으려고 악착같이 일하는 사람을 보고 천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스스로의 정열이나 욕구가 아니라 단순 경쟁속에서, 별 생각없이 자란 환경속에서라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인생에서 귀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작품속에서 베르테르는 로테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리고 로테를 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로떼의 곁을 일부 떠나기도 합니다. 로떼의 곁을 떠난 베르테르는 산책을 즐기며 다양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사람의 신분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해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을 만나도 편안하게 대화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만난 이 중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농부의 이야기에는 흥미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후에 그가 살인자가 되었을 땐 그를 변호하는 일을 해서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합니다.


베르테르는 이성적인 인물 같지는 않습니다. 베르테르는 감성적인 인물이며 그 감성을 이성으로 제어하려 했기에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베르테르는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이의 뜨거운 사랑에 대해 쉼없이 묘사합니다. 그의 고통을 여과없이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단순한 사랑이야기지만 작품 속 곳곳에 등장하는 괴테의 목소리는 사회에 대해서도 성찰하는 울림을 줍니다. 


- 원래 지위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며 가장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은 아주 드물게나 있는 일인데,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다니, 정말로 어리석은 친구들이다! 얼마나 많은 제왕들이 장관에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장관들이 비서에게 지배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제일 상위를 차지하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것은 남들보다 뛰어나게 통찰을 하고 남들을 손아귀에 장악하여 스스로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힘과 정열을 집중시킬 수 있을 만한 수완과 지략을 갖춘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괴테는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전달만 하려 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말들을 마음껏 쏟아냅니다. 사랑이야기에 세상이야기가 덧칠해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괴테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좋은 작품이란 읽는 사람과 읽는시기에 따라 받는 감동이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을 통해 젊었던 괴테의 생각과 세상을 향한 외침을 정제되지 않은 글에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고전이라 해서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잘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베르테르는 세상에 없지만 그의 경험과 이야기는 후세에까지 남아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사랑은 만국 공통어입니다. 가슴을 후벼파는 사랑이야기, 분명 가슴 아프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땐 기분 좋은 아련함이 느껴집니다. 베르테르가 현세에 태어났다면? 재미있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요즘의 사랑은 무게가 어찌될런지도 궁금했습니다. 지금 사랑하시는 분, 사랑을 원하시는 분들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추천합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10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민음사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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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소설을 읽을 때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구분하며 읽으려 했습니다. 왠지 저는 사실에 상당히 집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을 때도 '이건 경험이겠지? 이건 상상일꺼야.'라며 혼자 복잡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속으로 온전히 몰입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상상과 진실을 구분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타이밍에 만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저의 관념을 뒤 흔드는데 충분했습니다. 문학작품을 대하는 데 있어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길을 가다 스치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이 사람의 직업은 뭐가 분명해, 이 사람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 게 분명해.'라며 혼자 판단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한 인물의 삶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타인들이 보는 모습과 전혀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는 '요조'는 삶 자체가 고통입니다. 이전에 요조가 일반인들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는 것도 설명해야 겠습니다. 요조는 순수한 아이였습니다. 기차역에 있는 육교에서 놀며, 육교가 놀이터라고 생각했습니다. 철도청이 제공하는 괜찮은 서비스 중 최고라고 생각하며 육교에서 계단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림책에서 지하철을 보고도 지하에서 차를 타는 것이 별나고 재미있는 놀이니까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보고 혼자 생각하는 데 익숙했던 요조입니다. 해서 남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요조에게는 심각한 고민꺼리가 되곤 했습니다. 요조는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도 불안해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말하고 별 고민없이 사는 모습을 보며 요조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누가 강요한 고통도 아니요,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나타난 고통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요조는 사람이란 것에 대해 알수 없고 혼자만 별난 놈인 것 같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힘겨워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를 몰라서 사람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그선택한 삶의 방법은, '익살'이라고 하는 철저한 가면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가면을 쓰고 타인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요조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같이 생활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선생님을 대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원하는 선물을 말하는 것 조차 힘들어했던 아이니 타인과의 만남이 힘듬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요조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됩니다. 오로지 익살과 웃기는 아이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표현한 부분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저희들은 철봉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부로 될 수 있는 대로 엄숙한 얼굴로 철봉을 향해 에잇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서는 그대로 멀리뛰기 하는 것처럼 앞으로 날아가 모래밭에 쿵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모두 계획적인 실패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모두 폭소를 터뜨렸고, 저도 쓴웃음을 지으면서 일어나 바지에 묻은 모래를 털고 있으려니까 언제 왔는지 다케이치가 제 등을 찌르면서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일부러 그랬지?"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러 실패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다케이치한테 간파당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온 세상이 일순간에 지옥의 업화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것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와하고 소리치면서 발광할 것 같은 기색을 필사적으로 억눌렀습니다. 그 때부터 계속된 나날의 불안과 공포.


요조는 삶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차라리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있었다면 요조는 이런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의 삶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지가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인간실격'은 1948년에 세상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 해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을 합니다. 생애 5번째의 자살 기도가 성공하게 된 것이죠. 즉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최후의 완성작품입니다. '굿바이'라는 유작도 있습니다. 저는 다자이 오사무가 어떤 작가인지 몰랐습니다. 솔직히 책이 얇은 편이라 부담가지지 않고 선택하여 읽은 책입니다.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암울하다.'였습니다. 요조의 삶이 뭔가가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지방의 있는 집 가문에서 태어나 충분히 유복하고 평이하게 자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신의 콤플렉스로 억울한 삶을 삽니다. 암울한 삶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도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5번에 걸친 자살 시도, 자신의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된 졸부라고 사실을 평생 부끄러움으로 안고 살았던 다자이, 그리고 대학 시절 좌익운동 참가, 39살의 요절...다자이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실격'은 묘한 책입니다. 주인공과 다자이가 오버렙이 되며, 대충 쓴 글처럼 느껴지지만(솔직히 독자들을 별로 배려하지 않은 문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조의 삶에 몰입하게 됩니다. 다 읽고 나서는 '인간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행복한 것인가? 다자이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50페이지가 안되는 짦은 글입니다. 하지만 150페이지 안에 지독하게 안타까웠던 한 인간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절묘한 양으로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평소같으면 2시간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다 읽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뭔가가 불편했고 그 불편함으로 책을 계속 읽기 어려웠습니다. 다자이가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선사하고 싶었다면 그의 노력은 성공한 셈입니다.


2017년, 다자이 오사무를 알았고 '인간실격'을 읽은 것은 특별한 경험입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을 살다간다자이 오사무, 그와의 만남을 추천합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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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고.


문득 소설이 읽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예전의 저는 소설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소설의 내용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고 지어낸 이야기로 사람들을 자극하여 감정을 흔드는 책 쯤이라고 치부했었습니다. 허나 제 생각이 잘못됨을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소설의 흡입력은 대단합니다. 책을 펼치면 눈을 땔 수가 없습니다. 잘 읽히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사건의 진행과정이 너무나 흥미 진진합니다. 소설책을 여럿 읽다 보니 작가님 마다 특유의 색깔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특정 작가님의 책만 읽을 때도 있었습니다.


일본 작가들의 책도 특유의 매력이 있습니다. 대중적 으로 <하루키 현장>에 버금가는 <바나나 현상>이라는 유행어를 낳았다는 요시모토 바나나작가의 키친을 펼쳤습니다.



단편소설입니다. ‘키친, 만월(키친2), 달빛 그림자’라는 세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키친’과 ‘만월’은 연결되는 이야기 구요. ‘달빛 그림자’는 또 다른,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의 글입니다.


주인공인 ‘사쿠라이 미카게’는 세상에서 부엌을 가장 좋아합니다. 구역질이 날 만큼 너저분한 부엌도 끔찍이 좋아합니다. ‘미카게’가 부엌을 좋아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나란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았습니다. 중학교 입학 무렵 할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시고 그 후 내내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할머니 마저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 후 매일을 부엌에서 잠들게 됩니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한 사흘은 멍하고 지냈다. 눈물도 마른 포화 상태의 슬픔이 흔히 동반하는 나른한 잠의 꼬리에, 조용한 부엌에 요를 깔았다...위-잉, 냉장고 소리가 내 고독한 사고를 지켜주었다. 그곳에서는, 그럭저럭 평온하게 긴 밤이 가고, 아침이 와주었다.”(본문중)


‘미카게’는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난 후 거의 공황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세월을 두고 가족이 줄어들어 지금은 혼자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안계신 큰 집에 혼자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했습니다.


“딩동, 느닷없이 현관 벨이 울렸다...「전할 말이 있어서, 어머니랑 의논했는데, 당분간 우리 집에 와 있지 않겠어요?」「네?」”(본문중)


이렇게 거의 안면은 없었으나 할머니를 통해 알게 된 ‘다나베 유이치’의 집에 ‘미카게’는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합니다. 물론 ‘유이치’의 엄마이며 아빠인 ‘에리코’씨와 함께 살게 됩니다.


소설은 슬픈 소재를 자연스럽게 풀어갑니다. 젊은 남과 여의 관계이기에 당연히 ‘사랑’이라는 내용이 주가 이룰 것이라 생각하고 읽었습니다. 허나 저자에겐 남녀의 사랑이 그리 큰 비중은 아닌 듯 합니다. 저자는 생명, 삶, 남은 자의 삶에 더 큰 초점을 맞추고 작품을 풀어나갑니다. 


아픔을 가지고 있는 미카게가 유이치네와 살며 나름 즐거운 경험도 하고 기력을 찾아 갑니다. 유이치 가족을 위해 요리도 하게 되고 유이치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들도 듣게 되며, 그래도 최소한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노래하듯, 그녀는(유이치의 엄마인 에리코) 그녀의 인생 철학을 말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나 봐요.」 감동한 내가 그렇게 말하자, 「뭐 다 그렇지. 하지만 인생이란 정말 한번은 절망해 봐야 알아. 그래서 정말 버릴 수 없는 게 뭔지를 알지 못하면, 재미라는 걸 모르고 어른이 돼버려. 난 그나마 다행이었지」”(본문중)


저자는 ‘에리코’의 입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월

-키친 2


“가을 의 끝, 에리코 씨가 죽었다.”(본문중)


‘에리코’씨의 너무나 허망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시작으로 2부는 시작됩니다. ‘에리코’씨를 너무나 좋아했으나 동시에 무덤덤했던 아들 ‘유이치’의 방황이 시작됩니다. ‘유이치’는 별 감정이 없는 듯 묘사됩니다. 엄마를 대하는 태도나 ‘미카게’를 대하는 것도 로봇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허나 이런 ‘유이치’도 ‘에리코’의 죽음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카게’는 ‘유이치’를 위해 많은 위로와 노력을 합니다. 


죽기 전 미카게와 에리코씨와의 대화입니다.


“그 후 아내는 곧 죽고, 파인애플도 죽어버렸어...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깨달은 일이 있었어. 말로하면 아주 간단하지. 세계는 딱히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일에는 대범하게, 되는 대로 명랑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그 무렵 나는(미카게)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왜 사람은 이렇듯 선택할 수 없는 것일까. 버러지처럼 짓뭉개져도, 밥을 지어먹고 잠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간다. 그런데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본문중)


‘만월’의 마지막 부분에는 ‘유이치’와 ‘미카게’의 만남을 전제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따뜻한 재회인 셈이지요. 


고아가 된 ‘미카게’의 마음아픔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유이치’ 가족과의 만남, ‘에리코’의 죽음, 혼자가 된 ‘유이치’, ‘유이치’를 위로하는 ‘미카게’로 순으로 전개됩니다. 급박한 흐름은 없으며 반전도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픔을 당했을 때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읽는 이에게 자연스레 고민케 해 줍니다.


‘만월’의 경우 가족의 죽음이 주 소재라면 뒤편에 있는 ‘달빛 그림자’는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 무겁지 않게, 하지만 진지하고 쉽게 풀어냅니다. 책 읽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흡입력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의 책이 국내에도 여럿 번역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바나나’열풍에 휩쓸려 봐야 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소위 말하는 평범한 삶이 어찌보면 행복한 삶일 수도 있습니다. 삶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키친 - 10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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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책표지>

쓰쿠루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평범한 학생이다. 소설은 이름에 색채가 들어 있는 쓰쿠루 주변의 인물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진행된다.

고교시설 쓰쿠루는 자신도 아주 흡족해하는 특별한 친구들이 있었다. 쓰쿠루 합해 5명이다. 남학생 3명, 여학생 2명. 한 명씩 소개하자면 아카(빨강)는 성적이 탁월한 친구다. 모든 과목에 성적이 탑이다. 키가 160㎝를 넘지 않는다.

친구들 배려를 잘한다. 한번 마음을 정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간단히 양보하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아오(파랑)는 럭비부 포워드를 맡고 있다. 체격이 건장하다. 3학년 때는 팀에서 주장도 맡는다.

어깨가 넓고 가슴이 두꺼운 데다 이마가 널찍하고 입은 커다랗다. 코 또한 크고 묵직하다. 전형적인 남자다. 몸을 아끼지 않고 돌격하는 타입이라 상처가 끊일 날이 없다. 성격이 활발하여 다들 호감을 가진다.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고 또렷하게 말한다.

대식가이고 사람이름과 얼굴을 금방 기억하는 재주가 있다. 남의 말도 잘 들어준다. 시로(흰색)는 여학생이다. 얼굴이 단정하고 키가 크다.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지고 있으며 모델 같다. 여성적 매력이 있는 친구다. 긴 머리카락이 예쁘다. 성실하고 곧은 성격의 소유자이며 피아노를 잘 친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 앞에선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동물을 좋아하고 수의사가 꿈이다. 구로(검정)는 용모가 평균보다 약간 위다. 생기가 넘치고 애교도 많다. 몸집이 크고 풍만하다.

열여섯부터 가슴이 컸다. 인문계 과목의 성적이 우수하다. 수학과 물리 성적은 처참하다. 해서 쓰쿠루로부터 수학공부를 지도 받기도 한다. 시로와 구로는 고등학생 이전부터 친한 친구사이였다. 쓰쿠루는 네 친구와는 달리 이름에 색채가 없다. 다섯 가운데 가장 유복하며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철도역을 바라보는 일이다. 엄밀히 말해 철도역에서 사람들을 쳐다보는 일이다. 성인이 되어 철도회사에 취직하여 역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부서에서 일하게 된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관계였다. 세월은 흘렀고 이들은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된다. 쓰쿠루는 고향인 나고야를 떠나 도쿄 지역의 대학을 가게 된다. 나머지 4명의 친구들은 고향인 나고야에 남은 채. 얼마간은 여전히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얼마 후 쓰쿠루는 본인이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친구들로부터 '앞으로 널 같이 볼 수 없겠어'라는 통보를 듣게 된다. 자신의 성장기 시절의 전부 였던 그 친구들로부터,

이 일로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쓰쿠루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쓰쿠루는 인생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난 것이다. 몇 명의 여자를 만났고 성욕을 해소한다. 하지만 어떤 여자를 만나도 깊게 몰입하지 못한다.

헤어질 때도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특별히 마음에 상처를 받진 않는다. 즉 어떤 사람을 만나도 몰입하지 못하게 된다. '또 버림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인의 소개로 '사라'를 만나게 되고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사라'는 알 수 없는 존재다. 쓰쿠루를 사랑하는 듯하면서도 거리를 둘려하고 있는 듯 없는 듯한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쓰쿠루에게 과거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시 봐야 한다고 용기를 준 것은 분명하다. 쓰쿠루는 사라의 도움으로 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잊고 싶은,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그 사실을 알기 위해 나고야로 떠난다.

소실은 참 잘 읽힌다. '상실의 시대' 후 두 번째로 보는 하루키의 소설이다. 겨우 두 권을 읽고 감히 하루키의 작품을 재단할 순 없으나 특유의 느낌은 동일했다. 몽환적 느낌?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내용? 사회로부터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는 주인공,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양상은 상당히 유사하다. 책을 덮고 나서도 일순간 현실세계로 돌아오기 힘들었다.

'이따금씩 쓰쿠루는 자신이 근본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신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장애물을 만나 어딘가에서 멈추고, 그 때문에 자기라는 인간이 뒤틀리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장애물이 네 친구에게 거부당해서 생긴 것인지, 또는 그 일과는 관계없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던 구조적인 것인지, 쓰쿠루는 가려낼 수 없었다.' -p.88

하루키 소설의 개성 같다. 대화는 상당히 진지하면서도 낯설다. 이 외에도 하이다의 아버지와 미도리카와의 대화, 쓰쿠루의 독백, 친구들과 주고받는 대화를 봐도 왠지 모를 묘한 여운이 남는다.

책에는 깔끔히 정리되지 않지만 비중이 크게 다루어지는 부분들이 몇 있다. 너무나 묘한 하이다의 존재, 이야기의 중간 중간 등장하여 묘한 여운을 남기는 피아노, 여섯 번째 손가락, 시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그리고 계속 나오는 연주곡인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소곡집 제 1년에 나오는 '르말 뒤 페이', 직접 들어봤다. 피아노에 문외한이지만 조심스러우며 격렬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좀 슬프게 느껴지는 곡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음악을 들으며 쓰고 있다.)

하루키의 정서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하루키는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했을까? 아니 그냥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만 싶었을까? 단순한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엔 여운이 너무 크다. 소설 같은 소설이다. 어두운 밤 조명 등을 켜고 조용히 읽을 책으로 조심히 추천해 본다.

당신의 과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민음사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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