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강신주'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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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11 나는 누구인가? (4)
  2. 2014.02.14 철학이 필요한 시간
  3. 2014.01.28 국가의 총구는 언제든 우리 가족을 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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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알라딘

재미있는 책입니다. 울림이 큰 책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의 심화 연구 지원과 대중 확산을 위해 2010년에 설립된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가 경희대학교에서 실시한 강의를 엮은 책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사는 것, 바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던져주는 의미있는 책이었습니다.


1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본질에 답하다.' 에서는 강신주, 고미숙, 김상근, 이태수씨가 각자의 관점에서 화두를 던집니다. 2부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태도가 곧 당신이다.' 에서는 슬라보예 지젝, 최진석, 정용석씨가 마음을 깨우는 말들을 합니다. 읽는 내내 귀한 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석학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찌니 와 닿던지요. 책을 평가하는 것은 우를 범하는 것 같습니다. 직접 읽어 보셔야 그 참 맛을 알게 될 것 같아서 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상처 받지 않을 권리


단지 제게 울림이 컸던 부분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강신주씨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을 권리' 에서 말합니다.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본주의와 결부해 말하지 않으면서 나와 내 가족이 불편하고 힘든 것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자본주의와 결부해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둘의 양립은 불가능합니다."(본문중)


뜨끔했습니다. 저의 수입, 저의 지출에 대해서는 자본주의를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비싼 집값, 너무 비싼 핸드폰 값 등 을 이야기 할때는 자본주의 운운하며 침을 튀기며 성토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강신주씨는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은 곧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자본가를 비판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비판의 끝에는 그들처럼 되고 싶어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뜻입니다."(본문중)


내가? 설마 나도? 사실 바로 '난 아냐, 난 달라.'라를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나 또한?' 뭔가 뒤통수를 크게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돈이 매개가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세상, 이런 것이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의 원리는 딱 하나입니다. 무조건 돈을 가진 사람이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열등한 지위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본문중)


이해가 되었습니다. 뭔가 고민해 본 적도 없고 막연하게 느낌으로만 알고 있던 것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해 왔던 저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강신주씨는 자본주의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법에 대해서도 친절히 안내합니다. 사랑, 연대, 공감을 기본으로 하는 공동체 만이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이 부분에서 책을 덮고 진지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현대인을 이해하는 세 가지 화두: 몸, 돈, 사랑


이어서 고미숙씨는 말합니다.

 

"무조건 덜 먹고 덜 쓰고 모든 것을 덜어내고 배설해야 합니다. 배설은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입니다...미련과 집착으로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이 앓는 공통의 질병입니다...[동의보감]에서는 수명을 사람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밤에 잠을 자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한다면 우리의 호흡은 당연히 두 배 이상으로 빨라져 수명이 단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본문중)


디지털 세상의 한계에 대해 고미숙씨는 하나하나 지적합니다. 현대인들의 사는 방식을 지적하며 왜 현대인들은 더 편해진 세상에서 더 불편해질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사랑은 헤어지는 과정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헤어진 뒤에도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라기보다, 정말 괜찮은 삶을 사는 사람과 만났었다는 자부심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고귀해져야 합니다. 사랑은 서로에게 삶을 선물하는 것입니다."(본문중)


많은 위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사랑을 하면서도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를 깨닫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나 자신의 귀함과 나 자신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상태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욕심이었습니다. 


인문학을 말하다.

 

김상근씨는 말합니다. "힐링은 겉으로 드러난 상처를 건드리지만, 인문학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주제, 예를 들면,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인간됨에 대한 성찰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인문학의 과제인 것입니다."(본문중)


김상근씨의 말을 읽으며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최소한 요즘 난립하는 힐링의 내용, 인문학의 기준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상근씨는 인문학이 추구하는 기본가치에 대해 알기 쉽게 정리해 줍니다.

 

"먼저 우리가 제일 고민해야 할 인문학의 가장 기초적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입니다. '진,선,미의 인문학'중에서 진에 해당하는 '진리의 성찰'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도덕적인 삶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과 성찰입니다. 이것은 '선'에 대한 성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문학의 과제는 '어떻게 죽느냐' 즉 탁월함의 추구를 통해 얼마나 창조적인 삶을 살고, 그리고 얼마나 멋지게 죽느냐 하는 '미'에 대한 과제입니다."(본문중)


저에게는 너무나 좋은 말이었습니다. 진, 선, 미의 인문학,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사실 저는 진과 선의 인문학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과 실천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의 인문학, 아름다움, 어떻게 죽느냐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 이것 또한 인문학이구나.' 인문학이 특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석학들만 인문학을 연구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평범히 살아 오신 우리 부모님들, 대학 나오지 않은 동네 어르신들한테서도 비슷한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답게 살아라. 처신 바로해라. 다 돌아온다. 죽어도 끝이 아니다." 인문학은 생활속에 있었습니다.


자신을 보라.

자신을 보고 자신을 성찰하며 주위를 보고 주위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의 귀함을 알고 나아가 상대의 귀함, 세상의 귀함을 알게 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고 지금 당장이 아니라 더 오랜 기간을 생각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한 인간이 단지 한 목숨이 아니라 한 인간이 우주 전체라는 것을 깨닫고 알게 되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서양의 역사를 많이 알고 서양의 철학을 많이 아는 것이 인문학이 아닙니다. 먼저 자신을 봐야 겠습니다. 주위의 자극에서 완성되는 자신이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하여 자신을 완성해야 겠습니다. 이 책이 전부일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분에게는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습니다. 참 세상을 보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당신 자체가 우주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 10점
강신주 외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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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asteGod 2014.10.21 13:1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책소개 잘봤습니다

  2. 지성의 전당 2018.06.11 19:4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377876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를 기본적 자기 정의로 전제하고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라는 ‘존재’적인 측면의 의문을 해결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고 전제로서 여기고 있는, 그 믿음을 먼저 해체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나’는 누구이기는 한 걸까?
    정말 ‘나’는 무엇이기나 한 걸까?
    지금까지 당연시 여기고 있던 이것이 정말 ‘나’일까?

    ‘지금의 나’에 대한 믿음을 먼저 해체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해체하고 나면, 남는 것은 오직 “나는 누구인가?”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측면에서 “나는 누구인가?”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 출처 : 불멸의 자각

    한번 읽어보세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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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박사의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집어들었다. 강신주 박사를 접한 건 <철학, 삶을 만나다> 이후 두번째다. 나는 처음 그를 만났던 순간을 잊지 않는다. 강신주 박사 특유의 직설적인 어법과 예리한 지적은 몇 번이나 나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고통을 치유하는 인문정신'이라는 내용을 총 3부로 구성해놨다. 1부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니체부터 에피쿠로스까지 16명의 철학자들의 책을 소개한다.


2부 '나와 너의 사이'는 칸트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 15명의 철학자들을 저서를 통해 만난다. 마지막 3부는 '나, 너, 우리를 위한 철학'으로 베르그송부터 17명의 철학자를 소개한다. 


강신주 박사는 철학자들의 저서를 소개하면서 독자와 철학자들을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워낙 소개된 책이 많아 '내용이 얕진 않을까'라는 걱정과 함께 책을 펼쳤다. 괜한 걱정이었다. 


문득 조그만 깨달음이 내게 찾아왔다. 그건 바로 솔직함과 정직함에 관한 것이었다. 자, 돌아보도록 하자.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자신의 속내에 정직하고 솔직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솔직함과 정직함은 내가 만난 시인을 포함한 모든 인문정신의 핵심에 놓여있다. 거짓된 인문학은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읽든지 잊지 말도록 하자. 정직한 인문정신이 건네는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낼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에 더 직면할 수 있고, 나아가 소망스러운 삶에 대한 꿈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본문 중에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 실린 강신주 박사의 핵심적인 말이다. '솔직하라' '당당하라' '주인된 삶을 살아라' '자본주의의 최면에서 벗어나라' 등등. 인문학의 본질을 꿰뚫는 강신주 박사의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오늘 내가 진실을 마주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꼬리를 내렸다면?

ⓒ sxc


자유롭고 싶은가? 그렇다면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본문 중에서)


니체는 '영원불멸한 세계관이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을 부정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진단한다. 영원불멸한 천국에서 모든 것을 보상받고 행복을 얻을 수 있기에 지금의 고통은 감내하라는 말에 대해 니체는 브레이크를 걸고 '영원회귀'의 세계관을 제안한다. '영원회귀'란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생각이다. 


오늘 내가 진실을 마주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꼬리를 내렸다면, 10만 년 뒤에도 100만 년 뒤에도 똑같이 회귀 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히 비겁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기쁨을 위해 오늘의 내가 비굴하고 고통을 참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내가 참으면 참을수록 그만큼의 횟수만큼 인생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가 순간의 굴욕과 비겁을 선택할 리는 없다. 순간으로 보였지만, 그것은 사실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어떤가? 당신은 지금의 인생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반복돼도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솔직하지 못한 나를 애써 변명하며 살고 있진 않는가?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볼 때다. 


과연 우리는 그들만큼 솔직하고 당당한가? 어쩌면 우리는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언제까지 우리는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것인가? 50세에 드디어 자신으로 살 수 있게 된 이지는 우리에게 묻는다.(본문 중에서)


이는 아이의 마음을 강조한 이지의 말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서로 눈치를 보며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박수를 칠 때 "임금님은 벌거벗었네"라고 말한 아이로 인해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난다. "그래, 임금님은 옷을 입지 않았어." 그제야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하고 사실을 이야기하게 된다. 


우리는 현실에서 순수한 동심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보며 소리를 내고 있는가? 단지 남이 하니까, 남의 자식도 학원에 가니까, 남들이 더 좋은 차 혹은 더 좋은 집에 사니까, 생각 없이 쫓기듯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엄마 아빠, 대체 왜 이래야 하는 거예요?"라고 아이들이 질문할 때 "몰라도 돼, 그냥 엄마 아빠 시키는 대로 하면 돼!"라고 말할 것인가? 솔직하고 당당한 삶에 대한 일침! 삶의 주인이 돼야 함을 강조한 대목이다. 


모든 집착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져버렸거나 혹은 부재하게 될 때 발생한다. (중략) 나에게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내게 잠시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나의 아이도, 그리고 돈마저도 모두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인연이 되어서 나에게 왔고, 인연이 다해서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나 내가 가진 것이 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부질 없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가르주나의 핵심적인 전언이다.(본문 중에서)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큰 깨우침을 얻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회자정리'. 만난 것은 분명히 헤어지기 마련이다. 애초에 나의 것이 어디 있었으며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은 생각일 뿐 현실이 아니다. 더 이상의 집착도, 욕심도, 큰 의미가 없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


2. 나와 너의 사이


칸트는 혁명적이다. 칸트의 진정한 혁명성은 타인을 수단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있는 것 아닐까? 자본주의는 돈을 목적으로 인간을 수단으로 만드는 체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인간을 목적으로 보자는 칸트의 주장은 자본주의 체제에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인간이 목적이 되면 돈은 수단의 지위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이 대목을 놓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는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윤리적 명령을 토대로 반자본주의적 공동체를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칸트는 '자유가 없으면 책임도 없다'는 말을 강조했다. 강신주 박사는 책을 통해 행위의 자율성과 타율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인간처럼 자율적인 주체를 '목적'이라 부르고 자동차나 컴퓨터처럼 타율적인 사물을 '수단'이라고 부른다. 즉 주인이 목적이라면 노예는 수단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돈이 목적이 되고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가라타니 고진은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기 위해, 원래의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공동체를 모색했다. 칸트의 생각이 이상한 생각인가? 인간은 자율적인 주체로써 목적 그 자체인가, 아니면 돈을 모으고 소비하면서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톱니바퀴 중 하나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간의 계층에 따라 존재가치가 달라지는 대상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2차대전 때 유대인 학살의 중심에 있었던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잡혔다. 그는 1961년 12월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아이히만은 상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론한다.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아렌트는 '순전한 무사유(無思惟)'의 책임을 부과한다. 그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의무'라고 강조한다. 베버가 지적했던 것처럼 현대 사회는 분업화가 전문화의 과정을 통해 구조화된 사회이다. 분업화와 전문화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다.(본문 중에서)


이 대목을 읽지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었다. 나 자신도 사유하지 않는(무사유)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나는 사유를 하면서 살았던 게 아니라 관습에 의해, 다수결에 의해, 아무런 고민이나 사색 없이 살았던 경우가 많았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살 수 있다니….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에 대한 사유없이 명령만 따라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아이히만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회사의 지시입니다" "상부의 명령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습니다" 등의 말들로 나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 정당화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난 고민하며 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고인 물 마냥 현실에 타협하며 사는 대로 살아왔다. 몸만 살았지 정신은 죽어 있었다. 


아렌트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당신은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먹고사는 것이 너무 바쁘다'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우리에게 아렌트는 심장이 살아 있는지를 묻고 있다.


3. 나, 너, 우리를 위한 철학


▲  강신주 박사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깨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조종돼 살지 말고 스스로 움직이라고 강조한다. 곰곰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sxc


산업자본은 상업자본과는 달리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서 이윤을 남기려고 한다. 가령 핸드폰을 만드는 산업자본은 계속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기존의 제품들이 유행에 뒤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산업자본은 소비자들이 기존 제품을 버리고 계속 새로운 제품을 사도록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행을 소비자들이 집단적으로 특정 스타일을 선호하고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본 것이다. 유행은 소비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월급을 받은 나는 세상의 주인이 된 것 같다. 백화점을 들어 갈 때도 마트에 갈 때도 의기양양하다. 물건을 흥정할 때도 고자세가 되어 흥정에 임한다. 허나 나의 돈이 상품과 맞교환되는 순간 소위 말하는 '갑'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 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허전함은 그대로다. 그 물건이 영원한 것도 아니며 나의 만족감 또한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겐 또다시 구입하고 싶은 물건이 나타난다. 난 다시 그 물건을 사기 위해 일한다. 그리고 월급날이 되면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에서는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깨치지 못한다면 내가 자본주의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주인은 나, 우리, 즉 노동자가 아니다. 자본가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준다. 하지만 그 돈을 다시 환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중들을 유혹한다. 


이러한 사실을 깨치게 되면 내 삶의 주인이 될 준비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내 삶의 주인은 온전히 나 자신이었나? 모든 것이 나의 의지대로 선택돼 왔는가? 이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짜인 틀 안에서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분명한 것은 소비가 인간의 행복감을 100%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으로, 나만 위함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위함으로 이뤄질 수 있다. 강신주 박사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깨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조종돼 살지 말고 스스로 움직이라고 강조한다. 곰곰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나의 존재가 가지는 그 특별함과 순수한 의미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존재가치에 대해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너무나 강하게 나를 뒤 흔든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는 철학자 48명의 다양한 생각들이 강신주 박사의 시각을 통해 정리돼 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다시 나의 시각을 통해 새로운 스펙트럼으로 나를 뒤흔들었다. 강신주 박사도 말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유리병 편지를 받았습니다. 스피노자, 장자, 원효 등과 같은 철학자였습니다. 이제 저의 편지를 유리병에 담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의 저의 유리병 편지를 꺼내 읽어볼까요? 그 사람도 저와 마찬가지로 들뜬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보게 될까요?" 


최소한 기대하는 마음으로 유리병 뚜껑을 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내가 보는 세상, 그 위에 또 다른 가치 있는 세상이 있음을, 지식과 감동을 초월하는 독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궁금한가? 혼자 느끼기에는 너무 아쉽다. 세상이 너무 힘든가?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가? 강신주 박사의 책을 펴보길 권한다. 답이 있진 않지만 진실의 길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 된 삶을 살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 10점
강신주 지음/사계절출판사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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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시대에 내재하는 불만'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이 불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p66

저자는 철학적 사유로부터 시작하여 철학과 삶의 유기적 관계,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말을 풀어간다. 철학의 심오함과 난해함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알기 쉽게 접근한다. 1부에서는 철학적 사유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사유해야 철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부에서는 우리가 친숙하게 느끼는 중요한 몇 가지 것들을 낯설게 만든다. 바로 국가의 존재이유, 자본주의의 실체 등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격렬하게 읽었던 부분이다. 3부에서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철학적으로 성찰한다.

 


▲  <철학, 삶을 만나다> 
ⓒ 이학사 


저자인 강신주씨는 일반인에게 철학이 얼마나 쉽고 철학적 사유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다양한 예를 들며 풀어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책이 이해가 쉬운 것은 사실이다. 다양한 철학자들을 거론하며 각 철학자들의 사상과 그 사상에 반하는 사상들, 또 지지하는 내용들을 다각도로 제시한다.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한다.

"인간이란 설령 순수하다고 가정된 정신이라 할지라도, 참된 것에 대한 욕망, 진실에 대한 의지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진실을 찾지 않을 수 없을 때에만, 그리고 우리를 이 진실 찾기로 몰고 가는 어떤 폭력을 겪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진실을 찾아 나선다." 들뢰즈의 말이다.- p28.

즉 모든 사람들이 거짓된 일에 진실을 찾기 위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거짓을 알게 되더라도 나에게 별 상관이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자신이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불합리한 경우를 당할 때에만(폭력 포함) 비로소 진실을 찾아나간다는 말이다.

우리가 비로소 진실을 찾아 나설 때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 사태, 최근의 밀양 송전탑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우리집이 안전한 이상 용산참사를 언론을 통해 구경만 한다.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내일이 아니기 때문에 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우리 동네가 재개발을 한다며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어느 순간 용역들이나 경찰들이 나타나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 동네 사람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눠 어제까지 이웃사촌이었던 사람들이 원수지간이 된다. 보상금으로는 도저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수 없어 견디고 견디는데 강제철거를 하기 시작한다. 이때서야 용산 가족들을 이해할 수 있다.

허나 이미 늦었다. 쌍용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자들의 엄청난 피해에 대해, 왜 노동자들이 저렇게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지는 모르고 언론에서 말하는 경제 손실이 몇 십억이라는 말만 들으며 욕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빨갱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나의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회사의 부조리함에 대하여 시정을 요구한 노조위원장이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이것은 아니라고 크게 외치니 경찰들이 와서 연행해간다. 이때 쌍용 노동자들을 이해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 밀양의 송전탑은 현재 진행형이다.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경찰들이 대치상황이다. 연행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11월 30일 희망버스가 들어가고 경찰이 미리 입구를 봉쇄하고.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언론에선 조용하다.

이 책의 2부 내용이 새삼 와 닿는다. 일본의 철학자인 '가라타니 고진'은 말했다. 그는 국가를 하나의 '신적인 실체'가 아니라 '교환관계'로 숙고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무조건적인 배려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국가가 피통치자에게 재화를 재분배하거나 혹은 관개사업 등의 공공사업을 일으키는 이유는, 사실 더 효율적으로 구성원을 수탈하기 위해서입니다. 박정희 그는 경제 개발을 해서 국민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독재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피통치자, 즉 우리의 착각일 뿐이지요. 가라타니 고진의 분석이 옳다면,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 통치를 영구히 하기위해 경제 개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p.149

즉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를 지속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혼신을 쏟았고 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 존재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은 계속된다.

지속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수탈하기 위해서, 국가는 국민에게 여러 시혜적인 정책들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그렇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효율적으로 수탈 할 수 있는 계층에게만 국가의 시혜가 집중됩니다. 그 계층이 옛날에는 농민이었으나 오늘날 자본가로 바뀌었습니다. 한미 FTA로 가장 시혜를 받은 계층은 누구일까요? 자본가들입니다. 국가는 자본가들로부터 많은 것을 수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FTA로부터 가장 소외받은 계층은 누구입니까? 바로 농민들입니다. 더 이상 국가는 농민들로부터 얻어 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p.156, 158

국가는 나를 보호해주고 우리 가족을 보호해주며 우리 민족을 보호해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많은 국민들은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지적한다.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라는 역동적 교환관계로 유지되는 기구, 그러나 국가의 핵심은 재분배라기보다 압도적 폭력을 바탕으로 하는 수탈이다.-p.162

국가가 서비스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 국민을 필요로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국가는 필요할 땐 가차 없이 국가의 폭력, 공권력을 행사한다. 그 공권력은 주로 국가가 배려하는 존재들의 보호를 위해 사용된다.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상상해 보았다. 나아가 국가가 언론까지 장악하게 된다면? 국민의 생각을 마음대로 장악하게 된다면? 국가의 힘이 더욱 강력해진다면? 국민은 고맙게도 국가에게 그 어떤 반발을 하지 못하게 되며 오히려, 국가가 나를 위협하는 악한 존재들로부터 보호해준다고 믿으며 고맙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국가는 순종적인 국민을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눈 막고, 귀 막고 살면 되는 것인가? 국가가 나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우리 가족을 공격하지 않으니 국가란 좋은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국가가 공권력이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 원인이나 과정이 비민주적이라면, 국가의 총구는 언제든 필요에 의해 우리 가족에게 향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나의 이웃이 국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책은 막바지로 접어든다. 자본주의의 불편한 진실과 행복한 삶을 위한 철학적 대안들을 제시한다.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 주체적인 삶 살아가기, 타자(상대방)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이렇게 책은 마무리된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생각하여 별 고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저자는 지속적으로 일침을 가한다. '이것이 왜 당연할까요? 저것은 왜 저럴까요? 이 문제의 해답은 이것뿐일까요? 결국 이 답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책을 읽는 내내 탄성과 후회와 자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을 보는 눈, 철학적인 사고의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아직도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제공되는 정보만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섣불리 적의를 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신은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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