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국민보도연맹의 진실...레드 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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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승만이가. 그렇게 죽였다.논매다가 잡혀가고, 오빠대신 잡혀가고

빨갱이로 몰아 잡아가고, 밑보인다고 잡아가고.

아무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였단다.

총 한방에 죽으면 잘 죽은 거고.

배 갈라 죽이고, 산 사람 땅에 묻어 버리고

10명씩 밧줄에 묶어 바다에 빠뜨려 죽이고.

살아서 물 위에 떠오르면 총 쏴 죽이고.

학생이고 젊은 청년이고 노인이고

그리 무참히 죽였단다. 찍소리도 한번 못해보고.

개승만이 그랬노라. 무너지는 억장을 부여잡으며

말씀하시는 증인들..

무거운 영화지만. 봤다.

마산, 밀양, 진주, 멀쩡한 동네 없이.

산이며, 바다며, 죽어간 사람들.

그 산을, 그 바다를 어찌 보고 살아갈 까 싶다.

억울한 한맺힌 역사, 알아줘야 하기에.

부끄러운 역사지만 , 우리 역사기에

마음 아파하며. 화내며. 봤다.


-레드툼을 본 마산의 한 유치원 교사-



레드 툼...


빨갱이 무덤...


레드 툼을 보았습니다. 감독이신 구자환 감독은 지역의 언론인이기도 합니다. 개봉한 지는 시간이 꽤 지났지만 이제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볼 수 있는 기회는 여럿 있었지만 무서워서...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꼭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름 용기를 내어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일반 영화가 아닙니다. 정확한 구분은 어려우나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칭해야 할 듯 합니다. 특별히 주인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 줄거리-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속에는 지방 좌익과 우익의 보복 학살도 자행되었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 가운데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 차원에서 구금당하고 학살을 당한 국민보도연맹원이 있다. 전국적으로 23만~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계몽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국가의 이념적 잣대로 인해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이다.



영화 속 등장하는 증언자 분들의 말씀이 귓가에 생생합니다.


"경찰서에서 오라고 했지, 경찰서에서 오라고 하는데 뭔 일 있겠나 싶어서 손 흔들어 보내 줬지. 그 길로 안온다 아이가."


"빨리 보도연맹에 가입하라꼬 하더라고, 보도연맹에 가입안하면 빨갱이로 죽는다고 하더라꼬."


"사람들 손을 뒤로 묶고 트럭에 실어서 산으로 올라갔지. 그리고 총소리가 났어."


"마산과 거제에서는 10명쯤 되는 사람들을 묶고 돌을 매달아서 바닷속에 처 넣어버렸어. 그기 사람이 할 짓이가! 그거는 짐승도 그리 안하는기라."


"개승만이하고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길래 이렇게 어만(평범한) 사람들을 죽이노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촌 사람들을 왜 죽이노 말이다."


"당시에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였지. 그냥 죽였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몽둥이로 대낮에 때려 죽이기도 했어."


"나는 지금도 무섭다. 그런 세상이 또 올까봐, 지금도 무섭다. 북한이 아직 있다아이가, 나는 그런 세상이 올까봐 너무 무섭다."


<보도연맹>


1949년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한 반공단체로, 정식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다.


1948년 12월 시행된〈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었는데, 일제강점기 사상탄압에 앞장섰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체제를 그대로 모방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남·북로당의 파괴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내용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1949년 말에는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고, 서울에만도 거의 2만 명에 이르렀다. 주로 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거의 강제적이었으며,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와 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檢束)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6·25전쟁 중 최초의 집단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쟁 와중에 조직은 없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해명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출처 (두산백과)


보도연맹은 지금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보도연맹으로 학살된 분들의 가족들은 지금까지 억울하다는 소리도 못 내고 참고 살아 왔습니다. 자칫 입을 잘 못 놀리면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소리 들을까봐, 취직도 못하고 농사를 짓고 살았다는 분도 많았습니다. 그 분들이 이제라도 고인들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위해 노력 중입니다. 


억울해도 너무 억울한 죽음들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전개 중입니다.


<관련 기사 :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특별법 제정 서명 운동 본격화>



경남지역에서도 태풍으로 인해 우연히 시체들이 발견 되었고 추후 수많은 유골들이 발견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으며 대부분의 학살형태가 비슷합니다.


사람들을 트럭에 싣고 산에 올라가서 죽이고, 살아 있는 사람 중 구덩이를 파고 묻고, 바닷가 에서는 산 사람을 수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빨갱이라고, 빨갱이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분노케 하는 것은 실제로 빨갱이들만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좌익이 무엇인지, 우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도연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고 하면서 그 어떤 법적 절차 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매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은 사람들의 입밖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태풍은 진실을 들춰내었습니다.



영화 중 나오는 유가족 할머니의 곡소리는 너무나도 원통했습니다. 그 원한에 사무친 통곡소리는 보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게 했습니다. 


"극락완생하시오. 그 곳에서는 행복하게 잘 사시오. 이게 무어란 말이오. 아이고...아이고...."


영화를 같이 보던 많은 분들도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너무나 부끄럽지만 우리의 역사입니다.


너무나 원통하지만 우리의 역사입니다.


이 억울한 죽음을 그냥 묻으려 한다면 또 하나의 우를 범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레드 툼..


보도연맹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하시는 분, 해방 전후, 전쟁 직후의 시대상이 궁금하신 분들께,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꼭 보셔야 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보도연맹도 너무나 속상한 일이지만 이런 영화가 극장에 오랜 시간 상영하지도, 상영되지도 못하는 현실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보도연맹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 입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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