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 사는 이야기

마음의 평화를 얻는 소중한 방법

마산 청보리 2014. 11. 26. 12:30

마음은 하루에도 몇 천번씩 변화합니다. 마음이라는 놈은 잡으려고 하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집니다. 즉 화가 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화가 계속 난다는 말이고 슬픔마음을 인정하고 "그래, 난 지금 아주 슬퍼.."라고 인정하면 슬픔이 덜어진다는 뜻입니다. 즉 "내 마음을 이겨내야 해, 잊고 새로 시작하자!"고 하면 할수록 더욱 이겨내기 힘든 것이 마음이라는 놈 입니다.


마음은 없애려고 하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럴 땐 "아,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슬프구나. 아, 내가 지금 그리워하고있구나."라며 자기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단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학생은 이래야 한다. 고등학생은 저래야 한다. 사회에 나가면 이래야 한다."등 이 아닌 온전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래 정해진 것은 없건마는..자신만의 잣대로 인해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지는 해입니까? 뜨는 해입니까? 나의 마음가짐에 의해 사물은 이렇게 달리 보입니다.


인식론이 중요하다.


인식론이란 사물을 어떻게 인지하느냐?는 이론입니다. 인식론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인과론적 인식론

 1차원적 변화전략입니다. '원인A로 인해 결과B가 나타났다.'는 기본 구조를 가집니다. 모든 사물을 원인과 결과로써 분석하기에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지시, 회유, 협박등의 기재를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과론적 인식록은 안내를 할 뿐이지 사람을 바꿀순 없습니다. 인과론적 인식론의 대표적인 예는 과학적 사고입니다. 즉 물리적으로는 맞으나 사람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생 생활에서 인과론적 인식론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대화를 하다가 "내가 이리되었다. 고 하면 십중 팔구 옆에서, "그것은 ~ 때문이다." 며 원치 않는 조언을 하기 바쁩니다. 하지만 이 조언은 사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순환론적 인식론 

 사건 A와 사건 B가 상호 촉발한다는 이론입니다. 즉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인과론적 인식론이 '부모와 자식은 따로다.' 라고 생각한다면, 순환론적 인식론에선 '부모와 자식은 하나다'라고 말합니다. 몸이 하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뜻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다는 것이죠. 자녀가 말을 듣지 않습니까? 자녀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분석하는 것은 인과론적 인식론이고, 부모의 탓도 있다고 분석하는 것은 순환론적 인식론입니다.

순환론적 인식론을 하게 되면 상대를 인정하게 되고 상대를 허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서로 자유와 책임이 가능하게 됩니다.


사람은 인과론적 인식론으로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발과 격리가 나타날 뿐입니다. 설사 변한다고 해도 그 순간만의 변화이지 본질적으로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즉 서로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채 갈등상태가 되풀이 됩니다. 


하지만 순환론적 인식론은 1. 재구성, 2. 역설적 개입,3. 문제 형성과 해결의 단계를 거침으로써 모두에게 득이 됩니다.


1. 재구성

 : 형제가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보통 부모는 중단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이 때, 재구성하기 위해선 형제간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이죠. 왜? 형제간의 싸움은 정상적인 성장과정이고, 이 싸움을 통해 타협의 기술을 익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싸움을 말리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2. 역설적 개입

 :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 운동 등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권하는 것, 이것은 1차원적 변화전략입니다. 큰 효과가 없습니다. 이미 이 말 속엔 우울증은 좋치 않다는 부정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울증은 나쁜 것이고 당신은 이미 나쁜 상태다.'라고 전달하는 것이 되는 것이죠. 스스로 우울증은 나쁜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서 '나타난 것'으로 직면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나의 우울한 마음을 보고 인정하는 것이죠.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 에너지를 찾는 것이 역설적 개입입니다.


3. 문제 형성과 해결

문제는 문제라고 이름 붙일 때 문제가 됩니다. 문제를 보는 방법을 바꾸면 그 내용도 바뀌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문제아로 낙인 찍으면 그 부모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문제를 자녀에게 뒤집어 씌우는 택이 됩니다. 자녀가 문제아가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문제아로 만든 것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식론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왜 남자는 강해야 하고, 여자는 다소곳해야 합니까? 


마음의 평화를 얻자.


인식론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면 자신의 단점이 문제가 아니라 단점을 새롭게 해석, 인정, 허용을 하게 됩니다. 이 때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자신의 단점을 자신의 소중한 부분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단점을 떼어내려 하면 할수록, 단점은 점점 더 강해집니다.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는 게 중요합니다. 스스로가 성자일 수도 있고 범죄자일수도 있습니다. 모든 게 자신입니다. "난 원래 착해, 난 원래 말을 못해, 난 원래 이래." 자신을 단정짓는 순간! 사고는 정지합니다.


어떻게 부정적 감정을 없앨 수 있을까요? 표현을 잘하면 됩니다. 부정적, 긍정적 나를 모두 표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지금 화가 났어, 나 지금 기분이 나빠, 나 지금 우울해." 감정은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기를 바랍니. 자신 속의 부정적 감정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만나야 합니다. 부정적인 것도 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나가 나입니다. 나의 모든 점을 인정하고 오롯이 만날 때, 마음의 평화는 올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인식론으로 상대를, 나를, 세상을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인과론적 인식론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힘듭니다. 나를, 상대를 변화시키고 싶습니까? 원인을 지적하지 마십시오. 나의 행동부터 변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의 변화가,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오늘, 나의 마음과 대면하시고 마음을 인정하여 주십시오. 아마 마음도 감동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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