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육이야기

움직이지 말고 정자세로. 수능감독 만만하지 않아요.

마산 청보리 2014. 2. 5. 12:05


▲ 수험장 번호가 붙은 교실 내일 이 교실엔 긴장한 수험생들이 자신만의 꿈을 안고 입실할 것이다.

ⓒ 김용만

"선생님, 시험 잘 치고 오겠습니다!!"
"오냐!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 오늘은 푹 쉬고 파이팅!!!"

마지막으로 나의 얼굴을 보면 힘이 날 것 같다며, 제자가 힘을 달라며 인사를 하고 달려 갑니다. 진심으로 힘을 주고 잘 치기를 기원하며 교실로 돌아오니 내년에 수험생이 되는 우리 반 놈들이 찌뿌둥한 얼굴로 맞이합니다.

"선생님, 오늘 언제 집에 가요?"
"우리 반 고사장 정리가 잘 되었는지 확인받고 가면 된다. 조금만 기다리자."

수능 시험장으로 선정된 학교는 전날 시험장 준비로 분주합니다. 책상 정리, 대청소, 종이로 TV 등 가리기, 액자, 시계 가리기, 낙서 지우기 등으로 분주합니다. 수험생들이 차분하게 시험에 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책상에 홀수형, 짝수형으로 출력된 수험표를 붙입니다. 붙이며 반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내일 이 자리엔 우리들은 모르지만 중요한 시험을 앞둔 여러분의 선배가 앉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염원이 이 자리에 기를 줄 것입니다. 우리 반에서 시험 치는 모든 수험생이 수능대박이 날 수 있도록 기를 불어 넣읍시다."
"네, 선생님!!! 기!!!!"

올해도 신나게 아이들과 수험장 준비를 마쳤습니다.

돌아다니지 말고 서 있어라... 교사들도 진땀나는 수능감독


▲ 수험장 칠판에 붙은 안내사항들 오른편에 있는 판서는 '시험 응시 현황'이다. 지금은 빈 괄호지만 내일은 수험생들의 인원이 표기될 것이다.
ⓒ 김용만

내일 들어서서 앉을 수험생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저는 2003년 교사로 발령 받았습니다. 올해로 교직 경력 10년째가 되었습니다. 발령 첫해에 수능 감독을 맡았습니다. 대부분의 수능 감독은 중·고등학교 교사가 합니다. 첫해에 수능 감독을 할 때에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중학교는 모의고사도 치지 않았기 때문에 중간고사, 기말고사 외에 이런 비중 있는 시험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1월에 수능감독을 하라니. 너무 긴장해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하루 종일 서 있다가 퇴근하여 긴장감이 풀려 쓰러졌다는 것 뿐. 다음 해부터는 경험이 있어서 수능감독에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발령 받았고 이때부턴 수능감독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의 모의고사 감독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수능감독은 다른 시험 감독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그 비중이 엄청납니다. 수험생들은 지금까지의 노력이 이 날 하루의 시험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모두들 긴장한 상태입니다. 또 감독관 선생님들은 수험생들을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적의 환경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입장에서 감독을 합니다.

이 날 하루에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결정 난다!! 이 얼마나 막대한 비중입니까? 해서 매년 수능 전날 있는 감독관 연수에서도 수험생들이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소개하자면 (감독관은) 음주를 하지 말 것, 정장 차림으로 감독할 것, 걸을 때 발자국 소리 내지 말 것, 경어로 수험생들을 대할 것, 지나친 화장품이나 향수 냄새를 자제할 것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험 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고 정자세로 가만히 서 있을 것, 수험생들이 도움을 청하면 신속하고 친절하게 임할 것도 주요 내용입니다. 어떻든 수험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지요.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교무실 앞에서 울던 학생, 정말 찡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수험생이 있습니다. 몇 해 전 여고에서 수능감독을 할 때였습니다. 수능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타종이 울리면 문제 풀이를 중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서 감독관들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면 구두로 안내를 합니다. 물론 안내방송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정해진 시간 안에 시험을 다 못 본 모양이었습니다. 교무실 앞에까지 와서 울면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선생님, 제발요. 한번만 봐주세요. 세 문제 마킹을 못했단 말이에요."
"안 되었지만 규정상 안 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시험을 끝내야 합니다."

그 여학생은 계속 울며 사정했습니다.

"선생님, 제발요. 저 재수란 말이에요."
"정말 마음이 아프군요. 학생. 안타까운데 다시 마킹을 할 순 없습니다."

학생은 울면서 돌아갔고 감독을 하셨던 선생님도 마음 아파하시는 걸 보았습니다. 물론 그 광경을 지켜본 모든 선생님들도 안타까워하였습니다.

내일은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입니다. 수험생들뿐 아니라 학부모님들까지 잠을 편히 주무시기 힘들 것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내 자식의 시험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수능에 관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능 당일 늦은 수험생들 태워주시는 경찰 아저씨들, 119 아저씨들, 감독하시는 선생님들, 지금껏 지도하신 선생님들, 문제 출제자 위원님들, 인쇄하신 분들, 문제지를 수송하신 분들, 그리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수능날만큼은 전국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모든 수험생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하시고 응원과 격려를 보냅니다. 대한민국의 수험생 여러분! 내일 나오는 모든 문제는 여러분이 다 아는 문제일 것입니다. 원하는 대학의 합격 여부가 여러분의 인생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여러분 삶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감독관의 한 사람으로서 내일 시험에서도 여러분들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해 돕겠습니다.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마라톤은 초반 스타트가 빠른 선수보다는 끝까지 포기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달린 사람이 결과가 좋습니다. 대학입시는 마지막 단계가 아닙니다. '터닝 포인트'라고 하면 적절할 듯합니다. 시험을 잘 쳐서 좋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시험을 못 쳐서 값진 것을 얻기도 합니다. 어찌되든 무조건 잘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수험생 여러분!!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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