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6일 창원 안계초등학교에서 특별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경남교육뮤지컬연구회 '메아리'에서 준비한 창작 뮤지컬이었습니다. '메아리'는 교육뮤지컬을 연구하고 실천하며 나눔으로 함께 성장하는 교육 연구회입니다. 학교 선생님들과 뮤지컬 전문가분들이 함께 계신 모임으로 자발적으로 연구하며 이를 교육현장에 일반화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예술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저는 영광스럽게도 관람 초청을 받았습니다. 익히 '메아리'를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초청에 응했습니다. 이전 '메아리' 공연은 선생님들께서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낮에는 학생들과 수업하시고 저녁 시간과 주말 시간을 활용해 작품을 창작하고 연습하셔서 힘겹게 완성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배우만 하시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 음악, 조명 등 모든 부분을 직접 해내셨습니다. 존경의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선생님들뿐 아니라 무대장치, 의상 등은 지역 전문가분들께서 함께하십니다. 아마추어지만 열정과 정성만큼은 프로다운 무대였습니다.
11월 26일 공연도 설레는 마음으로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상했던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자미전'으로 심청전, 흥부전 등 전래동화를 기반으로 새로 창작한 작품이었습니다. 심청의 딸 '자미'가 주인공인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자미전'의 탄생 과정은 특히 힘들었습니다. 2023년 상반기 각종 지원사업에서 '메아리'가 탈락하며 예산상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메아리' 선생님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원사업을 받은 마산 안계초등학교 공연과 최대한 연계하여 부족함을 메워 나갔습니다. 해서 공연도 안계초등학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시도의 경우 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교육뮤지컬연구회에 교육청이나 진흥원이 먼저 나서서 지원하는 예도 있다고 하는데 경남지역은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시도 단위의 예술교육 행사를 추진하고자 하여도 지원이나 관심이 없는 것이 참 아쉬웠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어도 '메아리'는 포기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메아리' 첫 모임을 했던 창원시 귀산동을 '귀산마을'로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마산 근교인 함안 산인면의 '고려동 유적지'에 있는 배롱나무에서 영감을 얻어, 배롱나무의 다른 이름인 자미나무의 '자미'를 주인공의 이름이자 작품명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만큼 지역 문화를 녹여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진영금병초등학교, 마산 안계초등학교, 고성 동해초등학교, 마산 무학초등학교, 진해 동진중학교에 근무하시는 '메아리' 선생님들께서 학생들과 함께 '자미전'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즉, 초1학년부터 중3학생, 다문화 학생들까지 함께하는 특별한 작품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번 공연은 기적같이 이루어졌습니다. 진영금병초등학교 자미전의 '자미'를 맡은 학생은 공연 전날 독감에 걸려 공연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학생의 강한 의지와 관리로 다행히 열이 떨어져 무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연출과 미술을 맡았던 한영희 미술감독님은 적은 예산으로 기한 내에 모든 의상과 무대 도구를 제작하기 위해 가족, 친지, 마을 이웃 등 모든 인맥을 총동원하였고 잠을 줄여가며 제작 활동에 임하셨습니다.
각 학교 선생님들과 지원팀 선생님들께서도 학기 말 바쁜 학교 업무, 결혼 준비나 자녀 양육 등 개인적인 일을 겸하며 준비해야 했고 환절기 학교에 유행하는 각종 전염병의 고통을 참아가며 공연 제작을 해야 했습니다. 5개교 64명의 학생들이 무대에 오른 성대한 작품이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맞는 각자의 의상 제작과 분장을 해내었고 아이들이 어른들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작품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최종 창작자로서 무대 위에 설 수 있도록 모든 선생님들이 애쓰셨습니다.
무대 공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관람하러 오신 학부모님들, 내빈분들, 직접 무대에 오른 학생들까지, 공연 후 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금병초 5학년 학생은 "선생님들께서 출장을 가셔서 연습이 취소되었을 때 저희끼리 모여서 연습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연습이 잘 되지 않아 친구들이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된 것 같아요"라고 했고 또 다른 학생은 "처음에는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이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하지만 연습을 하다보니 더 자세하게 봐주시려는 선생님이 참 고맙게 느껴졌어요. 누구보다 공연을 더 잘하고 싶었어요"라는 후기를 말해주었습니다.
음향 감독님께서는 "64명의 아이들 중 단 한 명도 억지로 끌려 나온 것 같은 아이가 없었어요.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역할에 몰입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며 놀랐고 아이들이 대견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기획을 맡으신 김해 진영금병초등학교 김준성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이걸 왜 10년째 계속하고 있고, 올해는 또 왜 이러고 있는가? 하는 회의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올해는 유독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교실에서 진실된 눈으로 저를 믿고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을 보면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아이들은 새롭게 상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려 애썼습니다. 정말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공연 때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연습할 때마다 음정이 틀렸던 아이가 많은 연습을 통해, 공연에서는 마치 음원을 튼 듯 정확하게 노래를 소화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또한 저에게 공연을 마칠 때까지 몸살 감기를 감추었다가 공연 마치자마자 감동과 아픔의 울음을 쏟아냈던 아이의 눈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작은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코러스의 힘은 저뿐 아니라 온 관객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왜 10년간 교육뮤지컬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저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동안 푹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학교는 수업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선생님들은 교과서 지식만 전달하는 분들이 아닙니다. 학생들은 '자미전'을 선생님의 지도하에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며 뮤지컬을 통해 함께의 가치를 배웠고 고난을 이겨내며 성취의 경험을 가졌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며 감격해 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은 끝까지 함께해준 학생들의 공연을 보며 울컥해 하셨습니다. 관객분들은 아이들의 최선을 다하는 연기와 노래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준비한 분들과 관객들이 모두 만족한 작품이었습니다. 지역에 이런 단체와 선생님들이 계신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제 개인적 욕심으로는 이 작품을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올려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 선생님들의 열정과 한국 학생들의 창의성과 진심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적어도 5개교 64명의 학생들과 메아리 선생님들께 2023년은 평생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저에게 교육창작뮤지컬 '자미전'은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입니다. 좋은 작품을 준비하시고 훌륭히 무대에서 보여준, 메아리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영광의 박수를 다시 보내드립니다. 이런 선생님들이 보람을 느끼며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학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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