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그러니까 2022년 12월의 어느 날, 이 책을 샀습니다. 하지만 쉽게 펴지는 못했습니다. 한창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조국교수에 대해 아픈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왠지 모르게 짠했습니다. 조국 교수를 ‘학자이며 실천하는 지성인’이라고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이 되신 후 당하시는 일들을 보며, 같은 아빠의 입장으로, 남편의 입장으로,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온 직업인의 입장으로, 공감되고 아픈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책은 사야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습니다. 해서 선뜻 구입은 했지만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이 책장에 있다는 것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오마이 북에서 독후감 대회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공통특전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자와 함께 하는 시상식 및 저녁식사’. ‘앗! 그럼 조국교수를 직접 만날 수 있는거야? 책이 어딘가에 있을텐데?’ 서둘러 책을 찾았고 펼쳐서 읽었습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 읽었고 이동하고 운동할 땐 e북으로 들었습니다. 468쪽에 달하는 소위 두꺼운 책입니다. 300페이지 정도의 책만 읽다가 솔직히 두렵기도 했습니다. ‘법?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책도 두꺼운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제 시간에 다 읽을 순 있을까?’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책은 생각보다 잘 읽혔고 충분히 유익했습니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저자(조국교수)는 머리말에 ‘1장부터 순서대로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관심 있고 흥미 있는 고전부터 골라 읽으셔도 무방합니다.’라고 안내합니다. 강의 내용을 묶어 출간된 책이라 그러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전 1장부터 읽었고 처음부터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1장, ‘사회계약’부터 저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1장, 자기계약을 통한 국가권력의 형성’
-계약은 대등한 사람들 간에 체결되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 대등하고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계약조건이 맞아야 도장을 찍죠. 만약 상대가 계약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그 계약을 파기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민이,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계약을 해서 국가를 만들었기에 그 국가의 요구에 머리를 숙인다는 관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합의해서 만든 국가나 정부가 우리를 자유롭지 않고 불평등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하죠? 우리는 이런 국가나 정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국가나 정부에 복종할 의무가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있는 것입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프랑스 혁명의 기초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본문 중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워낙 유명하여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내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루소의 삶이 모범적이진 않았지만 이 책은 국가의 목적, 인민의 권리, 자유와 평등의 내용에 대해 개념을 정확히 정립해주었습니다. 오래된 책이지만 촌스럽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의 근본, 뿌리를 확인한 느낌이었습니다.
-잘못된 정부에서는 이 평등이 피상적이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가난한 자는 계속 빈곤 속에서 살고 부자는 계속 수탈하도록 하는 데 쓰일 뿐이다. 사실 법은 언제나 가진 자들에게는 유익하고 못 가진 자들에게는 해롭다...부로 말하자면, 어떤 시민도 다른 시민을 매수할 수 있을만큼 부유해서는 안 되며 어느 누구도 자신을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하지 않아야 한다...이럴테면 강자들은 부와 권세를 절제해야 하고, 약자들은 인색함과 탐욕을 절제해야 한다...바로 사물의 추이가 항상 평등을 무너뜨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입법의 힘은 항상 그것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본문 중
자유와 평등에 대해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개개인의 차이가 없는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저에겐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평등은 모두가 똑같은 것이 아니라 넘치지 말아야 하고 부족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법은) 그것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구절이 특히 와 닿았습니다. ‘그래 이것이 국가의 역할이야.’ 그 어떤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대통령이 가장 현명하고 인자하며 똑똑하지는 않습니다. 국회와 행정부, 사법부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방향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방향성이란 특정인, 특정세력을 위하고 특정인, 특정세력을 배척하는 방향이 아닙니다. 차이에 따른 평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권을 가진 국민(인민)들은 그것에 대해 저항하고 계약을 환기시킬 권리가 있습니다.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보통 사람들의 능력이나 판단력을 어떻게 믿느냐고 하지만, 똑똑하다는 변호사 등 명문대 출신 전문직 출신들이 의원 대다수를 점하는 국회는 그러면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시민총회를 추첨 시민들로 구성해 성공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경험을 보더라도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좋은 제도가 똑똑한 사람을 만들고 좋은 사회를 만든다. -본문 중
무릎을 탁! 쳤습니다. “추첨민주주의 이런 것이 있구나”, 우리나라는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의 경우 소선거구제(다수표를 획득한 1인만 뽑는)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해서 몇 표 차이가 나든 1표라도 더 받은 자가 당선이 됩니다. 나머지 표를 얻은 후보는, 그를 지지한 사람들의 의사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진정 대한민국 각계각층의 국민들을 모두 대변하고 있는지는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선거구제보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 중 추첨하여 법을 만드는 제도를 도입해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1장에서 이미 반 이상을 얻었습니다. 충분히 흥미롭고 유익했기 때문입니다. 2장, 삼권분립과 ‘법을 만드는 방법’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소개하며 권력이 부패하지 않게, 권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그것을 함부로 쓰기 마련이다. 이 점을 지금까지의 경험이 알려주는 바이다...사람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본질에 따라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 -본문 중
사법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민참여재판에 대해 소개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무지한 자는 감각으로 판단하지만, 전문가는 학설과 의견으로 판단한다. 전자의 판단이 후자의 판단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안내자이다...재판관은 유죄판결에 익숙해져 있으며, 모든 것을 그의 전문지식에서 빌려온 인위적 개념요소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재판관의 학식보다는 보통 사람의 상식이 증거판단을 잘못할 가능성이 더 적다. 법을 아는 일이 전문 학문이 아닌 나라는 얼마나 행복한가! 누구나 그와 동등한 이웃 시민들로부터 재판받도록 하고 있는 법제는 정말 경탄할 만하다.-본문 중
책에서는 우리나라 국민들 중 다수가 법원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고 소개합니다. 그것은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이는 국민들의 근거없는 불만과 의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지만 사법부가 철저히 독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미 대법원장을 대통령(행정부 수반)이 임명합니다. 대한민국의 근대사에서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로 피해를 본 이가 많으며 이는 당시 정권의 방향과 우연히도(?) 일치합니다. 긴 시간이 지난 후 무죄판결이 난 사건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사법부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국민을 억압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이행하느라 죄가 없는 국민을 구속하고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낸 행정부의 잘못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국가 권력의 잘못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면? 슬픈 일임에 분명합니다. 감정적으로만 정권을 비판해선 안됩니다. 감정적으로 죄의 무게를 요구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모든 죄는 헌법에 명시된 대로 처벌해야 하고 집행해야 합니다. 그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켜지는 것이 국가의 방향이고 국가의 존재 이유입니다.
-정부를 망치는 것은 부패나 쇠퇴가 초래한 현재의 상태를 변혁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라, 정부가 인민을 침해하거나 억압하고, 어떤 부분이나 어떤 파벌을 구분하여 특혜를 주며 나머지에게는 불평등한 복종을 강요하는 경향이다...인민이 항상 폭정의 무제한적인 의지에 신음하는 것과, 통치자가 권력을 방만하게 행사하고 권력을 인민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서 사용할 때 종종 저항을 하는 것 중 과연 어느 쪽이 인류에게 최선인가? 로크는 저항이 최선이라고 답합니다.-본문 중
이 부분을 읽을 때 저는 이승기씨가 생각났습니다. 이승기씨는 소속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의아했던 부분을 법무법인을 통해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그 후 소속사와 소송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승기씨가 오랜 연을 이어왔던 소속사와 개인적인 친분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만 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승기씨는 법무법인을 찾아가기 전까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을까요? 그리고 그는 결국 법을 통한 해결을 선택했습니다. 본인의 속마음을 제가 감히 헤아릴 수 없으나 저는 이것이 저항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받아들임’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인 ‘저항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법치국가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소속사에게 어찌 그럴수가 있어?’가 아니라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면 됩니다. 누가 잘했니 못했니, 뒷담화를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저항권은 괘씸한 것이 아니라 주권을 가진 이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2023년 지금의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에 개정된 헌법입니다. 무려 30년이 더 된 내용입니다. 10년이면 바뀌는 강산이 3번 넘게 바뀐 현실입니다. 헌법의 개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 때와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당연히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달라졌습니다. 권력이 권력을 견제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 지, 국가권력의 방향이 잘못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 지 우리는 그간의 경험들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헌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범죄와 형벌도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종교, 도덕, 관습과 헌법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인민의 51%가 다른 49%의 권리를 빼았는 결과는 없어야 하며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용어는 정비되어야 하고 법률의 내용도 명확해져야 합니다. 국민의 정치참여권은 확대되어야 하며 특정 국민을 억압하는 목적으로 법이 행해져서는 안됩니다. 감사원과 사법부는 명확히 독립되어야 하며 입법부는 국민을 위한, 일률적 평등이 아닌 공정한 평등사회를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행정부는 입법부와 같이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처벌을 강화하는 정책보다는 예방과 치료,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이 많아져야 하며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위협이 없도록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다양한 정당의 설립과 운영이 보장되어야 하며 법을 알고 행사할 수 있는 자가 유리한 사회가 되어선 안됩니다. 사상과 토론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며 입막음을 위한 정책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나의 권리가 소중하듯 타인의 권리가 소중함을 직시해야 하며 나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에는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 권력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지를 국민들이 언제든 참여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고 국민은 온 몸으로 투표해야 합니다. 어떤 목적에서든 다른 나라에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되며 범세계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처음에 이 책의 독후감을 쓸 땐 4장 분량이 많아 보였지만 쓰다보니 분량을 넘치게 되었습니다. 15권의 고전을 다룬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A4 4장분량으로 소개하는 것이 어찌보면 더 힘든 것일수도 있습니다.(웃음)
‘법’하면 위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해서 이 책을 펼치는 것은 작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국교수는 이 책을 내며 독자들이 법 내용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길 바란 것 같지 않습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법의 목적, 법의 방향, 법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나름 성공한 것 같습니다. 사회교사인 저도 법에 대해 특별히 고민 해 본적이 없었으나 이 책을 읽은 지금, 이젠 법에 대해 학생들과 쉽고 흥미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조국교수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법학자인 조국교수의 전문성에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호기심으로 읽은 책이 법에 대한 명쾌함으로 남았습니다. 독후감 대회가 동기유발이 되어 있은 책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덕분에 잘 읽은 책입니다. 적어도 대회가 이 책을 펼칠 용기를 주었습니다.
정치에 불만이 많으신 분들, 법 하면 두려움이 먼저 떠오르는 분들,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들, 뭔가 세상의 변화를 꿈꾸지만 방법을 모르시는 분들, 그리고 주권을 가지신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조국교수와 함께 한 법고전 산책은 건강한 산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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