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초임 교사의 가정방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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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였습니다. 제가 초임교사였을 때입니다. 당시 한 중학교에 근무했습니다. 초임이라 열정이 가득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꿈이 교사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교사라는 꿈을 가져본 적도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성적에 맞춰 갔었습니다. 꿈?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사범대를 진학했지만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성적 안 좋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학점이 2.5점이 안되었으니까요. 졸업하고 어찌어찌하다가 교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노력은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제가 임용에 합격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학교에 발령을 받았고 남자중학교에 갔습니다.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가르치는 이가 아니라 동네 삼촌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숭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가여운 애들 돌봐주고 싶었고 이기적인 아이들은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더 알고 싶었습니다. 해서 가정방문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장선생님께서 반대하셨습니다.

"김선생, 요즘 가정방문을 하면 안되는 거 몰라요? 출장비는 어찌 감당하려 그래요. 김선생 보고 다른 샘들도 모두 한다고 하면 그 출장비 어찌 감당하려 그래요?"

 

"전 출장비 받지 않겠습니다. 여비부지급으로 신청하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께 누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가정방문은 하겠습니다."

 

통보(?)하듯이 교장샘께 말씀 드리고 교장실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부터 '여비부지급'을 신청하고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샘이 여러분을 더 알고 싶어서 여러분 집에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집은 안 갈겁니다. 강제사항 아니예요. 부모님께 말씀 드리고 샘에게 동의 여부 알려주세요."

 

몇 집만 빼곤 모두 좋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가정방문 코스를 짰습니다. 비슷한 동네의 집들을 4~6집씩 묶었습니다. 당시 저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3시 30분쯤 정규수업이 마치면 5~6명의 아이들과 자전거를 끌고 출발했습니다.

 

"마, 샘 힘들다. 자전가 대신 끌어주라."

 

"네!!!" 애들은 제 자전거를 서로 타겠다며 다투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친구집에 놀러가는 것은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우선 첫 집에 갑니다. 모두 교복을 입은 상태입니다. 첫 집에 가면 그 아이는 사복으로 갈아 입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그 친구방에서 놉니다. 

 

"와! 너거 집에 레고도 있네. 갖고 놀아도 되나?"

 

"야! 니도 태권도 다닜네. 무슨 띠였노?"

 

아이들이 친구들이랑 노는 동안 저는 집을 둘러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례한 행동이지만, 저는 가는 집마다 냉장고를 열어봤습니다. 가스렌지 위에 있는 냄비도 열었습니다. 음식 상태를 보면 평소 아이들의 식습관, 가정환경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집은 실제로 김치찌게에 곰팡이가 펴 있는 집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집을 대충 둘러보고 아이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집은 어때? 부모님과는 좋아? 학교 생활은 어때? 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니?"

 

그리곤 부모님께 편지를 적었습니다.

 

"XXX학생 부모님, 저는 이번에 담임을 맡은 김용만입니다. 이 친구는 학교에서 ~~~ 모습을 보이고 ~~~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 안 계신 상태에서 찾아온 실례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를 보며 이런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생활에 궁금하신 점이나 저에게 부탁하실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십시오. 담임 김용만. 010-000-0000"

 

찾아간 모든 집에 편지를 썼습니다. 집을 나올 때 아이에게 편지를 주며 말했습니다.

"나중에 부모님 오시면 전해 드려라. 집 잘 봤다."

 

첫 집을 보고 나면 다음 집으로 이동합니다. 사복으로 갈아 입은 친구도 같이 나섭니다. 이런 식으로 5~6집을 돌면 거의 6시가 넘었습니다. 마지막 집에서는 아이들과 같이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친구들, 샘과 같이 먹는 라면을 아이들은 좋아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라면을 잘 끓였고 어떤 친구는 라면을 처음 끓였습니다. 

 

"샘 다 됐습니더. 이제 먹지예." 씩씩한 목소리로 라면을 들고오는 아이를 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생겼습니다. 냄비 안에 행주가 들어있는 것을 보기 전까진 말입니다.ㅠㅠ.

 

"마! 행주 들어갔다!" 친구들이 말합니다.

 

"괘안타. 안 죽는다."

 

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아이들 집을 다 돌고나면 3월 한달이 지나갔습니다. 가정방문을 한 아이들은 저와 관계가 특별했습니다. 혼자 생각이지만 저를 잘 따르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때 그 친구들은 한번씩 연락이 옵니다.

 

"샘, 그 때 우리집에 왔을 때 점마가 이랬잖아요."

 

"아이다. 니가 그랬잖아."

 

단순히 아이들을 알고 싶어서 했던 가정방문이었지만 이놈들에게는 재밌는 추억꺼리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교장샘께서 반대하셨던 것도 이해됩니다. 한참 촌지 문제가 많았을 때입니다. 교장샘께서는 신규교사가 말을 안 듣고 가정방문을 강행하는 것이 걱정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제서야 이해가 됩니다.

 

다음으로 고등학교로 옮겼을 때에는 가정방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마치는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한번씩 가정방문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라면값은 엄청나게 들었지만(5명이 라면 5개를 먹는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좋았습니다.

 

한번씩 언론에서, 국민들이 교사를 비난하는 글들을 보면 속이 쓰립니다. 억울함 때문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교사들을 못 믿지...왜 이렇게 교사들을 비난하지...왜 이렇게 교사들을 놀고 먹는 사람이라고 보지...'

 

교사 집단이 대우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들을 함부로 비하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묵묵히 현장에서 아이들을 걱정하며 애쓰시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코로나 덕분에 홈스쿨링이 많이 이뤄집니다. 내 아이 한 두명 보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런 아이들을 20~30명씩 샘들은 봅니다.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말입니다.

 

저는 교사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육아휴직, 연금 때문이 아니라 저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의 응원이 삶의 에너지가 됩니다.

 

"샘, 그때 샘에게 많이 혼났지예. 제가 가출하고 샘이 잡으러 왔다 아입니꺼. 그 때는 샘이 진짜 싫었는데, 이제 알겠심더. 샘, 잡아줘서 고마웠습니더."

 

"샘 덕분에 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더.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저는 만족스럽습니더. 샘 언제 시간됩니꺼? 술한잔 합시더."

 

"샘, 그 때 샘께서 저에게 전화 주셔서 우리 아들 믿으라고 해주신 말씀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제서야 말씀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저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한 우주를 만나는 일이고 한 아이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특별한 일입니다.

 

저는 에너지가 있는 이상, 아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이들어 어느 순간 아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을 땐, 꼰대가 되었을 땐 미련없이 교직을 떠나려 합니다. 최소한 저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있다면 끈질기게 버틸 생각입니다.^^;;

 

요즘 온라인 개학 등으로 생각이 많습니다.

 

드러나지 않지만, 특별한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학교에서 아이들 만날 준비를 하고 계시는 대한민국 선생님들께 응원의 말씀 전합니다.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해도, 공교육을 되 살릴 수 있는 분들은 선생님들이십니다.

 

함께 견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 보고 샘 생각나는 놈들은 당장 답글 다시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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