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엘리베이터


퇴근을 했습니다.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눌렀습니다.

'딩동'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문이 열렸습니다. 안에 딸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어, 어디가는 거야?"

"응, 엄마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데. 그래서 엄마 보러가."

"그렇구나. 잘 갔다와. 아빠 집에 있을께."

"응 아빠."

미소짓는 아이를 태우고 엘리베이터는 제가 있던 1층에서 지하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잠시 후 들리는 소리

"1층, 9층"


곧 엘리베이터가 올라왔고 타보니 이미 9층이 눌러져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아빠를 배려하여 1층과 9층을 누르고 내린 것입니다. 순간 뭉클했습니다.

딸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됩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삶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그냥 살았습니다. 이미 딸아이는 배려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움과 함께 고마운 생각이 가득 찼습니다.


'아..우리 딸이 이렇게 자라고 있구나..사소할 수 있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있구나..고맙다. 고마워.'


'자식은 뜻대로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선생질을 하다보니 많은 학부모님의 한탄속에서도 흔히 들었던 말입니다.


'자식은 뜻대로 안된다..' 쉽게 뱉었던 말이지만 곱씹어 봅니다. '뜻'은 누구의 '뜻'일까요? 자식과 합의된 '뜻'인지, 아니면 부모님이 살아본 결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세워진 '뜻'인지가 헷갈렸습니다. 


부모는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곳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며 하루하루가 달리 변한다고 세상은 외칩니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며 10년 뒤 사라질 직업군은 무엇 무엇이라며 공포를 조장합니다. 성실히만 살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아이들에게 되레 물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성실하십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네"라고 답했습니다. "그럼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행복해 보이나요? 돈을 많이 벌고 계시나요?" 아이들은 답이 없었습니다.

"과연 성실히 사는 것이 잘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아이들에게 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곧잘 던집니다. 답을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에 대해 고민을 해보자는 마음에서 입니다.


부모가 키워주고 싶다고 해서 아이가 그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부모가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가 뜻대로 안되요.'라는 마음 속에는 '내 뜻이 그래도 옳다. 내가 옳다.'는 어찌보면 지극히 주관적인 편견이 자리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 그대로 보면 좋겠습니다. 아이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입니다. 어른과 아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 대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고 어른이 자라 노인이 됩니다. 많은 이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잊고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상상치 못합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의지가 없어...'


세대를 평하는 말은 듣기 거북합니다. 어떤 시대에도 젊은 이들을 탓하는 노인들이 있어왔습니다. 그 노인들도 젊은이였습니다.


내 '뜻'이 옳은 것이 아닌, 우리의 '뜻'이 옳은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남을 보며 남이 하라는 대로 살다보면 내 삶이 없어집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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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미드니오니 2019.01.07 22:5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꼬맹이로만 생각했던 내 아이가 훌쩍 자랐다고 느껴질 때가 있죠.
    뿌듯하면서도 아쉬운..
    그런 복잡한 감정을 한 번씩 느낌니다.

  2. CT 2019.01.07 23:0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그냥 뭔가 일반화 해서 말하는게 싫어요.

  3. 홍진서 2019.01.12 08:26 Address Modify/Delete Reply

    가르침이 아닌 본보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른도 아이도...
    '나'가 아닌 '우리'는...
    오늘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