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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리 앞 괭이바다에서는 "<2017년 제 67주기 10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가 있었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어 참석했습니다.

중간광고

지역의 진일보 팟캐스트 <우리가 남이가>

세상을 향한 세남자의 시원하고 유쾌한 입당

<쥬디맨> 절찬 방송 중

아래 쥬디맨을 클릭하셔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보세요.^^

쥬디~~~맨!!!(클릭클릭)

합동추모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결정문 요지(2009.2.18)

마산형무소에서는 1950년 7월 5일, 7월 21일~24일, 8월 24일, 9월 21일 네 차례에 걸쳐 최소 717명의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이 마산육군헌병대에게 인계되어 집단 살해되었다.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배명기(직다-583)외 357명이다. 대다수의 재소자들은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되었으며, 일부는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총살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중략)


본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을 집단 살해하고, 일부는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는 군법회의를 통해 사형시킨 범죄행위이다...이렇게 살해된 희생자의 유족들은 가족의 행방조차 알지 못한 채 '빨갱이'가족이라는 사회적 차별과 연좌제의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이로 인해 남은 가족들은 경제적, 심리적으로 고통 받았으며, 남은 유족이 다시 가해 기관에 연행되어 구타와 고문을 받고, 심지어 자살을 하는 등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흔히 말하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입니다. 저도 이날 행사에 참여해서 창원지역에서만 2,300명이넘는 민간인이 학살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억울한 고통속에서 살아왔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역의 구자환 감독님께서 보도연맹 학살 사건 관련 다큐 영화를 제작하여 유투브에 무료로 올려두었습니다. 제목은 '레드 툼'입니다. 저도 3번 정도 보았습니다. 시간 내셔서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지역의 유가족분들 뿐 아니라 뜻을 함께 하시는 많은 분들이 전국에서 참여하셨습니다.

노치수 회장님이십니다. 지역 유족분들의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정말 많은 일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괭이바다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습니다.

전통제례가 행해졌습니다.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종교의식으로 경법스님의 천도제가 있었습니다.

천주교 백남해 신부님께서 참석하셔서 억울한 영령들을 위로하셨습니다.


문강자님의 '아버님께 띄우는 편지' 김요아킴, 이정연 님의 추모시 등을 들을 때에는 가족분들의 억울함과 그리움이 느껴져 울컥했습니다.

행사의 마지막은 풍선 날리기였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쓰셔서 하늘 높이 날렸습니다. 단지 풍선을 날리는 것이었지만 '아부지!'하시며 날려보내시는 유가족분들을 뵈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직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현재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날 식의 사회를 보았습니다. 유가족분들의 사연들을 들으며 아무렇지 않게 사회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연좌제로 인한 사회생활의 어려움, '잠시 다녀오꾸마.' 하고 나가셨는데 그 길로 오지 않으신 아버지.. 행방불명된 아버지 이후 가족의 상처들...


누가 이 분들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습니까? 누가 이 분들의 억울함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많은 것을 알고 느끼게 된 하루였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상처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 일이 아니니 괜찮은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입니다. 진실규명은 유족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정의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지지합니다.


노치수 회장 인사말


67년 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전쟁을 핑계로 아무른 

죄목과 재판절차도 없이 많은 민간인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집단학살한 지도 벌써 67년이 흘렀습니다.


전쟁을 이용한 이승만 독재자가 비밀리에 민간인들을 학살하였기에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요, 희생자 가족조차 어디에서, 얼마나, 어떻게 죽였는 지 모르고 있다 전쟁이 끝난 10년 후 1960년 4. 19혁명이 일어나자 숨죽이고 있었던 유족들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나 유족회를 결성하였고 


그 해 전국유족회 중심으로 장면정무나 국회에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또 자체 조사한 결과를 국무원에 낸 보고서를 보면 경남에서만 25만 명이 희생당하였으며 전국적으로 114만 명이라는 많은 국민이 학살, 희생당하였습니다. 국방부 경비사령부공보처에서도 1950년 6월부터 10월까지 106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창원지역에서도 마산형무소에 구금돼 있다 이곳 괭이바다에서 대부분 수장당한 1681명과 당시 진해와 창원읍을 포함한 창원군 각 산골짜기에서 죽임을 당한 700명을 포함하면 창원지역에서도 2,3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학살 희생당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정부에서 만든 보도연맹에 가입한 순수농민들이나 젊은 청년들이 대부분이었고 여성이나 어린 남녀 고등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민족주의자나 학자, 사상가, 심지어 나라를 찾겠다고 목숨을 걸고 활동한 독립운동가도 있었습니다.


분명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사상의 자유도 있었고 표현의 자유도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부를 반대하고 단독정부를 반대한다고 해서, 미군정포고령을 위반했다고 해서 우리 민족을 배반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잘못되고 슬픈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바로 잡으려면 정부나 국회에서 하루빨리 특별법을 만들어 못 다한 진실규명을 하여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정리해야만 한 맺힌 유족의 가슴도 풀리고 구천을 맴돌고 있는 억울한 영혼들도 편히 잠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죽인 사람은 없고 오로지 죽은 사람만 있는 이 슬픈 현실을 하루빨리 정리해야만 할 것입니다.


유족 여러분! 힘내십시오.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질 것입니다.

유족들이 특별법을 위해 힘 모아 앞장 서 활동하면 사회의 많은 분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


오늘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귀중한 시간을 내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017.6.24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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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승만이가. 그렇게 죽였다.논매다가 잡혀가고, 오빠대신 잡혀가고

빨갱이로 몰아 잡아가고, 밑보인다고 잡아가고.

아무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였단다.

총 한방에 죽으면 잘 죽은 거고.

배 갈라 죽이고, 산 사람 땅에 묻어 버리고

10명씩 밧줄에 묶어 바다에 빠뜨려 죽이고.

살아서 물 위에 떠오르면 총 쏴 죽이고.

학생이고 젊은 청년이고 노인이고

그리 무참히 죽였단다. 찍소리도 한번 못해보고.

개승만이 그랬노라. 무너지는 억장을 부여잡으며

말씀하시는 증인들..

무거운 영화지만. 봤다.

마산, 밀양, 진주, 멀쩡한 동네 없이.

산이며, 바다며, 죽어간 사람들.

그 산을, 그 바다를 어찌 보고 살아갈 까 싶다.

억울한 한맺힌 역사, 알아줘야 하기에.

부끄러운 역사지만 , 우리 역사기에

마음 아파하며. 화내며. 봤다.


-레드툼을 본 마산의 한 유치원 교사-



레드 툼...


빨갱이 무덤...


레드 툼을 보았습니다. 감독이신 구자환 감독은 지역의 언론인이기도 합니다. 개봉한 지는 시간이 꽤 지났지만 이제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볼 수 있는 기회는 여럿 있었지만 무서워서...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꼭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름 용기를 내어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일반 영화가 아닙니다. 정확한 구분은 어려우나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칭해야 할 듯 합니다. 특별히 주인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 줄거리-


해방 이후부터 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속에는 지방 좌익과 우익의 보복 학살도 자행되었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 가운데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 차원에서 구금당하고 학살을 당한 국민보도연맹원이 있다. 전국적으로 23만~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만든 계몽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국가의 이념적 잣대로 인해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이다.



영화 속 등장하는 증언자 분들의 말씀이 귓가에 생생합니다.


"경찰서에서 오라고 했지, 경찰서에서 오라고 하는데 뭔 일 있겠나 싶어서 손 흔들어 보내 줬지. 그 길로 안온다 아이가."


"빨리 보도연맹에 가입하라꼬 하더라고, 보도연맹에 가입안하면 빨갱이로 죽는다고 하더라꼬."


"사람들 손을 뒤로 묶고 트럭에 실어서 산으로 올라갔지. 그리고 총소리가 났어."


"마산과 거제에서는 10명쯤 되는 사람들을 묶고 돌을 매달아서 바닷속에 처 넣어버렸어. 그기 사람이 할 짓이가! 그거는 짐승도 그리 안하는기라."


"개승만이하고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길래 이렇게 어만(평범한) 사람들을 죽이노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촌 사람들을 왜 죽이노 말이다."


"당시에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였지. 그냥 죽였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몽둥이로 대낮에 때려 죽이기도 했어."


"나는 지금도 무섭다. 그런 세상이 또 올까봐, 지금도 무섭다. 북한이 아직 있다아이가, 나는 그런 세상이 올까봐 너무 무섭다."


<보도연맹>


1949년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한 반공단체로, 정식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다.


1948년 12월 시행된〈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었는데, 일제강점기 사상탄압에 앞장섰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체제를 그대로 모방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남·북로당의 파괴정책 폭로·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내용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1949년 말에는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고, 서울에만도 거의 2만 명에 이르렀다. 주로 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거의 강제적이었으며,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와 경찰은 초기 후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檢束)과 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6·25전쟁 중 최초의 집단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쟁 와중에 조직은 없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해명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출처 (두산백과)


보도연맹은 지금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보도연맹으로 학살된 분들의 가족들은 지금까지 억울하다는 소리도 못 내고 참고 살아 왔습니다. 자칫 입을 잘 못 놀리면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소리 들을까봐, 취직도 못하고 농사를 짓고 살았다는 분도 많았습니다. 그 분들이 이제라도 고인들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위해 노력 중입니다. 


억울해도 너무 억울한 죽음들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전개 중입니다.


<관련 기사 :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특별법 제정 서명 운동 본격화>



경남지역에서도 태풍으로 인해 우연히 시체들이 발견 되었고 추후 수많은 유골들이 발견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으며 대부분의 학살형태가 비슷합니다.


사람들을 트럭에 싣고 산에 올라가서 죽이고, 살아 있는 사람 중 구덩이를 파고 묻고, 바닷가 에서는 산 사람을 수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빨갱이라고, 빨갱이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분노케 하는 것은 실제로 빨갱이들만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좌익이 무엇인지, 우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도연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고 하면서 그 어떤 법적 절차 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매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은 사람들의 입밖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태풍은 진실을 들춰내었습니다.



영화 중 나오는 유가족 할머니의 곡소리는 너무나도 원통했습니다. 그 원한에 사무친 통곡소리는 보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게 했습니다. 


"극락완생하시오. 그 곳에서는 행복하게 잘 사시오. 이게 무어란 말이오. 아이고...아이고...."


영화를 같이 보던 많은 분들도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너무나 부끄럽지만 우리의 역사입니다.


너무나 원통하지만 우리의 역사입니다.


이 억울한 죽음을 그냥 묻으려 한다면 또 하나의 우를 범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레드 툼..


보도연맹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하시는 분, 해방 전후, 전쟁 직후의 시대상이 궁금하신 분들께,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꼭 보셔야 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보도연맹도 너무나 속상한 일이지만 이런 영화가 극장에 오랜 시간 상영하지도, 상영되지도 못하는 현실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보도연맹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 입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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