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고등학교'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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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24 그녀들은 공순이가 아니라 노동자였다.
  2. 2014.01.25 고등학교의 첫 시작.
  3. 2014.01.25 찬이의 가족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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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사진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습니다.


이름하여 '마실꾼들의 이야기가 있는 사진전'


제목도 참 정답습니다.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1993년 마산 수출자유지역(현 자유무역지역) 동양통신(후에 소니전자)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입사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갓 입사한 그녀들에겐 너무나 열악하고 힘든 노동의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그녀들의 삶은 너무 고달펐습니다.


힘들지만 일을 그만둘 수 없었고, 공순이라는 사회의 시선에 쪽팔리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회사에서의 유일한 즐거움이란 점심 식사 후 언니들이랑 수다떨며 마시던 커피 타임 뿐이었죠.


너무 힘들었고 너무 쪽팔렸지만 꾹 참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힘들고.. 서럽고.. 눈물이 날 때도 많았지만.. 언니, 동생들이 있어 힘을 내고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이리 살끼가! 우리도 여행가고! 답사하고! 공부하며 의미있게 함 살아보자!"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모였고 아이디어를 짜내며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녀들은 이것을 '마실간다.'고 표현했습니다.


일상은 너무 힘들었지만 한번씩 가는 '마실'은 그녀들에게 사막속 오아시스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첫 마실을 무학산 1박 2일 캠핑(?)으로 시작했던 그녀들의 용기는 날로 날로 대담해져갔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을 공부하여 현장을 가보고, 신라의 역사를 공부하며 1년 동안 경주를 다녀왔으며 지역을 알기 위해 우포늪에 가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삶을 경험하기 위해 윤구병교수님의 변산공동체 마을도 다녀왔습니다. 거창양민학살을 공부하여 거창을 가기도 했습니다. 장승을 공부하겠다며 전국의 장승만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한해, 두해...여러 해가 지나며 어느 새 가족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들의 마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마실이 어느 덧 21년...


그녀들은 자신들의 추억을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프로작가들이 아닙니다. 프로 사진사들은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우리들의 이웃들입니다.


우리들의 흔한 옆집 아줌마고, 아는 친구들입니다.


그녀들은 부끄럽다고 말합니다. 


사진전을 기획한 이유도 너무나 소박했습니다.


친구들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때 함께 했던 '동지'들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사진전을 계기로 옛 친구들을 만나 끝나지 않은 추억을 들쳐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천천히 사진을 둘러봅니다.

▲ 공장에서의 점심시간입니다. 이 때의 커피는 얼마나 맛있었는지요.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첫 마실인 무학산에서의 사진입니다. 꽃띠때의 사진입니다.

▲ 가족들이 점점 늘어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그녀들을 막을 순 없습니다. 아이들을 업고도 마음만은 청춘입니다.

▲ 이쁜 공주도 태어나고 지금 하기엔 부끄러운 포즈도 취해봅니다. 친구들과 함께 담근 발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했습니다.

▲ 이렇게 귀여웠던 세 딸이 이만큼 자랐습니다.

▲ 순간순간이 작품입니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신기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부부'라는 작품입니다. 왼편에 뜨게질 하는 손이 그녀의 손이고, 오른편에 실을 풀어주는 손이 남편의 손입니다. 남편은 쇠쟁이입니다. 그의 손가락에서 세월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목이 멘다고 합니다.

▲ 전시회가 끝났는 데 지나가시던 분이 너무 분위기가 좋다며 직접 클래식 기타를 가져와 연주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 21년전의 여성 노동자들이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그녀들의 미소속에 행복함이 가득합니다. 부럽습니다.


그녀들의 '마실'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시작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뭘해예. 이번에 하는 것도 부끄러버 죽겠구먼, 아입니더. 다음엔 못합니더. 이번의 경험도 정말 영광이라예."


회장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하시던 회장님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행사를 소개하는 회장님의 글입니다.


그리고, 이십년...마실꾼들의 이야기


그 때

우린 소니전자 공장에서 만났습니다.

공순이란 이름이 쪽팔렸던 시절, 우리는 공순이 대신

노동자로 살고자 했습니다. '동지'란 이름이 없었다면

오늘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우리에겐 햇살과 바람아래 춤추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납 연기 자욱한 형광등 불빛아래 우리들 꽃띠 청춘을 

묶어두기엔 너무 싱그럽고 자유로운 영혼이었지요.

그렇게 시작되었던 우리의 숨구멍은 이십년을 이어 오늘

주부로, 직장인으로, 엄마로, 아내로, 늦깎이 학생으로

살아가는 사십대에게 여유와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마실꾼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연필과 붓질을 연마하고 있는 이는 그림을 그린다 했고요.

아이들이 올망졸망 딸리고 때론 뱃속에 품고, 업고서

더디게 가는 걸음에 조급증 내지 말고 되돌려 느림의

의미가 되자고 사진 찍기를 택했지요.


가까운 둘레길을 걸어도 우리들 다양한 시선은 각자

개성있는 삶을 응시하리라는 걸 우린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사진기조차 다룰 줄 모르는 어설픈 카메라

렌즈는, 투박한 손으로 누른 셔터에서 무엇을 고정시켰을까요?

할머니화가가 되고 싶다며 배우기 시작한 붓질에선 무얼

그렸을까요?


마실꾼들의 이야기가 있는 사진전에 붙인

회장 하 영 란


<덧붙여. 그녀들의 마실이 궁금하신 분은 5월 29일까지 창동 아고라 광장 1층, 창동 예술촌 아트센터로 가시면 언제든 그녀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입장료가 얼마냐구요? 그녀들의 삶은 값을 메길 수 없습니다. 모두에게 열린 삶이니까요. 꼭! 한번 들리셔서 우리들의 추억과 우리들의 삶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그녀들의 삶이 곧 우리들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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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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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11 

 

인문계 고등학교에 올라왔고 어느 새 2주가 흘렀다.

 

많은 일이 있었다. 솔직히 정신 없었다.

 

난 고등학교 오면 교재연구만 하는 줄 알았다. 수업이 별로 없고

 

남는 시간에 교재연구하는..아이들과 한번씩 진로 상담하는..

 

정도의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ㅡㅡ;;;

 

잡무가 장난 아니었다.

 

우선 난 교실에 가서 아이들과 친해져야만 했다. 아니 친해지고

 

싶었다. 대부분의 시스템은 중학교때 활용했던 것을 그대로

 

응용했다. 자리배치, 생일챙김, 학급비, 화장지 가져오기, 칭찬카드

 

등등등... 하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반장선거를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해봤다. 이름하야 인생곡선!! 학생들에게 각자의 인생곡선

 

을 그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 그림을 교실 뒷면 게시판에 붙이라고

 

했다. 월요일에 그 그림을 기본으로 반장을 뽑을것이라고 말했다.

 

월요일이 되었고 난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주었고 반장하면 좋을 것

 

같은 친구에게 붙이라고 했다. 거의 몰표가 나왔고 우리반 반장은

 

그렇게 선출이 되었다. 아이들도 좋아했고 나도 무척 흡족했다.^-^

 

토요일엔 반 단합 축구를 했다. 우리학교에는 운동장이 빈다.

 

전임교에는 야구부가 있어 마음대로 축구를 할 수 없었다.

 

운동장은 비지만 집이 먼 친구들이 많아 걱정이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나왔고 학부모님께서도 나오셨다. 우린 1시간동안

 

쉬는 시간 없이 공을 찼고 가져온 회비로 음료수를 마시고 깔끔하게

 

헤어졌다. 정말 재미있었다. 고등학생들이라 그런지 참 잘차더라.

 

그리고 야자때마다 1시간에 3~4명씩 개별 상담을 했고 근 1주일

 

넘어서 개별상담도 마무리 되었다. 아이들과 1대 1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한가지 학교생활에서 힘든 점은....바로 나의 업무이다.ㅠㅠ

 

내가 맡은 업무는 내가 참으로 혐오하는 '생활지도'...ㅠㅜ

 

난 1년 동안 아이들의 복장과 두발로 싸워야 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내가..두발을 단속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함 해봐야지.

 

난 가위를 들었다. 그리곤 아이들에게 두발의 기준을 소개하고

 

주말의 시간을 주었다. 정리를 안해 오면 내가 직접 자른다고

 

엄포까지 둔 상태였다. 역시나 많은 아이들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왔다. 난 이번주 월요일 아침부터 가위를 들고 다니며

 

아이들 머리를 짤랐다. 이상하게 짜른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어색하지 않게 짤랐다. 손을 떨어가며..^-^;;

 

도저히 나에게 머리를 짤리는 것을 원치 않는 학생은 말하라고

 

했다. 그 친구들은 일정의 시간을 다시 주고 내가 확인하기로 했다.

 

머리 짜르는 큰 행사(?)가 다 끝난 뒤 난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합포 고등학교에 머리를 짤릴려고 왔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고등학교에 머리를 기를려고 왔습니까?'

 

'....'

 

'선생님도 합포고등학교에 여러분 머리를 짜를려고 온것이

 

아닙니다...'

 

....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두발 자유를 원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일이 생활지도 입니다. 부득이하게 선생님은 여러분들과 1년동안

 

복장과 두발로 만나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여러분들께

 

약속하나 합니다. 두번다시 여러분의 머리에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구렛나루 기루는 데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얼마나

 

기르기 힘든지..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머리를 자른게

 

여러분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위해 짜른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존중합니다. 존중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두발이나 복장에 문제가 있는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이

 

정중히 부탁하겠습니다. 학생부 선생님이라고 해서 모두 무섭게

 

여러분들께 위협하고 폭력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과 1년동안 서로 존중하며 잘 지내기를 희망

 

합니다. 오늘 선생님께 머리를 짤려 마음 상한 친구들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선생님의 마음..말...알겠습니까?'

 

'네!!!!!!!!'

 

'선생님을 도와줄수 있겠습니까?'

 

'네!!!!!!!!'

 

'고맙습니다. 우리 1년간 잘해 봅시다.'

 

이렇게 나의 업무는 우선 정리되었다.

 

-----------

 

망구 나 혼자만의 상상이겠지만 마칠때쯤 되어 4~6명의 친구들이

 

나에게 찾아왔다.

 

'선생님 사실 저의 머리에 상처가 있어 아까진에 선생님께서

 

짜르실려고 하실때 거부했었습니다.'

 

'그래? 함 보자? 아프진 않고?'

 

'네'

 

'그래 다행이구나. 그럼 어떻게 하지? 머리가 긴 것은 사실인데..'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용실에 가서 짤라오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그러자^-^'

 

'선생님 전 머리 너무 많이 짤렸는데예! 점마 저거는 조금밖에

 

안 짜르시고 저는 짝쩨긴데예!'

 

'아닙니더! 점마가 더 깁니더!!'

 

'마!! 됐다. 선생님은 공정하게 짤랐다. 정 마음에 안들면 미용실

 

가서 짤라온나!'

 

'아닙니더. 이 머리 마음에 덥니더. 다음에도 부탁드리도 됩니꺼?'

 

'선생님 이제 가위 안 들기로 했다 아이가. 아까 말했잖아'

 

'아 맞다. 알겠심더. 안녕히 계십시오.'

 

우루루루... 인사하고 달려가는 1학년 학생들...

 

----------

 

난 오늘 아이들에게 죄를 지었다. 그것도 큰 죄를 지었다.

 

이놈들은 날 용서해 준 것 같다. 아니 이해해 준 것 같다.

 

아이들을 보고 아직 인격이 덜 성숙한 미성숙체라고들 한다.

 

그래서 인격이 성숙한 선생님들이 지도 편달을 잘해야 한다고들

 

한다. 인격이 성숙한 어른들이 더 잔인하고 무책임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어른들은 모르는 것일까....

 

오늘 난 다시 깨달았다. 인격의 성숙 미성숙을 논하기 전에

 

상대에게 얼마나 정성으로 대하는 가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라는..

 

난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여전히!!!

 

행복한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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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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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2 

 개학하고 하루 후..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 보니 찬이가 보이지 않았다.

  놈은 한번씩 지각을 하는바.

 

집으로 전화를 했다.

 

'따르릉~네 아버님? 네. 학굡니다. 찬이 담임 김용만이라고 합니다.

 

찬이가 아직 학교에 오지 않아 걱정되어 전화 드렸습니다.

 

무슨 일 있는지요.'

 

'아 네 선생님. 잠깐만요.....네. 오늘 찬이가 아마도 학교에 못

 

갈것 같습니다. 오후에 찬이엄마가 전화할것입니다.'

 

아버님 목소리가 상당히 긴장한 듯 들렸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더 여쭤보기가 어색했다.

 

'네 아버님.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혹시 오후라도 학교에서

 

찬이를 볼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끊었다.

 

그날 오후가 되었고. 마칠때까지도 찬이는 보이지 않았다.

 

7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우리반 찬이와 7반 빈이가

 

함께 가출을 했다는 말씀을 들었다.

 

7반 선생님께서는 상당히 걱정이 되시는 듯 분주하셨다.

 

의외로 난 담담했다. 왠지 금방 들어올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7반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상황이 심각한 것이

 

느껴졌다. 7반 빈이가 가출을 한 적이 있고 아는 고등학교

 

형들이 많이 알아 한번 나가면 집에 잘 안들어온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난 긴장하기 시작했다.

 

매 시간마다 시시각각 들어오는 정보를 접수했고 그 중 유효한

 

정보가 있었다. 합성동 근처 pc방에 있다는 제보.

 

즉시 7반 선생님의 생각에 따라 찬이가 좋아하는 선배를 불렀고

 

그 친구에게 인터넷 접속을 부탁했다.

 

잠시후 세이에 접속이 되었고 그 친구의 한마디..

 

'샘!!! 있는데요!!!'

 

우리의 숨막히는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연히 난 없는 것처럼 두아이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찬이는 상당히 솔직하게 말했고 찬이가 학교생활에서

 

힘들어했는 부분..집에서 힘들어했던 부분들을 어느정도 알수 있었다.

 

이 친구는 찬이에게 어서 들어오라는 얘기를 했고 찬이는

 

알았다고 하고는 채팅방에서 나갔다.

 

난 찬이를 기다렸다....

 

하지만

 

찬이는 오지 않았다.

 

---

 

집에 도착후 찬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찬이에 대한 소식이 없던가예?'

 

상당히 걱정하시는...울먹이시는 목소리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네 어머니 제가 종례할때 찬이 친구들에게 연락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달라고 부탁해 두었습니다. 우선 기다려 보시고

 

연락이 오면 즉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별일 없겠지예?'

 

' 네 어머님. 찬이는 똑똑한 친구니까 별일 없을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죠.'

 

'네. 알겠습니다.'

 

사실 찬이는 똑똑한 친구였다.

 

어머니로부터의 전화는 계속 되었다.

 

'선생님.. 연락 없었습니까?'

 

거의 울먹이시는 목소리..너무나 죄송했다.

 

'네 어머니 괜찮을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죠.'

 

마음이 다급했다.

 

사실 계속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하며 나또한 찬이의 근황을

 

알기 위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1시가 다 되어서.

 

어머님께 또 전화가 왔다.

 

'선생님. 찬이가 친구랑 들어왔습니다. 걱정 많으셨지예.'

 

'아 네 다행입니다. 제가 무슨 걱정을. 어머님 맘 고생많으셨습니다.

 

잘됐네예. 근데 한가지 바램이 있습니다.'

 

'네 선생님.'

 

'제 생각에는 찬이를 우선은 두고 내일 아침에 어머님께서 찬이랑

 

학교에 같이 나오셨으면 합니다.'

 

'내일예? 선생님 시간 언제쯤 되십니까?'

 

'네 아침 8시 30분 쯤에 오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네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네 어머니 참 다행입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부자리에 누운 나는 .. 왠지 마음이 찹찹했다.

 

---

 

다음날.

 

아침에 어머님과 찬이는 학교에 함께 왔고 우리는 교실 옆

 

빈 교실에서 상담을 시작했다.

 

'어머님께서 바쁘신줄 알 지만 굳이 찬이랑 함께 뵙자고 한것은

 

어머님의 마음과 찬이의 마음을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나누는 것이

 

현명할 듯 하여 부탁드린 겁니다.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선생님이 고생많지예.'

 

우린 대화를 시작했고 난 찬이와 어머님께 질문을 하나씩 했다.

 

그 질문의 주요 내용은 주로 상황, 상황에 대한 기분들을 물었다.

 

찬이에게는 집을 나갈때의 기분이 어떠했는지..나가고 나니

 

어떠했는지..다시 엄마를 보니 기분이 어떤지..지금 기분은

 

어떤지..등을 물었고

 

어머님께는 찬이의 대답을 들으시니 기분이 어떠신지..찬이가

 

집을 나갔을때의 기분이 어떠셨는지..지금의 기분은 어떠신지..

 

등을 물었다.

 

하나씩의 질문과...한번씩의 대답..허나 그 대답은 그리 간단한

 

대답이 아니었다. 난 그 대답에 대해 다시한번 상황을 정리하며

 

새겨 들었다.

 

상담한지 10여분이 지났다.

 

어머님께서 찬이에 대한 섭섭함으로 먼저 눈물을 보이셨고

 

바로 뒤.. 찬이는 어머님에 대한 마음으로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난 가만히 있었다.

 

---

 

찬이에게는 어머님께서 어떤 부분에서 찬이로부터 섭섭함을

 

많이 느껴셨는지를 확인할수 있었고 어머님께는 찬이가 언제

 

집에서의 생활을 힘들어했는지를 확인할수 있었다.

 

찬이와 어머님께서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셨기 때문이었다.

 

어머님께서 먼저 가셨고 찬이와의 대화 후 다시 어머님께 연락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난 이 날 찬이에게 과제를 주었다.

 

A4 종이를 반으로 접어 한쪽면에는 (찬이를 힘들게 하는 것들)

 

반대쪽에는 (찬이가 힘들게 하는 것들)을 각각 적어서 집에 가기

 

전에 달라고 했다. 찬이는 알았다고 했고 그날 집에가기전에

 

나에게 주었다.

 

---

 

오늘은 찬이가 제출한 내용들에 대해 찬이와 남아서 대화를 했다.

 

'찬아 찬이가 참 솔직하게 잘 써서 선생님이 기분이 좋구나. 그런데

 

몇가지 선생님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너에게 시간을

 

청한 거야. 선생님과 얘기좀 할수 있겠나?'

 

'네'

 

찬이와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하나하나의 답에 대해 꼼꼼히 물어보았다. 그리고 찬이의 기분을

 

살폈다.

 

그런데 이미 일은 잘 해결되어 있었다.

 

어머님께서 바로 전날 저녁 가족회의를 연 것이었다.

 

그날 회의에서 부모님과 찬이는 솔직한 대화를 나눈듯했다.

 

찬이에 대해 부모님께서 섭섭하신 부분과 찬이가 부모님께 원했던

 

부분이 공유가 된듯했고 서로서로 이해를 해서 일이 잘 해결된

 

것이다. 찬이도 분명히 흡족해 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 얘기를 해야 될 때라고 생각했다.

 

'사실 선생님은 찬이한테 좀 섭섭한게 있다.'

 

'뭔데요?'

 

'선생님이 찬이를 선생님집에 데려가서 밥도 같이 먹고 했던

 

이유가  있었다. 뭔지 아나?'

 

'잘 모르겠는데요.'

 

'선생님은 찬이랑 좀더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랬는데 이번일로

 

선생님은 찬이가 선생님을 그리 친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같아서

 

조금 섭섭했다.'

 

찬이는 멋쩍게 웃었다.

 

'혹시!! 다음에 나갈때는 선생님! 저 지금 집 나갑니다.라고 전화

 

한통 해 주면 안되나? 니도 봤다 시피 우리집에 빈방도 있다.

 

밥값만 주면 선생님이 안전하게 도와줄수 있다. 된나!'

 

씨~익 웃더라.

 

'아무튼 찬이가 바로 들어와서 선생님은 너무 기분이 좋다. 그리고

 

집에서도 얘기가 잘 된것같아 더욱 좋고.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찬이가 일이 있을때 선생님한테 힌트라도 주면 좋겠다. 니 궁금

 

한게 얼마나 참기 힘들줄 아나! 잘해보자~이'

 

찬이는 알았다고 했고

 

2박 3일에 걸친 찬이와의 대화는 이렇게 일단락 되었다...

 

----

 

어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집나갔다가 온 놈을 혼을 안 내면 되요?'

 

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혼을 내지는 않았다.

 

그 친구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알고 싶었고

 

어머님과 그 내용을 함께 확인하고 싶었다.

 

그 친구가 갑갑해 하는 것이 뭔지를 확인 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 갈때의 찬이는..

 

왠지 가벼워 보였다.

 

이 놈들과의 새로운 삶은 어느 새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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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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