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해냄'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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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허수아비춤, 정글만리...대한민국 현대사를 소설을 통해 관통하고, 글을 통해 친일을 청산하려고 노력한 작가, 그가 이번에는 역사, 경제를 넘어 대한민국의 현 교육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대한민국 사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이게 문제가 아니면 뭐가 문제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 현실이 어찌 정상인가? 어른들은 왜 이 문제에 무심한가? 도저히 사교육은 없앨 수 없는 것인가? 조정래 작가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현 시대의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제 사교육은 '졸업장은 학교에서, 공부는 학원에서'할 정도로 그 위세가 난공불락이 되었다. 그 폐해의 심각성은 너무 심해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되는 극한에까지 와 있다. 


연간 40조를 넘는 사교육 시장의 병폐는 누구의 책임일까.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정부의 책임이고, 교육계의 책임이고, 사회의 책임이고, 학부모의 책임이다. 


이제 이들 모두가 똑같이 공동 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의 내일은 점점 나락의 길로 치달아갈 수 밖에 없다.(머리말 중)


이 책의 형식적 주인공은 '강교민'선생님입니다. 작가는 '강교민'이 무슨 뜻의 줄임말인지 독자들에게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전 책을 2번 읽었지만 아직도 '강교민'이라는 뜻이 명쾌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강교민'선생님은 특별한 교사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고, 올바르며, 정의로운 교사입니다. 학생 학생편에 서며 아이들이 대학이 아닌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를 원하는 교사입니다.


처음에는 그가 이 책의 주인공인지 알았습니다. 읽다 보니 그가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적어도 저는 강교민 교사가 아니라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읽혔습니다.


책에는 다양한 상황의 아이들이 나옵니다. 소위 부자 부모를 둔 공부를 엄청 잘하는 아이, 부자 부모를 두었지만 부모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이, 가난한 아이, 학교에서 문제아라고 칭하는 아이,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


강교민 선생님은 아이들편에 서며 대한민국 교육의 자화상을 들춥니다. 그리고 작가는 그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 교육이 지향해야할 바에 대해 한마디씩 던집니다.


-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 중에 하나는 나와 남을 비교해 가며 불행을 키우는 것이다.


- 그 어떤 경우에도 교육은 처벌이 아니라 용서고 보살핌이고 사랑입니다. 교육자는 제 2의 성직자여야 한다는 패스탈로치 선생의 말씀은 역시 불변의 진리입니다.


- 공부라는 것, 그건 각자가 선택한 직업에 알맞게만 적당히 하면 되는 것이고, 돈이라는 것도 하루 세끼 먹으면서 누추하지 않게 사람 품격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지면 되는 것 아닐까?


재미있습니다. 처음에는 두 권이라는 것이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1권을 펼쳐 읽는 순간, 순식간에 2권까지 다 읽은 저를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역시 조정래작가님이시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입니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읽으며 작가의 역사적 안목과 자료수집에 대해 놀랬던 것이 새삼 기억 났습니다.


'풀꽃도 꽃이다.'도 그냥 쉽게 쓴 책이 아닙니다.


한국교육의 현실은?


조정래 작가님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한국교육,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 몰고 있는 한국교육,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덮고 있는 아이들의 괴로움, 입시라는 그림자로 사회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한국 교육에 대해 여러가지 자료들을 내보이며 경고합니다.


- 놀라지 마십시오. 공부 때문에,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애들이 1년에 얼만지 아십니까? 연간 500명을 넘어 하루 평균 1.5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애들을 죽게 한 게 누굽니까?...지난 15년 동안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학생이 8천여 명이었습니다. 연평균 533명인데, 지난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우리 군인들이 5,099명으로 추산된다고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곳은 다름 아닌 교육부였다. 교육부에서는 연간 5,500건에 달하는 공문 폭탄을 투하했다. 선생들은 해당 부서에 따라 그 부서를  그 보고서를 작성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탕진하며 골이 빠졌다. 


그러니까 선생은 현장 교육자가 아니라 행정관료로 전락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교육자 역할은 그만큼 소흘해져 선생들은 어쩔 수 없이 수업 준비가 부실해졌고, 학생에 대한 관심도 등한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마치 교육부는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교육을 망치려고 있는 이상한 조직 같았다. 교육부는 왜 그 많은 공문을 남발해 대며 교육을 망치는 행태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중앙의 통제와 지배를 강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던 군부독재의 욕구였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생긴 것은 2004년 9월이었다. 그것이 2011년에 발생한 충격적인 자살 사건을 계기로 대폭 보완, 강화되어 2012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던 것이다...그 종합 대책의 핵심은 경찰력까지 동원해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폭력을 더욱 강한 폭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 발상이었다...학교 폭력이 발생하는 그 뿌리를 캐내려는 근본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그 강력한 제도가 생기고 10여년이 지나는 동안 학교 폭력은 통계상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폭력의 형태가 교묘해지고 은밀하게 바뀐 것 뿐이었다. 그 교묘함과 은밀성 때문에 선생들은 그것을 발견해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초, 종, 고생의 48%가 학교 폭력을 당했고, 그들의 42%가 자살을 생각했다는 통계를 강교민은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그 집 아이는 말 잘들어요?"


어른들이 쉽게 하는 인사말입니다. '말 잘듣는 아이?' 어느 새 우리는 아이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잘 들어야 착한 아이, 말을 안 들으면 문제 아이가 됩니다.


학교에서 원하는 학생도 언제부턴가 말 잘 듣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즉 시키는 대로 하고 어른말에 순종하는 아이, 세상이 어찌 되던 공부만 하는 아이, 친구야 어찌되던 자신의 내신만 관리하는 아이, 친구야 어찌 되던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부모...


한국 교육은 이미 수능, 내신, 논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합리화 하며 학원, 대학, 학교의 비교육적 행태에 명분을 주며 아이들을 내몰고 있습니다. 


이 트라이앵글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사교육이 필수인 사회, 이 사교육을 위해 아이들을 학원, 과외 현장으로 내모는 엄마들, 아이들은 어느 새 무기력감을 넘어 부모에 대한 증오의 씨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업이 꿈이 된 아이들


- 학생들에게 엄마에 대해 물은 여론조사가 있었다. 그 응답 결과는 끔찍하고도 참담했다. 최악이라는 게 96퍼센트였고, 그저 그렇다는 게 3퍼센트였고, 좋은 엄마라는 게 1퍼센트였다.


-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와 상담하느냐는 질문에 학생들 40.2%는 '친구'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0.9%였다. 그런데 60%의 아버지들은 아이들이 자신을 대화 상대나 상담 상대로 생각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얼마였을까? 엄마는 아예 없었다.


최근에 제가 느끼게 된 일이 있습니다. 어느 새 초등학생들까지 꿈에 대한, 정확히 말하면 미래 직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꿈이 뭐야?'


이 질문 자체에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시절에 미래 직업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 정상입니까?


지금의 어른 세대들은 자신이 초등학생 시절에 가졌던 꿈이 지금 종사하시는 직업인가요?


아이들에게는 꿈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꿈을 가지고 있는가요?


언젠가부터 꿈은 곧 직업이 되었습니다. 


꿈이 없는 아이는 직업이 없는 아이 마냥 취급되어 그 아이 뿐 아니라 아이의 부모까지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걱정이예요. 아직도 꿈이 없어요. 꿈이.'


꿈은 직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직업은 재능을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계의 유능한 학자들조차 재능이 아닌 노력의 중요성을 지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 100인에도 선정되었던 '말콤 글래드웰'이 주장했던, 하루에 3시간 이상 10년을 하면 누구나 어떤 분야든 전문가가 된다는 만시간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자가 말했던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 즐기는 것은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재능이 있어 하는 것만큼 하다보니 즐거운 일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어른들이 많이 읽어야 할 소설


'풀꽃도 꽃이다.'는 많은 점을 고민하게 합니다.


독자들에게 '한국교육 문제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이미 우리는 너무나 가슴 아픈 사건을 경험하며 아이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에도 어른들의 삶은 변함없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을 더 나은 고등학교, 더 나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동분서주 바쁜 어른들이 많음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세상에서 정성을 다하면 굶는 직업은 없다고 했습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인생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성찰하시기를 원합니다.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하며 서평을 정리합니다.


-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가장 귀한 것은 아이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착한 광고>

경남꿈키움중학교에서 2017학년도 신입생을 추가 모집합니다.


모집기간은 2016년 10월 31일(월) 부터 11월 4일(금)까지이며


원서는 11월 4일 오후 4시 30분 도착분에 한합니다.


사회통합전형만 추가모집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무실 055 - 760 - 3820 으로 전화주셔서 


추가모집관련 질문을 주시면 친절하고 상세하게 안내해 드립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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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이 많이 당선되었습니다.

세월호에 대한 반감이라는 분석도 있고 새로운 교육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의 교육으로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교육의 형태를 제안하는 책이 있어 읽었습니다. 서머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서머힐은 영국의 교육학자 A. S 닐이 1921년에 설립한 실험적 대안학교입니다. 학생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며 5세부터 17세까지의 학생들이 생활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채은이는 부모님의 권유로 오빠와 남동생과 함께 서머힐로 가게 됩니다. 서머힐에서 9년을 생활한 채은이의 서머힐 소개와 함께 교육의 시사점을 던져주는 의미있는 책입니다.

 

서머힐의 넓은 공간은 새로운 것으로 가득했다. 노느라 황홀한 낮이 끝나면 엄마 없는 밤이 시작되었고, 엄마가 보고 싶은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게 편하고 좋기만 했다. 한국 학교에서는 나는 늘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차가운 느낌의 복도와 텅 빈 벽의 휑뎅그렁한 화장실 그리고 교실에 길게 줄 맞춰 늘어서 있던 딱딱한 책상들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딱 한 곳, 쉬는 시간에 인형을 가지고 놀 수 있도록 매트를 깔아놓은 교실 뒤쪽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나는 놀이에 무척이나 굶주렸던 아이가 아니었나 싶다. 마음껏 놀기, 서머힐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다.’

 

채은이는 한국학교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서머힐에는 특별한 교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 속에 있는 학교입니다. 쓰임이 정확히 정해진 기구가 없습니다. 각자 하고 싶은 데로, 놀고 싶은 데로 뛰어 노는 곳입니다. 채은이는 서머힐에서 특별한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한국 학교의 경직성도 소개합니다. 우리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각진 학교 건물, 연병장을 떠올리게 하는 넓은 운동장, 최근에는 거의 모든 학교에 다 구비된 강당, 네모난 교실과 복도들, 생각해보면 참 딱딱합니다.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강조하면서 학교 건물만큼 경직된 건물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직 수업에만 최적화된 교실과 학교 환경, 아이들의 생활을 위한 교실과 학교 환경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쉴 수 없는 한국 아이들.


어른들도 무리해서 일을 하면 과로로 쓰러진다. 그래서 휴가가 주어지는 것인데 한국 아이들에게 휴식을 안 준다는 데 놀랐다.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은 없는데,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놀게 해주고 싶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학원에 보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인 듯해 안타까웠다.’

 

아이들을 쉬게 해 주고 싶고, 놀라고 놀이터에 보내도 함께 놀 친구가 없습니다. 모두 학원에 가기 때문이지요. 보이지 않는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아이들은 염문도 모른 채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권유와 강제로 학원을, 과외를 받습니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성향은 놀기인데도 말입니다. 어른들은 말합니다. ‘대학가서 너 원하는 것 다 할 수 있어. 그러니 지금은 참아. 지금 참으면 나중에 편해지는 거야. 엄마 말들어.’ 나중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참으라..이것을 참고 견디는 훈련이라고 포장하기도 합니다.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확실치 않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는 것이 옳은 일인지 말입니다. 오늘이 행복하고 행복하여 이 행복이 쌓이면 자연스레 미래도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오직 풍요로운 자연뿐, 도시만큼 많은 것이 제공되지 않는 서머힐에서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어나갔다. 놀이를 고안해 내고 할 거리를 찾아냈다. 누군가가 뭔가를 해주고 무언가가 벌어지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직접 나서서 삶을 이끌어가야 했다. 서머힐에서 내 삶을 스스로 끌어갔다면, 도시의 삶은 나를 끌고 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지금, 시골에 살던 때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져보려고 조금씩 노력중이다.’

 

채은이의 생각입니다. 자연속에서는 스스로 행동하며 생활했지만 도시에서는 끌려다니는 것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도시에서는 돈도 훨씬 많이 필요하죠. 자연에서는 내가 움직인 만큼 얻을 수도 있고 직접 행할 수도 있지만 도시에서는 이 모든 것을 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과 함께 자란 아이는 감사함을 알고, 함께의 소중함을 알고, 연결됨의 원리를 아는 것 같습니다. 공감을 잘 한다는 뜻입니다. 상대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도시에서 자라면 아무래도 이런 부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내 돈을 가지고 내가 쓰고 싶은 데로 쓰면 되니까 말입니다.

 

개인마다 다른 성장 속도


나이는 개개인이 성장해야 하는 속도를 예상하는 데 도움은 주지만 모두 그 숫자에 맞춰 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는 같아도 사람마다 성숙하는 시간이 다르다. 남들의 속도가 아니라 자기 속도로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곳, 서머힐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만 먹으면 저절로 학년이 올라가고 너 몇 살이야?’로 모든 게 정해지는 사회, ‘나이값을 해야지.’라며 새로운 의무가 많아지는 사회, 한국사회인 듯 싶습니다. 생물학적 나이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합니다. 개인별로 자라는 속도가 다르고 관심분야가 다릅니다. 내 아이의 부족한 부분만 비교하며 나무라는 것은 아닌지요? 빨리 자라는 아이도 있고 느리게 자라는 아이도 있습니다. 억지로 키우려고 하고 억지로 끌고가려는 과정 속에 상처받는 아이들이 생기는 법입니다.

 

심심해, 오늘은 뭐했는데? 몰라 심심해, 심심함은 아주 중요해

그렇다. 심심함은 중요하다. 별 걸 다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 창의력을 발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머힐에서의 심심함은 단지 무료함이 아닙니다. 재미있는 것을 찾기 위한 과정입니다. 심심해야만 재미있는 것을 찾게 됩니다. 심심하다고 할 때 놀꺼리를 던져주는 어른이 아니라 재미있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어른도 필요합니다.

 

정작 배우는 것은 없는 학교


나는 엄마에게 학업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토로했다. “엄마, 난 너무 공부를 안 하는 것 같아. 서머힐 보다는 공부를 하도록 밀어주는 한국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지금 같아서는 고등학교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대학도 가고 싶은데.”

엄마가 대답했다.

한국 학교에 가면 공부는 많이 시키지. 하지만 정작 배우는 건 없어. 재미도 없고 힘만 들거야.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니 공부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넌 알아서 잘해나갈 거야.”

 

서머힐에서 너무 놀기만 하니 미래가 불안한 딸과 엄마의 통화내용입니다. 딸은 불안합니다. 서머힐 학기 중 방학때마다 한국에 돌아오는 데 한국의 친구들이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합니다. 이 때 엄마가 도와줍니다. 잘하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천천히 기다려 줍니다. 결국 채은이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GCSE(영국의 중등교육 수료 시험)’를 서머힐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함께 준비합니다.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찾고 스스로 준비하며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말이죠. 채은이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기다려 주는 학교.


많은 사람들이 대안학교에 대한 편견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만 모이는 이상한 학교라는 것이다. 물론 서머힐에는 일반 학교에서 적응을 못해 학부모들이 마지막 희망을 걸고 데려오는 아이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서머힐에서 영찬이와 빌리는 아주 잘 자랐다. 서머힐에서는 누구에게도 아무런 강요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갱단을 몰고 다니며 말썽을 부리기도 하고, 혼자 어리바리하게 숨어지내기도 하면서, 자기 속도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강요하지 않는 것, 기다려 주는 것의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일반학교는 너무 바쁩니다. 1년에 몇시간을 이수해야 하고, 몇 과목을 이수해야 하고, 그러려면 하루에 몇 교시 수업을 해야 하고 그러니 아침일찍 학교에 와야합니다. 시험을 쳐야 하기에 진도를 나가야 합니다. 국가 단위로 치는 시험이 있기에 전국의 학생들이 획일적으로 똑같은 내용의 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서울에 사는 아이도 경상도에 사는 아이도 한국지리시간에는 서울의 지도를 가지고 도심을 배웁니다. 자기가 살지도 않는 지역인데도 말이죠.

 

예술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의 이름을 외웁니다. 학파를 외웁니다. 작곡가의 성향을 외웁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감상 아닙니까? 아름다운 것, 감미로운 것을 본 그대로, 듣는 그대로 느끼는 것 아닐까요? 쉽게 말하자면 아이들은 자신의 관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12년 동안 접하고 외우고 또 외웁니다. 이것이 학교를 졸업한 후 많은 성인들이 학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곳이 진짜 세상입니다.


서머힐은 유명한 학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안교육 관계자들이 서머힐을 방문합니다. 전 세계에서 대안교육의 많은 관계자들이 서머힐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서머힐 방문객들이 조이(서머힐 교장선생님)에게 하는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서머힐에서 아이들은 자유, 어른과의 동등한 위치 등 바깥세상에서는 흔히 주어지지 않는 것들을 누립니다. 그러다가 서머힐을 졸업하고 진짜 세상에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이는 똑같이 대답했다.

 

이곳이 진짜 세상입니다.”

 

서머힐에서는 매일 매일 새롭고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서머힐의 아이들은 매일 매일 다투고 화해하며 공동 미팅을 하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서머힐의 아이들은 졸업하여 대통령이 되진 못해도 각자의 삶을 만족하며 행복해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영국내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서머힐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진 않습니다.

1999년 영국 교육기준청(우리나라로 교육부 정도로 보입니다.)은 서머힐 감사 보고서를 발표하며 국가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고 학생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서머힐에 정책에 제동을 걸게 됩니다. 즉 서머힐의 교육정책 폐기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합니다. 서머힐은 2000년도에 승소하며 서머힐의 교육철학을 계속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 합니다. “국가가 결정하는 것이 뭐든 옳은 것이고 국가가 결정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특히 교육은 그러하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전 왠지 아이들이 가엾게 느껴집니다. ! 우리도 저렇게 자랐습니다. 어떻습니까? 국가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우리, 국가와 인류사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 있나요?

 

아이들을 미성숙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스스로 자란다는 교육철학을 가진 서머힐. 적어도 개교 후 90여년이 지났으나 졸업생들이 큰 문제가 없는 것을 보면 서머힐의 교육철학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자유와 자율성을 너무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책, ‘서머힐에서 진짜 세상을 배우다.’를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 채은이의 부모님을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혹시...만에 하나 혹시 채은이의 부모님 되시는 분이 저의 부족한 서평을 보신다면 연락바라겠습니다


좋은 책을 세상에 내놓아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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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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