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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고, 개교 12주년 이야기, 선생님들의 수다

마산 청보리 2021. 6. 14. 18:19

2014년 2월, 저는 '공립 대안 태봉고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서평을 썼었습니다. 이 책은 2010년 3월 개교한 국내 최초의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 교장이셨던 여태전 선생님께서 쓰셨던 책입니다. 미인가 대안학교, 사립 대안학교가 한국학교의 대안을 제시하던 시절, 공립 최초로 개교한 태봉고등학교를 세상에 알린 책이었습니다.

당시 이 책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과 고민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좋은 책입니다. '공립 대안 태봉고 이야기'라는 책이 나온 뒤 7년 뒤, 그러니까 태봉고등학교가 개교한 지 12년이 지난 2021년, 그 후속편이 나왔습니다. 오늘 소개할 <선생님들의 수다>가 그것입니다.

'공립 대안 태봉고 이야기'는 교장의 시선으로 쓰인 책이었다면 '선생님들의 수다'는 여태전 선생님과 같이 근무하셨던, 그 후에 오셨던 선생님들께서 교장실이 아닌, 교실과 학교에서 아이들과 직접 교육 활동을 했던 선생님들의 이야기입니다. '배움과 성찰에 목마른 교사들의 10년 실천교육학'이라는 부제가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해 줍니다.
 


혼자가 아니라 가능했다

<선생님들의 수다>는 6분의 수다쟁이들이 모여 2년간 나눈 이야기를 묶어 소개한 책입니다. 태봉고에 근무할 때부터 독서모임을 통해 학교, 학생,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셨던 분들이 태봉 10주년을 맞이하여 '태봉고 10년을 기록하면 의미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주제를 정해 허심탄회하게 나눈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기획된 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수다를 엮은 책입니다.

책에 나오는 수다쟁이 6분의 선생님들은 (류주욱, 백명기, 손옥금, 오도화, 이인진, 하태종) 현재 각자의 자리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태봉고는 좋은 추억만 남긴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최선이 정말 최선이었는지, 학교는 어떤 곳인지, 교육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교사들입니다. 6분의 선생님들은 태봉고에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나누며 본인의 느낌, 생각에 대해 편안히 나눕니다.
 

교사들은 누구나 자기의 틀이 있어요. '교사라면, 학생이라면 이래야 돼'하는, 그건 대부분 학창시절 본 교사의 모습 또는 선배 교사들을 보고 배운 것이고, 모범생으로 살면서 쌓아온 교리 같은 것이죠. 그게 어쩌면 학교를 지탱하고 이 사회를 지탱하는 소중한 기둥 역할을 하고 있을 지도 몰라요. 그러나 변화무쌍한 아이들을 상대하고 세상의 변화와 함께 가려면 그 공고한 틀 밖을 보려는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해요. 무엇보다 교사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자유로우려면 더욱 그렇죠.

우치다 타츠루가 한 말처럼 훌륭한 선생님들로 가득한 것보다 다양한 선생님들이 많이 있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을 더 크게 키운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을 가진 선생님들과의 교류 속에서 건강한 갈등을 겪는 거죠. 그 만남과 갈등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자기 결대로 자라나요. 물론 다양함 속에서도 주류 문화는 건강해야 하겠죠. 다양한 교사들이 아이 한 명, 한 명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읽으며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선생님들은 당장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애썼고, 현실을 마주하며 노력했습니다. 모든 노력과 열정이 행복한 결말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이 분들은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최소한 '문제의 원인은 학생 때문이다'라고 탓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 또한 같은 인간으로 존중했고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닌 자기 자신도 돌보려 깨어있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졸업생들의 수다로 마무리 됩니다. 1기, 3기, 4기, 5기, 9기 졸업생들이 모여 태봉고에 대한 추억과 자신의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저는 마지막 장을 읽으며 '이 부분만 봐도 좋은 책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교장선생님, 선생님들보다 학생들의 생각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저는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이 많지 않은데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교 친구들과 비교해 보면 제 모양을 잘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대방이 세모든 네모든 동그라미든 그 사람의 성향에 맞춰줄 수 있는 유연함을 배운 것 같아요. 태봉에서 다양한 아이들을 봤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상대방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존재 자체로 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많이 변화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태봉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태봉에 다녔던 시기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가장 나다운 시기라고 하고 싶어요. 가장 편하고 가장 좋았던 날것의 나를 보여 주었던 시기였어요. 가장 날것의 나를 알기 때문에 나중에 깊은 굴을 팔 때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태봉도 가장 나다운 모습을 표현할 수 있고 그런 나를 받아주고 기다려줄 수 있는 학교였으면 좋겠어요.


잘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첫 장을 펴고 3시간 정도 만에 다 읽었습니다. 무겁지 않으면서, 정답을 제시하진 않지만 뭔가 뭉클한 고민을 던져준 책입니다. 제가 교사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학교는 없습니다. 좋은 학교도 함부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나쁜 학교는 있습니다. 나쁜 학교를 졸업한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흔히들 사회는 무한 경쟁, 적자생존의 세상이라고 학생들을 겁줍니다. 학교에선 통해도 사회에 나가면 통하지 않으니 '말 잘들어'라고 학생들을 억누릅니다. 이미 많은 어른들도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겁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나와 특별했던 선생님, 나를 이해해 주셨던 선생님, 나를 도와주셨던 선생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를 존중해주신 선생님이었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실패와 좌절을 해보지 않고, 함께 사는 삶에 대한 고민 없이 공부만 하며 자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자라면서 꼭 해야 할 경험을 못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학교가 아니더라도 배울 곳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학교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할까요?

대한민국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합니다. 여기서 교육열이 바른 방향인지, 이기적 방향인지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높은 교육열 덕분에 학생들 또한 행복해졌는지, 그 학생들 곁에서 애쓰시는 선생님들이 가르침의 보람을 느끼는 학교인지는 고민해 봐야 합니다.

학생이, 교사가 행복하지 않은 학교라면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정말 어쩔 수 없습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세상 속에서도 아이들을 잘 키워내려고 아등바등하는 선생님들이 계시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학생들이 있다면, 이 문제는 그냥 넘겨서는 안 됩니다.

간만에 교사로서 고민을 던져 준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나에 대해 잘 몰라 불안한 학생들, 내가 가르치는 것이 맞는지 혼란스러운 선생님들, 옆 집 아이들이 마냥 부럽고 내 아이는 불안한 보호자분들, 교육정책을 결정하시는 높은 분들께 이 책을 꼭 권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을 짚어주는 책입니다.

모르고 하면 실수지만 알고도 안 한다면 과실입니다.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공교육을 세우려고 애쓰고 있다는 말도 듣고 싶습니다.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계시는 한, 교육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아이들 곁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더 많이 계시기에 희망을 봅니다. 특정대학, 특정직업을 가진 제자를 자랑하는 선생님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는 제자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선생님들 또한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나의 작품이 아니며 스스로 자라는 존재들입니다. 이 책의 선생님들의 수다는 건강한 수다였습니다. 학교에 대한 건강한 수다를 나눌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학교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성장이 이뤄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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