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청보리가 읽은 책

'죽은 교사의 사회'를 읽었습니다.

마산 청보리 2024. 4. 5. 13:51

차승민 선생님의 10번째 책, ‘죽은 교사의 사회’를 읽었습니다. 차승민 선생님은 영화교육의 선구자로 알려진 분입니다. 초등교사지만 그의 교육철학은 대한민국의 많은 교사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2013년 ‘영화를 함께 보면 아이의 숨은 마음이 보인다.’를 시작으로 다양한 책들을 펴내었습니다. 교사로서 무력감을 느꼈을 때 영화에 빠졌고 그것을 활용해 아이들과 영화를 같이 보며 수업하며 그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대처하며 교과서 이상의 교육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차승민 선생님의 별명인 ‘대마왕’은 아이들에게 유쾌하면서도 집요하게 파고들어 아이들을 장악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매년 학기 말 반 학생들에게 직접 피드백 받는 ‘대마왕 사용 설명서’를 보며 자신의 수업과 교육활동에 대해 성찰하는 선생님입니다.

     

‘죽은 교사의 사회’는 3년간 힘들게 집필한 책입니다.

-이 책의 제목을 ‘죽은 교사의 사회’로 정하기까지 많이 고심했다. 2023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비롯해 교사가 세상을 등지는 참담한 현실이 벌어졌다. 그 시류에 편승해서 관심을 끌기 위한 제목으로 비칠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영화 속에 나오는 교사의 모습을 발췌해 교육의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다. 밝고 희망에 찬 내용도 있지만, 현장 교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면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분노도 영화 이야기로 풀고 싶었다.(들어가며 중)

이 전에 출간한 책들을 보면 비판보다는 교육과 교사에 대한 안내, 설명하는 책들이었다면 이 책은 결이 다릅니다. 학교 현실, 대한민국 교육체제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많이 고민하며 쓴 책이라는 것을 읽다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안 없는 비판이 아닙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도 아닙니다. 현실을 직면하고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섬세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다만 그 소재를 교사가 나오는 영화들을 통해 풀어냅니다. 아마 해당 영화를 본 분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해와 공감이 특히 깊을 것입니다.

책에서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포함 25편의 영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물론 저자는 이 영화들을 한 번만 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관객의 입장에서 본 것이 아닙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교사와 교육현장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수업을 돌아보며 한국 교육을 봅니다. 영화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허구입니다. 허구지만 현실을 분명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사회와 그 현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 부분을 본인의 시각으로 정확히 분석합니다.

영화에 대한 설명만 한 것이 아닙니다. 본인의 부끄러웠던 시절, 교사로서 부족했던 상황도 가감없이 표현하며 자신을 먼저 드러냅니다.

-학교를 두 번째로 옮긴 초임 교사 시절, 체육 자주하고, 아이들과 레슬링한다고 뒹굴었다. 무용한다는 핑계로 운동장에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틀어놓고 리듬체조로 한 달을 보내기도 했다. 그땐 몰랐다. 내가 잘 가르쳐서 아이들이 잘 따른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가장 젊은 남교사였고 그저 다른 교사들보다 아이들이 나를 더 편하게 여겼을 뿐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 선생 하는 것 별거 아니구만.’ 난 잘 가르치는 선생인 줄 알고 기고만장해 가고 있었다. 2001년 11월,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일이 있기 전까진 말이다.(본문 24쪽)

책을 읽다 보면 교사 차승민의 과거와 현재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합리적인 교사, 따뜻한 교사, 실천하는 교사가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고민했고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리고 학교 현장을 보며 문제점과 한계, 개선되어야 할 방향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세린은 포기하지 않는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한 세린은 선배 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수업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키겠다고 하는 에린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선배 교사들, 오히려 그런 시도를 하려는 에린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가슴을 후벼 파는 비아냥으로 의지를 꺾어버린다. 예전이 이 영화를 봤을 땐 영화 속 선배 교사가 참 미웠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예린에게 비아냥거렸던 교사들 역시 과거에 큰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부정적 생각이 대물림 되는 것 같아 더 처참하다.(본문 51쪽)

- 인생의 실패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와 나태에 있다고 말한다. 영화에 그려진 미국 공교육의 모습에서 우리 교육에 참고할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더 나은 형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자신할 수 없다. 미국의 공교육이 겉으로 망가진 외상이 많이 보인다면, 우리의 공교육은 안에서부터 망가지고 있는 내성이 더 크다. 더군다나 이제는 그 내상을 감출 수도 없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본문 65쪽)

- 그럼에도 <지상의 별처럼>에서 보여주는 교사 니쿰브와 이샨의 관계는 시사점이 크다. 가르친다는 것은 좋은 교재와 학습법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가르치는 활동은 배우려는 학생의 의지와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또한, 배움에 있어 의지와 태도는 학생의 마음가짐에 영향을 받는다. 교사는 학생이 배우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하고, 공부에 방해되는 학생의 부정적인 마음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훌륭한 교사는 아이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본문 177쪽)

책을 펴고 몇 시간 만에 다 읽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후련함 보다는 갑갑함이 더 큽니다. 교육활동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여러 상황이 얽혀 있는 복잡한 유기체적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정답이 없습니다. 교육활동은 상황변수가 많고 똑같은 잣대로 반응한다고 똑같은 교육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자도 마지막에 이렇게 갈무리합니다.

-원고를 쓰기까지 거의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쉽게 쓸 것 같았지만 가장 어려운 글쓰기였다. 가장 오래 했고, 가장 자신 있었으며, 가장 잘한다고 생각했던 영화 보기와 글쓰기는 교사로 살고 있는 나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면서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본문 267쪽)

저자인 차승민선생님을 아는 사람들은 평소 그의 유쾌한 대화와 장난끼 많은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평소에는 가볍게 보입니다. 허나 교육현장, 교실,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변합니다. 그와 평소 대화를 자주 한 입장에서 이 책을 통해 그가 하고 싶어했던 말들을 영화를 통해 표현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결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었습니다. 적어도 나만 하는 고민이 아니라는 것, 같이 고민하는 동지가 있다는 것, 내가 잘못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냉정하고 분노를 담아 글을 썼다고 했지만 책을 다 읽은 독자의 입장에선 분노를 느끼진 못했습니다. 그만큼 글을 많이 다듬었으리라 예상합니다. 이 책을 교사들만 읽기를 바랐던 것 같지 않습니다. 학부모, 교육정책 결정자, 교사, 학생,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적어도 영화 속 교실이 현실 속 교실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만 인지해도 이 책이 주는 울림은 큽니다.

책에 소개된 25편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저자의 안목을 평가해 보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교육에 대해 한 발 떨어진 거리에서 확인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죽은 교사의 사회’, 비록 아픈 학교 현장이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책입니다. 많은 분께 권해드립니다. 이 책은 아프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들을 잘 담고 있습니다.

학생, 교사, 학부모가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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