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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3.30 학생들이 짜는 살인범 도주 여행? 2013/6/18

2013/6/18

학기에는 특별한 수행평가를 준비했다. 협동 학습을 통한 가상의 여행 보고서 작성 및 발표하기가 바로 그것. 지난 5월 수행평가 계획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많은 아이들이 많이 의아해했다.

"선생님 그게 뭔가요? 어떻게 해야 하죠?"
"이번 수행평가는 기존의 시험시간 중에 치르는 서술형 형태와는 다릅니다. 선생님이 약 2달간의 시간을 줄 테니 그 기간에 조별로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하는 것입니다. 물론 직접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터넷과 관련 서적을 통해 이동 방법, 맛집 조사, 체험 프로그램 등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조원이 3명이면 2박 3일 코스로, 4명이면 3박 4일 코스로 준비합니다. 여러분들의 보고서는 발표가 끝나면 자료로 만들어서 여러분께 다시 배부할 것입니다. 그 자료를 가지고 실제로 여행을 갈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네!"

곧이어 질문이 쏟아졌다.

"선생님 저희가 운전해서 간다고 해도 되나요?"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세요. 시외버스나 기차를 추천합니다."
"시기는 언제로 해야 하죠?"
"여러분이 가고 싶은 때로 정하면 됩니다. 신나는 여행이 되면 더욱 좋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협동학습이 시작됐다.

"스토리가 있는 여행을 생각해주세요"


 조별 활동중인 아이들
ⓒ 김용만

조는 내가 직접 짰다. 일부러 남녀 비율을 맞추고 성향을 고려해 편성했다. 특별히 유리한 조나 특별히 불리한 조가 없게 하기 위함이다.

이 수업은 자료를 찾고 자유롭게 협의를 해야 하기에 학교 도서관에서 진행한다. 이미 사서 선생님께서 컴퓨터와 여행 관련 도서들을 준비해주셨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내용이 구체화되고 재미가 더해지고 있었다.

6월 넷째 주, 중간 상황을 점검했다. 이미 자료 준비가 다 돼 PPT를 만들고 있는 조도 있었고, 아직 여행지조차 정하지 못한 조들도 있었다. 보다 의미 있는 활동을 위해 아이들에게 말했다.

"가능하면 여행을 그냥 구경만 하는 것보다 스토리를 넣었으면 합니다. 이런 부분에선 준이조가 매력적입니다. 소개하자면…, 준이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 보냅니다. 준이 친구들은 이런 준이를 보며 너무 마음 아파합니다. 그래서 준이를 위해 친구들이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장소는 평소 준이가 가고 싶어했던 남해. 그곳에서 마지막 추억을 쌓고 마지막 날 준이가 죽습니다. 친구들은 준이의 유품을 가지고 가장 의미 있었던 여행지에 와서 유품을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스토리가 들어가면 훨씬 재미있고 유익한 여행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아이들은 경청한 후 또다시 회의에 들어갔다.

"네! 선생님. 저희 조는 수능 후 뒤풀이 여행을 갈 겁니다."
"저희 조는 외계에서 온 외계인이 제주도에 불시착했으나 제주도의 풍경에 매혹돼 정착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어요."
"저희는 살인범이 도주하는 여행을 짜보려고 합니다."
"니 얼굴이 살인범 아이가?"
"니가 더 살인범 같거든!"

아이들이 "와~~~" 하고 웃는다. 정말 다양한 스토리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가능하면 모두 다 수용했다.

"네, 네,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 같이 하는 겁니다. 말이 안 된다고 친구 의견을 묵살하지 말고 끝까지 듣고 함께 의견을 모아가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네!!!"라고 힘차게 말하며 신나한다.

아이들이 부딪히며 '함께'라는 가치 배울 수 있길


 아이들 질문에 대답 중인 나
ⓒ 김용만

몇몇 학생들에게 이번 학기 한국지리 수행평가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일반 수행평가와는 달라 매력적이었어요. 하지만 집중을 안 하는 친구들이 있어 속상하기도 했어요."
"처음 여행 계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급하게 하다 보면 내용이 뒤틀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힘든 면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며 협동심이 향상되는 것 같고 혼자 보다 여럿이 하니까 친구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새로운 면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주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시험형이 아니라 발표하는 거잖아요. 아직 발표를 하진 않았지만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이런 경험은 참 소중한 것 같아요."


 인터뷰 중인 학생
ⓒ 김용만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물론 시험지에 문제를 내어 채점을 하면 편하다. 아이들도 어찌 보면 편하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 같지는 않다. 가상의 여행 보고서를 작성하며 아이들은 서로 부딪히며 '혼자보다는 함께'가 더 의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정해져 있지만 그 틈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때 그 수행평가는 참 의미 있었다'고 추억하길 희망한다. 아이들은 무능력하지 않다. 단지 그럴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상한 내용을 질문하며 배시시 웃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난, 행복한 교사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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