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미국 이민자들, 그들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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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단편들은 문학이 아니라 기록이다. 하지만 논픽션은 아니다. 허구이다. 나처럼 조국을 떠나 부평초처럼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이야기 중 불확실한 부분을 상상력으로 살짝 보충한 허구이다...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채집하는 사람이다. 


구천에 가지 못한 혼백처럼 여기 저기 불온하게 떠다니는 이야기를 자기만의 고유한 언어의 그물망을 던져 사로잡는 사람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붙들었으면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을 때 세상에 다시 풀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 중



"마이너리티 리포트" 익숙한 제목이었습니다. 다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2002년에 상영한 톰크루즈 주연의 미래 SF영화를 떠올렸습니다. "뭐야? 공상 소설아냐?" 사실 개인적으로 공상과학소설은 좋아하지 않기에 큰 흥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저도 모르게 몰입되어갔고 밤을 꼬박 새워 책을 다 읽었습니다.


소설이지만 허구같지 않은 이야기


이 책은 9개의 단편소설로 묶여진 책입니다. 해서 더욱 읽기가 수월했습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소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이야기게 꼬리아가 등장합니다. 황숙진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작가는 1959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서 1983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 후 미국 생활을 하며 글쓰기를 시작하여 2008년 미주 문인협회 신인상을 시작으로 다양한 상을 받으며 작가로 등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는 LA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미주 현대문학 연구회란 모임을 결성, 틈틈이 글을 쓰는 한편 미국의 최신 단편소설들을 모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에서 대학생활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간 분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책을 다 읽고 나서 왠지 소설 속의 이야기가 작가의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그 분의 삶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첫 작품부터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미국인 거지' 첫 작품의 제목입니다. 알콜중독의 경험이 있는 주인공이 '잭'이라는 알콜중독자인 홈리스(극 중 노숙자)를 만나며 일어나는 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단순한 홈리스라고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그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군인이었습니다. 주인공 또한 월남전에 참가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잭'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월남전이 한국에 미친 상처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린 피해자야, 우리 목숨의 대가로 박정희가 미국에서 10억불 받은 돈으로 70년대 초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어. 5천명이나 죽었어. 그 피 흘린 대가로 이만큼 살게 됐는데 이제 와서 우릴 무슨 죄인 취급하는 거야."


'어쩔 수가 없었어. 나는 살아야 했어. 다시 그 상황이 되풀이되어도 나는 방아쇠를 달길 거야. 양민학살이라고? 다 전쟁이라곤 좆도 모르는 빨갱이 같은 놈들이 짓거리는 헛소리야'-본문중


주인공인 킴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분명히 있었던 일이지만 잊혀져 가는, 너무나 아픈 일인 월남전과 그 피해 당사자들, 그 당사자들의 가족들 이야기를 LA를 배경으로 풀어냅니다. 그리고 월남전이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현재 미국에서도 그 후유증이 분명히 남아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산타모니카의 기러기'입니다. 기러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능력있는 남편은 한국에서 외국 출장을 다니며 일을 하고 자신은 딸아이와 미국에 와서 생활합니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습니다. 딸아이도 한국에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아빠가 좋아할까?라며 비아냥거립니다. 남편과 딸아이 사이에서 이미 자신의 삶은 없습니다. 


작가는 단순히 이야기만을 전하지 않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경기'에서는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자본주의는 한 손에 당근과 한 손에 채찍을 든 동물원 사육장의 모습을 취하고 있죠. 승자에게는 엄청난 혜택이 주어지는 반면 패자에게는 가혹하기 짝이 없죠. 누구나 패자가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그러나 내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자본주의의 비약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비인간화와 자연의 황폐화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어요. 


선진국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 등 새로운 산업국가, 아프리카 등 신생 개발 국가에서 범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요. 성장이 가져다준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본문 '죽음에 이르는 경기' 중


이 외에도 미국 사회 속에서의 한국인의 모습, 멕시코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꾸고 넘어온 불법이민자들의 삶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한때는 언제든지 가서 일하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던 소규모 농장들도 나프타(북미자유협정)가 체결된 후에는 모조리 다국적 기업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나마 최근에는 불경기로 대기업 농장들이 인원을 대량 감원하자 치아파스(멕시코의 주)의 도심 곳곳에는 대낮부터 일거리를 잃은 노동자들로 득실거렸다."


"다만 들은 바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갱들이 우글거리는 지역에서도 장사를 하는, 돈 벌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겁이 없는 민족이라는 것이다...백인들에게는 마냥 비굴하면서도 멕시칸과 흑인들은 무시하는 게 꼬레안들이지."-본문중


왠지 암울하면서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미국에 이민을 갈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마찬가지의 이유로 미국으로 숨어 들어갈수 밖에 없는 다른 민족들, 백인들을 제외한 그들만의 삶, 거대한 나라 미국속에서 나타나는 엄청나게 많은 , 표면화 되지 않는 이야기들.


이 책은 단지 허구일 수도 있지만 많은 생각꺼리를 주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같이 매력적인 소재이며 우리나라의 모습까지 되돌아 볼수 있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는 제일 마지막 작품인 '오래된 기억'입니다. 작가는 별다른 언급을 하고 있진 않지만 왠지 작가 본인의 이야기같은 이야기 입니다.


"왜? 수십 년 세월이 가도 안 변한 것도 많지." 종세가 환길에게 소주잔을 따르며 말했다. "분단조국, 동서갈등, 입시지옥, 병역문제, 빈부격차, 그리고 가장 중요한 또 한가지....군부독재" 환길은 종세의 그 말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사실 미국은 잘 몰라. 미국에 대해 별 관심도 없고...그냥 미국의 엘에이 코리아 타운에서 한국말을 하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뉴스를 보고 한국식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갈 뿐이야. 우리 이민 일 세대는 그래.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래. 젊은 날의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가겠지. 애들 세대엔 달라지겠지만, 딸만 둘을 뒸는데 큰 애는 시집갔지." - 본문 중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공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명 매력적인 소설임에는 분명한데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머리속이 엉키는 느낌이 드는 책은 처음인듯 했습니다. 한국에서 자랐다가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지켜본 고국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떠나온 사람들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 삶은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는 은은한 외침,


제 주위에 소설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외치는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그 분들께 조용히 권해 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허구라 해도, 사실이라고 해도, 분명히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이 글을 읽고 호기심이 드는 당신에게 권합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터.' 황숙진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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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아하자 2015.03.29 18:5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사실은 소설을 잘 읽진 않는데, 요즘은 판타지소설이라도 의식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2. 일그러진 진주 2015.05.22 11:4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한국에서 창원대 학부를 다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 온 캐이스인데 왠지 공감가는 부분들이 많은 거 같아요.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 (요즘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서점들이 여러 군데 있어서 한국책도 쉽게 구해서 읽을 수가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