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 :: 노르웨이의 청년은 행복할까?

리브 마리트 베베르그가 지은 <다행히 아무도 나를 모른다.>를 읽었습니다. 노르웨이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르웨이 작품은 처음 만났습니다. 이전에 제가 알던 노르웨이는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 정도였습니다. 이 책은 노르웨이 청년의 서투른 독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제가 <한없이 불투명에 가까운 청춘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제목만 보고 청년들의 힘겨운 삶인 것 같아 읽었고 내용도 제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노르웨이는 분명 복지국가인데 청년들의 삶이 뭐가 힘들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노르웨이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노르웨이는 분명 복지국가가 맞습니다. 전 국민이 임금의 40%이상을 세금으로 내며 법정 근로시간 주당 37.5시간, 년 25일의 의무휴가, 일반 직장의 경우 70세에 은퇴하지만 은퇴 후 연금이 자신의 평균 급여의 80%라고 합니다. 2014년 기준 노년층의 평균 연소득이 8,700만원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노년의 삶을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체 이런 나라의 청년들이 무슨 걱정이 있지? 소설이라고 해서 완전 허구를 담은 것은 아닐까?’ 의구심도 들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사람 사는 곳은 기본적으로 비슷하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학교 밖이 진짜 세상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많은 것을 배운다.(안타깝게도 막상 다니는 동안에는 별로 배우는 것이 없다.) 그리고 드디어 공이 굴러가기 시작한다. 삶의 공이. 학교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배운다. 학교에 다니면서 배웠던 모든 것들은 진짜 세상에서 쓸모없다는 사실 또한 배운다. 그동안 감쪽같이 속아온 셈이다. 다들 삶의 공을 마음껏 갖고 놀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게 할지 결정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여러 가지 선택지와 수많은 가능성이 있으며 꿈은 이루어진다고, 그렇게 배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 없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이를 이해한다. 자신의 한계를 알아챈다. 아주 많은 한계들을 깨닫는다. 모든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납득한다.(본문 중)


노르웨이의 학교도 한국 학교와 비슷한가? 찾아봤습니다.(이 책 덕분에 노르웨이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학생들은 공부나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 공부합니다. 몇 몇 사립학교를 빼면 교육비가 전액 무료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5%의 학생들은 취직합니다. 나머지 15%는 대학에 진학합니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멀면 교통비까지 지원한다고 하니 비교가 힘들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학교의 교육에 대해 불신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회는 교과서에서 배우던 것과는 아주 다른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주요한 이유입니다.


책은 주인공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점부터 시작합니다. 자신의 작은 포부를 펼치기 위해 홀로 오슬로(노르웨이의 수도)에 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전문대에 가게 되지만 입학식부터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지각을 해 버렸고, 무단결석을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모릅니다. 주인공은 이 순간부터 자신의 삶의 공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학교에서 배운 장밋빛 세상은 있지 않았습니다.


책은 재미있게 쓰여 있습니다. 일반 소설처럼 내용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별로 소제목이 달려있고 일기형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심리를 여과 없이 쏟아내고 읽다보면 어느 새 여주인공의 마음에 빠져들어 함께 당황하고 함께 분노하게 됩니다. 스스로 독립해야 하는 청년의 심리를 훌륭하게 묘사합니다. 주인공의 행위가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지만 후에는 공감이 됩니다. 


‘나’는 남자친구와의 불편한 관계가 끝난 뒤 잠깐의 자유를 만끽하지만 학자금 대출기간도 만료되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매일 집안에서만 생활하며,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던 그녀에게는 큰 도전인 셈입니다. 더 이상 집에 손을 벌리기도 힘들고 자신의 노력으로 살아가야 할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녀는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노르웨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하는 과정은 한국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장의 무례함, 하루하루를 힘들게 사는 청년들의 삶, 자신의 인생 공이 어디로 굴러갈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삶.

-갈색 머리가 조금 당황했는지 어색하게 웃는다. 사장이 뭐라 중얼거린다. “나중에 뭔 변명을 하려고, 저 답답이가.” 그러고 나서 다시 소리친다. “당장 이리 와서 앉아!”...“방금 바닥에 누워 있었지?” 사장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뭐, 됐고, 앞으로 이곳에 큰 변화가 생길 거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긴장 좀 풀어, 아직은 안 자를 테니까”(본문 중)


일을 해야만 하는 자와 일을 시키는 자와의 관계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주인공도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사장의 무리한(?) 지시도 나름 최선을 다해 따릅니다. 물론 서툴지만 말입니다.


주인공은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원하지만 어찌어찌하여 안경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깁니다. 안경의 삶도 팍팍하기는 주인공과 별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38마리의 쥐를 키운다는 것이죠. 어느 날 안경이 침묵하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안경이 자신을 차버리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안경에게 가식떨지 마라며, 갈테면 가라고 화를 내며 소리칩니다. 그 순간 안경이 말합니다.

-안경이 머뭇거린다. “그러니까 그건 그냥...제가 여기 계속 살면서 그 지긋지긋한 직장에 다닐 수 없게 됐거든요. 그럴 수 없게 됐어요.”(본문 중)


-공이 느닷없이 예기치 않은 길로 굴러간다고 해서 드디어 삶의 목적지를 발견했다고 여기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그저 방향만 바뀌었을 뿐이다. 삶의 공은 한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마지막 문단)


책은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며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청년과는 분명 다릅니다. 우리나라 청년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주인공은 최소한 노동복지부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찾고 생계를 이어갑니다. 차라리 원치 않는 상황이라는 것은 주인공의 성격과 더 관련이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삶을 향유하는 충분한 수입을 벌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 사회에서 불투명에 가까운 청년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청년과는 그 고민 정도가 다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르웨이가 무조건 좋은 나라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복지 수준이 다르다고 해도 근원적으로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책입니다. 읽히기도 잘 읽히고 약간은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의 심적 변화를 접하며 나 자신의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저자는 오슬로 대학에서 북유럽 문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이 책은 “서툴게 독립하는 청소년과 성인 들을 위한 유쾌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았고 문화부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이듬해 <다행히 아무도 내가 필요 없다.>는 책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독특한 문체와 독특한 이야기 전개과정이 매력적입니다. <다행히 아무도 내가 필요 없다.>도 꼭 읽어 보고 싶습니다. 

노르웨이와 삶에 대한 이해를 원하시는 분들게 추천합니다. 삶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나를 모른다 - 10점
리브 마리트 베베르그 지음, 한주연 옮김/종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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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산 청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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